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볼든 백작"
"도련님!!! 데일 도련님!!"
어느 화창한 날의 오후 가볍게 티타임을 즐기는 나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조그마한 내 방 곳곳에 울려 퍼졌다.
밖에서 애타게 누군가를 찾는 사람은 이 집의 집사 프레드릭, 애타게 그가 애타게 찾는 도련님은 바로 데일 볼든 16세, 볼든 백작가의 하나 남은 유일한 인물 그게 바로 나다.
백작가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것 없는 내 방은 작은 테라스와 함께 침대와 몇몇 가구들을 제외하면 굉장히 소박한 침실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인생 참 기구하고 또 기구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볼든 백작가의 도련님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40대 노총각 김대수였었다. 김대수 시절의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었다.
당연히 학업에 열중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성인이 되어 사회로 방출된 나는 안 해본 일이 없다 싶은 정도로 이것저것 다양한 일들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40대의 어느 날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건 바로 로또 1등.
평소엔 사지도 않던 로또를 술김에 한 번 사본 그 로또가 바로 1등에 당첨되었었다. 그렇게 기쁨을 안고 은행에서 당첨금을 수령하고 나왔고 이제 꽃길만 걸을 일만 남았다 생각한 그 순간... 나는 죽었다.
진짜 무슨 거지 같은 만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신호 위반한 차에 치여 죽어버렸다. 그렇게 허망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사후세계에 가 염라대왕(?), 하데스(?) 뭐가됬든 신이라는 작자와 마주했고 다짜고짜 욕을 한 사발 남발했다.
이놈의 인생은 40세 평생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고 드디어 이제 행복만이 가득해지려던 순간 죽는 게 이게 말이 되냐 한참을 신에게 따졌다.
신은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신 그 작자 참 속도 좁다. 좀팽이처럼 속이 좁지 않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어떻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빅엿을 선물할 수가....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신은 나에게 환생을 제안했다. 원래는 이렇게 바로 환생할 수 없지만 이번만 '특별히' 바로 환생시켜 주겠다 했다.
나는 수락했고 신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때 그 계약서를 믿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불공정 계약이 저승에서 그것도 신이란 작자가 할 줄은 몰랐다... 계약서의 일반적인 글씨로 적힌 사항은 별 내용이 없었다.
지금 환생은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 환생이고, 내 인생의 부조리함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환생 조건을 일부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새로운 인생에 대해서는 다시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아야 하고 허황한 삶을 보낼 경우, 다시 환생까지 두 배의 기다림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용만 봐서는 정말 나에게 유리해 보였고 나는 빠르게 서명했다. 그리고 신은 선택사항을 고르라 했다. 선택사항은 무한한 게 아니라 환생에 대한 적합성이 필요하기에 지역, 지위, 재능, 재산, 외모 등등 몇 가지 굵직한 골조에서 3가지를 고르라 했다.
나는 잠시간 고민 끝에 지위, 외모, 재능을 골랐다. 신은 흡족해했고 나도 흡족한 미소와 함께 잠시간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깨어난 게 바로 이곳 볼든 백작가 즉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납득했다. 하지만 나는 신의 분노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었다.
환생의 기다림이라 함은 이승에서의 기억을 지워 새로운 육체로 환생하기 위한 준비단계. 즉, 나는 그 단계를 건너뛰었으므로 모든 기억이 살아있었다.
축복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진짜 때려죽일 거다... 내 나이 40세 노총각이어도 사지 멀쩡한 당당한 사내였지만... 환생한 나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지는 멀쩡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나는 '갓난아기'로 새로 태어났다. 40세의 정신을 가진 채로... 그래도 이해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생명 나는 의지가 넘쳤다.
하지만 신의 분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세 가지 지위, 재능, 외모 참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지위 나는 지위가 있으면 재물은 당연히 따라오는 거라 생각했다. 볼든 백작가는 굉장히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하이든 제국의 개국공신 중 한 가문으로 굉장히 명망이 있는 가문이었었다.
하지만 현재는 정치적 모함으로 제국의 변방 중의 변방 '울부짖는 숲' 으로 명목상은 봉토를 하사받아 영주가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유배 아닌 유배 영지라 부를 수 없는 버려지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재능과 외모 이것 또한 참 잘 골랐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지만 나는 선택지들에서 의심했어야 했다. 가족, 인망, 수명 등등 잡다한 것들이 왜 있는지를 최소한 한 번쯤은 더 고민했어야 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나의 어머니는 원래 몸이 약하셨고,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다.
또한 아버지는 황제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며 지금의 망나니 황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황제의 배후인 후작가에 찍혀 정쟁에서 밀려 백작의 직함만 남긴 채 '울부짖는 숲'으로 유배 아닌 유배해 오고 시름시름 앓더니 얼마 전 결국 돌아가셨다.
그렇게 나는 이번 생에서도 또 고아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16세, 데일 볼든 또 한 번 기구한 인생을 접고 이 지긋지긋한 유배지를 정리하고 다시 수도로 상경하려 영지를 반납하는 내용의 서신을 수도로 보냈었다.
그리고 프레드릭이 저렇게 나를 찾는 거 보니 이제 그 결과가 온 듯했다.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겼다.
"데일 도련님! 여기 계셨 군요 왜 대답을 안 하셨습니까... 저는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나는 프레드릭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집안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일생을 볼든가와 함께한 프레드릭은 지금 나와 같이 아니 나보다 더욱 슬프고 착잡한 심정이라 생각했다.
프레드릭은 지금 나를 보며 아마 물가에 내놓은 자식쯤으로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도련님만이라도 자신이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대답했다.
"아아 미안 미안 잠깐 상념에 빠져있어서 못 들었어"
"도련님 무슨 일이 생기시면 꼭... 아니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생길 것 같으면? 아니 그냥 항상 제 눈앞에 시야 안에 계셔 주세요..."
"알겠어 알겠어 그건 황궁에서 온 답신이야? 어서 줘봐."
울먹거리며 횡설수설하는 프레드릭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서신을 건네받아 조심스레 뜯었다. 서신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나는 충격적인 내용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젠장! 이게 뭐야 그냥 여기서 죽어버리란 거네 듀발 이 개자식!!"
나는 서신을 바닥에 집어 던졌고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방방 뛰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런 나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프레드릭은 서신을 집어 들어 읽어 내려갔다. 역시 프레드릭의 표정 또한 어두워지며 이내 서신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친애하는 데일 볼든 백작에게 - 중략 - 하이든 제국의 황제를 향한 백작의 성정과 충정은 - 중략 - 이례적으로 영지를 세습하여 백작령으로 삼고...’
잡설을 다 떼놓고 보자면 여기서 뼈를 묻으라는 내용이었다. 본래 개국 공신인 볼든백작 가는 중앙귀족 즉, 개국 공신들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영지나 사병 없이 중앙에서 황제를 보필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정계에서 밀려난 뒤 유배 목적으로 임시로 하사한 이 쓸모없는 '울부짖는 숲'을 정식 영지로 하사하여 임시가 아닌 정식 백작령으로 지정,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특혜는 맞다 개국 공신이기 때문에 영지나 사병을 구성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례적으로 영지와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은 제국 역사상 다시없을 특혜였다.
단, 하사받은 영지가 이 쓸모없는 땅인 이제는 볼든 백작령이 되어버린 '울부짖는 숲'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제는 백작령이 된 이 '울부짖는 숲'은 정말 제국의 변방 중에서 최변방, 과거 수천 년 전 마왕이 발호했다 토벌되었다는 대륙에서 버려진 땅인 '저주받은 굴'에 인접한 황량하기 그지없는 지역이다.
"도련님 진정하세요... 어차피 이대로 수도로 돌아가 봐야 빈털터리 몰락 귀족이고, 결국 듀발 후작에게 노리개 취급당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프레드릭은 진정돼 보이는 목소리와 정반대로 나보다 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마지못해서 화를 진정시키고 생각에 잠겼다.
우선 황궁에서 제시한 조건은 아버지에게 영지를 하사할 때 주었던 향후 5년간 세금을 면해준다는 조건을 유지해 준다 했다.
아버지가 이 땅을 하사받은 지 2년, 즉 앞으로 3년간 세금은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땅을 백작령으로 선포했다는 내용이다.
원래 일반 영지의 세금은 영지에서 부과하는 게 아닌 황궁에서 지정하고 부여된 세금을 징수하여 일부를 영지 운영비로 두고 나머지를 황궁에서 가져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백작령같이 자치령으로 변경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금은 황궁이 아닌 자치령에서 직접 부여하고 관리하게 되며, 영지의 수익과는 별개로 영지의 등위에 따른 고정적인 세금이 일괄적으로 부여된다.
한 마디로 이 망해가는 영지라는 이름의 유배지에서 나는 3년 뒤까지 황궁에 보낼 세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황실에 대한 반역으로 목이 뎅강 하고 날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였다.
"하... 그래 화내봐야 뭐 하겠어..."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차를 홀짝였고 프레드릭은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프레드릭 우선 영지의 현황 정리된 것 좀 가져다줘 아버지 서재에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백작님."
어느새 도련님에서 백작님으로 호칭을 바꾼 프레드릭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고 크지 않은 저택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 현황이 정리된 낡은 책자를 가지고 왔다. 영지의 현황은 더할 나위 없이 처참했다.
우선 이곳은 원래 정식 영지가 아닌 개척 마을에 가까웠었기에 영지를 하사받을 때 이주민을 받았었다. 하지만, 변방 중의 변방이기에 오려는 사람이 터무니없이 적었고 이주민이라 해봤자 약 500명 정도였었다.
그마저도 이곳에 온 뒤 아버지가 앓기 시작하면서 영지의 개발은 더뎌졌고, 결국 척박한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해 대부분 떠나고 남아있는 영지민 이래 봐야 현재는 200명 남짓이었다.
영지의 무장은 간간이 나오는 마물들과 산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주변에 목책을 두른 수준에 그쳐있다. 중앙 귀족 시절 가문을 따르던 호위대는 이곳에 올 때 대부분 이주를 거절했다.
그나마 나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프레드릭의 아들만이 수습기사 신분에서 부랴부랴 정식 서임을 하여 영지에는 기사 한 명과 치안대 스무명이 내 영지가 가진 병력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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