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작은불꽃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작은불꽃
작품등록일 :
2015.07.14 14:52
최근연재일 :
2015.12.02 17:3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91,011
추천수 :
1,483
글자수 :
710,681

작성
15.07.18 10:10
조회
1,985
추천
28
글자
12쪽

1부: 파멸의 사도------ 5화

DUMMY



“하~.”


괜히 땡땡이쳤다는 후회가 깊이 밀려왔다. 신입생 시절 선배에게 억지로 끌려 돌아다녔던 대학 주변은 온통 유흥가로 도배되어 있었다. 젊음과 쾌락은 뗄 수 없는 것인지, 공부의 스트레스는 유흥으로 풀어야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대학가는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거리를 방황하던 알렐루의 눈에 PC방이 보였다. 고등학교 이후로 가본 적이 없지만, 시간을 때울 겸 들어갔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나오고 말았다. 너구리 굴처럼 가득 찬 담배 연기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인터넷이나 까딱거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다시 거리를 방황하던 그는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 한잔이 구내식당 2인 식사와 같은 값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지덕지했다. 그는 거리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대학가라 해도 낮시간이었기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간혹 함께 땡땡이친 것 같은 남학생들, 벌써 혼자 술을 꽤 들이킨 것 같은 남자, 끈적한 분위기로 엉키다시피 붙어 힘겹게 길을 걷는 연인, 아무 생각이 없이 바삐 걷는 사람. 알렐루는 그들을 스쳐보며 점점 공상에 빠져들었다.

공상 속에서 알렐루는 슈퍼 히어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슈퍼맨 같은 힘으로 악당들을 체포하고, 무한한 스테미너로 쉬지 않고 달렸다. 악당들이 힘을 합쳐 강력한 무기로 공격했으나 그의 강철같은 맷집을 깰 수는 없었다. 모든 악당을 물리치고 도시를 정의롭게 구한 영웅, 그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 다른 도시를 구하러 떠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공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갔다. 지겹도록 긴 시간을 보낸 알렐루는 다시는 땡땡이 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카페를 나섰다.

저녁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이 남아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지 않아서인지 유흥가는 아직 한산했다. 지하철로 향하던 알렐루는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유흥가가 집중된 골목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해졌다. 원래 술이나 유흥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입생 때 선배들에게 당했던 끔찍한 기억 때문에라도 되도록 피해가고 싶은 골목이었다. 그런데도 그곳을 가고 싶어지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렐루는 자신의 이상한 감정의 정체에 호기심을 느끼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말이 골목이지 대로처럼 넓은 길 양쪽으로 온갖 주점과 여관, 클럽 같은 화려하고 퇴폐적인 건물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일찌감치 즐기러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던 알렐루는 오른쪽으로 난 좁아지는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 양쪽도 여전히 유흥가였다. 같은 유흥가지만, 큰 골목의 유흥가에 비하면 좀 더 저렴하고 은밀한 분위기를 풍겼다.

골목을 걷던 알렐루는 우뚝 멈췄다. 여관과 여관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통제되지 않는 감각이 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통로는 어쩐지 음산했다. 아직 해는 남아있었고, 태양이 골목을 밝혔기에 건물 사이에 낀 좁은 통로도 빛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알렐루는 그곳에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위험한 뱀이 어둠 속에 똬리 틀고 있는 것 같았다.

좁은 통로 앞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시 안쪽에서 작은 신음이 빠져나왔다. 여자의 소리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웅얼거림은 분명 남자의 것이었다. 알렐루는 용기를 내어 뱀의 소굴로 걸어 들어갔다. 건물 틈과 연결된 건물 뒤편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년이!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우리가 그렇게 호구로 보였어?”


남자 둘이 한 여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안에는 위협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들의 손에 번쩍이는 접이식 칼이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여자는 이미 몇 대 맞았는지 헝클어진 자세로 덜덜 떨고 있었다.


“소리 지르면 알지? 여긴 외진 곳이라 네년 하나 입 막고 달아날 시간은 충분하다고.”


뱀 같은 손길이 여자 위를 기어 다녔다.


“이봐요, 아저씨들.”


알렐루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왜 세상엔 저런 인간들이 많은지 답답했다. 저런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정작 그 힘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급급했다. 힘 있는 자나, 앞의 남자들이나 보잘것없는 힘으로 약한 자를 늑탈(勒奪)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으로 음심을 채우려던 남자들의 몸이 경직되었다. 여자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알렐루를 보았다. ‘살려주세요!’ 눈이 외치고 있었다.

남자들의 눈은 탐욕과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들의 손에 들린 쇠붙이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비로소 알렐루는 자신에게 저들을 막을만한 힘이 없다는 현실을 떠올렸다. 좁고 막다른 공간이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두 남자를 붙든다고 해도 여자가 도망칠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도망쳐서 소리치거나 경찰을 부르는 게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렐루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여자를 잠시라도 버려둘 수 없었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지옥에서 건져내고 싶었다. 비록 죽는다고 해도…….


‘만약 죽는다면 놈들은 현장에서 도망치겠지.’


알렐루는 증인을 없애기 위해 여자까지 죽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가치관으로는 사람이 그 정도로 악랄해질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죽는 것은 싫었다.


‘발버둥 쳐 보는 수밖에…….’


없는 재능으로 배워둔 격투 기술이 저들에게 먹히길 빌 수밖에 없었지만, 무기를 다루는 품을 보니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었다.


“어이, 꼬마. 이리 와.”


좋은 의미로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상황상으로도 범행 현장을 목격한 사람을 그냥 보내줄 리 없었다.

알렐루는 다가가는 대신 격투 자세를 취했다. 제발 어설퍼 보이지 않기만을 빌면서. 알렐루의 자세를 본 둘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알렐루는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거, 또라이 아니야?”


주먹코에 사각 턱을 가진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주머니칼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언가 휙 날아왔지만, 알렐루는 반응하지 못했다. 양팔을 들어 가슴과 얼굴을 가린 자세였었음에도 칼은 가슴에 명중했다. 봄 잠바에 구멍을 낸 칼은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알렐루는 운 좋게 지갑에 맞았나 싶었지만, 지갑을 잠바 안 주머니에 넣은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고 한눈을 팔며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더욱 긴장하며 앞으로 다가섰다. 칼을 들고 있으니 접근하기 무서웠지만, 거리가 멀수록 더 불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운 좋은 놈이군.”

“병신, 그것도 못 맞춰?”


배 나온 남자가 친구를 비웃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 내 차롄가?”


가까이 다가선 알렐루를 향해 그가 칼을 휘저었다. 알렐루는 간신히 칼의 궤적을 피했다. 칼잡이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알렐루의 겉옷이 찢겨나갔다. 하지만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고 있었다. 배 나온 남자의 얼굴이 긴장과 짜증으로 굳어졌다.


“이 얍삽한 새끼가!”


옷의 팔 부위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공격해도 피해를 주지 못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손끝의 묵직한 감촉으로 볼 때 옷 속에 무언가 감춰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상대를 얕보고 감정이 앞선 그는 크게 뛰어 알렐루의 품으로 들어갔다. 알렐루가 재빨리 주먹을 휘둘렀으나 남자는 고개만 젖혀 피한 후 복부에 칼을 박았다. 칼끝의 날카로운 감각이 배를 휘저었다. 깊이 찔러넣고도 칼잡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알렐루는 배를 웅크리며 남자를 밀쳤다. 뒤로 물러서려던 남자는 트럭에 받힌 듯 멀리 나동그라졌다. 몇 번 몸을 꿈틀거리던 그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야, 양덕팔!”


주먹코는 친구를 흔들어 깨우다가 알렐루를 보았다. 알렐루는 창백한 얼굴로 배를 감싸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주먹코가 새로운 칼을 꺼내 들고 알렐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칼이 알렐루의 등을 길게 찢고 지나갔다. 죽을 거라는 공포에 허우적거리다가 뒤늦게 반응한 알렐루는 앞에 보이는 턱을 올려쳤다. 무언가 놀란 듯 머뭇거리던 주먹코는 그대로 턱을 얻어맞고 높이 치솟았다가 추락했다.

알렐루는 정신이 혼미했다. 어지러웠다. 배와 등에 칼을 맞았으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여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제발 119에 전화라도 해주길 바랐다. 여자의 다급한 하이힐 소리가 귓가를 울리다가 점점 멀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있던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슬픔 속에 남겨질 부모님께 죄송했다. 하지만 그분들이라면 어떻게든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알렐루의 의식은 어둠에 묻혔다.



걸레가 되다시피 찢긴 상의를 걸치고도 알렐루는 미친놈처럼 히죽거렸다. 아무리 참으려 애써보아도 참을 수 없었다. 억지로 참으려니 웃음은 더욱 괴이해졌다. 전철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알렐루의 주위는 썰렁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혼자 키득거렸다.


‘진짜였어, 진짜였다고.’


어둑해진 건물 뒤편에서 깨어난 알렐루는 주위를 살폈다. 기절했던 그곳이었다. 두 남자는 아직 기절한채 꼼짝도 안 했고,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칼에 맞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가 작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용기를 내어 상처를 살폈다. 하지만 상처를 찾을 수 없었다. 빨리 아문 것도 아니었다. 옷에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불량배들이 헛 칼질을 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차가운 칼날이 배와 등을 가르던 느낌이 생생했다. 그럼에도 옷만 찢겼을 뿐, 상처는 없었다. 긁히거나 부르튼 자국조차 없었다.


‘난 왜 기절한 거지?’


순전히 심리적 공포 때문에 기절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확 밀려들었다. 알렐루는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몸을 찬찬히 살폈다. 역시 멀쩡했다. 기절할 때만 해도 그냥 도망치는 여자에게 원망이 들었는데, 지금은 신고하지 않은 게 고마웠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찢긴 옷이 난감하긴 했으나 갈아입을 옷이 없었기에 그냥 지하철에 올랐다. 남들의 시선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천사의 말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제부터 자신은 슈퍼 히어로였다. 그러니 어찌 웃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히죽거리며 속으로 계속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던 그는 정식으로 감사 기도하기 위해 교회로 향했다. 어디서 기도하든 상관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꼭 그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골목을 지나는 그의 눈에 그제 만났던 고릴라와 얍삽이가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예의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구름과자를 먹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콧잔등이 화끈거렸다. 그때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 전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칼에도 끄떡없는 자신이 아무리 격투기 선수라지만, 주먹에 당할 리는 없다고 믿었다.

힘이 생기고 보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복수심이 올라왔다. 정의를 지키려다 당했던 치욕을 되갚아주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그리 정의로운 행동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24년간 쌓인 억울함을 한번쯤 푼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은 그게 옳은 일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분명 다른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1부: 파멸의 사도------ 25화 15.08.03 637 14 13쪽
24 1부: 파멸의 사도------ 24화 15.08.01 686 11 13쪽
23 1부: 파멸의 사도------ 23화 15.07.31 698 11 13쪽
22 1부: 파멸의 사도------ 22화 15.07.30 595 13 13쪽
21 1부: 파멸의 사도------ 21화 +1 15.07.29 715 15 13쪽
20 1부: 파멸의 사도------ 20화 15.07.28 663 14 13쪽
19 1부: 파멸의 사도------ 19화 +1 15.07.27 734 15 14쪽
18 1부: 파멸의 사도------ 18화 15.07.25 812 12 12쪽
17 1부: 파멸의 사도------ 17화 15.07.25 842 16 11쪽
16 1부: 파멸의 사도------ 16화 15.07.24 658 13 12쪽
15 1부: 파멸의 사도------ 15화 15.07.24 772 14 11쪽
14 1부: 파멸의 사도------ 14화 15.07.23 836 17 11쪽
13 1부: 파멸의 사도------ 13화 15.07.23 888 17 11쪽
12 1부: 파멸의 사도------ 12화 15.07.22 916 22 12쪽
11 1부: 파멸의 사도------ 11화 15.07.22 914 20 12쪽
10 1부: 파멸의 사도------ 10화 15.07.21 1,046 22 12쪽
9 1부: 파멸의 사도------ 9화 15.07.21 1,039 23 11쪽
8 1부: 파멸의 사도------ 8화 15.07.20 1,336 38 12쪽
7 1부: 파멸의 사도------ 7화 15.07.20 1,414 26 11쪽
6 1부: 파멸의 사도------ 6화 15.07.18 1,735 26 12쪽
» 1부: 파멸의 사도------ 5화 +1 15.07.18 1,986 28 12쪽
4 1부: 파멸의 사도------ 4화 +2 15.07.17 2,322 32 11쪽
3 1부: 파멸의 사도------ 3화 +1 15.07.17 2,372 34 11쪽
2 1부: 파멸의 사도------ 2화 +1 15.07.16 2,828 36 11쪽
1 1부: 파멸의 사도------ 1화 +2 15.07.16 5,450 4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