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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불꽃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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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작은불꽃
작품등록일 :
2015.07.14 14:52
최근연재일 :
2015.12.02 17:3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90,995
추천수 :
1,483
글자수 :
710,681

작성
15.07.20 10:10
조회
1,413
추천
26
글자
11쪽

1부: 파멸의 사도------ 7화

DUMMY



그러나 문은 닫히지 않았다.



***



“젠장, 오늘도 날밤 까는 건가?”


밤새도록 이노명의 자취방 앞에 잠복했지만 얻은 것은 누적된 피로와 다크서클 밖에 없었다.

이철진 형사는 안정화의 증언에 따라 이노명을 주요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 중이었다. 그의 은밀한 도피행각으로 볼 때 분명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짐작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자신의 애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살인 사건에서는 폭력, 금전, 내연, 집착 등 살해 동기가 될만한 요소에 대해 대략적인 감이 온다. 그리고 그의 감이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다. 동료들은 그런 그의 감을 칭송하며 ‘감지기’란 별명을 붙였다. 그런 그였지만, 이노명의 경우엔 살해 동기를 파악할 수 없었다.

10여 년간 강력반에서 근무한 결과, 이 형사는 사람을 딱 둘로 구분했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람들은 흔히 궁지에 몰리면 누구나 살인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그의 경험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할 경우,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기와 여건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살인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흥분, 분노, 심신미약 등의 이유는 모두 핑계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살인한 것이다.

이 형사가 보기에 이노명은 아무리 화가 나거나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앞둔 애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다니……,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목격자의 증언과 사건 이후 그의 행적은 그가 범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과 주어진 증거 사이의 괴리 때문에 이 형사는 혼란스러웠다.



***



“어떻게 그를 알았습니까?”

“우리 가게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는 손님이었어요. 항상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아마 접대 때문에 오는 것 같았지요. 그는 상대방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기는 했지만, 별로 술을 마시진 않았어요. 언제나 점잖은 사람이었기에 가게 사람들이 다들 좋아했지요. 아마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있는 거겠죠. 아시잖아요? 우리 손님 중에 점잖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철진 오빠, 이거 또 얘기해야 해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중요한 거라 계속 묻는 겁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오빠라 부르지 마세요.”

“입에 붙은 거라 ‘오빠’가 가장 편한 호칭이에요. 듣기 싫으면 그만 일어설래요.”

“……알았으니 그냥 말씀하세요.”


정말 일어서서 나가려는 안정화에 이철진 형사가 물러섰다. 사소한 호칭 문제로 조사를 망칠 필요는 없었다.

다시 앉은 정화는 다리를 꼬았다. 이 형사는 그녀의 짧은 치마 사이로 속옷이 보일 것만 같아 긴장되었다.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쉽진 않았다. 정화는 그런 시선을 즐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항상 다른 사람과 동행하던 그 새끼가, 그렇게 불러도 되죠? 그날따라 혼자 왔어요. 그것도 늦은 새벽 시간에. 그 자식은 아가씨도 없이 한동안 혼자 술을 마셨어요. 아마 제가 본 것 중 가장 많이 마셨을 거에요. 얼굴은 뭔가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가 온 게 몇 시쯤이죠?”

“세 시 다돼서였던 걸로 기억해요. 어쨌든 우리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손님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들어주지 못하면 기분이라도 풀어주는 것이 직업적 사명이죠. 그래서 제가 용감하게 다가갔죠. 미친년. 그때 왜 오지랖을 떨어.”


정화는 자신을 욕했다.


“그 새끼는 제가 옆에 앉았어도 묵묵히 술만 마셨죠. 저는 술잔을 채워주며 조심스레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었어요. 그래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술만 마시더군요. 한 30분쯤 그러고 있었나? 그 개자식이 갑자기 2차를 가자는 거에요.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놀랐죠. 괜한 호기심에 좋다고 했어요. 미친년. 미친년.”

“그래서요?”

“차에 올라타자 그 새끼가 그러더군요. ‘제집으로 가죠.’ 사실 오빠도 알겠지만, 우리 직업의 종사자들이 가장 위험할 때가 누군가의 집에 갔을 때잖아요. 뉴스에 나오는 소식 외에도 누군가의 집으로 2차를 갔다가 험한 짓을 당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많거든요. 그래도 좋다고 했어요. 제가 수년간 사람들을 상대해본 결과, 그놈은 그래도 믿을만해 보였거든요. 푼수 없는 년, 지가 무슨 점쟁인 줄 알아.”


정화는 계속해서 자신을 욕했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을 털어버리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이 형사는 나무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무척 신사적이었어요. 좀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외에는 정말 친절했죠. 그리고 그의 빌라에 도착했어요. 꽤 괜찮은 집이었죠. 그가 현관을 열더니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어요. 저는 아무 의심도 없이 들어갔어요. 제 뒤로 그가 따라 들어왔죠……. 그리곤 기절했어요.”

“왜 기절했는지 기억납니까?”

“전혀요. 현관을 들어서고 나서 잠시 거실을 살펴본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 기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거실을 살펴본 것도 사실인지 모르겠고요. 내가 기절하고 있다거나 쓰러지고 있다는 식의 기억조차 없어요. 마치 술을 꼭지까지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기억에서 사라졌죠.”

“그런데 어떻게 정화 씨를 기절시킨 게 그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 집에는 그놈과 저밖에 없었어요! 그가 제 뒤를 따라 들어 왔고요. 그런 상황에서 절 누가 기절시킬 수 있는 거죠?”


정화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정화 씨를 의심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정황을 정확히 알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러니 제 질문에 신경 쓰지 마시고, 생각나는 대로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정화는 쉽게 흥분한 만큼 빠르게 가라앉혔다.


“깨어났을 때 어떤 상태였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냥 거실 바닥이었어요. 머리가 띵해서 한동안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어요. 두통이 줄면서 내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인 건지 생각났죠. 무서웠어요. 주위를 살폈지만, 그놈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 방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어떤 소리였죠?”

“잘 모르겠어요.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어요. 무조건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도망칠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죠. 문이 살짝 열려있었는데, 그 틈으로 뭔가 보였어요.”


정화는 마치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사람이었어요. 여자. 옷은 다 벗겨져 있었고…….”


정화는 울먹이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이 형사는 잠시 여유를 두고 커피를 권한 후 다시 재촉했다.


“피가 흥건했어요. 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어요. 방안 전체가 피로 흥건했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그 여자는…….”

“혹시 이 사진 그대로였습니까?”


정화가 말을 하지 못하자, 이 형사가 설명을 돕기 위해 사건 현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사진은 사건 현장 전체를 찍은 것으로, 한쪽에는 침대가 놓여있었고, 침대 아래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그리고 흥건한 피의 바다 한 가운데 가슴과 하복부가 잔인하게 도려내진 시신이 있었다.


“……네.”


정화는 사진을 힐긋 본 후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그때와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은 없나요?”


이 형사는 시선을 향해 사진을 들이밀며 물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사진을 보았다.


“모르겠어요.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살펴보던 여자가 불현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본 시신은 눈을 뜨고 있었어요. 부릅뜬 눈이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사진 속에는 눈을 감고 있네요.”

“네, 좋습니다. 이제 계속 말씀해 주시죠.”


이 형사가 사진을 치우자 안정화는 안심한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저는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어요. 그러자 누군가 뒤를 돌아봤죠. 저는 끔찍한 시신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쪽으로 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는 그 자리에 목상처럼 우뚝 서 있었어요. 그리고 피 묻은 손에 칼을 쥐고 있었죠. 그가 나를 보고 있었어요. 그가 중얼거렸어요.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계속 중얼거렸죠.”

“뭐라고 했는지 알아들으셨나요?”

“네! 처음엔 작아서 잘 몰랐는데, 반복하며 중얼거리니 알아들을 수 있겠더군요.”

“뭐라고 했죠?”

“‘난 아니야, 난 아니야.’ 계속 그 말만 반복했어요. 난 너무 무서워서 뒷걸음질 쳤고, 그놈은 손에 칼을 들고 다가왔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뒤돌아 달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뒤를 돌 수 없었어요. 그놈을 시야에서 놓치는 순간, 그가 날 칼로 찌를 것 같았어요. 난 엉엉 울었던 것 같아요. 울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죠. 그럴수록 그놈은 더 잔인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아니야, 아니야.’ 난 뭔가에 걸려 넘어졌고, 그래서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놈은 날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어요. 자신이 만들어놓은 시체를 뚫어지게 보더군요. 그 틈에 나는 무조건 달렸어요. 어떻게 밖으로 나와서 도망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정신 차려보니 파출소더군요.”

“그러면 이노명이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신 것은 아니군요?”

“하지만 그 자리엔 저와 그놈밖에 없었어요. 제가 죽인 게 아니면, 그놈이 죽인 게 맞죠. 더군다나 그놈은 칼까지 들고 있었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



잠복해 있던 이 형사는 길게 하품을 한 후, 시계를 보았다. 새벽 네 시였다. 도주 중인 놈이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기다려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 이 형사는 철수하기로 했다.


‘안정화가 퇴근할 시간이군.’


살인사건의 증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소리치던 그녀가 생각났다. 증인보호? 우리나라는 수사인력도 부족해서 그런 거 할 형편이 아니다. 괜히 영화와 드라마가 사람들 기준만 높여놨다고 속으로 투덜댔다.

어쨌든 이철진 형사는 그녀를 달래야만 했고, 간신히 가스 스프레이로 타협할 수 있었다. 사비로 산 거라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퇴근하는 거라도 봐주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안정화의 집으로 향했다.


‘고객 만족 서비스로군.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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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부: 파멸의 사도------ 22화 15.07.30 595 13 13쪽
21 1부: 파멸의 사도------ 21화 +1 15.07.29 714 15 13쪽
20 1부: 파멸의 사도------ 20화 15.07.28 662 14 13쪽
19 1부: 파멸의 사도------ 19화 +1 15.07.27 734 15 14쪽
18 1부: 파멸의 사도------ 18화 15.07.25 811 12 12쪽
17 1부: 파멸의 사도------ 17화 15.07.25 842 16 11쪽
16 1부: 파멸의 사도------ 16화 15.07.24 657 13 12쪽
15 1부: 파멸의 사도------ 15화 15.07.24 771 14 11쪽
14 1부: 파멸의 사도------ 14화 15.07.23 835 17 11쪽
13 1부: 파멸의 사도------ 13화 15.07.23 887 17 11쪽
12 1부: 파멸의 사도------ 12화 15.07.22 915 22 12쪽
11 1부: 파멸의 사도------ 11화 15.07.22 913 20 12쪽
10 1부: 파멸의 사도------ 10화 15.07.21 1,045 22 12쪽
9 1부: 파멸의 사도------ 9화 15.07.21 1,038 23 11쪽
8 1부: 파멸의 사도------ 8화 15.07.20 1,336 38 12쪽
» 1부: 파멸의 사도------ 7화 15.07.20 1,414 26 11쪽
6 1부: 파멸의 사도------ 6화 15.07.18 1,735 26 12쪽
5 1부: 파멸의 사도------ 5화 +1 15.07.18 1,985 28 12쪽
4 1부: 파멸의 사도------ 4화 +2 15.07.17 2,322 32 11쪽
3 1부: 파멸의 사도------ 3화 +1 15.07.17 2,371 34 11쪽
2 1부: 파멸의 사도------ 2화 +1 15.07.16 2,827 36 11쪽
1 1부: 파멸의 사도------ 1화 +2 15.07.16 5,449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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