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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대머리가 태양광을 흡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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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19 09:36
최근연재일 :
2024.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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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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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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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봉인 해제(1)

DUMMY

창조주가 인류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게이트가 곳곳에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났다. 인간 사이에서도 각성자가 등장했다. 각 국가는 각성자를 중심으로 몬스터의 침공에 대항했다.


반격은 효과적이었다.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몬스터의 침략이 계속되었지만 인류는 물러나지 않았다. 전선이 고착되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마치 남한과 북한이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대치하는 형국과 비슷했다.

전쟁 속 평화.


균형은 인류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온 순간 깨졌다.


-


민광두는 흙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서울 중심가의 번화가였다. 사람과 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장소가 지금은 황무지로 변했다. 빌딩은 탈모 환자의 머리카락처럼 힘없이 쓰러졌고 도시는 대머리의 두피만큼 맨질맨질해졌다.


붉은 흙 위로 핏자국이 번진다.

민광두는 치명상을 입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력도 없다. 죽음이 가깝다. 분노만 남았다.


“크흑··· 개자식들···”


일군의 무리가 민광두에게 다가온다. 배신자 집단. 그들은 한 손에 사람의 머리통을 하나씩 쥐고 있다.

맨 앞의 남자가 잘린 머리를 민광두의 눈앞에 들이민다.


“봐라. 네 동료들이다. 꼴이 어때? 한심하지? 이것이 버러지의 말로다.”


민광두가 어금니를 깨문다. 흰자위에 핏발이 선다. 동공이 흔들린다.

동료들.

저항군.

인류의 마지막 희망.

모두 참수당했다.

민광두가 소리쳤다.


“잔인한 놈. 살인자.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남자가 킬킬 웃었다.


“우리는 사람 아니야. 신이야.”


배신자 이재욱은 원래 인간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침공하고 각성자가 나타나고 창조주가 인류를 몰살시키려는 대혼란 상황에서도 인간은 서로 손을 잡고 위기에 대항했다. 당연히 이재욱도 인간의 편이었다.

검신 이재욱.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

인간에게는 구원자, 적에게는 학살자.


그러나 어느 순간 이재욱은 칼끝을 인간 쪽으로 돌리고 동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왜?

그가 말했다.


“나는 신이야. 정확히 말하면 곧 신이 된다. 약속 받았거든. 임무를 마치면 창조주가 나를 신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어. 나는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불멸의 존재가 된다. 마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고 올림포스에 입성한 헤라클레스처럼.”


헤라클레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된 남자.

이재욱은 영생을 원했다. 그는 인류를 배신하고 창조주에게 충성을 바쳐 더러운 이득을 취했다.


민광두가 침을 뱉었다.


“배신자 새끼.”


이재욱이 침 공격을 간단히 피했다.


“배신자라니. 나는 너희랑 같은 편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처음부터 나는 창조주의 충신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인간을 돕는 척했을 뿐이야.”

“그렇다면 너는 사기꾼이다.”

“속은 놈이 병신이지.”


이재욱이 비아냥거린 뒤 부하에게 지시했다.


“마리나. 이 놈의 머리통을 잘라서 제단에 올려라. 창조주께 바치겠다. 이것은 승리의 징표다.”

“예, 주군.”


글래머러스한 백인 여자가 길다란 톱을 민광두의 목덜미에 들이밀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잔인한 욕구가 드러났다. 그녀가 한 손으로 민광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고개 젖혀.”


민광두가 저항했다.


“으윽···”

“어서.”


그녀가 민광두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가발이 벗겨졌다.


- 훌렁


대머리가 드러났다.

여자가 놀랐다.


“헉!”


매끈한 두피, 황량한 두발, 쇠락한 모근.

모발 생육 불가능 지대.

민광두의 머리통은 극지방이었다.


이재욱이 폭소했다.


“크하하! 이 새끼 대머리잖아? 가발이었어. 으하하하하!”


부하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웃었다.


“겁나 매끈하네. 풀 한 포기 없어. 사막이야.”

“핵폭탄 맞았나? 머리카락이 멸종했잖아.”

“빛이 나네. 눈이 부셔.”

“어쩐지 싸우는 동안에도 머리카락이 안 흔들리더라니. 접착제로 붙였나 봐.”


조롱과 놀림이 이어졌다. 대머리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모욕이 날아들었다.

민광두는 바닥에 쓰러져 울분을 토했다.


“대머리가 죄야? 이렇게 태어난 걸 나보고 어쩌라고!”


대머리는 유전이다. 민광두의 아버지가 탈모 환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발에 힘이 없었고, 어른이 되자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마 확장.

1년에 3센티미터.

5년에 15센티미터.

막을 수 없었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어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탈모는 불치병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나고 각성자가 마나를 쓰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탈모 치료는 요원하다.


결국 민광두는 가발을 착용했다.

거금을 들여 커스텀 제품을 맞추었다.


그는 가발을 절대 벗지 않았다. 직장에서, 일상에서, 전쟁터에서도 가발을 착용했다. 가발은 그에게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민광두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심지어 민광두와 처절한 일전을 벌인 배신자 이재욱마저 상대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했다. 커스텀 가발의 위력이다.


그러나 비밀은 최후의 순간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때는 동료였던 배신자들이 민광두를 비웃었다.


“이 새끼 어쩐지 나이를 40살이나 처먹고도 혼자 지내더라니. 드디어 의문이 풀렸네. 대머리니까 결혼을 못하지. 어떤 여자가 대머리를 좋아하겠어?”

“대머리 최악이야. 같이 다니기 부끄러워.”

“가발 쓰고 결혼했다가 나중에 와이프한테 들키면 어떡해?”

“뭘 어떡해. 이혼이지. 사기결혼.”

“하하! 우리 보스를 사기꾼이라고 욕하더니 정작 사기는 본인이 치고 있었네. 에이, 더러운 대머리 사기꾼아.”


배신자 무리가 민광두의 머리에 침을 뱉었다.


“퉤!”


분노.

좌절.

수치심!

민광두가 절규했다.


“그만해! 차라리 나를 죽여라!”

“싫어. 조금 더 놀려먹고···”


순간, 검신 이재욱이 표정을 굳혔다. 그가 비아냥을 멈추고 긴장했다.


“뭐지? 이 대머리 자식이 기력을 회복하고 있어.”


민광두는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다. 회복은 불가능하다. 사지의 힘줄이 끊어졌고 관절은 모조리 부서졌다.


다른 부하가 서둘러 마나 측정기를 켰다.

그리고 경악했다.


“마··· 마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뭐야?”


이재욱이 마나 측정기를 빼앗아 직접 확인했다. 숫자가 계속 올라갔다.

두 자리.

세 자리.

네 자리.

민광두의 몸속에 마나가 미친듯이 쌓이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속도였다.


이재욱이 물었다.


“어째서?”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런 현상은 처음 봅니다.”


민광두가 원인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머리통이 달아오른다. 햇살이 뜨겁다. 6월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도로가 부서지고 자동차 운행이 중단되어 공기의 질이 개선되었다.

직사광선.

태양빛.

그것이 민광두의 두피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가 신음했다.


‘설마··· 내 재능은 태양광 흡수였나!’


각성자는 저마다 고유한 재능을 가진다. 어떤 각성자는 힘이 세고, 다른 각성자는 소화력이 빠르다. 어떤 재능은 전투에 적합하고, 어떤 재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민광두는 재능이 없었다.

무재능 각성자.

사실상 잉여.


때문에 민광두는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했다. 그런데도 중간 정도 수준에 겨우 다다랐다. 재능 없는 자의 한계다.


진실은 달랐다.

세간의 평가는 틀렸다.

민광두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태양에너지 흡수. 다만 그가 집밖에 나올 때마다 가발을 착용했기 때문에 재능이 발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가 탄식했다.


‘머리카락이 성장을 방해하다니. 나는 풍성 모발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는데!’


잘못된 인식.

대머리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배신자 이재욱이 민광두를 가리켰다.


“놀이는 끝났다. 이놈을 어서 죽여라. 시간을 끌면 우리가 위험해진다.”

“예, 주군.”


백인 여자가 민광두의 정수리를 톱으로 내리쳤다.


- 캉


그러나 톱은 돌덩이를 때린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튀어올랐다. 민광두의 머리통은 멀쩡했다. 자그마한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그··· 금강불괴!”


놀라웠다. 민광두의 대머리는 무적의 방어막이었다. 고작 태양광을 몇 분 흡수했는데 두피가 이토록 단단해졌다.


민광두가 후회했다.


‘애초에 가발을 쓰지 않았다면, 모자를 애용하지 않았다면, 대머리를 드러내고 다녔으면 나는 오늘 이토록 비참하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보다 못한 이재욱이 직접 나섰다. 그가 거대한 양손검을 높이 들어 민광두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 서걱


민광두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


“으헉!”


민광두가 눈을 떴다.

식은땀.

목덜미에 서리는 한기.


이상하다. 그는 분명 배신자의 칼에 죽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멀쩡히 살아있다. 심지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10년은 젊어 보인다.


미용사가 묻는다.


“어머, 손님. 피곤하신 모양이에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민광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다. 정면에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위로 가게 이름이 보인다.


[리얼모(毛)]

[진짜 같은 자신감]


기억났다.

이곳은 가발 제작 업체다. 그는 35살 생일에 커스텀 가발을 맞추었다. 여태까지는 부분 가발과 흑채로 버텼지만 탈모가 심해지면서 비밀을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웠다.

그가 한탄했다.


‘나를 위한 투자가 오히려 독이 될 줄이야.’


민광두가 가운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가발은 안 맞추겠습니다.”


직원이 당황했다.


“왜··· 왜요, 고객님? 저희 가발이 마음에 안 드세요? 다른 스타일도 많은데. 샤기컷, 댄디컷, 이재욱 컷도 있어요. 어떤 스타일이든 다 만들어 드려요.”


민광두가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민머리로 다닐 생각입니다.”

“정말요?”

“탈모는 죄가 아니니까요.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거리로 나왔다.

대낮이다. 햇살이 쨍쨍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행인들이 직사광선을 피한다. 양산, 모자, 손수건.


민광두는 민머리다.

대머리를 시원하게 드러냈다.

모자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섬세한 두피를 태양광에 직통으로 노출했다. 보기 드문 장면이다. 드넓은 이마가 빛을 반사한다.


사람들이 그를 보며 수군댄다.


“어머, 대머리야. 이마가 정수리에 붙었어.”

“안됐다. 젊어 보이는데.”

“여자친구 사귈 수 있을까?”

“끝났지. 어떤 여자가 대머리를 만나?”


민광두가 울컥했다.

하지만 사실이다. 대머리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 직접 경험했다. 민광두는 좋아하던 여자에게 대머리라는 이유로 뻥 차였다.

마음의 상처.

그 후로 민광두는 탈모를 더욱 필사적으로 숨겼다. 지독한 콤플렉스가 마음을 괴롭혔다.


이제는 아니다.

대머리가 부끄럽지 않다.

수치심은 그를 죽이지 못한다. 가발이 그를 죽인다.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다 민광두의 머리통을 가리킨다.


“엄마, 저거 봐. 아저씨 머리통이 반짝거려.”


아이 엄마가 기겁한다.


“이준아, 대머리 놀리는 거 아니야. 그럼 못 써.”

“안 놀려. 신기해서 그래.”

“그게 놀리는 거야. 대머리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 지 알아?”


그렇지 않다.

대머리는 겉모습에 불과하다. 사람의 됨됨이를 생김새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검신 이재욱은 미남에 근육질에 매너도 훌륭하지만 그의 본질은 배신자 사기꾼이다.


민광두가 초등학생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


아이가 놀라 달아났다.


“으아앙! 무서워!”


씁쓸.


상관없다. 그는 예전의 민광두가 아니다. 대머리를 감추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난과 업신여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강해질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복수를 위해.

배신자 이재욱을 처단하고 창조주를 쓰러뜨릴 것이다.


상태 메시지가 나타났다.


[태양광을 흡수합니다.]

[흡수 효율 50퍼센트···]


민광두가 시계를 보았다. 휴식시간이 끝났다. 직장으로 돌아갈 때다.

그가 인류연합방위부 한국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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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가 태양광을 흡수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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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마도 정벌(2) 24.08.09 56 5 12쪽
22 대마도 정벌(1) 24.08.08 63 4 12쪽
21 각성의 조건(3) 24.08.07 91 4 11쪽
20 각성의 조건(2) 24.08.06 92 4 13쪽
19 각성의 조건(1) 24.08.05 95 3 13쪽
18 진화의 원리(3) 24.08.04 103 3 14쪽
17 진화의 원리(2) 24.08.03 121 6 12쪽
16 진화의 원리(1) 24.08.02 129 7 12쪽
15 대머리가 음모를 숨김(3) 24.08.01 135 5 12쪽
14 대머리가 음모를 숨김(2) 24.07.31 145 7 13쪽
13 대머리가 음모를 숨김(1) +1 24.07.30 159 5 12쪽
12 태양의 후예(3) 24.07.29 154 6 13쪽
11 태양의 후예(2) 24.07.28 163 5 13쪽
10 태양의 후예(1) 24.07.27 168 6 14쪽
9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3) +1 24.07.26 182 8 13쪽
8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2) 24.07.25 191 5 13쪽
7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1) 24.07.24 211 7 14쪽
6 대머리의 힘(3) 24.07.23 228 8 12쪽
5 대머리의 힘(2) 24.07.22 232 8 12쪽
4 대머리의 힘(1) 24.07.21 264 10 11쪽
3 봉인 해제(3) 24.07.20 321 6 13쪽
2 봉인 해제(2) +1 24.07.19 359 8 13쪽
» 봉인 해제(1) +3 24.07.19 515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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