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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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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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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1.09.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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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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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0)

DUMMY

시선이 두렵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불편하고 거북해서 점점 피하다보니 아르모어는 어느새 성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 하...하핫. "


뒤늦게 깨달은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대인기피증 환자들의 마음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 가다 마주치는 오크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뿌리거나 신기한 동물을 보듯이 훝어보곤 했고 괄괄한 젊은 놈들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았다는 듯이 시비를 걸어오곤 했다.


" 이야, 요것봐라? 눈을 칭칭 동여매고도 잘 걷네. "


실실 눈웃음을 지으면서 젊은 오크 하나가 다가왔다.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 뻔했다.


어떻게해야 좋을까.


철컥, 타앙!


지겨운 표정을 지어보인 아르모어는 말 대신 소총을 들어 쏴버렸다. 평소의 그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정신적 스트레스에 휩싸인 지금은 일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신경질적인 상태였다.


물론, 맞추지는 않았다. 아무리 짜증이 나도 사람을 죽여버릴 순 없으니까. 살인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지만 오크의 땅에서 이종족이 살인을 저질렀다간 보복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 히익! "


오크들의 가죽이 아무리 두텁고 질겨도 AMF가 없는 이상, 소총탄에 맞고도 멀쩡할 정도는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스트레스 좀 풀어보려던 젊은 오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총소리에 간이 콩알만해져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말았다.


" 휴우... "


아르모어는 피곤한 얼굴로 총을 집어넣고는 내심 후회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벌써 오늘만도 세번째다. 아니, 고작 세번째다. 세번만에 참지 못하고 총을 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인범으로 지명수배를 받게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이종족에게 좀 점잖다는 오크가 이 모양이다. 다른 종족의 땅에서는 무슨 꼴을 당할지 상상만해도 두려웠다. 하지만 세계의 80% 이상이 이종족의 땅이고 보면 인간의 땅만 뒤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정말로 할 수 있는걸까? 이 넓어빠진 땅에서 사람 하나를, 지금은 바꿨을지도 모르는 이름과 외모만으로 찾을 수 있을까? 그것도 나 혼자서? '


불가능하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평생을 노력해도 불가능하다.

이미 안식처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안되는건 안되는 것이다.


" ..... "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지독한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르모어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쉴 곳을 찾다가 마침 사람없이 한적한 분수를 발견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솨아아아아아아


이 수수하고 외진 곳에 자리잡은 거대한 분수대는 과거 최전선이던 시절에 비상시 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이러한 분수는 성문마다 하나씩 총 4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아르모어는 그러한 용도는 짐작하지 못한 체, 물줄기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분수대를 보며 오크들의 센스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내심 중얼거렸다.


분수대에 걸터앉으니 성문과 그 너머로 길게 뻗어있는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디까지고 뻗어있는 듯한 길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 안될지도 모르지. 안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겁먹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어떻게든 해봐야지. '


포기를 하더라도 부서질만큼 부서진 뒤부터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아르모어가 일어서려는 찰나, 멀리 시야의 끝에서 누군가가 너털너털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걸음은 너무나도 위태롭고 나약해서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아서 도저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가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은 어느새 지척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 어...? '


걸음의 주인은 인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색으로 입혀진 인형과도 같은 소녀.

굉장히 눈에 띄는 모습인데도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감에 아르모어는 순간적으로 당황을 금치 못했다.


' 있어. 분명히 있는데... 없는 것 같아. '


그녀는 마치 투명한 물과 같았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만져보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요정과도 정령과도 다른 신비한 존재감에 빠져든 아르모어는 자신도 모르게 곁을 지나는 소녀의 팔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덥썩!


있다.

마치 유령과도 같이 손을 스르르 빠져나갈 것만 같던 가느다란 팔목은 너무나도 간단히 손에 잡혔다. 그것은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인간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서 그는 깜짝 놀라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 .....? "


의문을 담은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본다.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아르모어는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는 맹세코 이러한 눈은 처음 보았다.


' 눈동자가 하얗잖아!? '


실핏줄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눈의 한복판에는 흰자보다도 희어서 구분이 되는 순백의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색을 제외하면 인간의 눈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아예 광물과도 같은 여왕의 눈보다도 훨씬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놀란 숨을 들이켰던 그는 짧은 순간에 평정을 되찾고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제 삼자의 눈으로 봤을때, 여왕의 눈이나 소녀의 눈이나 혐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동병상련의 감정이 몰려와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 아, 미안합니다. 그... 이런곳에서 인간을 만나니 하도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


정중한 사과를 받은 소녀는 무례하게도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체, 몸을 돌렸다.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아르모어는 그녀의 언행보다는 옷차림에 더 시선이 갔다.


' ...어? 이제보니 엉망이잖아? '


처음 봤을때는 눈치체지 못했지만 그녀의 새하얀 옷은 이곳저곳이 상해 있었다. 심지어 등을 가려야할 부분은 아예 뜯겨져 나가서 새하얀 등이 훤히 노출될 정도였다. 이토록 손상이 심한데 눈치체지 못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다리는 큰 손상을 입었는지 절고 있었으며 왼팔은 탈골된 것처럼 덜렁거렸다. 불안불안한 몸놀림은 이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 지금 당장이라도 병원에 보내야 할 중환자잖아!? '


아르모어는 깜짝 놀랐다. 이처럼 확연히 들어나는 부상을 왜 몰랐을까? 아마도 그녀가 너무나 태연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자, 잠깐만! "


아르모어는 몰랐으면 모르되 부상자를 그냥 방치할 만큼 모진 사람이 못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불쌍한 소녀를 병원으로 데려다주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유령과도 같이 사라진 뒤였다.



***



" 허 참. 별일도 다 있네. "


그는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와 만난 일은 마치 오래전에 꾼 백일몽처럼 허황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팔목을 잡았던 감촉이 생생히 남아있었다.


" 찾아야지.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


느낌이야 어찌되었건 실체가 있었으니 사람이다. 크게 다친 사람이 혼자 돌아다니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찾던 아르모어는 시커먼 제복을 입고 무서운 얼굴로 거리를 들쑤시는 경찰관들 덕분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망쳐야했다.


' 젠장, 역시 아까의 그게 문제가 된건가? '


조용한 오지 마을에서 난데없이 총성이 울렸으니 경찰서가 뒤집어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찔리는게 있었던 아르모어는 먼 발치에서 경찰관들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면서 얼른 성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룸바는 본래부터 요새로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사방이 성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반대로 성문만 닫기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르모어는 잽싸게 성문을 향해 이동했다.


' 좋았어. '


소녀가 들어왔던 북문은 여전히 지키는 오크 하나없이 훤히 열려 있었다. 무사히 룸바를 나선 아르모어는 멀리 마을이 조그많게 보일 때까지 쉬지않고 달려나갔다.


" 후우! "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룸바의 성벽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망친 그는 자신의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과민반응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하지만 뭐, 괜히 잡혀가는 것보다야 낫지. "


그는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 알지 못했으나 가볍게 웃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출발은 뭔가 우습게 되버렸으나 기왕지사 나선 걸음, 이대로 세상을 한바퀴 돌아볼 각오로 떠나볼 생각이었다.


" 가자. 가자. 어디까지나 가보자. 가고 또 가다보면 언젠가 다 돌아볼 수 있겠지. "


진환이라고 벌써 차원이동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 아닌가. 이 세상에 어딘가에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애써 유쾌한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체우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룸바를 멀리 돌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한편, 여관에서 머물며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던 기는 곤란함을 느꼈다. 통신을 마친지 한시간도 안되었는데 벌써부터 협조 요청이 들어온 것인지 경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관의 2층에서 머물던 그는 우연히 창문을 내다봤다가 제복 차림의 경찰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탐문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 으음... 예상보다 대응이 상당히 빠른 걸. 이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성문까지 폐쇄될거야. 그렇게되면 탈출이 상당히 곤란해진다. '


언젠가는 부족으로 돌아가야하겠지만 죄인의 몸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스스로 실추시킨 명예를 회복하고 당당한 전사의 신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그마한 마을에서 붙잡힐 수는 없었다.


기는 탈출을 결심하고 최대한 태연한 신색으로 값을 치르고는 여관을 나섰다. 여관 주인은 하룻밤 묵어가겠다며 들어왔던 전사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나가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곧 기억에서 묻어버렸다. 높으신 양반들이야 무슨 사정이 있건간에 자신은 여관비만 제대로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가 도주하고 5분이 지나지 않아 두명의 경찰관이 험악한 표정으로 들이닥치자 자신의 생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 이봐, 수상한 놈을 보지 못했나? "


경찰관은 어느 미친놈이 마을에서 총을 쏴갈겼다고 사정을 짧게나마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험악한 표정에 겁을 먹은데다 마음에 짚히는 곳이 있던 여관주인은 뒷말을 듣지도 않고 제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 예예, 봤지요. 봤고 말굽쇼. 바로 오분전에야 나간걸요. "


일은 사소한 곳에서부터 묘하게 꼬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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