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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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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06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8.27 17:43
조회
429
추천
7
글자
8쪽

79화

DUMMY

방아쇠를 당긴 순간, 세상이 파랗게 물들었다.


『기사』의 머리만한 포구에서 뿜어져나온 시퍼런 마력광이 전방의 모든 물체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킨다. 기체 크기의 수천, 수만배가 넘는 면적을 집어삼키고도 쉬지않고 뿜어져나오던 푸른 빛은 견디다 못한 포신이 녹아내린 다음에야 겨우 멈추었다.



치이이이익...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세 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풍경이 남았다. 새파란 하늘과 시뻘건 대지. 그리고 그 사이를 노닐다가 사라지는 새하얀 연기들 뿐이다. 포구보다 앞에 있던 곳이라면 어디를 보아도 똑같은 풍경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잔여 마력 8.3%, 퇴각 후 재충전을 권고합니다.]


" 커헉! 쿨럭, 캐액! 푸쿡... 쾍! 캑캑! "


무미건조한 인형의 목소리가 조종석 내부를 울린다. 알버트는 그 소리를 한쪽 귀로 흘려버리며 연신 고통스럽게 피를 토했다. 기침에 조금 묻어나는 정도가 아니다. 한움큼씩 왈칵 왈칵 쏟아져나온다. 장기가 크게 상한 것이 틀림없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곧 죽을 정도의 치명상이다. 적합하지 않은 자가 무리하게 백기사를 운용한 대가였다.


그렇다. 백기사는 주인을 가린다. 계약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소수의 사람들 뿐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백기사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약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망가진다. 극단적인 경우, 계약과 동시에 즉사할 수도 있다. 복수에 눈이 먼 자는 그걸 알면서도 계약을 감행했고, 그 결과가 이꼴이었다.


" 쿠, 흐흐흑... "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왔는데도 알버트는 웃었다. 어쨌거나 복수를 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비록 아내의 복수가 아니라 누님의 복수가 되버렸지만, 더 이상 죽여야 할 원수는 이 세상에 없다. 없어야했다.


[후방 적기 감지.]


" 젠...쿨럭! "


그런 그의 바램을 짓뭉개듯, 인형의 무심한 경고가 조종실 내에 울려퍼졌다. 쏟아지는 피를 왼손으로 틀어막으며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을 두른 흑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어! '


주어진 능력치를 모조리 방어 능력에 투자했다면 또 모를까, 일반 『기사』보다 월등히 강력한 백기사가 90% 이상의 마력을 쏟아부은 주포를 아무런 손상없이 막는다는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낮은 적성 때문에 원래보다 위력이 형편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건 매한가지다. 제자리에서 막았다면 당연히 거기만 모래가 멀쩡하다거나 하는 흔적이 남아야한다. 막으면서 포격 범위에서 이탈했다면 당연히 백기사의 감지망에 걸려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속 능력? 백기사의 감지망조차 인식하지 못할만큼 빠른 속도로 포격을 피했다? 역시 말이 안된다. 그랬다면 포격을 가하는 내내 무방비 상태였던 백기사를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공간이동설도 기각이다.

막은 것도 아니고, 피한 것도 아니라면...


' 통과시켰다? '


일정 시간 동안 마치 유령처럼 모든 공격을 흘려버리는 대신, 자신도 공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그거라면 포격을 피한 것도, 감지당하지 않은 것도, 빈틈투성이의 백기사를 공격하지 않은 것도 전부 설명이 된다.


" 최아...커헉! 캑! "


또 적지 않은 피가 쏟아져나온다. 슬슬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약간 나른한 기분이 들면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양팔이 저절로 벌벌 떨린다. 공기가 약간 서늘해진 기분도 든다. 이거 완전히...


' 아냐, 아냐! 아직은 아니야! '


알버트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리며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속에서 올라오려는 피를 억지로 되삼킨다. 아직 원수는 쓰러지지 않았다. 지금 그가 죽어버리면 원수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버린다.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핏발 선 눈으로 기체를 조작하여 흑기사를 향해 돌아선다. 그와 동시에 흑기사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화악, 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곧이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흑기사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


찰칵, 찰칵찰칵찰칵.


백기사를 조종하는 좌우 조종간엔 각각 9개씩 조그마한 버튼들이 달려있다. 백기사 주변을 떠다니는 소형 포대의 발사 버튼이다. 파일럿의 역량이 따라준다면 하나하나 따로 조작할 수도 있지만 본체도 제대로 조종할 줄 모르는 알버트가 거기까지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조작을 인형에게 모조리 떠맡겨두고 몇 번 포대의 버튼인지도 모른 채, 어린애처럼 발사 버튼을 마구 눌러 대는게 고작이다.


슈웅! 슈웅! 슝슝!


" 젠장, 왜 안맞는거야! "


알버트는 연신 발사 버튼을 눌렀지만 명중탄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처음처럼 일제 사격을 했으면 한발쯤은 맞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딴에 학습했답시고 나눠서 쏘는게 문제였다.

조준하는 인형조차 몇 번 포대가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탄속과 맞먹는 속도로 질주하는 흑기사를 무슨 수로 맞추겠는가? 그건 이미 실력이 아니라 운의 영역이다. 그리고 오늘의 알버트에겐 그만한 강운이 없었다. 흑기사는 여유롭게 광선들을 따돌리면서 근접전의 영역까지 파고들어왔다.


" 우욱! 왜액! "


설상가상으로 억눌렀던 피가 도로 치밀어올라왔다. 눈앞이 흐릿해지며 조종간을 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알버트의 머릿속에 이젠 다 틀렸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백기사에는 근접전용 무기가 전혀 없다. 설령, 그런게 있다손 치더라도 기체를 제대로 움직일 줄도 모르는 하찮은 조종실력으로 흑기사를 당해낼 리가 없다.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흑기사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드득!


칼끝에 걸린 백기사의 흉갑이 찢겨나갔다. 마력 부족으로 보호 마법이 벗겨진 탓도 있지만 애시당초 장갑판 자체가 너무 얇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조종석 내부가 훤히 들어난다. 그 모습을 본 바티용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 맙소사, 전투용 기간트가 수동 조작이라니... "


기체를 자기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동조 방식과 미리 입력된 동작을 조합해서 움직이는 수동 조작 방식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파일럿인 알버트는 오늘 처음 백기사를 타본 사람이 아닌가. 그 복잡하다는 수동 조작으로 근접전을 치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흑기사가 접근에 성공한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끝나 있었던 것이다.


" 수고했다. 처음치곤 훌륭했어. "


서걱!


흑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몸이 망가진 알버트는 칼날이 날아오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을 뿐더러, 몸도 전혀 움직여주지 않았다. 백기사의 머리가, 곧이어 허리 아래가 잡아뜯듯이 거칠게 절단되어 떨어져나갔다.


쿠웅!


" 으악! "


몸통과 팔만 남은 기체가 바닥에 처박힌다. 그 충격으로 알버트는 조종석에서 튕겨져나가 사막 한복판에 떨어졌다. 안전 밸트가 풀어져 있었던 것은 무능한 주인에 대한 인형의 작은 복수였던걸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살아남으라는 배려였던걸까? 진실은 알 길 없이 흑기사의 칼날이 빈 조종석에 틀어박혔다.


그렇게 백기사는 완전히 침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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