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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불꽃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작은불꽃
작품등록일 :
2015.07.14 14:52
최근연재일 :
2015.12.02 17:3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90,998
추천수 :
1,483
글자수 :
710,681

작성
15.07.24 16:35
조회
657
추천
13
글자
12쪽

1부: 파멸의 사도------ 16화

DUMMY



< 억울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려 있습니다. 제 아들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화이트 페이스 님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외면하지 말고 꼭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연락처 : 02-555-2048 >


알렐루는 수사관이 아니다. 그러니 증거를 추적해서 진짜 살인범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그가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 글에 끌린 이유는 전화번호 때문이었다.

뒤의 네 자리가 낯이 익었다.

알렐루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번호를 검색했다. 2048로 검색되는 번호는 단 하나였다.


<이노명 선배>


자신이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 4학년 복학생이었던 선배였다. 마음이 맞고 종교도 같아 함께 자주 어울렸었다. 선배는 알렐루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설 용기는 없었으나, 알렐루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위로해 주곤 했다.

알렐루는 이노명 선배를 친형처럼 따랐고, 이노명 선배도 알렐루를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가. 그 말은 남녀 사이에만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알렐루가 군대에 입대할 때쯤, 선배는 취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입대 전날, 회식자리에서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 이후 연락이 끊어졌었다.

제대한 후 가끔 선배가 생각났지만, 이제와서 연락하기는 어쩐지 서먹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잊고 지내온 이름이었다.


‘설마 노명이 형은 아니겠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선배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고객의 사정에 의해 정지된 번호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불안했다. 곧장 게시판에 올려진 번호로 전화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수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되는 목소리였다. 괜히 알렐루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시 이노명 선배님 댁이 맞나요?”

-맞는데, 누구세요?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알렐루라고 선배님의 대학교 후배인데요, 혹시 통화할 수 있을까요?”

-노명이 지금 없어요.


사정을 말할 수 없다는 거부와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제가 군대 가기 전까지 이노명 선배와 매우 친했거든요. 댁에도 몇 차례 갔었는데……, 혹시 알렐루라고 기억나세요?”

-……아, 알렐루!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나. 미안하다. 요즘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서로를 확인하고 나자 조금 더 개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안부를 확인하는 몇 차례의 대화가 오간 후, 알렐루는 예전의 주소가 맞는지 확인하고 선배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선배가 맞다는 사실에 알렐루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선배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었으나,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었다.



***



그날 오후, 약속 시각에 맞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달려갈 수도 있겠지만, 길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달려갔다간 헤맬 가능성이 있었다. 알렐루는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부터 불안감이 찾아왔다. 이노명 선배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렐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모두 저마다의 일에 빠져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불안은 여전했다.

이윽고, 범죄 더듬이가 찌릿거렸다. 움직이는 전동차 안이라 그런지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방향은 앞쪽이었다. 그쪽에서 배낭을 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유심히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더듬이는 여전히 찌릿했다. 자극의 세기로 볼 때 결코 사소한 범죄는 아니었다.

다음 역에 도착하자 비교적 많은 사람이 탔다. 이제 빈자리는 없었고, 십여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알렐루는 허름한 쇼핑백을 든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주위를 살폈다. 할머니는 쇼핑백을 출입문 옆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배낭을 메고 왔던 남자는 배낭을 벗어 선반에 올려두었다. 새로 탑승한 한 쌍의 남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지 않음에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괜히 민망해졌다.

뒤 칸에서부터 큰 가방을 끌고 건너오는 남자가 보였다. 이쪽 칸에 도착한 남자는 가방을 열고 양말을 꺼냈다. 그는 구수한 농담을 섞어가며 한 켤레에 천 원씩, 양팔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곧 다음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젊은 남녀는 여전히 애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점점 농밀해지는 수위에 알렐루의 정신이 흐트러졌다. 공공장소에서 저러는 인간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길 바랐다.


‘부럽다.’


알렐루가 양보한 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려고 했다. 배낭을 멨던 남자도 내리려는지 문 쪽을 살폈다. 얼굴 두꺼운 연인들은 내릴 준비를 하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더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여자와 알렐루의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눈웃음을 지었다.

알렐루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뭔가 어색했다. 그러나 무엇이 어색한지는 알 수 없었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양말을 팔던 아저씨도 얼른 수습하더니 지하철에서 내렸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위화감이 심해졌다. 출입문을 닫는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알렐루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배낭!’


배낭을 메고 왔던 남자는 빈 몸으로 내렸다. 출구를 향하는 남자가 주위를 힐긋거렸다. 그 옆으로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알렐루가 닫히려는 문을 잡았다. 문은 다시 열렸다. 문을 닫겠다는 안내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 틈에 선반에서 배낭을 꺼냈다. 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재빨리 내렸다. 닫히려던 문이 알렐루의 몸에 걸리며 다시 열렸다. 불안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두고 내린 낡은 쇼핑백이 보였다. 알렐루는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려다가 다시 열렸다.

출입문에 장난치지 말라는 기관사의 분노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알렐루는 양손에 배낭과 쇼핑백을 들고 내렸다.


“아저씨! 할머니!”


우렁찬 알렐루의 소리에 주위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정작 돌아보아야 할 사람들은 보지 않았다. 알렐루는 그쪽을 향해 달렸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 그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알렐루는 남자와 할머니에게 각자의 짐을 건넸다.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배낭을 건네받았다.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알렐루를 바라보기만 했다. 지하철 행상 아저씨가 커다란 가방을 끙끙대며 한 칸씩 올리고 있었다. 한 쌍의 징그러운 남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알렐루를 보고 있었다.


“그거 내꺼 아녀.”


할머니가 기겁하며 말했다.


“할머니가 들고 계신 걸 제가 분명히 봤는데요?”

“아니라면 아닌 줄 알지, 젊은 놈이 뭔 말이 그리 많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면서도 욕을 먹는 희한한 경험에 알렐루는 당황스러웠다. 할머니는 완강하게 자기 것이 아님을 주장했고, 알렐루는 내민 손을 거두지도 못한 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냥 돌이켜 계단을 오르려 했지만, 알렐루가 소매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졌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었다.

배낭을 받아든 남자는 할머니 곁에서 떨어져 승강장 쪽으로 향했다. 양말 가방을 든 남자는 여전히 끙끙거리며 한 칸씩 오르고 있었고, 서로를 더듬던 남녀는 서로의 귀에 속닥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뭔가 범죄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걸 알 수 없으니 더 불안했다. 알렐루는 억지로 쇼핑백을 할머니에게 떠넘겼다. 할머니는 거칠게 손사래 치며 거절했다. 알렐루가 할머니의 팔목에 걸어준 쇼핑백이 빠져나가며 계단으로 추락했다.

계단에 떨어진 쇼핑백은 “퉁”하는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쇼핑백 안에서 짙은 색 상자가 빠져나왔다. 할머니의 입에서 “어, 어.”하는 당황한 소리가 새어나왔고, 두 눈은 크게 뜨여졌다. 알렐루는 굴러떨어지는 상자에 집중했다. 김치통처럼 보이는 상자는 퉁퉁거리며 계단을 구르고 있었다.

할머니가 통을 잡기 위해 재빨리 계단을 달렸다. 하지만 연로한 몸은 다급한 마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며 균형을 잃었다. 머리가 계단 모서리를 향했다. 젊은 연인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알렐루가 다급히 옷을 잡았다. 할머니의 몸이 덜컥거리며 멈췄다. 할머니는 위급함을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굴러떨어지는 상자에 붙박여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알렐루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울 틈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옆에 끼고 계단을 뛰어내리며, 상자를 잡으려 했다.

알렐루가 뛰어내림과 동시에 계단 모서리에 튕겨 크게 튀어 오른 상자는, 잡을 틈도 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뚜껑이 열렸다.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꺅!”


젊은 여자의 높은 비명을 시작으로 낮은 신음과 비명이 주위에 퍼졌다. 할머니는 재빨리 알렐루의 손을 뿌리치고 상자로 달려가 튀어나온 것을 다시 담았다. 비난과 의혹의 눈초리가 할머니를 향했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합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미안하게 됐구먼. 당최 이놈의 서울이란 곳에서는 늙어 죽은 개새끼 한 마리 묻어줄 곳이 없더라고. 미안혀…….”


할머니의 궁색한 변명은 안내방송에 묻혀 힘을 잃었다. 할머니는 쇼핑백을 챙겨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상황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멈춰 섰던 행상 아저씨는 다시 양말 가방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알렐루와 할머니를 구경하던 닭살 연인은 다시 서로를 더듬으며 계단을 향했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낭 아저씨?’


알렐루는 기억을 더듬었다.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아저씨는…… 계단을 내려갔다. 알렐루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찾았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배낭 어깨끈을 모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들어오는 열차에 맞춰 배낭을 힘껏 던졌다. 3m가 넘을 듯한 스크린 도어 위로 배낭이 넘어가고 있었다.

알렐루는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계단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알렐루가 남자의 곁에 도착했다. 배낭은 이미 반 밀폐형 스크린 도어를 넘어가 있었고 열차가 달려오며 배낭에 충돌하려 하고 있었다.

칼과 총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해도, 달려오는 전동차까지 견딜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볼 때가 아니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갑자기 굴러떨어진 수류탄 위로 재빨리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평소부터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짧은 순간 망설일 수밖에 없고, 그 망설임은 최후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다행히 알렐루는 언제나 남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알렐루의 강철같은 몸이 두꺼운 스크린 도어를 뚫고 지나갔다. 파편이 튀며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알렐루는 배낭을 잡았다.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보호해야만 했다. 절대로 충격이 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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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부: 파멸의 사도------ 25화 15.08.03 637 14 13쪽
24 1부: 파멸의 사도------ 24화 15.08.01 686 11 13쪽
23 1부: 파멸의 사도------ 23화 15.07.31 698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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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부: 파멸의 사도------ 21화 +1 15.07.29 714 15 13쪽
20 1부: 파멸의 사도------ 20화 15.07.28 662 14 13쪽
19 1부: 파멸의 사도------ 19화 +1 15.07.27 734 15 14쪽
18 1부: 파멸의 사도------ 18화 15.07.25 811 12 12쪽
17 1부: 파멸의 사도------ 17화 15.07.25 842 16 11쪽
» 1부: 파멸의 사도------ 16화 15.07.24 658 13 12쪽
15 1부: 파멸의 사도------ 15화 15.07.24 771 14 11쪽
14 1부: 파멸의 사도------ 14화 15.07.23 835 17 11쪽
13 1부: 파멸의 사도------ 13화 15.07.23 887 17 11쪽
12 1부: 파멸의 사도------ 12화 15.07.22 915 22 12쪽
11 1부: 파멸의 사도------ 11화 15.07.22 914 20 12쪽
10 1부: 파멸의 사도------ 10화 15.07.21 1,045 22 12쪽
9 1부: 파멸의 사도------ 9화 15.07.21 1,038 23 11쪽
8 1부: 파멸의 사도------ 8화 15.07.20 1,336 38 12쪽
7 1부: 파멸의 사도------ 7화 15.07.20 1,414 26 11쪽
6 1부: 파멸의 사도------ 6화 15.07.18 1,735 26 12쪽
5 1부: 파멸의 사도------ 5화 +1 15.07.18 1,985 28 12쪽
4 1부: 파멸의 사도------ 4화 +2 15.07.17 2,322 32 11쪽
3 1부: 파멸의 사도------ 3화 +1 15.07.17 2,371 34 11쪽
2 1부: 파멸의 사도------ 2화 +1 15.07.16 2,827 36 11쪽
1 1부: 파멸의 사도------ 1화 +2 15.07.16 5,45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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