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누가 뭐라고 해도 독단적 스트라이커
역전승은 모든 스포츠에서 통용되는 짜릿함의 경지이지만, 원중섭에게는 다른 감정이 먼저였다.
“준휘 저거, 미쳤는데?”
그는 코치와 얼굴을 마주 보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급이 다르다. 자세가 다르다.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축구 실력. 고작 중학교 2학년생이 손쉽게 볼을 컨트롤하고, 손쉽게 상대를 제친다.
그 움직임에서 이미 보통이 아님을 직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코치. 준휘 쟤, 오늘부터 집중적으로 관리해. 저번 청백전부터 날아다닌다.”
“네. 아무래도 축구에 눈뜬 모양입니다.”
천재라 불린 축구선수들이 말하는 내용이 있다.
[어느 날부터 축구가 제대로 보여요.]
성장기에 갑자기 폭발해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례에 성준휘가 지금 돌입한 거다.
상대가 수비로 유명한 포철중인데 그걸 무시하고 박살 낸다?
‘저 정도 실력이면 우리도!’
전국 초중고 리그는 11월 중순부터 펼쳐지는 왕중왕전을 펼친다.
아마 규모로 치면 전국 최대 규모의 축구 경기일 거다.
왕중왕전이 64강부터 시작하는 것에서 이미 급이 다르다는 거다.
권역별에서 뽑힌 정예들끼리 싸우는 대회.
당연하게도 대부분 프로팀 유스들의 우승 확률이 높다.
서울 CF 유스(U15) 축구단은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잔뜩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전력상 애매한 그들이 우승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성준휘의 존재가 그 우승이라는 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거다.
‘백록중···. 그놈을 이길 수 있어!’
원중섭은 라이벌 유소년팀을 떠올렸다.
서울에는 총 6개의 클럽팀이 있다.
그중 두 개 팀은 K리그, 나머지는 2부나 3부리그다.
백록중은 라이벌인 서울 SV의 유스 중학교다.
한 마디로 같은 지역 더비 라이벌을 이기고 싶어 하는 것.
하지만 서울 SV 유스인 백록중은 우승 후보급 전력.
U15 대표팀 출신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4명이나 포진되어 있었다.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여서 모든 유소년팀이 꺼리는 존재.
그 백록중을 상대로 희망이 보였다.
원중섭은 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선발 명단에 성준휘부터 무조건 써놓기 시작했다.
***
성준휘는 경기를 끝내고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땀 냄새와 열기로 가득한 공간. 하지만 축구선수에는 너무나 편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이중찬에게 스포츠 음료병을 던졌다.
“막판 패스 좋은데?”
“대강 네 성격을 알았어.”
“앞으로 그렇게 가자고! 뛰어난 공격수에게는 좋은 볼을 배급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자신감 좋네. 나야 중앙 미드필더니까 골 욕심이 그다지 없긴 하지만···.”
태도에서 알듯이 이중찬은 성준휘의 실력을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볼배급을 우선시해 준 거다.
하지만 문제는 3학년이다.
이중찬은 슬쩍 뒤쪽을 바라보자, 3학년들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필드 위에서는 평등하다지만, 기본적인 체육고 특성상 위계는 존재했다.
오승준을 비롯한 3학년 몇몇이 그에게 다가온다.
“성준휘.”
“네.”
성준휘는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태연하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이죠?”
“후배야. 좀 멋대로 아니냐?”
에이스인 오승준이 말을 꺼내고 이 라커룸은 빠르게 차가워졌다.
“골 좀 넣었다가 다가 아니야, 인마. 주변에 패스하면서 공격 기회를 잡아야지.”
“맞아. 너, 오늘 잘해서 뭐라 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욕심부리더라? 위험하게 자꾸 드리블하는 버릇이 들면 안 되잖아.”
“그냥 주변을 보고 플레이 해. 새꺄!”
다른 3학년도 가세해서 압박한다. 패스를 잘 하지 않고 혼자 공격하려는 2학년에게 주의를 주는 거다.
사실, 여기서 이들의 훈계는 중요하지 않다. 성준휘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그냥 얌전히 잘 대답하는 방법도 있고, 그냥 반발해서 한판 하는 케이스가 있다.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모두의 주목이 그 입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준휘는, 이 분위기에서 씨익 웃었다.
“공격수인 제가 골 욕심이 많은 건 당연해요. 어느 정도 욕심은 부린다는 거죠.”
“하지만 뻔히 남들이 쇄도하고 좋은 찬스 때 볼을 잘 주지 않잖아.”
오승준이 반박한다.
하지만 성준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제가 직접 돌파해서 골을 넣는 게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요.”
“뭐?”
라커룸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금 2학년이 선배의 말에 반기를 든 거다.
물론, 성준휘도 여기서 끝나면 반목만 커질 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제가 말한 확률보다 더 좋은 기회를 선배들이 가지고 있다면 전, 두말할 것 없이 패스할 겁니다. 하지만 전 공격수니까 골 욕심을 내는 것에 대해서 딱히 지적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 꼴통이구만.”
오승준이나 다른 3학년은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야! 골 욕심을 너무 내면 팀을 망쳐! 지금 좀 잘 된다고 다음에 잘될 거 같아? 어려서 진짜 모르네.”
다른 3학년들 역시 짜증을 냈다.
“오,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못하기만 해 봐라.”
“못하면 욕먹어야죠. 혼날 각오 하고 있습니다.”
당당하다.
싸가지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의 말이 사실 정답이었다.
공격수가 골 욕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고 못 하면 최우선으로 욕먹는다.
단적으로 수십 년 전, 한국 축구 레전드 황선홍은 월드컵에서 실수로 그야말로 전 국민에게 욕을 먹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성준휘는 떠나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다시 몸을 돌린다.
“역시, 선배님들이야. 때리지는 않네.”
친구 웅필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취했다.
“이 새끼는 진짜 간덩이가 부었나 봐. 내가 다 쫄린다. 3학년한테 잘도 덤비네.”
“3학년이고 상관없어. 스포츠는 잘하는 놈이 대접받으니까.”
“...”
후보가 대다수인 2학년들은 성준휘의 이런 대답에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행히 이후 보복은 없었다. 시대가 예전과 달라졌고 무엇보다 감독과 코치들이 그를 집중하여 관리해 주기 시작했으니까.
“준휘야. 이제부터는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놔서 보내. 우리가 분석해서 도와주마. 그리고 부족하거나 힘든 거 있으면 우리한테 말해라. 다 도와주마.”
유소년 리그에서 언제나 절대적인 감독과 코치가 싸고돈다?
3학년이고 뭐고 건들지를 못한다.
게다가 성준휘는 선배들에게 싸가지없게 대하지도 않는 편이다.
축구장에서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을 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제는 당당히 선발로 32강전을 맞이했다.
상대는 왕중왕전에서 그다지 전력이 강하지 않은 성남중이었다.
선배들의 경고도 있고 반목해봤자, 좋은 게 없다.
하지만 성준휘의 가치관은 확고했다.
‘이제 더는 이타적인 플레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자기가 기회를 잡으면 자기가 끝낸다.
선배들의 경고고 뭐고 이 경기에서 성준휘는 무려 5골을 폭격하며 후반 10분에 바로 교체되었다.
“준휘 넌, 드리블이 화려하니까 무릎 관리 잘해야 한다.”
“부상으로 성장세가 꺾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 드리블을 더 간결하게 쳐!”
이들은 성준휘의 무릎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화려한 드리블을 지닌 선수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빠른 부상으로 인해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코치진이 본격적으로 관리를 시켜주며 애지중지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네.’
성준휘는 벤치에서 팀의 승리를 지켜보면서 자기 무릎을 보았다.
‘옛날에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반했던 드리블러들은 하나같이 나중에 그 스타일을 버렸지.’
멘탈이 안 좋거나 여러 사정으로 그 스타일들이 사라졌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뭐든 필요한 거지.’
성준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하체 스트레칭을 계속해 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의 눈은 경기장···. 그것도 오승준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승준의 스타일을 눈에 계속 익혀두는 거다.
왜 이러냐면, 3학년도 만족시켜 줘야 하니까. 우수한 스트라이커는 독단적이지만, 팀원도 만족시켜야 한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서 실제로 3학년들이 불만의 눈빛들은 여전했다.
감독과 코치가 애지중지하니, 대놓고 건들기도 힘드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3학년 에이스인 오승준에게 다가갔다.
“선배, 16강전에서 골 합작이나 해보죠.”
“야, 감독님이 편애한다고 장난치냐? 골 합작 운운할 시간이 있어?”
“선배들이 도와주면 진짜 장난으로 끝낼 겁니다. 선배님들 실력으로 절 도와주시면 됩니다.”
“...”
3학년들은 어이가 없는 듯 성준휘를 노려볼 뿐이다.
***
오승준을 비롯한 3학년들은 16강, 김해중 전을 두고 성준휘만 쳐다보았다.
‘시발, 존나 건방지네.’
분명히 실력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
하지만 골 욕심이 많고 공격 진형에서 패스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저번에는 아예 자기랑 같이 골 합작이나 하자고 한다.
방식은 똑같다.
그저 자신에게 볼을 달라는 것뿐.
“장난치나?”
오승준은 2학년의 급부상으로 인해 초조해진 상태였다. 팀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거기에 이기적인 골게터.
좋아할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패스를 주기 싫었다.
3학년들도 다 별로라고 생각한 2학년생에게 볼을 줄 리가 없었다.
16강전 경기가 시작되고 일단 빌드업을 위해 볼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성준휘에게 어지간해서는 볼을 넘기기 싫어하는 마음에 중앙을 넘나들었지만, 그래서 공격이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애매하게 상대 진영에서 이중찬과 풀백들로 볼을 움직이는 찰나, 이중찬이 성준휘에게 패스를 한다.
‘쳇. 2학년들끼리.’
볼을 잡자마자, 성준휘는 독단적 스트라이커로 변했다.
백숏으로 바로 상대를 등지다가 뛰쳐나가는 플레이로 따돌리며 돌진하기 시작한 거다.
순간 상대 수비수들이 그쪽에 집중될 때, 성준휘는 상대와 격차를 보여주듯 리프팅을 하면서 상대를 끌어들였다.
볼을 리프팅 하다가 달려드는 상대를 완력으로 밀어버리고 강제로 공간을 만든다.
그 엄청난 힘에 상대가 결국, 반칙하며 끊어버렸다.
“삑!”
심판이 달려와 주의를 주고 40M로 중학생이 차기에 먼 거리에서 프리킥이 주어진다.
오승준이 키커로 나서고 그는 세컨드 볼을 노리는 작전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볼을 준비할 때, 성준휘가 왔다.
“선배, 저한테 주세요.”
“뭐? 왜?”
“그게 골 기회니까요.”
와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랐다.
‘작전대로 보내거나 잘 빠지는 쪽으로 주는 거지. 지가 뭔데?’
정말로 한없이 건방지다.
하지만 골게터로서 능력은 확실하다.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이때 이래저래 감정적이었던 오승준은 살짝 힘을 더 주고 말았다.
프리킥이 골대 바로 앞까지 깊숙하게 말이다.
‘잘못 찼다!’
오승준이 한쪽 눈을 찌푸릴 때였다. 그냥 코너 라인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그곳에 어느새 성준휘가 있었다.
성준휘는 자기 앞에 떨어지는 볼을 점프와 함께 앞발로 톡, 가볍게 건드려 골대로 집어넣었다.
“골!”
1:0. 그들이 앞서나가고 오승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골이 어디에 떨어질지 예측했다는 건가?’
실수로 찼는데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오승준이 이후 플레이에서 성준휘를 볼 때마다 상대 수비진 뒤로 빠져나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
미드필더로서 좋은 기회가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
오승준이 그에게 스루패스를 날린 순간, 숨 쉬듯이 당연하게 성준휘가 수비수 사이로 빠지며, 볼을 잡았다.
골키퍼와 1:1 단독기회를 만들며 또다시 골.
오승준은 성준휘의 빠지는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패스하기 좋은 위치에 다 가 있어.’
그가 경악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쯤에서 스루패스하면 좋은 기회가 나겠지.’, ‘공격수가 저 위치에 있다면 좋은 패스가 될 텐데.’ 하는 미드필더로서의 감정을 누구나 가질 거다.
그런데 성준휘는 그가 원하는 위치마다 대기 중이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몸싸움보다는 빠져나가는 움직임 위주다.
그가 패스하기 싫어도 성준휘는 그에게 눈빛을 보낸다.
‘여기에 보내면 좋은 공격 기회!’
이중찬과 원터치 패스로 볼을 돌리던 중 성준휘가 신호와 함께 달렸다.
그리고 오승준은 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좋은 기회니까.
‘대체 뭐야? 기분이 좋은 패스가 되잖아.’
그것은 쾌감이었다. 자기 패스가 골로 연결되고 기점을 만들게 하는 쾌감.
지금, 2학년생이 오승준의 오감을 자극하며 말하고 있었다.
어서 패스하라고.
그곳에 패스하면 기회가 나고 골이 나온다.
오승준은 그 유혹에 굴복했고, 곧이어 세 번째 골이 터졌다.
어느새 그는 극락에 빠진 표정으로 성준휘에게 패스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6강전 휘슬이 울리고 6:0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코어로 승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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