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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으으으크 님의 서재입니다.

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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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류으으으크
작품등록일 :
2023.06.15 11:20
최근연재일 :
2024.02.02 20:00
연재수 :
2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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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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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1,797

작성
23.11.03 20:00
조회
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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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모자(母子)"

DUMMY

무라딘의 생각이 어쨌든 간에 다리온과 더스틴은 나이도 같고, 같이 배우며 커왔기에 어릴 적에는 친한 친구로 지내며 자랐다.


하지만, 그러한 둘의 사이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원래 평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친구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은 법이다.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배워가면서 더스틴은 다리온이 자기 아랫사람이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상단 내의 지위는 다리온이 더 윗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리온을 아랫사람 다루듯 부리기 시작했다. 다리온은 그런 더스틴의 그런 행동이 열받고 짜증이 났지만 참았다.


그가 참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언제였던가 과거 무라딘이 더스틴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준다고 원행 상단을 함께 갔을 때였다.


원행을 떠날 때는 준비할 것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기에 한번 원행 상단을 떠나면 수송 선단을 운영하는 사람 이외의 거의 모든 상단 간부가 동행하게 된다.


원래 무라딘은 제미니도 같이 가려 했지만, 제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제미니는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원행을 나가고 상단 내에는 다리온과 제미니 둘만이 있던 적이 있었다.


더스틴이야 원체 철이 없는 성격이기도 했고 제미니의 정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엄마라 부르며 따랐지만 다리온에게 있어 제미니는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었다.


병든 자신을 버린 매정한 어미,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름까지 바꿔가며 자신의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키워낸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무라딘과 더스틴이 원행을 떠나고 며칠 뒤, 임시 상단주 역할을 하던 제미니는 상단 일로 논의할 게 있다며 다리온을 불렀다.


다리온은 불쾌했지만 어쨌든 상단주 대행은 그녀이기에 호출에 응했고,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 속에 두 모자는 정말 오랜만에 단둘이서 마주했다.


“미안하다...”

“저에게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레이디 제모니안.”


“다리온, 나의 아들 다리온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네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안다. 하지만, 둘이 있는 지금만큼은 나를 엄마로 대해주지 않겠니?”

“제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버리고 떠났고. 어머니는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에겐 모든 게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좋으니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겠니...”


다리온이 들어오자 주위를 물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다리온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사과 몇 마디로 해결될 만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보다 더욱 끔찍한 존재였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아이마저도 존재했던 모든 것을 버린 사람 그것이 어머니란 존재였다.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다리온을 보며 제미니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구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가슴속에 눌러 담았던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했다.


왜 다리온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다리온에게 매정하게 대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다리온은 듣지 않는 척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다리온의 가슴을 후벼팠다.


“병의 치료? 공부? 후계자? 다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걸 원했습니까? 말해보시지요 레이디 제모니안, 그동안의 제 외로움과 상처는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열병 걸려 생사를 오갈 때 깨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 생각하며 잠든 날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미안하단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어미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자신이기조차도 포기하더라도 내 아이만큼은 살리고 싶은 것. 그게 부모의 마음이란다...”


“그 어떤 얘기조차도 제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여태 그래왔듯, 제가 레이디 제모니안을 어머니로 생각할 일은 없습니다. 제겐 어머니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쾅!’


솔직히 다리온은 제미니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고, 지금 그녀의 진심도 들었다. 다리온은 그녀의 심정이 어떨지 공감은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를 마음속에서 용서하는 순간 그간 외로웠던, 외로움에 파묻혀 공부만을 해왔던 세월 여태껏 그녀를 보며 언젠가 복수하겠다 다짐하며 증오와 혐오를 불태우며 버텼던 삶 모두가 부정당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다리온은 그녀의 진심을 외면하고, 부정하고는 방을 나섰다. 다리온이 떠난 방안에서는 한참 동안 제미니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었다.


시간은 흘렀고 길지 않은 원행에서 무라딘과 더스틴이 돌아왔다. 하지만 두 부자는 제모니안과 다리온의 분위기가 변한 것은 느끼지 못한 채였다.


다시 또 시간이 조금 흘렀고, 제미니는 다리온에게 진심을 고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고 있던 마음의 병이 깊어져 결국 목숨을 잃었다.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다리온은 처음 제미니가 죽었다 들었을 때 속이 후련하다 느꼈다. 그녀의 진심을 듣고 난 뒤 속에 풀리지 않는 멍울이 진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었는데 그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리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고, 무덤에 묻히는 제미니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않았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행수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죠?”

“그... 저...”


“하실 말씀 있으면 편하게 하시죠.”

“저... 저는 제모니안님의 전담 메이드였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


다시금 시간은 흘렀다. 한 달이 두 달이 되었고, 어느덧 제미니가 죽은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이후 일에만 뼈져 살던 다리온의 집무실에 야심한 시간 누군가 찾아왔다.


다리온을 찾아온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상단 사람들은 다리온을 조금 어려워했었다.


그의 성격이 모난 것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상단 총책임자 직을 맡고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실수 없이 철두철미하게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단 내에서는 다리온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이라는 소문이 났다. 아마 그가 상단의 안주인인 제미니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방에 들어온 소녀는 무서워서인지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였다. 다리온은 본인도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 따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잠시 뒤 조금 진정된 그녀는 자신이 제미니를 모시던 전담 메이드였다 소개했다.


“아, 그런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 제... 제모니안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맡긴 물건이 있으셔서요...”


“레이디 제모니안님이요? 그러면 더스틴 행수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 진정되기 무색하게 그녀의 입에서 제미니가 언급되자 다리온은 다시금 가슴속에 응어리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에 날카롭게 대했다.


다리온의 목소리가 다시금 날카로워지자 소녀는 거의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다리온은 더욱 황당하고 화가나 언성을 높이며 그녀를 몰아세웠다.


“그... 그게...”

“언성높여 죄송합니다. 제가 피곤해서인지 조금 흥분했습니다.”


“아니에요... 제모니안님께서 자신이 죽고 나면 첫 기일에 다리온님께 이걸 가져다드리라 하셨어요...”


다리온이 언성을 높이자 소녀는 잔뜩 몸을 움츠리며 당장이라도 울 것같이 행동했다. 그 모습을 본 다리온은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었다는걸 깨닫고 사과하며 다시금 그녀를 진정시켰다.


조금 진정된 그녀가 제미니의 유언이라 하며 다리온에게 천에 쌓인 물건을 건넸다. 소녀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은 다리온은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내니 그 안에는 낡은 수첩이 있었다.


“이게... 뭐죠...?”

“제모니안님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안고 계셨던 수첩이에요.”


다리온이 소녀에게 물었으나, 소녀도 이것이 제미니가 소중히 여겼던 수첩이란 것만 알 뿐 무엇이 적힌 수첩인지는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리온은 낡은 수첩을 조심스럽게 펼쳐 읽기 시작했다.


‘두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 도시의 치료사에게 갔다 왔다. 이제 홑몸이 아니니 조심하라 얘기해 주었다.’


‘그이에게 임신 사실을 밝혔다. 그는 앞에서는 같이 기뻐해 주었지만 무언가 고민이 있어 보였다’


‘아이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겠지, 사랑스러운 내 아이야 빨리 보고 싶구나.’


‘아이가 태어났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아는 그이가 해준 이야기 속 영웅의 이름을 따 다리온이라 지었다. 이야기 속 영웅처럼 힘차고 건강하게 자라다오.’


‘오늘 다리온이 나를 엄마라 불러주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다리온 내 아들 다리온 사랑한다.’


‘그이가 떠났다. 종잇조각에 미안하단 말과 함께 얼마 되지 않는 돈주머니를 놓고 떠났다. 나 혼자라도 다리온을 잘 키워낼 것이다.’


‘상단주님이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다. 내 아들 다리온.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가 너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란다.’


‘다리온이 많이 아프다. 열이 가라앉지 않는다. 치료사에게 데려가도 고개를 젓는다. 약값이 너무 비싸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상단주님께 돈을 빌려봐야겠다.’


‘돈은 빌릴 수 없었다. 상단주님 아니 무라딘은 나를 원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버려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리온 엄마가 어찌해야겠니... 이럴 땐 그이가 참 원망스럽다...’


낡은 수첩은 수첩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조악하게 싸구려 가죽에 종이 종잇조각들이 끼워져 있었다. 종잇조각이 제멋대로인 것을 보면 아마 상단일을 하며 나온 쓰레기에서 주운 종이를 모아 일기 형식으로 남긴 듯 보였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했을 때부터의 일이다. 종이 자체가 귀하다 보니 종잇조각도 쉽게 구하지 못해 적힌 내용의 간격이 꽤 멀어 보였다.


하지만, 듬성듬성 남은 기록 속에서 그 당시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아꼈는지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낡은 조각을 읽고 넘기자 낡은 종잇조각 대신 제대로 된 종이가 드러났다.


‘결국 무라딘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미니란 사람은 없다. 나는 이제 무라딘의 아내 토먼 상단의 안주인 제모니안이다. 다리온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엄마를 이해해다오.’


‘다리온이 건강을 되찾았다.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다리온을 모른 척했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참아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무라딘에게 찾아가 약속을 지키라 했다. 매번 기다리라고 했지만, 오늘은 답을 얻어야 했다.’


‘무라딘이 다리온을 인근 영지의 상업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다. 한동안 보지 못하겠지만 차라리 나았다. 적어도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다리온도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무라딘이 더스틴도 상업 아카데미에 보낸 것이 신경이 쓰인다. 내가 살아있다면 모를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무라딘의 약조를 서류로 남겨야겠다. 그것만이 내 아들 다리온에 대한 조그마한 속죄일 것이다.’


‘삼년간의 아카데미를 마치고 다리온이 돌아왔다. 더스틴이 내게 와 안기며 나를 엄마라 불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다리온의 모습이 보였다. 무거운 죄책감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더스틴에게도 다리온에게도 너무 미안할 뿐이다.’


‘손이 떨려서 펜을 제대로 집을 수가 없다. 가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제대로 된 종이에 적힌 내용은 어머니가 제모니안이 된 이후의 이야기였다. 일전에 그녀가 살아있을 때 듣긴 했어도 종이에 남겨진 오래된 진심을 마주하니 가슴의 응어리가 다시금 커진 듯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장에 쓰인 평소의 필체와 확연히 다른 삐뚤삐뚤한 글씨를 마지막으로 내용은 끝나있었다.


“...”

“그리고 이건, 제모니안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대로 글을 쓰실 수 없으셔서 제가 듣고 적은 편지에요. 다리온님께 전해드리라 하셨어요.”


다리온은 낡은 수첩을 덮고 방안에 켜진 촛불만 멍하니 응시했다.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소녀가 다시 다리온에게 조그마한 봉투 하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다리온은 소녀가 건네는 봉투를 기계적으로 받아서 들고는 조심스레 봉투를 밀봉한 밀랍을 떼어내고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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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막무가내" +2 23.11.02 1,061 19 13쪽
136 "제모니안 계약서" +2 23.11.01 1,079 17 13쪽
135 "노래하는 물개" +2 23.10.31 1,092 17 14쪽
134 "프란 토먼" +2 23.10.30 1,118 18 13쪽
133 "토먼 상단" +4 23.10.29 1,117 18 14쪽
132 "꿀 의뢰" +2 23.10.28 1,115 21 13쪽
131 "복귀" +2 23.10.27 1,131 21 14쪽
130 "과학" +2 23.10.26 1,130 21 13쪽
129 "추수" +2 23.10.25 1,106 19 13쪽
128 "정육점" +2 23.10.24 1,129 20 13쪽
127 "역공" +2 23.10.23 1,129 21 12쪽
126 "합세" +4 23.10.22 1,125 22 14쪽
125 "첫번째 독" +2 23.10.21 1,135 20 13쪽
124 "약점" +4 23.10.20 1,147 20 15쪽
123 "트로가 둥지" +6 23.10.19 1,165 21 14쪽
122 "악수" +2 23.10.18 1,144 22 14쪽
121 "미끼" +4 23.10.17 1,150 22 12쪽
120 "똥칠" +4 23.10.16 1,155 20 14쪽
119 "협동 의뢰(?)" +4 23.10.15 1,154 21 13쪽
118 "양아치들" +2 23.10.14 1,192 21 16쪽
117 "토벌 준비" +4 23.10.13 1,214 21 13쪽
116 "각오" +4 23.10.12 1,204 20 14쪽
115 "대 폭발" +4 23.10.11 1,197 20 15쪽
114 "융단 폭격" +4 23.10.10 1,219 21 15쪽
113 "여왕 브라크네" +2 23.10.09 1,232 20 12쪽
112 "거미 군락" +4 23.10.08 1,196 21 14쪽
111 "쓰레기" +3 23.10.07 1,217 22 13쪽
110 "경쟁자" +3 23.10.06 1,265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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