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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931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1.09.14 11:18
조회
1,948
추천
27
글자
10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2)

DUMMY

" 사, 살았다... "


정신없이 달리던 아르모어는 멀리 마을의 외곽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에 갇혀버릴까 두려워 미친듯이 달려온 댓가가 뒤늦게 몰려왔다.


" 후우... "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서야 겨우 마을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마을은 크지 않았다.


룸바의 절반. 아니, 사분지 일이나 될까?


밖에서 보는 규모로 짐작하건데 백가구가 체 안되는 것 같았다. 건물들도 하나같이 밋밋한 단층주택들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코딱지만한 시골 마을이었다.


" 아, 이거 안좋은데... "


원래 오지의 시골 마을이란 배타적 성향을 띄기 마련이다. 외지인을 넘어 이종족인 그를 좋은 눈길로 보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남은 식량이나 물이 별로 없었으므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룸바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체워넣지 못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마을로 들어가려던 그는 문득 총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을 상기하고 천을 꺼내 소총을 둘둘 말았다. 적당한 천이 없어서 모포로 대체했는데 말아놓고 보니 꼭 침낭처럼 보여서 퍽 만족스러웠다.


" 좋아. "


배낭 위에 고정시키고 나니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마을에 들리면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 천도 눈에 상당히 잘 띈단 말이야. '


맨눈을 들어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장님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신기한 이야기다. 제일 좋은 것은 앞머리를 길게 길러서 숨기는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이발한지 오래 되지않아 당분간은 모자로 대체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부우우웅!


" 이런 썅! 운전 똑바로 해! "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까딱하면 저세상에 갈뻔했다. 입구를 막 지나는데 뒤에서 버스가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온 것이다.


키가 크게는 3미터에 이르는 오크들이 타는 버스라 그런지 덤프트럭 못지않은 덩치였다. 사람이 지나가는걸 뻔히 봤을텐데도 이 무식한 흉기를 모는 운전수는 감속하기는 커녕 경적조차 울리지 않았다. 아예 일부러 치려는 놈 같았다.


화가 치밀어올라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운전수는 콧방귀를 킁 뀌고는 제 갈길을 가버렸다.


" 우와... 저거저거! 칵 쏴버릴까보다. "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간 뒤다. 마치 도로에 끼어든 고양이처럼 심심풀이로 살해당할 뻔한 아르모어는 다시금 오크들에게 오만정이 뚝 떨어졌다.



야~옹


길 한복판에서 서서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자니 묘하게 귀에 틀어박히는 고양이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두어번 반복되자 돌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얼핏 듣기에는 평범한 고양이 울음소리 같았지만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그곳에는 온몸이 새까만 털로 뒤덮힌 고양이 한마리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만해도 섬뜩한데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이리 따라오라는 듯 앞발을 까딱거렸다. 비현실적이다 못해 괴기스러웠다.


그는 본디 유령이나 오컬트 따위에는 대담한 사람이었으나 지난 6년간 요정의 안식처에서 다양한 쓴맛을 경험한 이후로 이러한 요소를 매우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짚히는 구석이 있었기에 도망치는 대신 순순히 고양이의 뒤를 따랐다.


고양이는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그를 인도했다. 마치 개미굴처럼 어지럽게 뻗어있는 뒷골목은 안내인 없이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몇 번이나 봤던 것 같은 풍경을 반복해서 보자 슬그머니 불안감이 몰려와서 물었다.


" 이봐, 이건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거야? "


야~옹.


고양이는 그저 나지막한 울음으로 답하고는 계속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혼자서 돌아갈 수도 없었으므로 그는 불평하면서도 할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미로를 빠져나오자 갑자기 눈부신 빛이 터져나와 아르모어는 반사적으로 시각을 닫았다. 거의 5초가 지나서야 빛을 이겨낸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 어...? "


미로의 끝은 낙원처럼 아름다운 호숫가로 이어져 있었다. 호숫가에는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우글우글거렸는데 대부분은 늘어져 낮잠을 즐기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몇몇 고양이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쉴새없이 뛰어다녔다. 여기에 이르자 마침내 그를 인도해온 검은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 야~옹. 하여간 규칙이라는건 귀찮아. 기밀이라는거 유지하기 귀찮아, 귀찮아. "


어린아이와 같이 앳된 목소리. 고양이의 입에서 뜻밖에도 깔끔한 발음의 요정어가 흘러나오자 아르모어는 순간 당황했다. 캐트시의 입김이 들어간 고양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말을 할 수 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고양이는 아르모어가 놀라던지 말던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코를 문지르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 후냐아아아앙... 우리 아지트에 온걸 환영... 에이, 인사하기도 귀찮아. 그냥 본론만 말해도 되지? "


" 어? 어어... "


이 열렬한 귀차니즘의 추종자는 얼결에 말한 아르모어의 대답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자기 용건을 늘어놓았다.


" 냥... 그러니까, 왕께서 너에게 전하라고 하셨어. "


" 왕? "


" 우리들의 영원한 왕, 캐트시 말이야! 냥... 어디까지 말했더라? 기억하기 귀찮으니까 중간에 말 끊지 마. "


고양이는 짜증을 내며 앞발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전언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지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며 한참을 끙끙대던 그는 거의 5분만에 벌떡 일어나 말을 이었다.


" 맞아! 왕께서는 말하셨어. 살아서 사막을 나간 존재가 있다고, 사막의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셨어! "


" !! "


" 살아나간 존재는 둘. 하나는 봐주겠지만 다른 하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어! 그래야만 네 과오를 봐줄 수 있다고 하셨어! 응. 맞아. 그러셨어! "


고양이는 전언을 완벽하게 기억해낸 것이 기쁜지 연신 갸르릉거리며 폴짝폴짝 뛰었다.


" 잠깐만.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


당황한 아르모어는 다급히 물었다. 난데없이 사람을 처치하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그러자 고양이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받아치는 것이었다.


" 냥? 당연하지 않아? 너는 분명히 책임지겠다고 척살조에게 말했잖아. 척살조는 네가 당연히 뒷처리를 할 줄 알고 보내준거양. 하지만 너는 사후관리를 전혀 못했잖아? 원칙대로라면 이미 머리가 날아갔을거양. "


고양이는 이것만해도 큰 은혜라면서 덧붙였다.


" 이것도 다 네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준거양. 보통은 이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아. 게다가 한명을 봐주다니, 왕께서도 상당히 무리한게 틀림없어. "


" ..... "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건 상황은 이해했다. 이 요정이란 작자들은 죽은 자만이 비밀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르모어는 골치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았다.


' 하나는 기가 틀림없어. 내가 저지른 과오라는 것은 기를 살려서 사막 밖으로 내보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둘이라고? 기 말고도 누군가가 살아서 사막을 지났단 말이야? 게다가 그걸 처리해야만 내 과실을 없애준다는 말은 그 녀석도 내가 원인이 되어서 살아나갔다는 뜻인데.... '


도대체 누가 뒤를 밟았는지 생각해봤지만 별달리 짚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고민할 이유는 없다. 요정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건 십중팔구 캐트시의 정보망에도 걸렸다는 뜻일테니까. 그 정도 정보라면 돈 몇푼만 쥐어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력의 문제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일 살아남은 존재가 자력으로 요정들을 뚫고 지나왔다면 그가 대적하는건 무리였다.


이 사실은 캐트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감당이 안되는 상대라면 로열가드나 도서관장이 나왔을 터. 아르모어에게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가 자력으로 살해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반증한다.


' 하지만 사람을 어떻게 죽여? '


아르모어는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선량한 사람으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사고를 저질러 킬러마냥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 그렇다고 안한다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


만일 아르모어가 증거인멸을 거부한다면 요정들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기껏 살려놓은 기는 물론이고 심하면 그 자신조차 제거당할 위험이 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것이다.


' 잠깐. 이거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있나? '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요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지 딱히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요정들이 믿게끔 만들면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어떻게? '


문제는 저 의심병 환자들을 잘 설득해서 안심시키게끔 하는 일인데 솔직히 자신은 별로 없었다. 그는 엘리의 사건으로 ' 무조건, 어떻게든 '이라는 막연한 단어를 불신하게 되었으므로 최악의 상황도 상정해두었다.


' 일단 노력은 해보겠지만 안될 경우에는... 역시 죽여야겠지. '


하지만 꼭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 무력도 형편없는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청부를 하거나 그럴듯한 도우미를 구하는 쪽이 효율적일 것이었다. 마침 이러한 일을 거절하지 못할 법한 적임자가 하나 떠올랐다.


" 좋아. 영문은 모르겠지만 내가 사고를 쳤다니 수습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오크 하나만 찾아줄 수 있겠어? "


" 냥? 맨입으로? "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 반쯤 감긴 눈으로 대꾸했지만 돈만 주면 얼마든지 움직이겠다는 투였다. 그것으로 만족한 아르모어는 미소를 지었다.


" 물론, 보수는 충분히 지불하지. "


보수라는 말에 고양이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


작가의말

휴우, 연휴 끝!

이번 추석은 휴일이 짧아서 쉬는게 아니라 피로만 누적됐네요 ㅜ.ㅜ 어흑, 잠이나 자고 싶어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월충전설
    작성일
    11.09.14 14:07
    No. 1

    응? 사고수습을 위해서라면 공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쥔공은 처단의 의무가 없을 것 같은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1.09.14 15:20
    No. 2

    응? 하나는 봐주다니 그럼 그 하얀여자를 처단하고 기를 살리는 편이 좋겠군요!!! 하얀여자는 인기없어요... 물론 이래도 기가 죽는 건 기정사실이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d3884
    작성일
    11.09.14 15:55
    No. 3

    의무는 없지만 멀쩡히 일하는 애들을 훼방놓은게 탈이죠. 본편 내용 다소 보충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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