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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회색빛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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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52
최근연재일 :
2016.02.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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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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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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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

DUMMY

티에세는 4겹의 외벽으로 보호되는 요새도시로 그 인구는 5만명에 이르렀다. 성벽 외각으로는 곡창지대와 시장이 펼쳐지는 무역의 요지이기에 통행인구도 많았다. 험멜군의 점령 이후 마비되었던 도시의 교통이 풀리며 도시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라즈나 일가의 전설과도 같은 무용담은 쿠안부대의 승리에 대한 과장과 함께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입방아에 올랐다. 디지와 카를로스가 대놓고 퍼트린 것도 있기에 쿠안부대의 위용은 금새 대륙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쿠안은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면서도 아론에게 북쪽교전에서 파손된 성벽을 수리하게 하였고, 포웰을 중심으로 행정업무를 처리하게 하였다. 일단락이 된 다음에야 그는 라즈나 일족이 있는 통칭 라즈나 성을 본인 혼자서 방문하겠다는 뜻을 정중히 밝혔다. 아무리 같은 전장에서 힘을 합쳤던 사이라고 하나, 대륙 최고의 암살자 집단인 라즈나 일가를 홀로 방문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만, 쿠안은 태연했다.


"어차피 그들이 없이는 티에세를 지킬 수 없어."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어떤가요?"


아델베르트는 심려를 담아 물었지만 쿠안은 고개를 저었다.


"방문한다는 것은 신뢰의 표시가 되잖아? 최소한 내가 라즈나 성에 들어가있는 동안은 내 목숨은 그들의 손에 달릴테니까."


하지만 정작 라즈나 성을 혈혈단신으로 방문했던 쿠안은 시원찮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전전긍긍하며 걱정하고 있던 아델베르트는 그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쿠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루자나 라즈나씨와 술을 몇병쯤 마셨어. 덩치가 크고 과묵한 아저씨였지. 그야말로 한마디도 안하더라구. 술을 다 마시고 나니까 돌아가라고 하던데. 조만간 일족의 대표를 뽑아 보낸다고..."


"그게 다에요?"


"응."


처음으로 외교 사절을 맡게된 초짜 담당관의 기분을 절실하게 느끼며 쿠안은 하릴없이 라즈나 성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라즈나 일가의 대표가 과연 오기나 올지 확신할 수 없던 4주 마지막 날, 쿠안은 라즈나 성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건성으로 확인하던 무기고 보고서를 던져버렸다.


쿠안은 분주히 사람들을 모으고, 아델베르트, 카를로스와 함께 라즈나 일가를 마중나갔다.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엄청 위험하거든요."


미리 북쪽 전선에서 라즈나 일가를 만나보았던 카를로스는 진지한 얼굴로 쿠안에게 조언했다.


"위험하다니?"


"쿠안 형님, 각오를 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델베르트는 긴장한 얼굴로 "일족의 대표의 성격이 포악하다는 뜻인가요?"라고 물었다. 카를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성격이 포악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지요."


두 사람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카를로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긴장한 얼굴로 그 이상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와 쿠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로브를 벗고 나서야 그들은 카를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알현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라즈나 일가의 당주, 팽이라 하옵니다. 쿠안 장군님의 현명함과 용맹함은 익히 들어 깊이 흠모하고 있었나이다."


공기가 맑아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낭낭한 목소리로 긴 검은 머리칼의 아리따운 소녀가 말한 것이다.


"아... 어서오십시오. 제가 쿠안 르투가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쿠안의 목소리에 긴장을 느낀 아델베르트도 이번만큼은 불평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여자의 눈에도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군살없는 몸매에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에 윤기가 도는, 그야말로 흑단같은 머리칼이 찰랑이고 있었다. 눈은 밤하늘을 담은 것처럼 빛나고, 얼굴은 단아하니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당연하리라.


"소문대로 미인이시군요, 라고 말하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쿠안이 애써 농담을 던지자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지었다.


"제가 어찌 실례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쿠안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형식적인 고어(古語)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쿠안은 헛기침을 하고 그녀에게 안으로 안내했다. 슬슬 정신을 차린 아델베르트는 쿠안에게 불만을 담은 시선을 던졌지만, 쿠안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빈실에 자리잡자마자 쿠안은 "라즈나 일가에 정식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전투의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는 패했을 것입니다."라고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티에세를 구하러 와주신 쿠안님은 저희에게 영웅이십니다. 당연히 저희는 쿠안님을 위할 것입니다."


사실 라즈나 일가를 초대했을 때부터 그가 기대한 것은 사자의 교류정도였기에 당주가 직접 초대에 응한 때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가 자신을 한없이 낮추기에 쿠안은 그녀의 의도를 읽기 어려웠다. 이 아름다움조차도 사고를 방해하는 작전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쿠안은 혼란에 빠져있을 정도였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좋은 말로 위로하고 전투의 보답을 위해 금은을 건네려했지만, 팽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노고에 보답하면 되겠습니까?"


쿠안이 묻자 라즈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어찌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저희는 원래 왕실에 충성을 다하였고, 백성들을 지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험멜은 이제 전쟁을 일으켜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으니 그들과 맞서는 것은 저희의 사명과 같습니다."


팽의 똑부러진 말에 쿠안은 물론 카를로스와 아델베르트도 말문이 막혔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자 소녀는 쿠안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청컨데 누가 되지 않는다면 쿠안님께서 앞으로 어찌하실지 듣길 바라옵니다."


쿠안은 그제야 그녀의 의중을 알고 미소지었다.


"라즈나 일가의 미래를 제게 걸어주시는군요."


팽은 미소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쿠안은 아주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험멜을 축출하고 황제를 보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황제는 저에게 험멜을 막는 것을 맡기셨지만 전 그 이상의 것을 해야합니다. 전 험멜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팽이 보일락말락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쿠안은 사뭇 진지하게 대답했다.


"라빈그라나드는 썩어있습니다. 레프그루츠는 세상을 좀 먹는 악이 되었고 백성들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있지요.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설령 그것이 전쟁이라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티프소와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험멜은 곧 그 한계가 드러날 것이니, 실제로 티프소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우리 뿐입니다. 지금 티프소와 전쟁에서 패하면 테르센트의 문화와 역사는 모두 무너집니다. 그걸 막아야 해요. 그것을 위해 라즈나 일족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팽은 고운 얼굴로 "거절할 수 없는 분이시군요."라고 말하고 작게 웃었다.


"소문대로의 영웅이시기에 다행입니다. 실은 가친께서 소녀에게 결정을 맡기시며 말씀하시길 네가 원하는 사람이면 일생을 모시고 그렇지 않다면 후환을 끊으라 하셨습니다."


"그... 팽님의 마음에 들어서 목숨을 건졌군요."


쿠안은 농담이길 바라며 농담으로 대답했다. 아델베르트와 카를로스는 동시에 그녀와 그녀를 따라온 이들에게 살기를 내뿜었지만 팽은 태연했다.


"라즈나 일족은 비천한 목숨을 쿠안님께 맡기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취하여 쿠안님의 검이 되게 하시어 적을 베는데 쓰시고, 쿠안님의 방패가 되게 하시어 대신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정녕 그 이상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쿠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델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강렬히 거부의 의사를 시선에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팽님. 결혼은 하셨습니까?"


팽은 당황해하면서 가볍게 뺨을 붉혔고, 아델베르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카를로스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쿠안은 자신의 본능을 원망하느라 웃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젠의 수비부대 주둔지에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아멜리아는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읽다가 인상을 썼다.


"무슨 일이지? 쿠안 남작에게서 온 속보인가?"


이미 도망칠 짐을 싸둔 휴고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카를로스씨에게서 온거에요. 전쟁 경황하고 뒷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이겼다네요. 일단은... 그리고 뭐, 농담쟁이니까 별 일은 아니겠지만... 서신을 이런 식으로 보내다니."


"뭐라고 적혀있는가?"


아멜리아는 편지를 휴고에게 넘기는 대신 소리내어 가장 중요한 구절만 읽어주었다.


"라즈나 일가와 동맹... 쿠안님의 새로운 여자친구... 그리고 아델베르트 언니가 쿠안님을 암살할 준비를 할지도 모르니 대비하라는 말도..."


"그..."


"이번엔 정말 화가 많이 났나보네요~ 아델베르트 언니가 화나면 무섭다는 걸 알텐데~ 쿠안님도 참."


휴고가 말문이 막히자 아멜리아는 꺄르륵 웃어버렸다.


작가의말

독립세력인 라즈나 일가는 리베리아 제국의 황제를 조건없이 따릅니다. 상당히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이 충성은, 리베리아 제국의 역대 황제 중에 “악군”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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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6화. 승리, 그리고 승리 -3 16.02.02 150 2 13쪽
46 45화. 승리, 그리고 승리 -2 16.02.02 131 0 27쪽
45 44화. 승리, 그리고 승리 -1 16.01.30 131 0 8쪽
44 43화. 험멜의 뒤를 쫓아 -3 15.11.17 151 0 26쪽
43 42화. 험멜의 뒤를 쫓아 -2 15.11.09 133 1 13쪽
42 41화. 험멜의 뒤를 쫓아 -1 15.10.30 108 1 15쪽
41 40화. 옛 연인 -3 15.09.30 120 1 15쪽
40 39화. 옛 연인 -2 15.09.21 149 1 12쪽
39 38화. 옛 연인 -1 15.09.18 124 0 8쪽
38 37화. 의도된 급변 15.08.31 170 0 15쪽
37 36화. 케를 수비전 - 흙벽 위의 아가씨 15.08.10 193 0 13쪽
36 35화. 케를 수비전 - 세번째 전술 15.08.06 166 2 16쪽
35 34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2) 15.08.05 157 2 15쪽
34 33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1) 15.08.05 143 1 10쪽
33 32화. 케를 수비전 - 두번째 전술 15.07.30 132 1 19쪽
32 31화. 케를 수비전 - 첫번째 전술 15.07.30 305 1 9쪽
31 30화. 케를 수비전 - 작전회의 15.07.28 188 2 9쪽
30 29화. 약속을 지키는 것 15.07.26 168 1 16쪽
29 28화. 예지는 진실을 담고 있는가 15.07.06 202 1 28쪽
28 27화. 쿠안은 새로운 검을 얻고 15.07.01 171 1 8쪽
27 26화. 충성의 저울질 15.06.26 241 1 7쪽
26 25화. 잡담 15.06.19 169 1 6쪽
25 24화. 패배를 앞두고 -3 15.06.15 204 1 16쪽
24 23화. 패배를 앞두고 -2 15.06.12 373 1 16쪽
23 22화. 리프베아체의 반란 15.05.27 225 1 6쪽
22 21화. 승리는 거두었으나 15.05.25 201 1 22쪽
21 20화. 패배를 앞두고 -1 15.05.20 230 1 8쪽
» 19화.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 15.05.18 213 1 10쪽
19 18화. 사투의 끝 15.05.13 202 1 18쪽
18 17화. 사투- 후편 15.05.11 19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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