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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불꽃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을 막는 자-호 카테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작은불꽃
작품등록일 :
2015.07.14 14:52
최근연재일 :
2015.12.02 17:3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90,999
추천수 :
1,483
글자수 :
710,681

작성
15.07.23 10:10
조회
887
추천
17
글자
11쪽

1부: 파멸의 사도------ 13화

DUMMY



“포기라뇨. 무슨 말씀을.”

“내가 보고받기에는 그 깡패 새끼들이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니까 네가 알았다고 하고 그냥 끝냈다던데? 그래서 내가 더 열 받았던 거고.”

“우와! 어떤 새끼가 그렇게 보고했어요? 제가 그렇게 허술한 놈 아니거든요! 조폭 새끼 30마리가 똑같이 ‘얼굴을 봤지만, 기억은 안 난다’고 하니 갑자기 아방궁 여관 사건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증거자료를 수집하러 뛰쳐나간 겁니다.”

“끌려온 놈은 160이 넘는데 고작 30명 취조하고 그만둔 게 문제지.”

“취조해도 소용없을 게 뻔한데, 시간 버리고 힘 빠지게 그 짓을 왜 합니까? 그런 건 그냥 박 형사가 하면 되죠.”

“잘났다. 그래서 증거자료를 모았지만, 아방궁 때랑 똑같이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는 거지?”

“그렇죠, 뭐.”


이 형사가 멋쩍게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인지.”


둘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한참 후 이 형사가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 만화에나 나오는 정의의 사도라도 나타난 걸까요?”

“칫, 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 그런 게 있을 세상이었으면 이 모양, 이 꼬라지는 아니겠지.”

“그래도 워낙 이상한 일이잖아요. 기억도 안 나고, 사진도 안 찍히고.”

“뭔가 트릭이 있겠지. 그걸 밝혀내는 게 우리 임무고.”


오 반장의 말에 이 형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정말 정의의 사도 같은 게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에 따라 체포해야 할까요, 아니면 방관하거나 도와야 하는 걸까요?”


오 반장이 피우던 줄담배를 비벼끄고 일어서며 말했다.


“아우야, 쓰잘데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잡을 생각이나 해라. 그런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결정하지 못해. 이것저것 생각 많은 윗놈들이 할 일이지.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



“나쁜 년, 나쁜 년…….”


어두운 구석에서 사내의 울음이 새어나왔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정신이 아닌듯한 사내의 목소리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남발했다.


“왜 그러셨어요? 왜요?”


아무도 없는 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홀로 중얼거리는 남자는 두 팔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손가락을 삼킨 긴 머리카락은 두 팔을 타고 탐욕스럽게 흘러내렸다. 팔뚝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가려졌다. 가려진 두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콧물과 침으로 온통 지저분해졌으나 남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우정의 무대’(1990년대 군인을 대상으로 한 방송프로그램)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휴대폰이었다. 구석에서 쪼그리고 서럽게 울던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서서 전화를 받았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떡 벌어진 어깨까지 늘어졌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환이냐?

“응.”

-나 좀 봐야겠다.

“싫어.”

-아니, 꼭 봐야겠어.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안돼. 오지 마.”

-그럼 한 시간 후, 지난번에 그곳으로 와라.

“……알았어.”

-꼭 나와야 해. 알았지?


김성환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구석 자리로 돌아가 쪼그려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강남 뒷골목의 한 주점. 밖에서 보기에는 작고 허름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상상외로 넓고 화려했다. 바와 테이블이 늘어선 중앙 부분을 둘러싸고, 밀폐된 좁은 룸이 둘러 있었다. 룸은 방음장치를 철저히 해 놓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상류층만 상대하는 고급 술집이었다.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룸 안에 두 남자가 앉아있었다. 한 남자는 검은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어 마치 ‘맨 인 블랙’의 요원처럼 보였고, 다른 쪽은 캐주얼하게 입었으나 누구보다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동양의 분위기와 서양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 남자는 어떤 연예인이라도 추남으로 만들어버릴 듯한 마성을 지닌 김성환이었다.

둘이 아무 말 없이 마주 보는 사이, 테이블 위에 고급술과 안주가 진열되었다. 연예인처럼 잘 빠진 아가씨 둘이 옆자리에 앉으려 하자, 검은 양복이 됐다며 내보냈다. 두 아가씨는 김성환을 보며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힌 룸은 완전한 밀실이 되었다.

양복 사내는 양주 마개를 열고 두 개의 잔에 따른 후,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로 입술을 적시고 나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


김성환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대답했다.


“뭘?”

“몰라서 묻는 거냐?”

“몰라서 그러는데?”


김성환의 빈정거림에 양복 사내는 애써 화를 참으려는 듯 독한 양주를 들이켰다. 거칠게 잔을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이노명. 왜 자꾸 그놈 주위에 얼쩡거리는 거야!”


위험한 말을 크게 외쳤으나, 소리는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안에서 총싸움을 벌여도 밖에서는 모른다고 소문날 만큼 방음이 철저했다.


“그냥 살펴보기만 하는 거야.”


잘못이 구체적으로 지적되자 김성환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놈 주위에 나타나지 말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불안한 걸 어떡해? 그때 그냥 해치웠어야 하는 건데…….”

“닥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날 믿어! 쓸데없이 나대다간 잡히고 말 거다.”

“괜찮아. 변장하고 다녔기 때문에 눈치챈 사람 아무도 없어. 심지어 이노명 그놈도 날 못 알아보던걸?”


김성환은 자부심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양복 남자는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다. 눈싸움이 치열해질 무렵 김성환이 눈을 내리고 잔을 들었다. 잔을 노려보던 그가 한입에 털어 넣고 다시 양복 남자를 보았다.

양복 남자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벌써 널 주목하는 형사가 있었으니 내가 알게 된 거다. 아무리 병신같은 형사라 해도 절대로 만만하게 보지 마. 그걸로 밥 벌어 먹고사는 놈들이다.”


김성환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노명은 내게 맡겨. 지금까지처럼. 그리고 제발 더는 사고 치지 마라. 내가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양복 남자는 술병을 들어 두 개의 빈 잔을 채웠다. 둘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김성환은 알코올과 함께 화끈하게 올라오는 그 날의 추억을 되새겼다.



***



연소연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그를 사랑했지만, 젊은 나이에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청춘이 아까웠다. 주위 사람들의 말처럼 좀 더 많은 남자를 만나보고 결혼을 결정해야 했던 것은 아닌지, 그 남자와 결혼해서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지 불안했다.

아직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고, 가정과 아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어정쩡한 마음을 확고히 결정하기도 전에 양 집안 어른의 결정을 따라 결혼이 확정되고, 어느새 날짜까지 잡혀 있었다.

어차피 결정된 인생, 결혼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제 남편이 될 남자와 만날수록 불안은 커지기만 했다.


‘이 남자가 정말 내가 평생 기다려온 남자일까? 오빠와 결혼하면 정말 행복할까? 후회하고 싶지 않아.’


소연은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애썼지만, 감정이란 노력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그녀에게는 그러했다. 그날 그녀는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클럽을 찾았다. 친구들을 따라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던 곳이다.

몇 달 전, 결혼할 것 같다는 소연의 얘기에 친구들은 결혼 전에 즐겨야 한다며 클럽에 끌고 갔다. 넓은 댄스 플로어에 가득 찬 젊은 남녀들은 한데 뒤엉켜 젊음의 열기를 분출하려 흔들어댔고, 소연에게는 그 광경이 마치 지옥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강권을 못 이겨 억지로 어울렸다. 어색한 몸놀림이었으나 강렬한 비트와 기분을 붕 뜨게 하는 노래를 들으며 흔들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달아올랐다. 그것이 젊음의 열기인 것 같았다.

거의 하나가 되다시피 바짝 끌어안고 춤추는 사람, 관능적인 몸짓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사람, 봉에 매달려 허리를 놀리며 뭇 남성을 자극하는 여자들이 보였다. 어느덧 마음이 열린 소연은 자신도 그들처럼 신 나게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한순간 확 깨졌다. 누군가 뒤에 달라붙어 말로만 듣던 부비부비를 시전 했다. 모르는 남자가 그의 신체로 자신의 엉덩이를 자극하는 것은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소연은 성추행을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주위의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은 부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소연은 절대 클럽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마저 그리웠다. 마음껏 즐기고 싶은 마음에 혼자 클럽을 향했다. 그곳에서 신 나게 즐기고 나면 젊음의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밤 11시였지만 클럽은 아직 한산했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오빠였다. 받고 싶지 않았다. 받을 수도 없었다. 혼자 클럽에 온 걸 알면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얼마 후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더니 광란의 현장이 되었다. 춤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마치 번식기의 동물들처럼 하룻밤 이성을 찾아 구애의 춤을 추었다. 짝을 찾은 젊은 남녀들이 뒤엉켜 서로를 탐닉했다.

젊음을 불태우고 싶어 찾은 클럽이었으나, 그녀에게 클럽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모두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어쩌면 낮과 밤의 놀라운 변신이 도시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소연이 배우고 살아온 삶은 변신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음악을 들으며, 신 나게 즐기는 남녀를 구경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미 몇 잔의 술을 마셨다. 그녀는 지금 마시고 있는 잔을 비우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받지 않은 오빠의 전화가 죄스러웠다. 그녀가 마지막 모금을 들이키고 있을 때, 테이블 맞은 편에 누군가 앉았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넓은 어깨 때문인지 첫인상은 위압적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약간 곱슬 거리는 머리는 세상에 반항하려는 철부지 아니면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가쯤으로 보이게 했다. 솔직히 물정 모르는 반항적인 철부지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철부지에 위압적인 모습. 위험한 남자라고 직감한 소연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잠시 실례해도 괜찮을까요?”


정중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삽시간에 그를 향해 가졌던 경계심이 녹아내렸다. 소연은 자세를 바로잡고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넘겼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자 철부지처럼 보였던 긴 머리는 철학적이고 천재적인 예술가의 고뇌가 담긴 머리칼로 보였고, 위압적인 어깨는 자기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남자의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처음 보는 미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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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부: 파멸의 사도------ 21화 +1 15.07.29 714 15 13쪽
20 1부: 파멸의 사도------ 20화 15.07.28 662 14 13쪽
19 1부: 파멸의 사도------ 19화 +1 15.07.27 734 15 14쪽
18 1부: 파멸의 사도------ 18화 15.07.25 811 12 12쪽
17 1부: 파멸의 사도------ 17화 15.07.25 842 16 11쪽
16 1부: 파멸의 사도------ 16화 15.07.24 658 13 12쪽
15 1부: 파멸의 사도------ 15화 15.07.24 771 14 11쪽
14 1부: 파멸의 사도------ 14화 15.07.23 835 17 11쪽
» 1부: 파멸의 사도------ 13화 15.07.23 888 17 11쪽
12 1부: 파멸의 사도------ 12화 15.07.22 915 22 12쪽
11 1부: 파멸의 사도------ 11화 15.07.22 914 20 12쪽
10 1부: 파멸의 사도------ 10화 15.07.21 1,045 22 12쪽
9 1부: 파멸의 사도------ 9화 15.07.21 1,038 23 11쪽
8 1부: 파멸의 사도------ 8화 15.07.20 1,336 38 12쪽
7 1부: 파멸의 사도------ 7화 15.07.20 1,414 26 11쪽
6 1부: 파멸의 사도------ 6화 15.07.18 1,735 26 12쪽
5 1부: 파멸의 사도------ 5화 +1 15.07.18 1,985 28 12쪽
4 1부: 파멸의 사도------ 4화 +2 15.07.17 2,322 32 11쪽
3 1부: 파멸의 사도------ 3화 +1 15.07.17 2,371 34 11쪽
2 1부: 파멸의 사도------ 2화 +1 15.07.16 2,827 36 11쪽
1 1부: 파멸의 사도------ 1화 +2 15.07.16 5,45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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