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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회색빛의 군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52
최근연재일 :
2016.02.02 20:41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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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7
추천수 :
56
글자수 :
280,342

작성
15.05.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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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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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7화. 사투- 후편

DUMMY

이튿날 아침, 아델베르트의 염려가 무색하게 쿠안 르투가는 이른 새벽부터 병사들을 소집했다. 도시 외각에 캠프를 차린지 겨우 5시간만의 일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물론 장수들 마져도 영문을 모르고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모두를 내려다보는 쿠안을 향해 아멜리아가 외쳤다.


"졸려요!"


"시끄럽소! 아멜리아 장군,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출격을 앞두고 있소! 즉시 사열하시오!"


아멜리아가 카를로스에게 쿠안이 돌아버렸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카를로스는 손으로 잔을 잡아 입에 털어넣는 제스쳐를 한 다음 혀를 내밀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 쿠안이 과음으로 맛이 가버렸다고 주장했다. 아델베르트는 쿠안이 바라는 대로 얌전히 병사들을 정돈시켰고, 아론은 애초부터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는 천성 군인답게 감동의 눈으로 쿠안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사열을 하자 쿠안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우리는 이제 티에세를 향해 진격한다! 티에세는 현재 험멜의 지배를 벗어났고 시민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험멜의 십만대군이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뒤따랐다. 쿠안은 씨익 웃었다.


"두려운가? 그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두렵다해도 도망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일어났다. 여신 엘리츠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쿠안의 목소리는 전례없이 당당했다. 아멜리아는 카를로스에게 쿠안이 완전히 미친 것 같다는 제스쳐를 취했고 카를로스는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연설은 "30분 내에 출격을 준비하라!"로 끝났다. 아론이 매서운 목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하자, 병사들은 갑자기 치솟은 긴장속에서 허겁지겁 명령을 따랐다. 쿠안은 아멜리아와 휴고를 불러 말했다.


"라즈나 일가가 티에세에서 반란을 일으켜준 것은 절호의 타이밍이었으니 이 기회를 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티에세를 지금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래. 브랜을 쫓는 것은 어떻소? 그는 이미 약해졌으니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오."


휴고가 알은 체하며 티에세 출진을 반대했다.


"티에세를 버리면 안됩니다. 그들을 지켜내야만 다른 세력이 움직이게 돼요."


쿠안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험멜의 반란은 너무 급했기 때문에 백성들까지 모두 포섭한 것이 아닙니다. 험멜군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는 지금 다른 군사 세력이 움직일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쿠안은 그렇게 말하고 또 다시 선봉에 설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휴고에게 이를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전 두 사람을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아 예비병력이 되어주십시오."


"에엣?! 전 안가나요?"


아멜리아가 볼멘소리를 냈다. 반면에 휴고는 "당연히 그러겠소!"라고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쿠안은 불만가득한 아멜리아를 끌어 당겨 속삭였다.


"브랜 켄틱이 뒤를 끊으러 올거야. 저 휴고에게만 맡길 수는 없잖아. 우리의 후방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


"아하하하! 귀에다 뜨거운 바람을 넣으니 간지러워요!"


"... 아무튼 잘 부탁해. 무슨 일이 있으면 휴고와 상담하라구."


"꺄하하하~! 귀를 희롱당하는 것 같아요~!"


까불거리는 아멜리아를 두고 쿠안은 오스본을 찾았다. 긴장한 표정의 오스본에게 쿠안은 차분히 지시했다.


"적은 북쪽 쇼쇼츠에서 오는 5만과 서쪽 에이크에서 오는 5만으로 총 10만입니다. 즉시 라즈나 일가에게 가주세요. 티에세의 북쪽에서 오는 적은 우리가 막을 수 없습니다. 의용병을 모아 북쪽을 막는데 전념해달라고 해줘요."


"그럼... 이길 수 있는 겁니까?"


포웰이 불안한 듯 묻자 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서쪽군을 격파하면 북쪽은 퇴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에이크에서 오는 군대를 이길 겁니다."


쿠안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오스본 포웰은 즉시 몇 기의 기병만 데리고 출발했다. 후방까지 모두 방비한 후에 쿠안은 추려뽑은 병사를 이끌고 출격했다. 카를로스에게 선봉을 맡기고 아론을 좌익, 아델베르트를 우익으로 삼은 다음 스스로 중군을 맡았는데 총 수가 3만이 넘었다. 지난 출격과 다르게 젠을 수비해야 했으므로 적지 않은 수의 병사를 아멜리아에게 맡겼는데 아멜리아는 출격하는 쿠안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손을 흔들어서 걱정을 가중시켰다.


"아멜리아가 브랜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아델베르트가 진심으로 염려하여 물었다. 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


"모르시다니요. 아멜리아가 용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브랜 켄틱을 막을 수는 없어요. 아론이 막는 편이..."


"아론이 없으면 안돼. 에이크 서쪽 평야에서 오고 있는 군대는 험멜의 유능한 장군들이 이끌고 있어. 알고 있지? 파마르 제독과 노드, 르푸. 농담을 덧붙여서 험멜의 최정예라구. 아론 정도가 되어야 저들을 상대할 수 있어."


"그렇다면 제가 남는다면 막아볼게요."


쿠안은 의외라는 듯 아델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아델, 네가 없으면 내가 힘을 낼 수가 없다고. 난 아름다운 여성이 없으면 전쟁하지 않아."


"... 오늘 내내 진지하더니 갑자기 돌아와버리시네요."


아델베르트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를 냈다. 쿠안은 유쾌하게 웃었다.


"음. 진지한 건 연기였다구. 병사들에게 각오가 필요하니까."


"알고 있었어요. 쿠안님치고는 연설을 너무 잘하셔서요. 그런데 정말 서쪽만 격파하면 북쪽군이 퇴각할까요?"


"티에세는 북쪽 쇼쇼츠는 산악지형이라 막는 쪽이 유리해. 한쪽이 승리하면 저들은 병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물러날 수 밖에 없어."


"서쪽 평야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아델베르트가 불안하게 묻자 쿠안은 씨익 미소지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로군. 염려마. 이길 수 있어. 우리의 출혈은 크겠지만 말야."


"그 정도인가요?"


쿠안의 말에 아델베르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음. 이번엔 여태까지와 달라. 적들보다 우리가 적어. 그들은 병력 손실을 강요하기 위해 축차투입(*병력을 소모시키며 계속 투입하는 물량전)을 할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죠?"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지."


"우리가 병력이 더 적잖아요?"


"음."


"그런데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한다고요?"


"음. 상대의 전술에 맞서려면 그 뿐이야."


쿠안이 대답할 수록 아델베르트는 의문점만 늘어가는 기이한 상황에 질문을 포기해버렸다.




노드 델티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정찰대에서 들어온 정보를 읽고 르푸 사이던에게 건넸다. 르푸는 그의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내용을 딱 두번 읽고 허허 웃었다.


"드디어 쿠안과 붙게 되었군. 그가 어떤 책략으로 나올지 궁금한데."


"쿠안은 브랜 장군님을 격파했습니다. 만만히 보면 안됩니다."


"음. 알고 있소. 파마르 제독이 오면 즉시 연구해봅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오."


르푸는 껄껄 웃었다. 노드 역시 그가 무얼 말하는 지 알고 있었다. 노드 델티온은 리베리아 군사학교 출신으로, 원래부터 유명한 군사가문이었다. 그는 뛰어난 지략가이며 행정가로 후방 지원을 위해 리베리아 대륙에 남아있었다.


반면 르푸는 라이트 브라우저와 함께 험멜 군의 최고 무장이었고, 거대한 도끼를 양 손으로 휘두를 정도로 근력이 좋았다. 그는 악력으로 유명했는데, 손 쥐어서 멧돼지의 목뼈를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오랜시간 전장에 같이 있었고, 서로의 전투 스타일을 완벽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데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였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세운 공이 지난 10년간 험멜군 승리의 반수를 이를 정도로 두 사람은 험멜군의 중추였다.


노드는 다시 한 번 차분히 정보지를 읽은 다음, "우리는 병력을 계속 투입하면 되겠군요."라고 말했다. 르푸는 자신과 같은 뜻을 낸 노드에게 껄껄 웃으며 동의의 뜻을 밝혔다.


잠시 후 들어온 단발 머리의 매력적인 미인인 파마르 크란스넬 제독도 딱 한번 쿠안군의 병력을 확인하자마자 말했다.


"평야지대이며 우리의 정찰 범위로 적의 우회로를 모두 감시하고 있어요. 쿠안군의 병력 구조로는 특별한 전략을 쓸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 날씨도 문제가 없어요. 변수 따윈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병력을 계속 밀어넣어 병력의 우위를 이용하여 승리하면 됩니다."


노드와 르푸는 세사람의 의견이 완전히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즉시 병력을 움직여 쿠안부대를 격파할 준비를 했다. 다만 노드는 브랜 켄틱을 격파한 그 쿠안이 소모전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안고 있었다.


"쿠안 남작이 이 사실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가 노리는 다른 변수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르푸는 그의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기병대를 이끄는 아론이라는 놈이 상당히 맹장이라 들었소. 아마도 선봉으로 기병을 세워 그자신들의 사기를 올리려는 거겠지."라는 의견을 냈다.


"어차피 붙어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죠. 일단 붙어보죠. 우리가 대군인 이상 그들에게 휘말리는 일은 없을거에요."


파마르는 매력적인 눈을 깜짝이며 정론을 말했고, 노드도 결국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


쿠안 부대는 반나절 차이로 평야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답지 않은 빠른 출격과 독촉으로 이루어진 결과이지만 야간 행군을 불사하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잔뜩 지쳐 버렸다. 게다가 5일간의 강행으로 다수의 이탈자가 발생하였고, 카를로스와 알투로는 이들을 회수하기 위해 후방으로 쳐져야만 했다. 심지어 중간에 아론부대마저 사라져 버리자 뒤쫓는 병사들은 물론 아델베르트마저도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쿠안님. 서두르시는 건 알겠지만 병사가 너무 지쳐있습니다. 게다가 겨우 삼분의 일 정도만 따라 왔습니다. 이대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피하셔야만..."


병사들의 불만을 지적한 아델베르트였지만, 쿠안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명령을 반복했다.


"당장 이동! 쉴 시간은 없다! 뒤쳐지는 놈들은 버리고 간다!"


평야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확인할 새도 없이 쿠안은 즉시 병사들을 재촉하여 전장을 골랐다. 결국 쿠안이 고른 전장은 티에세 외각의 콜런 호수를 등진 둔덕이었다. 그는 거대한 목책을 대충 쌓게하고 깃발을 높이 세웠다. 그 다음 자기 자신은 목책 위에 올라 위풍당당하게 바람을 맞으며 서서 보급용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티에서 외각에 도착한 르푸는 망원경으로 쿠안군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눈썹을 찌푸렸다.


"콜런 호수? 묘한 곳을 골랐군."


르푸는 망원경을 노드에게 넘기며 물었다.


"상대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어떤가? 티에세에서 좀 떨어진 곳인데."


파마르와 노드는 하나같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티에세 내부 병력이 존재하는 이상 공략은 단시간에 이루어 질 수 없다. 만약 공성중에 후방에서 쿠안의 협공을 받으면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저들이 원하는 전장으로 들어가 주는 수밖에요. 하지만 우리는 불리하지 않아요."


파마르 크란스넬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인가? 쿠안이 전장을 고른 것은 이유가 있을터인데... 여기서는 함부로 공격하면 안되지 않는가?"


"전 그걸 쿠안이 노린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노린다니?"


"쿠안은 브랜장군님을 격파한 다음 우리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어요. 여기에 진지를 구축한 것은 그가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도발하는 거죠. 도리어 도발에 응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브랜님의 기분을 알겠군."


르푸는 소리내어 웃었다. 브랜 역시 반복되는 도발에 움직이지 못한 사이에 퇴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파마르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대는 상당히 빨리 이곳에 왔어요. 아마도 강행군이었겠죠. 그는 지금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노드 역시 가는 눈으로 웃어보이며 파마르를 거들었다.


"저 곳은 기병대를 둘 곳이 아니에요. 아론의 기마부대는 쿠안대의 상징과 같습니다. 그들을 이용한 양동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요."


르푸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좋군. 한마디로 그는 배수진을 치는 척 하며 우리를 못움직이게 하다가 양동을 칠 생각이로군!"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파마르는 그녀의 머스킷을 들어 올렸다.


"적의 양동군이 움직이기 전에 쿠안을 즉시 공격해야합니다. 최우선으로 쿠안을 잡고, 그 후에 적들의 별동대를 격파하면 티에세를 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에요."


"쿠안의 책략도 다했군. 이정도로 간파된다니 좀 실망인데."


르푸가 혀를 쳐자 노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감정은 사치입니다. 그는 브랜 장군님을 격파할 정도의 위인이니 우리의 예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려도 문제는 없네! 어차피 이 평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병력이 얼마가 투입되든 우리는 그 이상을 투입하면 그만이야!"


르푸는 껄껄 웃고 즉시 예하의 병사를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에게 있어서 파마르의 계책은 완벽했다. 하지만 노드는 만약을 대비하여 병사를 풀어 도주로를 확보하고 병력을 남기기로 했다.


"어차피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병력은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굳이 전부 참여할 필요는 없지. 우리는 후방에 남아 혹시나 있을수도 있는 양동군을 요격하겠습니다."


파마르와 르푸는 그 말을 옳게 여겼다. 쿠안을 너무 걱정하는 것이 아니냐며 르푸는 농담을 던졌지만, 사실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쿠안은 적들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자 매우 당황한 척하며 허둥지둥 목책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바닥에 발을 대자마자 아델베르트에게 명령했다.


"좋아! 당장 목책을 두고 도망친다!"


"네?!"


깜짝 놀란 아델베르트에게 쿠안은 병력의 반을 이끌것을 명령했다.


"이 호수는 매우 커. 아델베르트, 왼쪽으로 도망쳐. 나는 오른쪽으로 갈게."


"작전이 뭔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말했잖아. 적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거야."


쿠안이 빈 술병을 휙 던지며 씨익 웃어보였다.


"쿠안님. 이 상황은 정말 위험한 거 아닌가요? 게다가 지금 호수에 안개가 너무 심해서 시야 확보가 제대로 안되는 중인데요?"


"날 믿어. 아델. 왼쪽으로 돌아. 다만 가능하면 빨리. 정면에서 나타나는 부대는 공격하며 안돼."


"정면이요? 공격하지 말라구요?"


"음. 정면. 자자, 서둘러. 이번 작전은 시간이 생명이라구."


아델베르트는 몇 번인지 모를 질문에 대해 하나의 대답도 듣지 못하고 그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르푸와 파마르는 적이 도주하자 그들의 예측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병사들은 짐도 제대로 못챙기고 허둥지둥 달아났다. 르푸는 특유의 돌격기질을 살려 오른쪽으로 도망친 쿠안대를 마구 뒤쫓았다. 쿠안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의 목을 치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다.


한편 호수를 왼쪽으로 돌아 도망치는 적들의 후방을 바라보던 파마르는 문뜩 의구심이 들었지다.


'정말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우리를 도발한 것이었나? 방어를 한다면 이 곳에서 해야 했을 터인데... 왜 그들은 병력을 나눠 후퇴한 거지?'


도망치는 아델베르트의 병사들이 의외로 질서정연하다는 생각까지 들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의 목책에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몇 명의 병사만을 보내 목책을 조사하라고 했다. 비어있는 적진을 돌아보고 온 병사들은 그녀에게 보고했다.


"목책 안에 들어갔다가 화살이 날아와 두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적어도 십수명의 병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안에서는 기름 냄새와 화약냄새가 났습니다."


파마르는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에 이를 갈고 목책을 점거하는 대신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불꽃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랐다.




평야 외각에서 기병대를 주둔시켰던 아론은 연기가 오르자 씨익 웃었다.


"신호가 왔군."


그는 행군 도중 쿠안의 명령을 받고 3천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전장의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즉시 자신의 부대 중에 추려뽑은 빠른 병으로 티에세 외각으로 돌진시켰다.


"돌격! 목표는 적의 주변을 빙빙 도는거다! 교전은 금지다!"


아론의 명령을 들은 기마대 부장 디지 알몬드가 물었다.


"아론님. 주변을 돌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언제 쿠안님의 작전을 이해하고 행한 적이 있나?"


아론이 반문하자 디지는 납득하고 북동쪽으로 출격했다. 그녀의 병력이 출발하자 아론은 남은 병력을 말에서 내리게 한다음 천천히 반대쪽으로 이동시키며 투덜거렸다.


"정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




적 기병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노드는 주먹을 손바닥에 소리나게 치고 외쳤다.


"나타났군! 전군! 출격준비! 적을 쫓아라!"


노드의 2만의 병력은 디지의 부대를 쫓기 시작했다. 디지는 아론의 명령대로 적과 부딪치지 않고 오직 전장의 외각으로만 달렸다. 그녀의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은 노드의 부대를 전장에서 아주 잠시 이탈시켰다.


"적의 숫자가 너무 적어...!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작전인가?!"


노드가 알아차릴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30분이었지만, 이 짧은 시간동안 쿠안의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아론은 노드군이 반전하는 것을 확인하자 즉시 말에 오르게했다.


"전군 돌격! 목표는 연기가 나는 곳이다!"


아론의 정예 기병대는 호수 동쪽으로 질주했다. 파마르는 호수를 왼쪽으로 돌던 아델베르트의 뒤를 쫓다가 후방에서 달려오는 기병대에 아연실색했다. 목책에서 시간을 잡아먹은 덕분에 그녀의 보병대는 연기가 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아론의 기병대는 그녀의 후방을 정확히 노릴 수 있던 것이다.


"전원 반전! 적을 막아라!"


파마르가 이끌고 있는 병력은 2만에 가까웠지만 아론의 기병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호수를 끼고 있는 이상 진형을 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론은 적을 호수로 몰아냈고, 스스로 앞장서서 늪지를 말로 뛰어 넘으며 창을 휘둘렀다. 애초 머스킷과 궁병이 중심이 된 파마르의 부대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기마를 피해 호수에 떨어져 죽은 이도 수백에 이르렀다.


르푸 역시 후방에서 일어난 소란을 감지했으나 추격을 멈출 수 없었다. 안개 때문에 시야는 제한적이었지만, 적의 병력이 적다는 것은 이미 확인한 후였다.


그의 경갑보병은 1만에 이르렀고, 쿠안의 병력은 그 반수에 불과했다. 쿠안대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이상 병력을 돌리는 것보다도 쿠안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쿠안은 최후방에서 병사의 도주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르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쿠안 르투가! 네 목을 받아가겠다!"


육중한 대검을 휘두르며 르푸가 포효했다. 그리고 그의 검이 쿠안을 덮쳤다.




브랜 켄틱을 몰아낸 젠에 남은 휴고와 아멜리아는 느긋한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휴고는 작은 유리잔에 담긴 딸기주스-아멜리아가 생색을 내며 따라주었다-를 노려보다가 문뜩 물었다.


"이 곳에서는 전투가 일어날 일이 없는건가?"


"네. 없어요."


"브랜 켄틱이 즉시 병력을 되돌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뇨. 그렇다면 휴고씨랑 절 안남겼겠죠. 설마 제가 브랜 켄틱을 이기겠어요?"


휴고는 명랑한 아멜리아를 바라보다가 더듬더듬 물었다.


"아니, 쿠안 장군은 그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예측한 건가?"


"네. 쿠안님은 그런 걸 묘하게 잘 맞춰요~ 라빈그라나드에서 점판을 벌이면 돈 많이 벌텐데. 그, 뭐죠? 왕실 점쟁이가 됐을거에요."


아멜리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휴고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그, 쿠안 남작은 대단한 책략가로군."


"음... 그럴까요? 그냥 막 찍는 것 같던데요."


아멜리아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테이블위에 놓인 몽블랑을 한 입에 넣고 삼키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면 지금 쿠안 남작의 부대에서 제일 무력이 뛰어난 것은 아론인가?"


아멜리아는 갸우뚱하고 휴고를 바라보았다.


"아델베르트 양이나, 자네는 아닐 것 아닌가."


"아. 제일 잘 싸우는 사람이요?"


아멜리아는 꿀꺽 하고 초콜릿덩어리를 삼키고 소리내어 웃었다.


"쿠안님이죠. 당연히."


"음?"


"우리는 원래 용병대라서요. 싸움을 잘하는 순서대로 대장하는거에요."


"뭣이?"


"말을 타면 아론 오빠가 이길지도 모르지만, 1:1이라면 쿠안님이 무조건 이긴답니다~"


휴고는 의외의 대답에 "그가 싸우는 걸 본 적은 없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싸우는 걸 귀찮아하거든요."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어이없어하는 휴고의 얼굴을 보며 깔깔 웃었다.




"쿠안 루트가! 네 목을 받아가겠다!"


르프의 외침이 울렸다. 하지만 날카로운 쇳소리가 이어지며 비명을 지른 것은 르푸 본인이었다. 쿠안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게 빛났다. 쿠안의 손을 떠난 투척용 단검은 르푸의 갑옷을 피해 정확히 왼팔의 관절에 박혀있었다.


"르푸 장군. 당신에게는 무리야."


쿠안은 새로운 단검을 꺼내 들고 르푸를 노려보며 차갑게 웃어보였다.


작가의말

콜런 호수는 봄 가을에 안개가 끼는 날이 많습니다. 고대인은 그 안개를 드래곤이 내뿜는 연기라고도 생각하여 호수 근처에 도시를 세웠으며, 그 도시는 지금의 티에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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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승리, 그리고 승리 -1 16.01.30 131 0 8쪽
44 43화. 험멜의 뒤를 쫓아 -3 15.11.17 151 0 26쪽
43 42화. 험멜의 뒤를 쫓아 -2 15.11.09 133 1 13쪽
42 41화. 험멜의 뒤를 쫓아 -1 15.10.30 108 1 15쪽
41 40화. 옛 연인 -3 15.09.30 119 1 15쪽
40 39화. 옛 연인 -2 15.09.21 149 1 12쪽
39 38화. 옛 연인 -1 15.09.18 123 0 8쪽
38 37화. 의도된 급변 15.08.31 170 0 15쪽
37 36화. 케를 수비전 - 흙벽 위의 아가씨 15.08.10 192 0 13쪽
36 35화. 케를 수비전 - 세번째 전술 15.08.06 165 2 16쪽
35 34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2) 15.08.05 157 2 15쪽
34 33화. 케를 수비전 - 데이멋 성의 사투(1) 15.08.05 143 1 10쪽
33 32화. 케를 수비전 - 두번째 전술 15.07.30 131 1 19쪽
32 31화. 케를 수비전 - 첫번째 전술 15.07.30 305 1 9쪽
31 30화. 케를 수비전 - 작전회의 15.07.28 188 2 9쪽
30 29화. 약속을 지키는 것 15.07.26 168 1 16쪽
29 28화. 예지는 진실을 담고 있는가 15.07.06 202 1 28쪽
28 27화. 쿠안은 새로운 검을 얻고 15.07.01 171 1 8쪽
27 26화. 충성의 저울질 15.06.26 241 1 7쪽
26 25화. 잡담 15.06.19 169 1 6쪽
25 24화. 패배를 앞두고 -3 15.06.15 204 1 16쪽
24 23화. 패배를 앞두고 -2 15.06.12 373 1 16쪽
23 22화. 리프베아체의 반란 15.05.27 224 1 6쪽
22 21화. 승리는 거두었으나 15.05.25 200 1 22쪽
21 20화. 패배를 앞두고 -1 15.05.20 229 1 8쪽
20 19화. 라즈나 일가의 젊은 당주 15.05.18 212 1 10쪽
19 18화. 사투의 끝 15.05.13 202 1 18쪽
» 17화. 사투- 후편 15.05.11 19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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