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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회색빛의 군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52
최근연재일 :
2016.02.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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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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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28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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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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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2화. 케를 수비전 - 두번째 전술

DUMMY

적의 우회로인 리텐브로 방면으로 출격하기로 한 쿠안은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작전대로 된다 해도 리텐브로는 여태까지의 어떤 전장보다 위태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는 누구라도 한 번 실수하면 그걸로 지게 된다.'


쿠안은 이끌고 갈 3천의 병력을 가려 뽑고, 전술 지도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출격하기 전 날의 늦은 밤이 되도록 그는 회의실의 긴 탁자를 혼자 독점하고 승리를 위한 연구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정도로 열심인 쿠안님은 처음이네요."


아델베르트가 커피를 타와서 내려놓으며 저 말을 할 때까지 쿠안은 막사에 누가 들어온 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델베르트... 아. 미안하군."


"커피만 드리러 온거에요. 방해하지 않을게요."


"아니, 마침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어. 좀 앉아있다 가."


아델베르트는 쿠안의 자리에서 한칸 떨어진 곳의 의자에 앉아서 흩어져 있는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에 압정으로 박아둔 지도와 종이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진 것 같지만 사실 쿠안의 머리 속을 알려준다는 것을 아델베르트는 알고 있었다. 물론 보통사람은 아무리 자세히 본다해도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델베르트는 종이를 슥 훑어보다가 "이길 수 있겠죠?"라고 물었다.


"꽤나 이기기 어려울 거야."


쿠안은 자신이 여태까지 써놓은 글자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멜리아 쪽은 차라리 괜찮을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카자라스 백작에게 유능한 참모가 생기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정보란 부질없는 거야. 항상 새로워지거든."


"그래도 이번 적들은 출진하는 군단장 이름을 알려줘서 다행이네요."


"뭐, 그렇지. 그들은 제법 정정당당하게 보이려고 하거든. 다른 의미가 더 크겠지만."


"다른 의미요?"


"내가 병력을 셋으로 나누게 하려는 거야. 각 루트의 거리가 먼 것도 그 때문이지. 시간차로 격파해도 다른 곳을 지원할 여유가 없어. 제큐엘린 공작은 역시 대단한 책략가야."


쿠안은 여태까지 향기만 맡고 있던 아델베르트의 커피를 입에 댔다.


"너무 연한가요?"


"아니. 딱 좋아. 과열되었을 때 마시는 아델의 커피는 최고의 회복제로군."


쿠안이 살짝 웃자 아델베르트도 따라 웃었다. 어느 새 그녀의 상관이자 옛 애인은 과거의 모습처럼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상냥해서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하였다.


"중군으로 오는 것은 무려 10만이야 베버 바우몰 백작과 만수아 루헤쉬 백작은 어느 쪽이든 상대하기가 껄끄러워."


"우수한 전략가인가요?"


"아니, 그냥 매우 착한 영주들이라서.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겠지."


"적도 아군도 죽게하고 싶지 않으신거군요."


"뭐, 이번 경우에는 무리겠지만 말야. 양쪽다 엄청 죽을거야. 그게..."


쿠안은 "너무나 아쉽군."이라고 중얼거리며 커피잔에 입술을 댔다. 아델베르트는 그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쿠안님이 가시는 곳은 리텐브로 지방이죠?"라고 넌지시 물었다.


"그렇지. 저택이 띄엄띄엄 있고, 대부분 논과 밭이지. 아. 목초지도 꽤 넓었나... 리텐브로 지방의 소고기와 우유가 유명하지."


"관광 가시는 것 같네요."


쿠안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 곳에서 이용할 거라면 역시 데이멋 성밖에 없어."


"데이멋 가문의 고성이군요."


"지금은 빈 성이지만 말야. 꽤나 외딴 곳이지만, 굉장히 넓다구. 유령이 나올만큼."


"유령... 인가요?"


아델베르트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쿠안은 미소지었다.


"놈들에게 유령을 보여줄 생각이야."


"성으로 끌어들이실 생각이시군요?"


쿠안은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일단 내가 있다는 걸 알면 날 잡으러 올거야. 성을 포위하고 공격부대를 투입하겠지. 그것을 모조리 격파해야해."


"만약 적들이 쿠안님의 부대를 지나치면 어떻게 되죠?"


아델베르트는 그녀의 상관이 씁쓸하게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루이에게 병사를 맡겨 케를에 주둔 시켰으니까,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그 사이에 난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후미를 공격해야겠지."


"공격인가요...?"


"아론이 적의 중군을 격파한 후에 지원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할테니까... 작전대로 흘러가줬으면 좋겠는데."


"그럼...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하네요."


쿠안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생각에 잠겼다. 아델베르트는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20대 후반이고 전장의 경험이 많으니 관록이 묻어나올 법도 했지만, 가만히 있을 때의 그는 굉장히 앳되보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게 반한 이유도 그런 이중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곁에 있고 싶을 뿐이니까.'


그녀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그의 곁으로 가서 허리를 숙였다.


"쿠안님."


"... 어?"


이번에도 아델베르트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쿠안은 그녀의 얼굴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란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델은 꽤나 기뻤다. 그의 모든 표정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빌어요."


그녀의 입술이 쿠안의 뺨과 입술 사이에 닿았다.


"돌아 오시면 다른 것도 해요."


쿠안은 도발적인 대사를 하기 위해 홍조를 띄고 있는 그의 옛 애인을 보며 "아아, 그래. 꼭 돌아올게."라고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



리텐브로의 데이멋 성이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 고성(孤城)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성을 구매하는 사람마다 불운한 일이 생긴다는 도시전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데이멋 성은-믿기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작은 별장을 목표로 건축을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성을 지었던 데이멋 가문이 가난을 이유로 매각한 이후, 구매자가 바뀔 때마다 개축이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성을 인수한 귀족들이나 상인들은 이 새로운 건물을 얻자마자 기이할 정도로 불우한 일이 마구 일어났고, 개중에는 화재나 건물 붕괴로 죽는 사람마저 있었다. 성은 다시 팔리고, 또다시 개축되며 다음 주인을 맞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을 샀던 노부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한 다음, 이곳은 '저주받은 성'이라는 불명예스런 가칭을 갖게 되며 주인을 잃었다. 마력이 충만하던 시기에는 밤중에 어린아이가 앵앵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리는 다락방이라든가,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내는 시계라든가 하는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괴담의 발상지가 되어버렸다.


이 흉물스런 랜드마크에 쿠안군이 주둔했다는 소식을 들은 메이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 데이멋 성에 쿠안군이 주둔해 있다는 겁니까?"


"성에는 빼곡하게 쿠안군의 깃발이 서있는데, 쿠안 본인이 망토를 두르고 창을 들고 성벽에 서있습니다."


메이야는 정찰병의 보고에 고민했다. 데이멋성의 미신이야 어쨌든, 그 곳은 공격로와 제법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메이야대는 공성병기를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헐고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메이야는 고심끝에 쿠안을 그냥 지나치기로 결심했다.


'쿠안이 후방을 공격하면 위험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원하는 전장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다른 군단의 진군 속도를 알 수 없는 이상 우리가 이런 곳에서 지체할 수 없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 두 상장인 카리나 레오폴도와 프래도르 에스페란자를 불러서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




카리나 레오폴도는 30대 중반의 여성으로, 패드루크 공작을 섬긴 지 10년이 된 용병이었다. 그녀는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신장에 왠만한 남자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며, 항상 주군의 곁에서 강철로 만든 할버드를 휘둘렀다.


그녀는 근육이 드러나는 천옷을 걸치고 갑주는 걸치지 않았는데, 병사들 사이에서는 "카리나님이 갑옷을 입지 않는 것은, 입든 안입든 승리하기 때문이다."라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이 돌 정도였다.


프래도르는 유명한 기사 가문인 에스페란자의 장남이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미남자로, 다른 의미로 갑옷을 두르지 않았다. 그는 전장에서도 몸에 달라붙으면서도 화려한 옷차림을 추구했고, 고급 가죽부츠를 매일 갈아신었다.


레이피어의 달인인 그는 검술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십여년간의 리베리아 왕실검술대회에서 보여주었다. 다만 그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이나, 먼지가 많이 날리는 날에 싸우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늪지에서는 검을 뽑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


"귀공이 늪지를 싫어하는 것은 발 디딜 곳이 나빠서 그런 건가?"


수년 전 늪지에서 기습을 받아 적의 무리가 바로 앞에 이르자 마지못해서 검을 드는 그에게 카리나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을 때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여기서 싸우면 부츠가 더러워진단 말이오."




제큐엘린 가문에서 일기당천이라 불리는 바카무드와 더불어 이 세명이 최고의 전력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페드루크 공작이 전력의 2/3를 그의 아들에게 맡긴 것은, 메이야가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다가, 책략을 우선시 하는 그에게 무력을 더하고자 한 것이었다.


다만 시너지는 공작의 예상과는 반대로 나버렸다. 두 사람에게 메이야가 쿠안의 동태를 알리고 그를 무시하겠다고 선언하자마자, 항명의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작은 주인은 무얼 두려워하고 있소. 쿠안은 스스로를 성에 가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를 포획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오! 여기에서 그를 무시하고 진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겠소!"


프래도르의 유쾌하기까지한 목소리를 카리나가 묵직한 목소리로 이었다.


"프레도르공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쿠안이 전장으로 택한 곳에 어떤 함정을 파 놓아도 모두 부숴버리면 그만 아닌가!"


호전적인 두 사람에게 메이야는 신중히 생각할 것을 요구했지만, 두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애초 두 기사 모두 전장의 경험은 메이야보다 월등했기 때문에 아무리 상관이라 해도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히 쿠안을 깨트리고 진군을 계속해야 합니다. 적에게 시간을 내어 줄 수는 없어요."


메이야가 힘없이 말하자 프래도르가 껄껄 웃었다.


"작은 주인은 걱정이 많소. 저런 성에 병사가 머물러봐야 천 명이 될 수 없소. 우리는 병력이 5만이니 한명이 돌 하나씩만 들어내도 성은 하루도 못되어 허물어질 것이 아니겠소!"


결국 메이야는 자신의 의견을 접고 병력을 나눠 데이멋 성을 포위하게 하였다.


'쿠안이 있다는 것은 이 곳이 적의 주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묶어두는 것으로 다른 쪽의 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질 것이 아닌가.'


메이야는 억지로 생각을 바꾸기위해 노력했지만 유감스러울 정도로 그의 불길한 예감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3군단장 베버 바우몰 백작과 5군단장 만수아 루헤쉬 백작이 이끄는 10만 연합군은 가장 빠른 길인 케를 평야를 향해 진군했다. 두 백작은 의기양양했는데, 최근들어 전투를 계속한 쿠안의 전력이 이미 낱낱히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총 수는 5만이나 전장에 설 수 있는 것은 3만 5천에 불과한 것이 이미 알려졌고, 다른 두 루트의 공세를 막기위해 병력을 나누는 것을 감안하면 상대해야할 적은 겨우 1만이었다. 거기에 상대의 유능한 장수들도 각각의 요지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으니, 그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선봉장이었던 가르크가 케를 평야에서 당당히 진을 치고 있는 아론 부대의 전력을 확인하자마자 보낸 보고는 그들의 표정에 웃음기를 날려버렸다.


"무엇이라고? 적이 삼만이 넘는다고 하셨소이까?"


베버 바우몰 백작이 깜짝 놀라 물었다.


"틀림없습니다. 선봉장 가르크는 분명히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거기에 아론, 아델베르트, 카를로스가 모두 선두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쿠안의 3장군이 모두 여기에 있을리 없지 않소이까!"


만수아의 말에 바우몰 백작은 크게 외쳤다.


"적은 필시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오. 적은 많아야 1만이 틀림없소!"


어린애의 칭얼거림같은 논리에 만수아 백작은 고개를 딱 한번 저었다.


"우리가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니,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좋겠지요. 적이 어떤 속임수를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르크는 5천명밖에 없으니 혼자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수아 백작은 바우몰 백작을 달래려고 한 말이었지만, 3시간도 안되어 도착한 다음 보고는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가르크 장군이 적과 교전중에 전사했습니다! 선봉부대는 괴멸하였습니다."


"적을 얕보고 함부로 달려들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겠소이까! 우리 본진이 이르면 적은 필히 항복할 것이오."


베버 바우몰 백작은 그렇게 외치고 황제에 대한 칭송과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여신의 가호를 십여분이나 떠들어댔다. 하지만 케를 평야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입을 더는 열 수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쿠안부대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두에 선 아론은 창을 높게 들고 아군과 적군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라! 적은 겨우 10만이니 각자 3명씩만 죽여도 오히려 모자란다! 늦는 사람은 몫을 찾지 못할 것이다! 저들을 모조리 여신의 곁으로 보내주어라!"


거대한 환성이 그의 외침에 부응했다. 거의 세배차이였지만 쿠안부대에게서 이정도 격차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도리어 압도적인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제대로 단합까지 이루어진 쿠안부대를 상대하기에는 이정도 수의 우위는 유리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만수아 백작은 급히 베버 바우몰 백작에게 아군을 추스리고 방어진을 짤 것을 요청했지만, 베버 바우몰 백작은 이미 아론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저 건방진 놈의 입을 막을 장수는 없느냐! 여신을 모독한 저 놈의 목을 베어오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제가 저 입만 산 놈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마크 다운스라는 기사가 거대한 도끼를 매고 말을 달려나갔다. 그의 용맹스러운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짓는 바우몰 맥작에게 만수아가 외쳤다.


"그만 두게 하십시오! 즉시 방어진을 짜고 지켜야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려고 뭐가 씌인 것같이 바우몰 백작은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다운스가 적장을 치면 즉시 공격을 지시하시오. 우리의 승리는 여신이 약속해주시지 않았소이까."




마크 다운스는 앞서 나온 아론에게 나는 듯이 도끼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마상전을 위해 만든 긴 자루의 도끼는 분명 제대로 휘두르면 막아내지도 못할 만큼 위협적이겠지만, 그건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있을 수 있는 위협이었다.


아론은 말을 움직이지도 않고 포물선을 그리며 내리찍는 그의 도끼를 창으로 올려쳐버렸다. 단 일격에 다운스는 도끼를 놓치고 말에서 미끄러졌다. 아론은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창을 단 한번 휘둘러 목을 쳐버리니,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공격! 공격해라! 우리가 숫자에서 앞서고 있지 않느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베버 바우몰 백작이 외쳐댔으나, 그것은 아델베르트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구잡이로 달려오던 적들의 선두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비명소리가 이어진 것이다.




전투 시작전, 참모를 맡은 아델베르트는 적을 갈라놓을 방법으로 의외의 수를 제안했다.


"중앙을 제외한 곳에는 고대지뢰를 만들어두고 기다리도록 하죠."


"고대지뢰란 것은 무엇이지요?"


나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램투로였지만, 고대지뢰라는 것은 생소한 단어였다.


"구덩이를 원뿔모양으로 판다음 가장 아래에 못이나 부러진 칼날같은 것을 세워두는 거지. 의외로 풀밭에서 만들어두면 적들이 눈치를 못채서 걸려들기도 하고."


카를로스가 대신 말해주자 램투로는 석연치않은 표정을 지었다.


"일부에게는 타격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적들이 거기에 걸려줄거라 생각할 수 없군요. 뒤도 안보고 달려들어오지 않는 이상..."


"뒤도 안보고 달려들어오게 만들면 됩니다."


아델베르트는 생긋 웃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아론씨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적을 도발해주세요. 적들이 숫자의 우위를 이용하기 위해 돌진을 해오게 만들면 됩니다. 고대지뢰는 맨 앞에서는 눈치챌 수 있지만, 바로 뒤를 따르는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없어요. 적들은 자기들끼리 짓밟으며 움직일 수 없게 될 겁니다. 양 측면이 지뢰로 묶이게 되면 적의 전력은 중앙에 한정되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있지요."




땅에 판 구덩이에 적들이 멈추자 아델베르트는 미리 준비해둔 궁병대의 사격을 지시했다. 그야말로 멈추어 선 표적이니 그 수가 계속 줄어드는데,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양상이 되어버렸다.


원래 고대지뢰는 상대의 발을 묶어놓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쿠안의 장군들은 그 잠시의 혼란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돌격! 적의 중앙을 관통하라!"


함정을 만들지 않은 중앙을 향해 아론과 디지의 기병대가 난입하자 그야말로 적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뭉그러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전장이 너무나 넓기에 교전지역이 기니 쿠안부대는 각각의 장수들이 원하는만큼 적과 맞부딪칠 수 있었다. 카를로스와 램투로가 지뢰지역을 우회하여 좌우에서 공격함과 동시에 마루자나와 라즈나 일족이 적의 후미에 등장하는 순간 연합군의 패배는 확정적이 되었다.


"단 한놈도 살려보내지 마라!"


적진 한복판에서 노호를 터트리는 아론의 모습은 이미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사신과 같았다.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치다가 자기들끼리 밟힌 수만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만수아 백작은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거의 이틀이 지나서 병력을 추스렸으나 그 수가 천을 채우지 못했다. 거기에 온갖 비보가 이어졌다.


"바우몰 백작님이 난전(亂戰)중에 전사하셨습니다."


"3군단은 괴멸, 남은 부대장들은 적에게 항복하였습니다."


"군량과 물자를 모두 약탈당했습니다."


"적이 아직 추격을 늦추지 않습니다."


만수아 백작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바우몰 백작님이 돌아가셨으나 난 그 복수를 할 힘이 없구나! 여신이여, 부디 적들에게 이 죗값을 치루게 해주시옵소서!"


그가 전투를 포기하고 페드루크 공작이 있는 본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니 아론 부대의 대승이었다.


작가의말

월요일 분의 소설입니다. 날씨가 심히 괴랄하네요. 작년보다 12.20% 더 더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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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승리, 그리고 승리 -2 16.02.02 131 0 27쪽
45 44화. 승리, 그리고 승리 -1 16.01.30 131 0 8쪽
44 43화. 험멜의 뒤를 쫓아 -3 15.11.17 151 0 26쪽
43 42화. 험멜의 뒤를 쫓아 -2 15.11.09 133 1 13쪽
42 41화. 험멜의 뒤를 쫓아 -1 15.10.30 108 1 15쪽
41 40화. 옛 연인 -3 15.09.30 119 1 15쪽
40 39화. 옛 연인 -2 15.09.21 149 1 12쪽
39 38화. 옛 연인 -1 15.09.18 123 0 8쪽
38 37화. 의도된 급변 15.08.31 170 0 15쪽
37 36화. 케를 수비전 - 흙벽 위의 아가씨 15.08.10 192 0 13쪽
36 35화. 케를 수비전 - 세번째 전술 15.08.06 165 2 16쪽
35 34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2) 15.08.05 157 2 15쪽
34 33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1) 15.08.05 143 1 10쪽
» 32화. 케를 수비전 - 두번째 전술 15.07.30 132 1 19쪽
32 31화. 케를 수비전 - 첫번째 전술 15.07.30 305 1 9쪽
31 30화. 케를 수비전 - 작전회의 15.07.28 188 2 9쪽
30 29화. 약속을 지키는 것 15.07.26 168 1 16쪽
29 28화. 예지는 진실을 담고 있는가 15.07.06 202 1 28쪽
28 27화. 쿠안은 새로운 검을 얻고 15.07.01 171 1 8쪽
27 26화. 충성의 저울질 15.06.26 241 1 7쪽
26 25화. 잡담 15.06.19 169 1 6쪽
25 24화. 패배를 앞두고 -3 15.06.15 204 1 16쪽
24 23화. 패배를 앞두고 -2 15.06.12 373 1 16쪽
23 22화. 리프베아체의 반란 15.05.27 224 1 6쪽
22 21화. 승리는 거두었으나 15.05.25 200 1 22쪽
21 20화. 패배를 앞두고 -1 15.05.20 229 1 8쪽
20 19화.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 15.05.18 212 1 10쪽
19 18화. 사투의 끝 15.05.13 202 1 18쪽
18 17화. 사투- 후편 15.05.11 19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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