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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회색빛의 군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52
최근연재일 :
2016.02.02 20:41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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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1
추천수 :
56
글자수 :
280,342

작성
15.05.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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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1화. 승리는 거두었으나

DUMMY

라즈나 일가를 포섭한 쿠안은 아론과 팽의 부대를 선두로 세우고 즉시 코르를 향해 출격시키려고 했다. 아델베르트는 쿠안의 성급한 작전을 말렸지만, 쿠안은 막무가내라 할 정도였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체했어. 브랜에게 시간을 주면 큰일난다구. 티에세의 후방이 위험한 것도 문제지만 아멜리아와 휴고는 젠을 지킬 수 없다구."


"하지만 브랜은 패해서 쫓겨갔고, 우리는 티에세에서 할 일이 많은걸요."


"그건 오스본 포웰에게 이미 맡겨뒀어. 그 사람 은근히 유능하다구. 할줄 아는게 한정적이긴 하지만. 서류정리 같은 거."


"그래도 너무 서두르시는건..."


쿠안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델베르트. 기회가 오면 놓치면 안돼. 즉시 출격 준비를 해줘. 브랜을 친다."


아델베르트는 결국 그의 명령에 따라 강행군을 준비했다. 쿠안은 마루자나에게 티에세의 의용병을, 알투로에게 수비대를 담당하게 하고 예비 병력 1만을 남겼다.


"형님, 이렇게나 남기고 가면 브랜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카를로스가 유쾌한 목소리로 묻자 쿠안은 껄껄 웃었다.


"브랜은 이미 잡은 것과 다름 없어, 알투로와 마루자나님이라면 티에세를 완벽히 지킬 수 있을거야."


쿠안의 행동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즉시 젠에 머물고 있던 아멜리아에게 출격을 준비시키는 서신을 보냈고, 대륙 남쪽에 켄틱군의 세력안에 있던 성들을 차례로 해방시키게 하였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쿠안은 엄청난 행동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본진을 카를로스와 아델베르트와 함께 이끌고 코르로 출격했다.




브랜 캔틱은 아마도 리베리아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궁술사일 것이다. 그의 화살에 죽은 사람 수는 천명을 세도 부족할 정도였는데, 그가 처음으로 활을 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온갖 병장기를 가지고 놀았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코르 시 외각에 나왔을 때 배가 뒤집혀서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것을 보았다. 병사들이 그들을 구하는 가운데, 한 청년이 끊어진 밧줄에 팔이 휘감겨 가라앉는 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브랜은 이에 떨어져 있는 활을 주워 단 한발로 그 밧줄을 끊어냈다. 브랜은 운이 좋아서 가능했다며 크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소문을 들은 험멜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사람을 살린 화살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다. 네 재능은 너의 것이 아니니 갈고 닦으면 온 세상을 구하게 될 것이다."


험멜은 그가 직접 쓰던 활을 브랜에게 직접 하사하였는데, 보통 사람들은 시위를 당길 수조차 없는 강궁(强弓)이었다. 그 후로 브랜은 하루도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을 거른 일이 없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정말로 온 세상을 구해야 할 때가 오면 그의 활과 화살로 그것을 이루겠노라고, 연습을 할 때마다 중얼거렸다.




코르로 도망쳐온 브랜은 병사들을 위로하고 부하들에게 젠을 수복할 준비를 하게 했다. 쿠안에게 받은 타격은 적지 않았지만 브랜의 부대는 충분한 수가 건재했으며, 사기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티에세가 쿠안의 손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쿠안의 대부대가 코르시로 출격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티에세의 의용병을 더한 쿠안 부대는 이미 브랜 병력의 세배가 넘어갔다.


절대 요새였던 티에세의 함락으로 브랜의 부대에서는 도주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티에세를 수복하려던 다른 부대의 패배소식까지 전해지자 주둔지 내에는 무덤과 같은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싸우면 이길 수 없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브랜은 이를 악물고 아버지의 상장인 베너 그레이너와 포터 케인스를 불러 방책을 물었다.


"우리가 비록 수가 적지만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적과 마주하면 밀리지 않을 것이니 정면에서 맞서야 합니다."


베너 그레이너가 용맹하게 말했지만 포터는 고개를 저었다.


"정면에서 맞서기에는 상대가 너무 날카롭습니다. 이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포터의 말이 지당함에도 브랜은 고개를 수긍할 수 없었다.


"쿠안 부대가 이미 남쪽 해안선을 모두 점령했소. 우리가 여기에서 물러나면 아버지는 발페아케이르에서 고립되고 말겠지요. 우린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내야 하오."


"하지만 우리마저 여기에서 패하면 리베리아 대륙에서 험멜군이 남을 자리는 없습니다! 차라리 후일을 도모하시는 편이...!"


포터의 말에 브랜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적이 뷰르아를 공격하여 모든 배를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서신을 받은 브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쿠안은 퇴로까지 끊어버린 것이다.


"여신이여, 우릴 정녕 여기에서 죽이시는 겁니까?"


브랜의 탄식은 그 어느때보다 깊었다. 그 탄식에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적과의 교전이 다가오면서 병력은 더욱 줄어갔다. 베너 장군은 병사들의 이탈을 엄히 다스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뷰르아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은 역병처럼 퍼져나갔다. 쿠안의 본진이 이르기 하루 전인 5주 5일, 브랜의 주변에는 겨우 5천 남짓의 병사만이 남았을 뿐이다.


브랜은 어린 기사들을 모아 말했다.


"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다시 우리의 세력이 재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대들은 건재한 병력을 모아 서쪽포위망을 뚫고 노드 장군의 군대를 찾아라. 나에게 계책이 있으니 그대들은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남아 적의 본진과 맞서겠다."


젊은 장수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니에 지오그폴로스는 눈물을 흘리며 브랜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그 길로 천여명의 젊은 병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포터와 베너는 남은 병력을 단속하면서도 끝까지 항전할 준비를 하였다. 브랜이 건재한 이상 제 아무리 쿠안이라도 쉽게 패할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은 병사들 역시 그 동안 따랐던 그들의 상관만을 믿고 있었다. 브랜은 쿠안을 막기 위해 고심하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부대에 남아있던 자 중 엣킨슨 팬들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원래 도적출신으로 브랜에게 목숨을 구걸하여 부대에 합류하였는데 하급 무관의 위치에 있던 것을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눈 앞에서 죽음이 오자 그는 잔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브랜의 곁에서 충성을 다해봐야 결국 죽는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 쿠안은 자신에게 항복한 장수를 중히 쓴다고 했으니 여기서 항복하는 것이 나을 거야."


그는 야심한 밤을 틈 타서 그의 목을 베어 쿠안에게 항복할 것을 모의하고 자신을 따르던 몇과 함께 막사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잠든 브랜에 겁을 먹고 다가가지 못하고, 대신 그의 활만 부러뜨려놓고는 쿠안의 본진으로 도망쳤다.




새벽이 되기 전에 쿠안의 선봉이 코르에 이르자 병사들은 분주해졌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잠시 잠들었던 브랜은 출진을 위해 그의 활을 찾았으나 이미 활은 부러져 있었다. 그는 실소하며 빈 손으로 나와 병사들 앞에 섰다.


"브랜 장군님, 활은 어찌 하셨습니까?"


포터 케인스가 걱정스럽게 묻자 브랜은 담담히 말했다.


"내 활을 잘 못 관리하여 부러져 버렸소."


"그럼 어쩌 하시겠습니까?"


"어떤 활이라도 다 쓸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오. 염려마시오. 어제 밤, 작전이 하나 떠올랐소. 그대로하면 쿠안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오."


브랜은 포터와 베너에게 임무를 전해주었고, 두 사람은 그 작전에 탄복하며 즉시 수행할 준비를 하였다.




쿠안이 코르시에 이르러 보니 도시 전체의 백성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서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된거죠?"


아델베르트가 묻자 쿠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코르 시에는 지금 누가 남아있지?"라고 물었다.


"수천에 이르는 브랜의 군대가 남아있습니다. 기치와 막사를 성의 한복판에 펼쳐놨어요."


아론이 대답하자 쿠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일부를 희생량으로 쓰고 남은 자들은 무리에 섞여 도망칠 생각이로군."이라고 말했다.


"아주 좋은 방법이긴 하지. 사이에 섞였다면 찾아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백성들이 저들 편을 들어주고 있으니 밀고할리도 없고."


"그렇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론이 염려하여 묻자 쿠안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모두 죽일 수는 없고, 그냥 보낼 수도 없으니 일일히 검문하여 보내는 수밖에. 최소한 적의 사령관급은 그렇게 찾아낼 수 있을거야."


쿠안은 떠나는 무리를 멈추게 하였는데 그 수가 만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은 쿠안의 실책이었다. 실제로 브랜이 보낸 젊은 병사들은 성을 크게 우회하여 서쪽 숲을 통해 도주한 것이다. 거의 하루에 가까운 조사에도 백성들 사이에서 적병을 찾지 못하자 쿠안은 박수를 치며 폭소했다.


"이거, 당했는걸. 이들은 정말로 그냥 백성일 뿐이야."


"설마 전투를 앞두고 일부 병력만을 빼다니, 브랜 켄틱도 이미 도주한 걸까요?"


"아니, 그럴리 없지. 그는 최후의 최후까지 내 목을 노릴거야. 브랜은 끝까지 전장에 남는다."


쿠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코르 성을 포위하게 한다음 아론과 카를로스를 앞세워 전투를 벌였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빠져나간가운데 험멜군은 성의 요소요소를 가로막아 소규모 교전을 강요했다. 아론의 기병대는 이어지는 바리케이트와 기습에 적잖게 기세가 꺾였고, 카를로스도 미로와 같은 코르시에서 헤메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적들이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데,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궁수와 창병이 적절하게 치고 빠지니 도통 추격할 수가 없습니다."


아론이 우물쭈물 말하자 쿠안은 씨익 웃었다.


"좋아. 이번엔 나도 들어간다. 아론, 잘 봐두라고."


쿠안이 직접 나서려고 하자 팽이 그를 말렸다.


"시가전은 전장의 거리가 짧습니다. 행여나 쿠안님의 귀체가 해할까 염려됩니다. 부디 저를 앞세워 주십시오."


쿠안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팽님의 아버님인 마루자나님께서 제게 팽님을 맡기신 것은 바로 며칠 전의 일입니다. 당신이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어찌 다시 티에세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쿠안의 말에 아델베르트가 말을 몰아 그의 곁에 섰다.


"그럼 전 같이 가도 되죠?"


"아니... 그건... 아니, 안그래도 되는데..."


쿠안이 말문이 막히자 그녀는 빙긋 웃고 병사를 통솔했다. 쿠안은 한숨을 쉬고 아론과 카를로스에게 좌우군세를 맡겨 코르 시로 투입시켰다.


"목표는 브랜 켄틱이다. 그를 잡으면 전쟁은 끝나."


쿠안은 세부사항을 지시한 다음 본인도 말을 몰고 선두에 섰다. 모든 것은 브랜이 바라던 바대로 였다.




"적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쿠안 장군의 깃발입니다."


코르 성 북쪽 첨탑에서 적의 이동을 바라보고 있던 포터의 말에 브랜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안을 죽여도 우린 살아나갈 수 없을지도 모르오. 포터 장군, 쿠안의 죽음을 확인하면 그대는 병사를 이끌고 전장을 이탈하시오."


포터는 빙그레 웃었다.


"전 이곳에서 장군이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릴 겁니다."


브랜은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쿠안의 목을 가지고 돌아오겠소."라고 응수했다.


베너 그레이너는 브랜의 출전신호에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곧바로 쿠안 부대를 향해 돌진했다. 코르시는 원래부터 자연도시로, 필요에 따라 도로를 낸 덕분에 길이 복잡하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복층 건물이 많아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었다. 어린 시절을 코르에서 보낸 브랜에게는 최고의 지형이 아닐 수 없었다. 브랜은 그중 일부의 길을 막고 다리를 끊어 쿠안에게 외길을 강요했다.


"건물의 숲이 이렇게 까다로울 줄 몰랐어요."


아델베르트가 말하자 쿠안은 피식 웃었다.


"음. 잘 배워두자고. 다음에 우리가 써야 할 지도 모르니까."


"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질 거라고 생각하나, 아델?"


"아뇨."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조심하는 것이 나쁠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쿠안은 소리내어 웃고, 그녀의 조언대로 최대한 경계하며 이동했다. 브랜의 본진의 위치는 성의 중심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쿠안이었으나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거기에 브랜은 없어. 아니, 정말 아무도 없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적은 어디에 있는거죠?"


"이성 곳곳에 거점을 만들어두었겠지. 쉽게 잡을 수 없겠는걸."


아델베르트는 작게 기침을 하고 그에게 다른 작전을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그냥 성을 포위하고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식량이 떨어지면 항복할텐데요."


"적은 소수고 우리는 대군이야. 우리쪽 병량소모가 더 큰데다가 적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료가 전혀 없어. 게다가 서두르지 않으면 이번엔 파마르 크란스넬 제독이 티에세로 올거라구."


"쉴 시간이 없군요."


아델베르트가 볼멘목소리로 말하자 쿠안은 넉살좋게 웃었다.


"우리가 쉬는 건 전쟁이 끝난 후거나 죽은 후야."




쿠안대가 성으로 들어온지 6시간이 지난 후, 첫번째 교전이 벌어졌다. 쿠안의 머리위로 곡선을 그리며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타격을 받자마자 쿠안은 화살을 쏜 곳으로 이동했지만 이미 그곳에 적은 없었다.


"이것도 기가 막히군. 일부러 곡사를 쏘고 즉시 도주한거야. 화살이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까지도 활용한거지."


쿠안의 감탄에 아델베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우리랑 싸우고 있는 적을 칭찬하시는건가요?"


"염려할 것 없어. 우리가 이길테니까. 아델베르트는 걱정이 너무 많군."


쿠안이 머쓱해져서 말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다시 화살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에 쿠안의 대응은 전과 달랐다. 화살을 쏜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서 즉시 타격해버린 것이다. 궁병대를 이끌던 베너 그레이너는 쿠안의 전장을 읽는 능력에 깜짝 놀랐으나 작전대로 병력을 흩어 골목골목으로 도주시켰다.


"이것도 엄청난데. 추격할 수가 없어."


쿠안은 무릎을 치며 중얼거리고, "작전을 바꾸자."라고 말한 다음 아델베르트에게 병력을 모아 성을 빠져나갈 것을 지시했다.


아론과 카를로스대를 위해 포향을 세번 울려 퇴각 신호를 내리고 그는 해가 지고 있는 코르 시를 떠나기 위해 들어왔던 서쪽 성문으로 향했다.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병사들을 다시 모은 베너는 쿠안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은 건물로 올랐다. 쿠안이 부대를 수습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환호했다.


"쿠안이 물러가고 있다!"


그는 이 작전이 분명히 통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브랜은 백발백중, 단 한발도 빗나가는 화살을 쏘지 않는다. 그의 화살 하나에 이 승부가 결정된다면, 그 승부는 반드시 승리가 될거라 확신했다.




"이것이 승부수로군."


성탑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던 포터는 주먹을 꾹 쥐었다. 목숨을 건 작전은 보상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브랜을 찾았다. 멀어져가는 쿠안의 부대를 노리고 있는 사냥꾼의 모습이 곧 눈에 들어왔다. 지고 있는 해는 서쪽 성문으로 향하는 부대의 시야를 가린다. 역광에 몸을 숨긴 브랜은 쿠안의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화살을 들었다.


"여신 엘리츠나여, 브랜 장군님께 당신의 가호를..."


포터는 중얼거리며 싸움의 끝을 바라보았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쿠안의 부대가 성문을 앞두고 있는 공터에 이르렀을 때, 아델베르트는 문뜩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나무가 없다. 성문 근처에 높은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작은 나무조차 없는 것은 너무 위화감이 컸다. 그녀의 시선은 잘린 나무 밑둥으로 향했다. 깨끗하게 베어져 있었다. 아델베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해버렸다. 건물의 그늘과 역광 사이의 틈에서 브랜이 활을 들고 있었다. 적은 단 하나, 그의 목표 역시 단 하나. 아델베르트는 쿠안을 향해 말을 돌렸다. 그리고 브랜과 쿠안의 사이에 섰다. 쿠안이 그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브랜은 시위를 당겼던 활을 놓았다.


화살이 날아갔다. 거리는 겨우 200메세, 보통 사수에게는 원거리지만 브랜에게는 그야말로 지근거리. 빗나갈리 없는 화살은 쿠안에게, 그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아델베르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쿠안님!"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퍽!하고 무거운 소리가 났다.




브랜은 눈을 감았다.


"여신이시여..."


그는 중얼거렸다. 그가 들고 있는 활은 부러져 있었다. 그의 무의식적인 시위질을 보통 활은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브랜을 발견하고 가장 빨리 행동한 이는 아론이었다. "네 이놈!"하고 호통을 치며 그는 말을 달려 건물 계단을 두번에 뛰어 올랐다. 장검을 뽑아드는 브랜을 향해 아론은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화살은 쿠안의 머리 위를 세뼘이나 높게 날아가버렸다. 벽에 박힌 화살은 허무하게 진동했다. 쿠안과 아델베르트는 동시에 브랜을 바라보았다. 아론의 강철창은 브랜의 검을 부수고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 한발을 위해 브랜은 갑옷조차 입지 않았다. 창은 아무 저항없이 그의 근육을 뚫고 뼈를 부수고 심장을 스쳤다.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아론! 됐어!"


목을 치려는 아론에게 쿠안이 외쳤다. 브랜은 아론이 창을 거두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쿠안은 말에서 내려 브랜에게 달려갔다. 브랜은 괴롭게 웃으며 쿠안을 맞이했다.


"크.. 하.. 실패.. 했나...크"


"당신의 화살은 한참 빗나갔어, 브랜."


정다운 친구에게 말거는 것처럼 쿠안은 담담히 말했다. 브랜은 힘겹게 웃다가 몇번 피를 토했다. 그의 눈은 쿠안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할 말이 있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겠소."


브랜은 쿠안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쿠안 르투가... 이 성의 모두를 죽이기 전.. 까지는.. 크...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부하의 목숨을 위할 줄 알았는데?"


"내 부하는... 항복하는 법을 모른다. 크..쿨럭... "


쿠안은 브랜을 딱하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전쟁을 일으킨 건 그쪽이었지. 어째서 이렇게 무모한 전쟁을 시작하였소?"


브랜은 몇번 피를 토하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아버지와... 나의 형제들은... 이 세상을 지키려 했다... 쿠안, 쿠안 르투가... 이제 네가 세상을 지켜라... "


"세상을 지키다니? 전쟁의 업화를 일으키는 것이 세상을 지키는 거란 말이오?"


"아니... 크... 티프소에서... 재앙이 올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알고..."


브랜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크게 몇 번 기침을 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몇번을 세기도 전에 멈췄다.


"티프소의 재앙...?"


쿠안은 자신이 어느새 브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터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탑에서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그가 죽자 병사들은 슬피 울며 그의 시체를 인근 막사의 두꺼운 천으로 덮어두고 베너에게 향했다.


베너 그레이너는 울부짖었다. 언덕에서 울던 그는 혼절하다 깨고 다시 혼절했다. 베너의 부하들도 모두 하늘을 향해 울었다.


"브랜 장군님의 원수를 갚는다! 나를 따르라! 쿠안, 내가 죽는다해도 원귀가 되어 네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리라!"


쿠안은 항복을 권했지만 단 한명도 항복하지 않았다. 특공대는 일방적으로 진압당했고, 죽기 전까지 칼을 휘둘러 적을 베던 베너도 아론의 창에 찔려 명운을 달리했다. 카를로스는 최후의 남은 병사의 목을 직접 벤 다음 그들의 시체를 모두 모아 장례시켜주자고 건의했다.


"저도 형님이 변을 당하시면 이들과 같을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니 최소한 매장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이에 쿠안은 시체의 금품을 약탈하는 것을 엄히 금지시키고 코르시의 외각에 제대로 된 묘지를 만들게 하였다. 북쪽탑 근처에서 머리가 깨진 포터 케인스의 시체를 수거하여 브랜의 묘에 가장 가까운 곳에 매장하게 하고, 반대편에 베너의 묘를 만들게 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앙 막사에 있던 부러진 강궁을 가지고 브랜의 묘 앞에 두고 문득 물었다.


"그러고보니 브랜은 결혼은 했나?"


카를로스는 "죽은 사람도 꼬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농담을 던졌지만 쿠안은 받아줄 기분이 아니기에 다시 같은 것을 물었다. 아론은 "안했지만 애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도 하나 있구요. 코르시에서 살았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고, 떠나는 것을 원한다면 호위대를 붙여주도록."


쿠안이 말하자 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쿠안님, 그녀나 그의 아들이 복수를 하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화근은 미리 잘라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팽님. 그녀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용서치 않겠습니다."


쿠안은 굳은 목소리로 말하고 걸음을 돌렸다. 팽은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늦은 밤, 모든 사후처리가 끝나고 나서, 쿠안은 아델베르트의 막사를 찾았다. 아델베르트는 의외의 방문에 조금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안님, 저... 읍."


쿠안은 아델베르트가 입을 열기 전에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잠시간의 침묵 아닌 침묵이 흐른 뒤, 쿠안은 호흡을 고르는 아델베르트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아델, 다시는 날 위해 목숨을 걸지말아줘."


그는 아델베르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막사를 떠났다. 아델베르트는 쿠안에게 화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다음날 아침 해가 뜬 후였다.


작가의말

코르는 성벽이 얕은 상업도시로, 험멜군의 주요 거점입니다.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과 소금이 풍부하고, 근처 평원에서는 많은 곡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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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승리, 그리고 승리 -2 16.02.02 131 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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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험멜의 뒤를 쫓아 -3 15.11.17 151 0 26쪽
43 42화. 험멜의 뒤를 쫓아 -2 15.11.09 133 1 13쪽
42 41화. 험멜의 뒤를 쫓아 -1 15.10.30 108 1 15쪽
41 40화. 옛 연인 -3 15.09.30 119 1 15쪽
40 39화. 옛 연인 -2 15.09.21 149 1 12쪽
39 38화. 옛 연인 -1 15.09.18 123 0 8쪽
38 37화. 의도된 급변 15.08.31 170 0 15쪽
37 36화. 케를 수비전 - 흙벽 위의 아가씨 15.08.10 192 0 13쪽
36 35화. 케를 수비전 - 세번째 전술 15.08.06 166 2 16쪽
35 34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2) 15.08.05 157 2 15쪽
34 33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1) 15.08.05 143 1 10쪽
33 32화. 케를 수비전 - 두번째 전술 15.07.30 132 1 19쪽
32 31화. 케를 수비전 - 첫번째 전술 15.07.30 305 1 9쪽
31 30화. 케를 수비전 - 작전회의 15.07.28 188 2 9쪽
30 29화. 약속을 지키는 것 15.07.26 168 1 16쪽
29 28화. 예지는 진실을 담고 있는가 15.07.06 202 1 28쪽
28 27화. 쿠안은 새로운 검을 얻고 15.07.01 171 1 8쪽
27 26화. 충성의 저울질 15.06.26 241 1 7쪽
26 25화. 잡담 15.06.19 169 1 6쪽
25 24화. 패배를 앞두고 -3 15.06.15 204 1 16쪽
24 23화. 패배를 앞두고 -2 15.06.12 373 1 16쪽
23 22화. 리프베아체의 반란 15.05.27 224 1 6쪽
» 21화. 승리는 거두었으나 15.05.25 201 1 22쪽
21 20화. 패배를 앞두고 -1 15.05.20 230 1 8쪽
20 19화.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 15.05.18 212 1 10쪽
19 18화. 사투의 끝 15.05.13 202 1 18쪽
18 17화. 사투- 후편 15.05.11 19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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