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불꽃의 주인(2)
#6. 첫 번째 불꽃의 주인(2)
총알은 소리보다 빠르다.
일반적인 권총의 속도는 약 400 m/s.
그런 무지막지한 것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은 하급 각성자인 나에게는 무리. 그래도 쏘기 전에 피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발사하기 전에 탄착 지점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니까.
‘젠장!’
하지만 지금 생각 없이 피했다가는, 내 뒤를 따라서 나올 박시준이 총알을 맞게 될 확률이 높았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아 머리나 심장에 맞기라도 한다면 청염은 손 쓸 새도 없이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만다.
최성준에게 빼앗은 강탈의 조건은 어디까지나 ‘직접 죽인 각성자’ 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첫 탄환은 몸으로 막는다.
고블린이 들고 있는 총구의 방향은 왼쪽 가슴 부근. 심장 아래, 비장이 있는 방향이다.
나쁘지 않은 위치.
맞아도 전투를 행하는 데 지장이 없는 곳이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심장 부근을 양팔로 가리고 변변찮은 마력을 둘러 보호했다.
“흐읍!”
뒤에서 나를 따라 나온 박시준의 뜀박질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커다란 격발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탕!-
예상한 곳에 정확히 안착한 총알은 내 몸을 관통하지 못하고 비장을 파고든 상태로 멈췄다.
젠장. 아프긴 더럽게 아프다.
“아악! 율아!”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걱정어린 외침이 들려왔지만, 괜찮다며 안심시키고 있을 시간은 없다.
“형!”
“네 할 일이나 제대로 해!”
총에 맞은 나를 보며 멈춰 있는 시준에게 소리를 지르며 고블린을 향해 달려갔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달려드는 나를 제대로 조준하지도 못한 채 당황하는 고블린. 놈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틱, 틱-
한 발의 총성 후에 들려오는 것은 탄피를 때리는 소리뿐.
“끼에에엑!”
총든 고블린이 이 무리의 대장 격인 녀석인지, 놈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탄이 떨어진 것을 소리로 확인했으니, 위험요소는 없었다.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것 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너만 남았구나.”
달려든 고블린을 모두 죽이고 한 걸음씩 총 든 녀석을 향해 걸어가자, 놈은 소리를 지르며 방아쇠에 올려 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끼에엑!”
틱, 틱-
이미 비어버린 실린더가 돌아가며 공허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결국, 권총을 바닥에 버린 녀석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푹-
내가 던진 식칼을 뒤통수로 받아내며 고꾸라지는 고블린.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돌리자, 넘어진 고블린을 향해 연습용 검을 내리찍는 박시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제법이네.’
어제의 일은 어디까지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아무리 적대적 생명체라 한들,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달랐다.
“율아!”
“괜찮아.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아.”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
당연하게도 몹시 아프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총에 맞고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어! 어떻게···. 아! 총알부터 빼내야···.”
“진짜 괜찮다니까. 경찰서에 도착하면 치료해 줄 사람이 있을 거야.”
지금 총상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탄을 빼낼 도구도 없거니와, 제대로 된 소독도 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수술했다간 패혈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아무리 저항력이 높은 각성자라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형···.”
어라. 이 녀석은 또 왜 울려고 하냐.
“충분히 피할 수 있었잖아요···.”
녀석 또한 각성자가 된 만큼, 어떤 상황이었는지 파악을 한 것 같았다.
“혹시 저, 저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살리기 위해서 대신 맞은 것이니까. 정확하게는 박시준이 아닌 녀석이 가진 ‘청염’ 을.
“내가 피했으면 네 심장을 관통했을 거다.”
“아······.”
“괜찮아 인마. 네 다리 낫는 거 봤지? 나도 금방 나아.”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어라··· 이놈 봐라.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겠는데?
총알 한 발 맞고 ‘청염의 주인’ 의 마음을 얻는다면 나쁠 것이 없는 장사다.
“끄응···.”
총상 부위를 붕대로 둘둘 감는 어머니의 손길에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사실 별 필요 없는 응급조치였지만, 뭐라도 해야 어머니가 걱정을 덜 것이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들, 걸을 수 있겠어?”
“형. 제가 들것이라도 만들어 올게요!”
“시준아! 우리도 도울게! 다 같이 들면 돼!”
들것 만드는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총 맞고도 고블린들을 쓸어버린 건 그새 잊어버렸는지, 완전히 중환자 취급이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그리고 박시준.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굴 필요 없어.”
“그, 그래도···.”
“잘했어.”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꽤 멋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수줍어하는 녀석을 주위 친구들도 칭찬하기 시작했다.
“맞아. 시준아 너 개쩔었어!”
“각성이라는 거 나는 못 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본래 수줍음이 많은 타입이 분명했다.
그런 성격을 고쳐보려, 부모님이 검도관을 다니게 했던 것일 테고.
친구들 사이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박시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뇌었다.
‘넌 내꺼야.’
* * *
서울 외곽에 위치한 한 경찰서.
장광철 서장은 창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의 중정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상처에 신음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하늘에 붉은 막이 드리워진 이후로 나타난 당최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습격은 장광철 서장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부하 경찰 몇이 목숨을 잃은 후, 그는 곧바로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군으로 따지면 진돗개 하나에 해당하는 최고 경계 태세. 본래 상위 기관의 결정이 있어야 하지만 무전이고 전화고 죄다 먹통인 탓에 서장 본인이 임의로 내린 결정이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경례를 한 남성은 서장을 향해 어두운 얼굴로 입술을 뗐다.
“저···. 서장님.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엔 또 뭐야?”
“식량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뭐? 일주일은 문제없다고 보고했었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도 놀라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보니, 평소에도 이와 같이 털린 경험이 많은 듯했다.
“그게, 장부에 기록된 수량과 실수량이 맞질 않아서···. 그, 아무래도 담당자가 몰래······.”
“이런 미친!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며칠 전부터 휴가를 냈습니다. 지금은 연락할 방법도 없는 터라···.”
간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투식량은 유통이 불법이었지만, 밀리터리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은지라 암암리에 거래되는 물품이었다.
아마 전산상으로는 조작을 해두었겠지만, 실제 출납기록까지 손보지는 못한 듯했다.
“후. 그래서, 얼마나 있는데?”
“내일이면 모두 소진될 겁니다.”
“···알겠으니까 일단 나가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서장에게 남성은 할 말이 남은 듯했다.
“저 서장님···.”
“또 왜! 뭐!”
“식수도 부족합니다.”
“수돗물이라도 마시면 되잖아!”
“수도 시설에도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오염된 물만 나오고 있습니다. 수압이 조금씩 약해지는 거로 봐서는··· 그마저도 곧 끊길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데, 안정적인 수도 공급이 끊긴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일단 정찰조 편성해서 근처 편의점이라도 다 털어와.”
“털, 으란 말입니까?”
“그래 인마! 지금 이 상황에서 뭐 양해라도 구하고 빌려올까?”
“···알겠습니다.”
“한 시간 뒤에 회의할 거니까 각 부서 책임자들 다 모이라고 하고. 그리고 그 각성잔지 뭔지 하는 사람들 파악했어?”
“네. 시민 중에서 여섯 명. 군인이 한 명. 마지막으로 우리 서의 의경 한 명까지 총 여덟 명입니다.”
“알겠으니까 나가봐.”
“네. 충성!”
남성이 나가고 난 후, 장광철 서장은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각성자라···. 영화라도 보는 것 같군. 근데 왜 나는 그대로인 거야? 후, 빌어먹을.”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한숨을 쉬는 그였다.
* * *
“형! 저, 저기 경찰서에요!”
“알아. 나도 보여.”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있었으니, 값지게 시간을 소비한 셈이었다.
바리케이드 너머 경계를 서고 있던 경찰들이 보였다. 우리를 발견하곤 총을 들어 사격 자세를 취하는 모습에 움찔했지만,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혹시 쫓아 왔을지도 모르는 고블린들을 경계하는 건가.’
우리가 태연하게 걸어서 접근하는 것을 알아챈 경찰들은, 그제야 자세를 풀고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거기 생존자분들. 위험하니까 빨리 오세요!”
경찰의 외침에 우리는 속도를 내 경찰서 부지 안의 중정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사, 사람이 엄청 많네요···.”
“흩어지지 않게 아줌마 옆에 꼭 붙어 있으렴.”
“네, 네!”
결코 작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 매우 혼잡했다. 우리를 맞이했던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도 정신이 없어서 안내는 힘듭니다. 적당한 곳에서 쉬고 계세요. 때가 되면 식량은 배급될 겁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시준이 소지하고 있는 검에 눈길을 주는 경찰.
“아, 날이 죽은 연습용 검입니다.”
내 설명에 납득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는 경찰을 어머니가 붙잡았다.
“저기, 제 아들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저는 경비를 맡고 있어서, 다른 직원에게 한번 문의해보세요.”
슬쩍 돌아본 내 모습이 멀쩡해 보였는지, 그는 서둘러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을 헤쳐가며 자리를 잡을 빈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 형. 저기!”
시준이 가리킨 곳에 꽤 넓은 공간이 보였다. 문제는 그 공간을 저들끼리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 저 사람들. 불량해 보여요.”
“미친놈들이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 여섯이 둥글게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몸을 도화지 삼아 그린 그림들을 자랑스럽게 꺼내놓고 있었다.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거리를 두면서 자연스레 큰 공간이 생긴 것이겠지.
‘제대로 통제가 되질 않는군. 최성준은 이런 놈들이랑 어떻게 최단 시간 클리어를 했던 거야?’
최성준이 이 경찰서를 본진 삼아 튜토리얼을 클리어했다는 것은 기사로만 접해서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 경찰서에 오지도 못하고, 한 지하 창고에 틀어박힌 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하핫! 걱정하지 마! 아까 내가 다 쓸어버리는 거 못 봤어?”
“봤지.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오빠 존나 멋있어.”
문신남에게 엉겨 붙는 여자 또한 다리에 큼지막한 장미 무늬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야. 그 오빠 임자 있잖아. 이년아.”
“알 게 뭐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거. 지금부터 내가 여친 하면 되잖아. 그치, 오빠?”
“뭐, 너 하는 거 봐서. 일단 햇바닥 스킬 좀 보자.”
뇌가 비어버린 것인지. 사람들이 많은 장소임에도 개의치 않고 서로의 혀를 탐하며 더러운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놈들.
“저기, 미안한데. 조금만 붙어서 앉아주시면 안 될까요? 애들이 지쳐서 쉴 곳이 필요해서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와중, 어머니가 한발 앞서 행동하셨다. 다친 내가 쉴 곳을 빨리 마련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말을 걸어온 어머니로 인해, 여자는 서둘러 애정행각을 멈췄다. 그녀는 그래도 부끄러움이란 걸 조금은 아는 듯했지만, 문신남은 전혀 아니었다.
“씨팔, 한창 좋았는데. 뭐요? 아줌만?”
“아···. 저희가 쉴 만한 자리가 없어서요.”
“응? 뭐라고? 아 틀니가 하는 말은 내가 잘 못 듣는데. 야, 너네는 들리냐?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귀에 손을 대는 문신남.
“푸흣. 나도 안 들림.”
“시바 아줌마들 자리싸움 종특 나왔죠. 저렇게 늙을까 봐 존나 무섭다.”
비웃는 다른 녀석들의 모습도 가관이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양보해주면······.”
“아. 쫌 꺼지라고. 이만큼 말해도 못 알아듣냐? 늙어서 청력도 퇴화하셨어?”
“말이 좀 심하시네요.”
“심하면 뭐? 어쩌게?”
한숨을 쉬며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우리 여사님. 얼굴이 조금 붉어져 계신 것을 보니 화가 나신 모양이다.
그래. 이럴 때는 당연히 아들인 내가 나서서 참교육을···.
“시준아. 얘들 교육하는 것 좀 도와줄래?”
어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내 뒤의 박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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