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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불꽃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작은불꽃
작품등록일 :
2015.07.14 14:52
최근연재일 :
2015.12.02 17:3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91,005
추천수 :
1,483
글자수 :
710,681

작성
15.07.16 16:40
조회
2,827
추천
36
글자
11쪽

1부: 파멸의 사도------ 2화

DUMMY



“학생이면 학생답게 굴어야지.”


요즘 학생들은 결코 어른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으나, 애써 당당히 말했다.


“아, 그러셔요?”


둘의 눈빛이 변했다. 이미 알렐루에 대한 견적을 끝내고 행동방침을 정한 것 같았다.


“다 늙어서 험한 꼴 당하기 싫으시면 가던 길이나 가시죠? 어르신.”


약삭빨라 보이는 학생이 말하자, 고릴라 같은 학생이 배를 잡고 웃었다. 뒤의 학생은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과연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살폈다. 그 눈빛이 어쩐지 비굴함과 교활함을 혼합시켜놓은 듯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해자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생, 이리와.”

“썅, 너 가면 죽는다.”


고릴라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협했다. 정말 알렐루에게 가도 될지 움찔거리던 학생은 다시 얼어붙었다.


“어이, 형씨. 대접해 줄 때 그냥 가. 그러다 죽는다. 얘, 격투기 선수야.”


약삭빠른 학생이 침을 찍 뱉었다. 가래가 알렐루의 구두 위에 아무렇게나 걸쳤다. 고릴라가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쫙 펴며 눈을 부라렸다. 격투기 선수라는 말이 사실인지 온몸이 탄탄해 보이긴 했다. 솔직히 알렐루는 그들의 말대로 모른 척 지나치고 싶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해도 역시 맞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학생, 내가 지켜줄 테니 빨리 와.”

“시발, 귓구멍이 처 막혔나!”


알렐루를 향해 커다란 손바닥이 날아왔다. 미리 경계하고 있던 알렐루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피했다. 그래도 10년이 넘도록 체육관에 다닌 보람이 있었다. 피해 학생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그가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가해자 둘은 알렐루에게 시선을 팔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피했어?”

“너도 한물갔나 보다.”


약삭빠른 학생이 낄낄거리며 고릴라의 자존심을 긁었다. 입 닥치라고 쏴붙인 그는 정식으로 알렐루에게 덤벼들었다.


“미성년자는 사람 죽여도 괜찮다는 거 알지? 너 오늘 죽었어.”


사실과 조금 다르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알렐루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 배운 바 기술을 떠올렸다. 그는 복싱 자세를 취했다. 그게 오히려 고릴라를 자극하고 말았다.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고릴라가 다가왔다. 알렐루는 차마 얼굴을 노리지 못하고 복부를 노렸다. 고릴라는 가볍게 막고 좌우 연타를 쳤다. 양쪽 눈에서 불꽃이 튀더니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알렐루는 그대로 기절했다.


“뭐야? 폼은 그럴듯하게 재더니, 병신.”


약삭빠른 학생이 비웃었다.

고릴라는 허무한 듯 내려다보다가 알렐루에게 가래침을 뱉고 뒤돌아섰다.


“아, 썅.”

“왜?”


고릴라의 욕설에 뒤를 돌아본 약삭빠른 학생도 거친 욕을 퍼부었다. 미친듯한 어르신(?)에게 정신 팔린 사이 먹잇감이 도망치고 말았다.



알렐루는 눈을 떴다.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이제 막 켜졌는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머리가 띵하고 광대뼈가 욱신거렸다. 코피는 났지만, 다행히 코가 주저앉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가씨는 마치 벌레라도 본 듯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하기만 했다. 10년간 격투기를 배웠어도 범죄자를 이긴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를 더욱 속상하게 한 것은, 자신이 피해자를 도울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기회를 틈타 도망쳤기만 바랄 뿐이었으나, 또 바꿔서 생각해보면 피해 학생이 도망쳤다고 해도 내일 더 큰 봉변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모로 비참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몸을 일으키고 흙먼지를 털었다. 걸쭉한 가래침이 손바닥에 묻었다. 그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옷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



서울 신정동의 어느 교회.

1백여 명이 앉을만한 본당은 조명이 꺼진 채 어둠에 잠기고, 출구의 비상등만 외로이 자신이 유일한 탈출구임을 외치고 있었다. 어둠은 넓지 않은 공간을 무한하게 확장 시켰다. 깊은 어둠은 무엇이든 감출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그 속에 무엇이 숨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마법을 행하는 이교 주술사의 주문처럼 웅얼거리는 소리는 상처 입은 짐승의 괴로운 으릉거림이나 혹은 순진한 어린아이의 울음 같기도 했다.

다음날 설교준비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남아있던 이 목사는, 퇴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건물을 점검했다. 관리인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퇴근하는 교역자가 뒷마무리해야 했다.

교육관과 기타 장소를 점검한 이 목사는 마지막으로 본당을 점검하기 위해 짧은 계단을 올랐다.

밖에서 보기엔 불이 완전히 꺼져 있었지만, 현관이 잘 잠겨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본당의 현관이 건물 외부로 바로 통하고 있었기에 단속을 깜빡 잊은 날이면 어김없이 물건이 없어지곤 했다.

불이 꺼진 현관을 살짝 밀어본 이 목사는 흠칫 놀랐다. 강화유리문의 한쪽이 열려 있었다.


‘누가 기도하고 그냥 갔나?’


생각해봤지만 알 수 없었다. 크지 않은 교회지만 성도들의 출입을 전부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목사는 문을 잠그기 위해 열쇠를 구멍에 꽂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려있다면 본당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좁은 로비가 나왔다. 유리문을 뚫고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덕분에 그럭저럭 사물을 구분할만했다. 이 목사는 본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무문을 밀었다. 기름칠이 잘된 나무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문소리에 예배가 방해받지 않도록 신경 쓴 덕분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희미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쩐지 불안해졌다. 누군가 기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기도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했다. 주문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 소리 같기도 한…….

더군다나 누군가 기도하고 있다면 기도용 조명을 켜놓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본당 안은 완전히 어둠에 묻혀있었다.

이 목사는 몇 년 동안이나 예배드리던 공간에 들어서기 망설였다. 귀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깊은 어둠은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신음이 망설임을 더했다.

간혹 교회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었다. 혹시 누군가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숨어있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폭력을 행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목사는 어둠으로 들어가야 했다. 문단속은 마지막에 퇴근하게 된 그의 몫이었다. ‘만약’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을 핑계로 책임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는 속으로 웃었다. 목사가 되어 어둠 따위를 무서워하고, 강도의 폭력에 두려워하다니……, 그게 인간의 본능이겠지만, 그 본능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는 자존심 상한다는 듯 과감히 어둠에 몸을 담갔다. 속으로 기도가 나왔다.


‘주여…….’


이 목사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찾아 더듬었다. 입구 왼쪽 기둥에 작은 스위치가 하나 달려있었고, 그 스위치가 기도용 조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항상 쉽게 찾던 스위치가 오늘따라 숨바꼭질하듯 잡히지 않았다.

벽을 더듬던 그의 귀에 다시 소리가 들렸다. ‘크륵’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분명히 누군가, 아니 무언가 있다. 이 목사의 등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벽을 더듬는 손길은 더욱 빨라졌고, 드디어 스위치가 손에 잡혔다. 그는 천사라도 만난 것 마냥 반가워하며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소리와 함께 본당 뒤쪽이 밝아졌다. 20w 짜리 삼파장 램프 하나였기에 본당 전체를 환하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사물은 살피기엔 충분했다.

이 목사는 밝은 곳부터 차례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본당 뒤쪽의 장의자, 방송실 입구, 자모실(유아실), 본당 중간을 지나 앞쪽 피아노와 찬양대석과 강단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찾기 위해 그 안을 헤매고 싶지 않았던 이 목사는 본당 전체의 조명을 켜고자 몸을 돌렸다.


“억!”


그는 예상치 못한 발견에 깜짝 놀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소리의 범인은 기도용 조명 스위치 아래, 즉 이 목사의 바로 왼쪽에 있었다.

기둥 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이 목사를 올려다보는 존재를 향해 외쳤다.


“야이! 깜짝 놀랐잖아!”


이 목사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꾹 삼켰다.

어둠 속의 존재는 샐쭉한 얼굴로 이 목사를 보다가 금세 고개를 숙였다.


“할렐루야!”


알렐루의 얼굴은 얻어맞은 것처럼 부어있었다. 이 목사는 그가 또 누군가를 돕다가 싸움에 휘말렸음을 짐작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목사로서 해 줄 말이 없었다.

‘위험하니 남을 돕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성경은 명백히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도우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신앙인들이 알렐루처럼 행하지 않는 게 문제지, 알렐루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 무슨 꼴을 당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권력도 없고, 재력도 없고, 힘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이 목사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기도의 능력을 믿었지만, 기도 외에 인간적으로도 뭔가 도와줄 수 있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이 목사는 알렐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힘내.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셔.”


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지만, 너무 볼품없었다.


“저 혼자 있고 싶어요.”


힘없는 부탁은 어떤 명령보다 강했다. 이 목사는 알렐루의 어깨를 한 번 더 가볍게 두드린 후, 본당 열쇠를 주고 나왔다.

신선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어두운 하늘엔 별이 빛났다. 하지만 찬란한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추악함을 감추고 있었다.

이 목사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목사가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본당엔 밤늦도록 서러운 울음이 채워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억울했다.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맞은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피해자를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자괴감인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악당을 물리치지 못하는 무능함 때문인지조차 불확실했다. 어쩌면 모두 이유가 될지도 모르지만, 알렐루는 한없이 서글펐다.


“하나님, 왜죠?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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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부: 파멸의 사도------ 25화 15.08.03 637 14 13쪽
24 1부: 파멸의 사도------ 24화 15.08.01 686 11 13쪽
23 1부: 파멸의 사도------ 23화 15.07.31 698 11 13쪽
22 1부: 파멸의 사도------ 22화 15.07.30 595 13 13쪽
21 1부: 파멸의 사도------ 21화 +1 15.07.29 715 15 13쪽
20 1부: 파멸의 사도------ 20화 15.07.28 663 14 13쪽
19 1부: 파멸의 사도------ 19화 +1 15.07.27 734 15 14쪽
18 1부: 파멸의 사도------ 18화 15.07.25 811 12 12쪽
17 1부: 파멸의 사도------ 17화 15.07.25 842 16 11쪽
16 1부: 파멸의 사도------ 16화 15.07.24 658 13 12쪽
15 1부: 파멸의 사도------ 15화 15.07.24 772 14 11쪽
14 1부: 파멸의 사도------ 14화 15.07.23 835 17 11쪽
13 1부: 파멸의 사도------ 13화 15.07.23 888 17 11쪽
12 1부: 파멸의 사도------ 12화 15.07.22 915 22 12쪽
11 1부: 파멸의 사도------ 11화 15.07.22 914 20 12쪽
10 1부: 파멸의 사도------ 10화 15.07.21 1,045 22 12쪽
9 1부: 파멸의 사도------ 9화 15.07.21 1,039 23 11쪽
8 1부: 파멸의 사도------ 8화 15.07.20 1,336 38 12쪽
7 1부: 파멸의 사도------ 7화 15.07.20 1,414 26 11쪽
6 1부: 파멸의 사도------ 6화 15.07.18 1,735 26 12쪽
5 1부: 파멸의 사도------ 5화 +1 15.07.18 1,985 28 12쪽
4 1부: 파멸의 사도------ 4화 +2 15.07.17 2,322 32 11쪽
3 1부: 파멸의 사도------ 3화 +1 15.07.17 2,371 34 11쪽
» 1부: 파멸의 사도------ 2화 +1 15.07.16 2,828 36 11쪽
1 1부: 파멸의 사도------ 1화 +2 15.07.16 5,45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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