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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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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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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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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1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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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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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4화

DUMMY

" 왜 백기사가 당신들의 주적이야? "


요안나가 묻자, 테오도르는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란 인간이 저질러 온 행적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긴 이야기였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학살' 이었다. 뭔가 오래된 금지 마법을 사용하여 최소 60만명 이상을 죽였다고 한다.


그게 과연 사실일까?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단순히 테오도르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지만 정황상 그가 거짓말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이라 단언할 수도,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확인해야한다.


요안나에게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단순히 어릴 적 일했던 가게의 사람 좋은 사장님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오빠에게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사장을 칭송했고, 존경했으며, 동경했다. 단언하건데 그 짧은 생을 끝맺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확인해야만 한다. 사장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는지, 했다면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해야 할 요안나의 오빠는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는, 오빠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그녀가 대신해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정말로 학살을 저질렀다면, 누구나 납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게 아니라면, 학살자를 동경한 가엾은 멍청이가 되버린 오빠를 대신해 그 숨통을 끊어놓아야한다. 나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다고, 요안나는 생각했다.


끼이익...


그녀는 문을 열고, 탑의 최상층으로 올라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로 멀리 대사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가볍게 떨리는 몸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고 각오를 다잡았다.


" 할 수 있어. "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일부러 소리내어 말하며 두 손으로 뺨을 가볍게 두들긴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속이기 위한 근거없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했을 때와 달리, 지금의 그녀는 3명의 『기사』와 함께하고 있었다.


4 : 1


세상에 다섯 밖에 없는 『기사』 중 네 명이 단 한명의 『기사』를 말살하기 위해 대사막에 발을 들여놓았다.


***


" 이번에는 뭔가 한 무더기 몰려왔네. "


시간축을 어떻게 맞출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던 아르모어는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공중도시를 감지하고 손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공중도시를 감지한 엘리가 읽고 있던 책을 아무렇게나 휙 던져버리며 살벌하게 말했다.


" 잠깐 가서 치우고 올게. "


" 아니, 넌 연구실 가지고 잠시 안식처에 가있어. "


" 왜? "


당장이라도 공간이동해서 쳐들어가려던 그녀를 아르모어가 만류했다. 엘리가 이유를 묻자 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 아무래도 날 찾아온 손님들 같거든. 멀리서 여기까지 와줬는데 예의상 얼굴은 비춰줘야 하지 않겠어? "


말하지 않은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엘리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아르모어가 침입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살려서 보내지만 않는다면 그녀가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 알았어. 아빠가 하고 싶은대로 해. 대신 나중에 뒷탈없게 잘 처리하기야? "


" 그래, 약속할게. "


" 그럼 됐어. "


약속을 받아낸 엘리는 지체없이 안식처로 공간이동했다. 동시에 그들이 앉아있던 건물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막에 아르모어와 애냐, 한 사람과 한 인형만이 덩그렁히 남겨졌다.


" 제가 먼저 들어갈까요? "


애냐는 남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주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드높은 하늘 - 상공 7km 지점 - 에는 하늘과 똑같은 푸른색으로 전신을 칠한 기간트가 흐릿한 푸른 입자를 흩뿌리며 둥둥 떠 있었다.


" 아니, 여기서 기다린다. "


"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던데요. "


주인의 결정이 달갑지 않은지 애냐는 뿌루퉁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그러나 아르모어는 주변의 모래로 의자를 만들어 앉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 내버려둬. "


" 하지만... "


" 여기는 아직 대사막의 초입일 뿐이야. 그리고 녀석들의 목적이 나라면 아슬아슬하게 규정에 걸리지 않아. "


그렇게 말한 아르모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가만히 주인의 말을 곱씹으며 의도를 생각해보던 인형은 곧 바보같은 짓이라는걸 깨닫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유야 어쨌건간에 그녀의 주인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쥐톨만큼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 허락없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


위이이잉!


공중도시의 격납고에서 12기의 기간트가 뛰어내렸다. 상공 10km 지점에서 자유낙하한 기간트들은 8km 지점 즈음에서 비행 장비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등에 짊어진 거대한 장비에서 새파란 마나 입자들이 무서운 기세로 뿜어져나오면서 추락하던 기간트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콰앙!


아르모어가 앉아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25km짜리 거대한 원을 그리며 흩어진 기간트들은 모든 기체가 지정된 자리에 도착하자 지체없이 들고 있던 말뚝을 지상으로 쏘아보냈다. 그렇게 사막 깊숙히 틀어박힌 말뚝들은 이내 주변 공간을 불안정하게 왜곡시키면서 결계를 형성했다. 이것으로 백기사는 결계를 파괴하지 않는 한, 공간이동도, 『기사』를 소환할 수도 없게 되었다.


" 결계 설치 완료. "


" 좋았어. "


통신기를 통해 인형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테오도르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기사를 상대하면서 가장 신경썼던 문제가 바로 놈의 도주를 저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백기사의 『열쇠』가 선행했던 정찰기를 똑바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무사히 결계가 펼쳐진 이상, 놈은 독안에 든 쥐에 불과했다.


" 결계 팀은 복귀 후 재무장, 전투 팀은 1팀부터 차례대로 출정한다. "


"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무미건조한 인형의 대답이 들리고, 곧이어 2번 격납고에서 5기의 기간트가 출격했다는 신호가 올라왔다. 전투 1팀이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U5-S가 미래의 기술로 만들어진 기간트라고 해도 『기사』를 상대로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테오도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20개 전투팀, 총 100기의 U5-S를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기사』들을 투입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백기사를 소모시켜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걱!


" 뭣!? "


그러나 기세좋게 내려가던 전투 1팀은 배후에서 떨어져내린 은빛 섬광에 양단당해 맥없이 사막에 추락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놀란 테오도르는 범인의 정체를 깨닫고 다시 한번 놀랐다. 배후에서 전투 1팀을 베어버린 범인은 다름아닌 은기사였던 것이다.


***


" 이번에는 아주 요란하게 등장하는구나 요안나. "


아르모어는 양단된 기간트들의 잔해와 함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 거대한 은빛 기사를 보면서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기사의 흉갑이 열리면서 얼마 전에 보았던 요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거니? "


" 당신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다.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변화를 감지한 아르모어의 초록빛 눈동자가 요사하게 반짝였다. 이윽고 그는 " 아~ " 하고, 알았다는 듯이 손바닥을 탁 치고는 질문보다 앞서 대답했다.


" 내가 학살을 저질렀는지 어떤지 확인하러 온거구나? "


정곡을 찔린 요안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르모어는 얄미울 정도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시원스래 대답했다.


" 맞아, 지금까지 정확히 107만 2637명을 죽였지. 왜 그랬냐고? 이유는 있지만 네가 납득할만한건 아냐. 미숙하던 시절의 부끄러운 오판이지. 탐구를 멈추고 맹신에 빠져버린 인간이 으례 저지르는 멍청한 짓이었어. 이걸로 충분한 대답이 됐을까? "


107만 2637명.


너무나 많고, 너무나 자세해서 도리어 현실감이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지나치게 시원스러운 태도도 진의를 의심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요안나를 동요시킨건 묻기도 전에 그녀가 묻고자 하는 것을 먼저 간파해버린 점이었다. 마치 남의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 분노에 억눌려있던 두려움이 신발에 스며드는 물기처럼 슬금슬금 그녀의 마음 속을 물들여나갔다.


"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면 그만 돌아가도록 해. 마지막까지 후회없는 삶을 산다면 좋겠네. 아, 물론 저번에 했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만큼 괴롭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그 때는 고통없이 끝내줄테니까. "


' .....! '


후회없는 삶을 산다면 좋겠네.


그 말에 요안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지금 두려움에 물러선다면 그녀는 과연 만족스럽게 인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럴리가 없다.


단언할 수 있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후회할 것이다. 이를 아플 정도로 악물고, 주먹을 피가 나올 정도로 불끈 쥐었다. 물러서지 않아, 물러서지 않아, 스스로를 세뇌시키듯이 머릿속으로 되뇌이면서 용기를 쥐어짠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 그 말, 사실이야? "


" 응. "


아르모어는 즉답했다. 그 짜증나는 웃음도 여전히 얼굴에 붙어있다. 치밀어오른 혐오감이 두려움을 조금씩 잡아먹어간다.


" 자기 손으로 107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도... 어떻게 그걸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거야? "


요안나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이기 시작한다.


" 그럼 울면서 이야기할까? 아니면 비극의 주인공처럼 괴로워하는 얼굴로 옷이라도 찢으면서 이야기할까? 그러면 뭐가 달라져? 죽은 사람이 돌아오나? 이미 저지른 과오가 줄어들기라도 하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단순히 보는 사람이 불편해질 뿐이지. "


대답하는 아르모어의 목소리는 여전히 태평하다. 과오를 이야기하지만 후회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녀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그냥 말뿐이라는 결론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 됐어.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이제 잘 알았어. "


" 으음, 미안하지만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걸. 나는... "


인간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할 틈도 없이 은기사의 흉갑이 닫혔다. 더 이상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는걸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에 아르모어는 피식 웃으며 자세를 편하게 고쳐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거대한 은빛 창이 소리를 까마득히 뛰어넘은 속도로 짓쳐들어왔다.


쿠웅!


그러나 창날은 아르모어에게 닿지 못한다. 그의 곁에 가만히 서 있던 애냐가 번개같이 움직여 창끝을 잡아낸 것이다. 창날은 인형의 몸보다도 훨씬 컸지만 그녀의 조막손만한 손에 붙잡힌 창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익... 이게 어떻게 된거야...!? "


요안나는 이를 악물고 힘을 주었지만 인형의 손에서 창을 빼낼 수는 없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일에 경악하는 그녀에게 파트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고 자시고 뻔하잖아! 저쪽의 출력이 이쪽보다 높은거야!]


" 저 덩치로 그게 말이 돼!? "


[인간을 107만이나 흡수했다는데 당연히 말이 되지!]


" 젠장! "


그들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애냐는 조금도 힘들지 않은 듯, 아예 아르모어를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 어떻게 할까요? "


마음 같아서는 다른 『기사』가 몰려오기 전에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주인의 명령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명령 없이는 주인을 지키는 것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다. 애냐는 제발 박살내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바랬지만 아르모어는 하늘을 가르키며 그녀의 기대를 저버렸다.


" 왔던데로 도로 돌려보내줘. 아무래도 요안나의 돌발행동이었던 듯 하니까. 저쪽도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을텐데 이렇게 망하면 억울하지 않겠어? "


" 그러다 죽어도 전 몰라요? "


애냐가 어이없어하며 그렇게 말하자 아르모어는 가슴을 탕탕 치면서 자신있게 말했다.


" 내가 죽으면 엘리가 대신 치워줄테니까 걱정마. "


" 아, 그럼 괜찮겠네요. 얼른 죽어버리세요 발암물질 주인님. "


떠엉!


그녀가 농담을 던지면서 힘을 주자 은기사가 잡고 있던 창이 그대로 주욱 밀리면서 창대 바닥이 흉갑을 강타했다. 조종석에 직접 들어간 타격에 요안나가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은기사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 애냐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사타구니를 힘껏 올려찼다.


쾅!


은기사의 거체가 농담처럼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로켓처럼 솟구친 은기사는 상공 10km 지점의 공중도시보다 조금 더 위로 날려가 애꿏은 건물을 여럿 박살내며 꼴사납게 내리꽃혔다. 그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던 아르모어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앉으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 자, 그럼 얼마나 준비해왔는지 한번 볼까? "


작가의말

요안나는 순 템빨. 실력은 개뿔도 없는 그냥 아가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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