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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다 님의 서재입니다.

네 특성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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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다
작품등록일 :
2021.07.26 10:55
최근연재일 :
2021.08.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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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37

작성
21.07.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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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두 번째 시작

DUMMY

#1. 두 번째 시작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헥토파스칼···!”


또 저 유치한 기술명을 외쳐댄다.

기압의 단위를 표시하는 단어를 녀석은 무척이나 좋아했었고, 그 뒤에 어떤 말이 붙을지는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보나 마나 무슨 무슨 킥 나오겠지.’


공중으로 몸을 날린 채 다리를 뻗어오는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쩨트킥!”


쩨트킥 차례였나···.

최대한 몸에 힘을 뺀다.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갔다가는, 나를 가격한 녀석의 발이 부러질 수도 있었으니까.


퍼억-


녀석의 발이 내 몸을 강타했다.

말이 강타라는 것이지. 내게 들어오는 데미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강타한 것처럼 보여야만 한다.


“크헙!”


고통스러운 단말마와 함께 볼썽사납게 뒤로 넘어지는 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시발, 어찌 된 게 맞는 것보다 연기하는 게 훨씬 어렵다.


“우웨에엑···.”


몸을 바닥에 밀착한 채, 헛구역질 한 스푼.

최대한 고통스럽게 보여야만 한다.


“키야! 성준아. 헥토파스칼 쩨트킥 오졌다.”

“이 새끼, 정신 못 차리는 거 봐라. 킥킥.”


쩨트킥 주인공의 주변에 붙어, 자신의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보려는 엑스트라 둘의 아부와 비웃음.


“크으웨엑···.”


쩨트킥 새끼가 천천히 내게 걸어온다.

과거의 나는 매우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지금의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빌어먹을 신에게 기도했겠지.


물론 지금의 나도 빨리 끝나기를 원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연기라는 게 적성에 딱히 맞지 않는 것인지, 지루하고 귀찮았으니까.


이맘때의 놈은 킥복싱 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국내 유소년 대회를 휩쓸어버린 유망주 최성준.

그런 놈에게 어찌 감히 반항이란 것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닥치고 맞아야지.


“안 일어나?”

“미, 미안해. 성준아···.”

“일어나, 응? 내 친구 강율.”


최성준은 앉아 내 턱을 잡고 들어 올린 뒤 그 역겨운 면상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을 하냐. 율아. 응?”


퍽-


녀석의 주먹이 내 정수리를 내려찍는다.

놈은 절대 얼굴은 건드리지 않았다.


“또 해봐. 선생한테 일러봐. 응? 할 수 있지?”


선생한테 고자질했던 것이···.

아마 일주일 전이었던가? 어처구니없게도 되레 내가 가해자가 되어 녀석에게 사과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 당연한 결과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와는 다르게

녀석은 내로라하는 권력을 가진 집안의 자식이었으니까.


퍽-


“으으···. 미, 미안···.”

“친구끼리 미안한 게 어딨어 인마.”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냐.

때리는 것도 힘들 텐데, 그만 좀 때려라.

연기하기 힘들어 죽겠다.


퍽-


“친구끼리! 응? 시발놈아!”


퍼억!-


마지막 타격음에 만족했는지, 손을 털며 일어난 녀석은 시원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앞으로 기대해.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 존나 재밌게 만들어줄게. 가자.”

“성준아, 피방?”

“훈련하러 가야 돼 시발. 어차피 1등 할 건데, 코치 새끼 귀찮게··· 하.”


역겨운 재능충 새끼. 말하는 거 보소.


“강율, 이 시바새키. 니가 샌드백 제대로 못 해서 성준이가 훈련하러 가야 되는 거 아냐!”


퍽, 퍽-


아니,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리고 좀 그만 때려라. 또 연기해야 하잖아.

잘못하면 너네 발 부러진다.


“끄윽···.”

“야, 그만하고 가자. 그러다 그 새끼 뒤진다. 아껴먹어야 돼.”

“아. 응. 성준아! 가자!”


엑스트라 녀석의 마무리 발길질 몇 번을 끝으로 세 놈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껴먹긴 뭘 아껴먹어? 내가 음식이냐.’


아마 과거의 나는 이때 이 후미진 골목길에 널브러진 채, 한참을 질질 짜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우···.”


옷이 좀 더러워진 것을 빼면, 내부에 데미지는 거의 없다. 아무리 녀석이 격투기로 단련된 천재라고 한들,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


앞으로 다가올 인류의 위협에 대비한, 선택받은 자들 중 하나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어린애 장난이나 마찬가지다.


“뭐 그래봤자, 폐급이었지만.”


굳이 퍼센티지로 환산하자면···.

나는 100% 중에 90%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최성준은 세계를 대표하는 인류의 구원자 중 하나가 되었고···.


“퉷···. 시발새끼.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참교육 시전하고 싶네.”


입안에 들어간 흙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후우. 참자. 조금만 더 참자.”


후에 재앙의 날이라 불리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리고 녀석은 과거처럼, 이번에도 나를 때리다가 내 눈앞에서 각성을 맞이해야만 한다.


반드시.


혹시라도 최성준이 나한테 처맞고 미래가 바뀌어버린다면, 곤란. 그것도 매우 곤란하다.


탁, 탁-


교복의 흙먼지를 털고 한쪽에 널브러진 가방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습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 * *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자신의 한계가 왔다는 듯,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가 익숙하게 귀에 꽂힌다.


낡은 대문이 열리고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래된 2층 가옥의 모습.

보통 2층 단독주택이라 하면 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상하곤 하는데···. 눈앞의 것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모습이다.


“아들, 왔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눈앞의 허름한 가옥이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방금의 가옥보다 더 아슬아슬해 보이는 작은 별채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다소 왜소한 체구의 여성.

사랑하는 내 어머니다.


“응, 나 왔어.”


허름한 2층 가옥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자에게 집이란 것이 없었다. 마당 구석에 작게 지어진, 작은 방 하나짜리 별채를 월세로 빌려 살고 있었다.


“오늘도 축구하고 온 거야? 옷이 엉망이네.”

“응. 미안. 애들이 좀처럼 놓아주질 않아서···. 하하.”


필사적으로 최성준의 구타를 참아냈던 이유.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것이 가장 컸다. 다행히도 놈은 눈에 보이는 곳은 절대 때리지 않았고, 덕분에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사실을 은폐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러고 크는 거야. 옷 더러워질까 걱정하지 말고 놀아. 빨래하면 그만이니까.”

“응. 알았어.”


엄마의 미소. 목소리···. 이분의 모든 것.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모습에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오르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처음 다시 재회했을 때, 엉엉 울던 나를 말 없이 토닥여주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빨리 옷 갈아입어. 내일 학교에 입고 가려면 바로 빨아야 하니까.”


엄마는 목 부근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티셔츠와 보풀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생겨난 바지를 내밀었다.

후줄근하지만 새로 빨아둔 것인지, 냄새가 좋다.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오자, 교복을 들고 마당의 수돗가로 향하는 엄마의 걸음이 보였다.

뭐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에게 세탁기 따위는 사치 중의 사치. 추운 겨울에도 엄마는 항상 손빨래를 하셨다.


절뚝-


불편해 보이는 엄마의 걸음.


“내가 할게!”


빠르게 쫓아가 그 손에 들린 교복을 뺏어 들려 했지만···.


“쓰읍! 나중에 니 와이프 생기면 그때나 열심히 도와줘. 지금은 엄마가 하는 게 마음 편하니까.”

“······.”


철벽처럼 단호한 그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겨울이었다면 떼를 써서라도 내가 빨래를 했을 것이다.


쪼르르-


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항상 졸졸이다.

좀 세차게 뿜어져 나오면 빨래가 그나마 쉬웠을 텐데, 집주인은 고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율이 엄마! 또 물 틀어놓고 빨래하는 거야!?”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의 여성이 건너 2층 테라스에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깜빡하고 그만···.”


다급하게 수도꼭지를 잠그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세 율이 엄마가 낼 거야? 응? 몇 번을 말해야 해? 그런 게 다 돈이에요, 돈. 그러니까 평생을 그러고 살지. 쯧쯧!”

“네, 네···. 죄송해요.”


시발년.

온갖 욕이란 욕을 다 붙여도 시원찮은 년이 막말을 서슴없이 뱉어댄다.


“율이 너도! 응? 어떻게든 사람처럼 살려면 공부를 해야지. 매번 그렇게 놀기만 하면 너도 니 엄마처럼 살아. 이 녀석아.”

“저, 애한테까지 그러실 필요는···.”

“율이 엄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율이네 가족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저 모양인 거잖아.”


개 같은 년이···.


“우리 딸 반의반만 닮았어 봐.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 다녔지. 응? 율이 너는 네 엄마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년이···.


“어머, 어머어머! 조금 뭐라 했다고 눈 치켜뜨는 것 좀 봐! 너 당장 눈에 힘 안 풀어!?”


지금은, 지금은 참아야 한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를. 누구 덕분에 지금 잠잘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주변에서 고작 10만 원에 월세방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어려웠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이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은 방이 없다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잠깐 째려본 것이 그리도 분했는지, 정중히 사과했음에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꼴이 가관이다.


‘네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최성준 따위보다 더욱 증오하는 인물이 바로 저 년이다. 처음 몬스터들이 발생했을 때, 저년은 우리 엄마를 제물 삼아 제 목숨을 부지했다.


저년이 어머니를 밀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집에 도착했더라면···.


어머니는 살아 계셨을 것이다.


“어휴! 스트레스! 내가 이래서 살을 못빼요 살을.”


집주인은 한참을 소리를 지르고는, 분이 풀렸는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며 제집으로 들어갔다.


“아들. 조금만, 더 참자.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이사 갈 수 있으니까···.”


혹여 내가 상처받았을까 걱정하는 목소리.

본인이 받은 상처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아들···. 괜찮아?”


내가 분하고 억울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하신 모양이다.


“괜찮아. 엄마.”

“엄마가 미안해. 조금만 더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진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마.”

“우리 아들 다 컸네.”


대견하다는 듯 미소짓는 엄마.

이번엔 저 모습을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후회하진 않아.’


내가 이전에 한 짓으로 인해.

세상 모두가 비열하다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후회하지 않겠어.’


내가 앞으로 할 짓으로 인해.

세상 모두가 처참하게 뒈지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눈앞의 한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하니까.


‘이번엔 반드시···.’


그렇게 재앙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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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피에 물든 마천루(2) +2 21.08.23 3,100 115 13쪽
31 피에 물든 마천루 +4 21.08.21 3,797 143 12쪽
30 강율과 아이들(2) +8 21.08.20 4,031 160 13쪽
29 강율과 아이들 +10 21.08.19 4,233 165 13쪽
28 퍼스트 타임(2) +6 21.08.18 4,405 182 12쪽
27 퍼스트 타임 +2 21.08.17 4,618 168 11쪽
26 귀찮은 날파리(4) +7 21.08.16 4,760 160 12쪽
25 귀찮은 날파리(3) +7 21.08.14 5,091 182 13쪽
24 귀찮은 날파리(2) +14 21.08.13 5,161 177 11쪽
23 귀찮은 날파리 +6 21.08.12 5,287 156 12쪽
22 다시 일상(2) +6 21.08.11 5,425 158 12쪽
21 다시 일상 +5 21.08.10 5,619 165 13쪽
20 원시림의 목마(3) +4 21.08.09 5,688 173 13쪽
19 원시림의 목마(2) +6 21.08.08 5,767 166 13쪽
18 원시림의 목마 +7 21.08.07 6,221 169 14쪽
17 반격의 시간(2) +7 21.08.06 6,803 173 12쪽
16 반격의 시간 +8 21.08.05 7,264 189 12쪽
15 호랑이를 등에 업은 쥐(2) +8 21.08.04 7,605 202 13쪽
14 호랑이를 등에 업은 쥐 +5 21.08.03 7,672 183 15쪽
13 그런 거 아니야 +7 21.08.02 7,941 189 11쪽
12 화가는 왕을 꿈꾼다(2) +10 21.08.01 8,231 176 12쪽
11 화가는 왕을 꿈꾼다. +13 21.07.31 8,603 178 14쪽
10 형이 왜 거기서 나와(2) +7 21.07.30 8,956 195 15쪽
9 형이 왜 거기서 나와 +8 21.07.29 9,130 192 12쪽
8 첫 번째 불꽃의 주인(3) +12 21.07.28 9,443 196 12쪽
7 첫 번째 불꽃의 주인(2) +8 21.07.27 9,868 176 13쪽
6 첫 번째 불꽃의 주인 +14 21.07.27 10,541 188 11쪽
5 붉게 물든 하늘(2) +8 21.07.26 10,733 216 13쪽
4 붉게 물든 하늘 +7 21.07.26 10,988 212 14쪽
3 야 너두? +10 21.07.26 11,626 297 12쪽
» 두 번째 시작 +12 21.07.26 14,308 28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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