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비밀 병기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어야 한다. 이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 하지만 현대 축구계에서는 이런 당연한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공격수도 이전처럼 전방에서 골만을 위해 체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방 압박에 적극적으로 볼을 탈취해서 골 찬스를 만들어 내야한다.
여기서 골 찬스는 스트라이커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 포인트
그래서 정작 열심히 압박하다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스트라이커 본인은 정작 중요 찬스에서 파괴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급 스트라이커들이 있을 경우는 다르지.’
모두를 감탄케 할 슈퍼스타라면 저런 전술은 뒷순위로 미루어진다.
오히려 그 특급 스트라이커에게 수많은 기회를 선사해 준다.
다른 이들에게 그런 믿음과 그런 골 결정력을 보여줘야 한다.
성준휘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에게 패스를 안 주는 이유도 잘 안다.
그러니까 증명할 뿐이다.
패스? 이타적인 플레이?
‘좆까라 그래.’
모든 축구에서 중요한 가치는 골.
성준휘에게 존재 가치는 바로 골.
그리고 자신은 골을 넣으라고 자리 잡은 스트라이커다.
“성준휘! 패스하라고!”
성준휘는 무시했다. 옆에서 누가 뭐라든 본인이 그럴 가치가 있는 선수를 증명해야 하니까.
‘어차피 나한테 잘 주지 않을 거잖아.’
주전 경쟁을 생각해 보면 저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필드는 차갑다.
성준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본인이 골을 넣을 수 있으면 무조건 본인이 넣는다고 이미 다짐하고 회귀를 택했다.
애당초 은퇴 전에 포르투갈 리그에서만 득점왕 2번에 득점 2위를 기록할 정도다.
신체가 어려졌다고 난도가 더 높아지지 않는다.
‘이 정도도 못 뚫으면 회귀를 헛한 거지.’
그의 앞에서 수비수 이대환이 뒤쪽 방하성과 연계해서 그를 잡으려 한다.
이대환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방하성이 바로 옆에 달라붙어서 다리를 들어 볼을 가로채려 한다.
하지만 성준휘는 이미 볼을 반대로 살짝 튕겨놓고 이대환이 그 공을 노리도록 유도했다.
앞에 있던 이대환이 살짝 나온 공을 커트하려고 할 때, 성준휘가 그 공을 방금 나온 공간으로 툭 차며 제쳐버렸다.
“어어?”
이대환의 놀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 사이로 침투하자, 공간이 보였다.
‘이것만으로는 안 되지. 선배들한테 더한 임팩트를 보여주려면.’
성준휘는 또 다른 중앙 수비수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일부러 골키퍼가 나오도록 속력을 줄였다.
거기에 다른 중앙 수비수가 태클을 날리는 걸 보자, 볼 컨트롤로 자기 뒤로 빼버렸고 또다시 돌파.
골키퍼가 나와서 커트하려 하자, 헛다리 짚으로 오른쪽으로 더욱 꺾었다.
골키퍼가 역동작에 걸려 허우적대는 사이, 그는 발 옆으로 슬쩍 공을 건드렸다.
순식간에 들어간 골.
성준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중앙선으로 향한다.
주장 정하늘이나 다른 선배들의 표정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내기도 뭐한 것이 패스를 달라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한 거다.
근데 무시해도 골을 넣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중학교 때랑 비슷하다.
“잘하는데 혼자 막하지 마.”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성준휘는 아예 미드필더 라인까지 그냥 내려와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 주지 않으려고 해도 그라운드 상황상 뺏기는 것보다는 패스가 나으니까.
그리고 성준휘는 또다시 드리블을 쳤다.
중앙선부터 페널티 라인 바로 바깥까지.
상대도 이번에는 수비수 두 명이 대동하고 미드필더 한 명이 달라붙은 정도다.
성준휘는 그래서 선배들을 이용하려 했다.
그는 볼을 줄 듯 좌우로 둘러보자, 선배들이 일제히 침투와 다른 미드필더들을 끌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상대 미드필더가 그에게 어깨부터 들이밀었지만, 그는 즉시 자세를 낮추고 등지기를 시전했다.
‘이러면 오지.’
이제 수비수 역시 몸싸움 중인 그를 향해 볼을 탈취하기 위해 힘 싸움으로 가려고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두 명 이상이 달라붙으면 보통 패스를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보통’일 경우.
성준휘는 그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팔로 미드필더를 견제하면서 이대환이 달려드는 것을 노려서 공을 뒤로 빼고 다시 자기 발아래로 놓았다.
양발 사이의 공. 그리고 그 공을 잡고 그대로 앞으로 점프했다.
“어?”
쿠아테미나.
이 기술은 사실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오래된 기억이다.
바로 98월드컵에서 멕시코의 블랑코가 한국을 상대로 보여준 개인기니까.
그가 앞으로 뛰고 이대환이 달라붙었지만, 몸싸움을 벌이면서 기어이 페널티 박스에서 슈팅까지 성공한다.
또다시 골.
성준휘는 표정이 애매모호한 자기 팀 선배들을 보았다.
제멋대로, 하지만 골을 넣는다.
성준휘는, 이 미묘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선배들에게 부탁했다.
“나한테 볼을 집중해. 나도 좌우로 벌려서 패스를 줄 테니까.”
“패스를?”
“네. 크로스 위주로! 내 헤더 능력도 보여줘야 하거든.”
“뭐라고?”
선배들에게 패스하려는 이유도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무슨 자기 능력을 보여줘야 해서? 그게 아니라면 패스조차 하지 않았을 거란 거다.
“야, 왜 자꾸 멋대로 하냐. 전술은 폼이야?”
“골 잘 넣는 게 내 임무잖아. 지금 잘 들어갔어.”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야. 좀 찬다고···.”
“동생 버스에 타세요! 제가 캐리할게요. 나만 믿으라니까요?”
정하늘은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두 골에서 나온 흐름은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힘을 보여준다.
말만 앞섰다면 지금 성준휘의 행동은 허세나 부리는 멍청이 정도로 끝났지만 보여줬다.
정하늘은 그리고 재개된 경기에서 결국,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려주며 성준휘에게 준다.
성준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봐. 중요한 건 실력. 내가 골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거야.’
그 신념하에 성준휘는 스크린플레이를 펼치다가 벼락같이 위로 점프했다.
고등학생들보다 반 뼘 더 위로 솟아오른 그의 머리에 볼이 닿는 순간, 골대는 또 한 번 출렁였다.
해트트릭.
자체 청백전이라지만, 후반만 출전한 선수가 해트트릭을 손쉽게 넣었다.
가볍게 스트레이트로 세레모니를 마친 그를 보는 시선은 어느 정도 확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고교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재능.
실제로 감독과 코치들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
근 일주일 동안 자체 청백전을 포함해 미니게임이나, 프리킥, 슈팅, 태클 등, 여러 전술 훈련과 체력 훈련 등을 진행하며 바쁘게 보냈다.
주로 오전에 체력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세트피스나 기술 훈련을 말이다.
이런 선수들의 체력 상태와 현황을 코치들이 체크하고 그 보고서를 올린다.
감독, 이장민은 이제 자기 앞으로 올라온 여러 보고서를 확인했다.
“요새는 진짜 게임같이 수치화도 가능하다니까.”
그가 보고 있는 보고서는 앞서 말한 웨어러블을 장착한 선수를 수치화시킨 EPTS 시스템.
활동량, 뛴 거리, 심박수, 공수 방향, 슈팅, 패스 성공률, 가속도, 스프린트(전력 질주) 횟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본래 성인 무대에서 쓰이던 기술이 이제는 유소년들에게까지 온 거다.
이걸로 감독과 코치들도 선수에게 방향성이나 잘못된 점을 바로 알아내기 쉬웠다.
선수도 본인의 자료를 보고 어디가 부족한지, 알 수 있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효율적인 장비다.
감독으로서 당연히 체크하고 봐야 하는 항목. 이 항목을 토대로 선수 발전을 도모할 수가 있다.
‘하늘이는 여전히 공격 침투가 아쉽단 말이지. 패스 횟수는 많은데 공격 지역 패스는 적어.’
예를 들어 주전이자, 주장이 정하늘의 활동량은 이번 청백전에서 7km. 프로들이 보통 8km 이상을 찍을 때 비해 적은데 그 이유는 공격 지역 가담이 약하기 때문이다.
“오른발을 자주 사용하고 왼발 사용이 극히 적다. 압박당할시, 앞으로 나가기보다 백패스 확률이 더 높군.”
이런 식으로 하면 고쳐야 할 점들을 수치화시킨 거다.
또한 이 데이터는 선수들 능력하고 연계가 되어있어 선수선발 때도 중요하다.
당장 상산고는 같이 전지 훈련장에 온 다른 고교와 연습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3일 뒤인 15일에 경남의 경민고, 20일에 강원의 상원고와 말이다.
이 두 경기에서도 당연하지만, 웨어러블을 활용한다.
‘참 편하단 말이야.’
문제는 선수선발이다.
명단을 적어놓던 감독의 눈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이 들었다.
‘성준휘···.’
그들의 눈앞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월반 인원.
고등학생 선배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루었다.
‘분명 물건이다. 이건 진짜.’
하지만 문외한이 봐도 알 정도로 성준휘의 실력은 확실히 달라 보였다.
어차피 청백전의 목적은 컨디션이나 기량 점검의 의미가 더 크다.
이날 청백전 후반 5분에 교체로 나선 성준휘의 골 기록은 간단하다.
기본 해트트릭에다가 웨어러블로 측정한 기록들은 여전하다.
활동량 3km(평균 이하), 드리블 돌파 횟수 10회, 드리블 성공 횟수 10회. 패스 성공률 88%(평균 이상). 슈팅 횟수 5번에 유효 슈팅 5번.
공격 지역 패스 시도 4회, 헤더 1번, 심박수 45회(평균 이상), 결정적 기회 창출 0회. 키 패스 0회.
보통 한 경기 활동량은 8km인데 성준휘는 후반에만 뛰었어도 낮은 편. 하지만 패스 성공률이 높고, 막강한 드리블 돌파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일반인들의 평균 심박수는 70~80이고 프로축구 선수 평균 심박수 50~60이다.
이 말인즉슨, 성준휘는 잘 뛰지 않는 것에 비해 실제 프로축구 선수 이상의 체력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리고 스트라이커가 결정적 키 패스와 기회 창출이 0회라는 것은 중요 순간에 본인 탐욕이 강하다는 의미도 된다.
‘확실히 패스를 잘 하지 않았지.’
전술적 움직임과 별개로 혼자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혼자서 경기를 지배했다.
중학생인데도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말이다.
“이런 타입은 또 처음이야.”
이장민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성준휘는 분명 재능이 있다. 재능이 단순히 어리다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성인들과 해볼 만한 가치도 말이다.
아직 속단하기에 이르지만, 이건 키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다.
그는 코치를 불렀다.
“문 코치. 두 차례의 연습경기에서 성준휘를 집중적으로 체크해.”
“그렇다면 바로 선발입니까?”
“그것까지는 아니지. 우리도 기존 주전들로 기량 점검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후반에 무조건 출전시킬 거다.”
이장민은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로 빠르게 선발 명단 작성을 완료했다.
“이놈을 투입할 때, 그 망할 경민고 봉다리 감독의 얼굴이 궁금해질 정도야.”
“확실히 저 나이에 저 실력이면 오래간만에 볼지도 몰라요. 괴물을 말이죠.”
아직 자신들밖에 모른다. 성준휘를 본 이들의 마음에 설렘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3일 뒤, 2023년 첫 연습 상대인 경민고가 그들의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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