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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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허혜린이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얼른 위현룡을 소개하였다.
"이 분은 위대협이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고 이곳까지 당도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지요."
그제야 겸손해진 그들의 이목(耳目)이 위현룡에게 몰려들었다.
산발이 되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진흙과 피투성이로 남루해져 있는 제복.
그들에게는 위현룡이 전체적으로 그리 특출 나지도 않았고 비범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소개에 약간 당황한 위현룡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위현룡이라고 합니다."
"반갑소이다. 그런데 마교 출신은 아닌 듯한데...어디 출신이오?"
짐짓 미소를 띄우면서 유원학이 물어오자 위현룡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유원학은 모든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질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혜린이나 사검귀천 그리고 허운도 위현룡이 어느 문파 출신이며 마교 교주 허석문과는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홍후인이 위현룡의 입을 막고 나섰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위현룡은 당당한 음성으로 출신내력을 밝혔다.
어차피 단중이 오면 다 밝혀질 일인데 괜히 감추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청성파 출신입니다!"
[이런...말하지 말라니까!!]
"오! 청성파라면 교주와는 각별한 사이이신 원기종 장문의 문파로군! "
종덕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들은 위현룡이 명문 출신이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청성파에서 어느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오? 원장문인께서 직접 보내신 것이오?"
이번엔 곁에 있던 노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모든 사람의 눈이 위현룡의 입가로 고정되었다.
"전...청성파에서 일대제자 말단에 있습니다. 직책이라고 말씀하시니 소인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순간 위현룡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최소한 청성파 대사형은 되겠거니 했는데 일대제자, 그것도 말단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런 하찮은 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했다는 것이 내심 불쾌했는지 노진이 경멸의 기색을 내비쳤다.
이는 비단 노진 뿐만이 아니었다.
위현룡이 무슨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것으로 알았던 종덕휘와 유원학도 허탈하긴 마찬가지였다.
또한 유난히 자부심이 많은 사검귀천도 마교 중급무사에 지나지 않은 자에게 대협의 호칭까지 붙여가면서 대우했다고 생각되자 은근히 노기가 끓던 중이었다.
주위는 금세 썰렁한 냉기가 감돌았다.
허혜린은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오히려 위현룡을 난처하게 만들게 되자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위대협은 천하의 기재(奇才)세요. 아버님께서도 위대협을 아끼셨다고 들었구요."
그러나 그녀의 이런 옹호는 그저 한낱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허석문이 서열을 따지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내 앉은 거지와도 허물없이 대화하는 사람이 바로 허석문 아니던가.
[거봐라...내가 뭐라 했느냐...이런 작자들은 뻔하다니까...웬만한 자들은 자기들과 수준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늘 거들먹거리기나 하지...]
홍후인이 분통이 터졌는지 말을 마치자마자 대뜸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개뿔 실력도 없는 것들이!! 누굴 무시하는 거야!! 빌어먹을 자식들...!!]
위현룡은 그저 쓴웃음만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에게 인정이나 받겠다고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쓸쓸한 바람이 마음 한구석에 불어닥쳤지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주기 위해 애쓰는 허혜린을 보니 고마운 감정이 더 앞섰다.
한편 허운은 위현룡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일대 제자 말단에 위치한 사람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했단 말인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일전에 흑사린과 무서운 기세로 싸운 위현룡을 기억해냈다.
비록 무참히 패하긴 했지만 잠시동안 보여준 위현룡의 무학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만약 흑사린이 위현룡이 일대제자 말단인 것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에 아마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될 수도 있음이었다.
"자 그건 그렇고...단대인은 왜 이리 안 돌아오시는게요..."
종덕휘가 애써 썰렁한 분위기를 돌리려 했다.
"그러게 말이오. 이제 소교주도 도착하셨고 대천마교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어서 협철곡을 벗어나야 하는데...."
유원학이 근심스럽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아마도 단대인께서 소교주를 찾고 계신 모양이오.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노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위현룡을 제켜두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다.
"소교주! 막사 안으로 드셔서 잠시 쉬십시오."
이때 사검귀천이 위현룡과 허혜린을 떼어놓기 위해서 일부러 그녀를 불렀다.
소교주가 위현룡같은 미천한 작자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체면에 큰 손상이 간다고 믿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허헤린은 못 본 척 하고는 대신 위현룡에게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위대협..."
위현룡은 살짝 고개를 저으면서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자신이 하찮은 출신이기에 일어난 일이지 그녀와는 무관한 일에 불과했다.
사검귀천이 직접 다가와 허혜린을 반 강제로 막사 안으로 몰았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강하게 거부를 하려했으나 유원학을 비롯한 무림의 선배들 앞에서 감히 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저기...위대협...그럼 이따가 뵙겠어요."
허혜린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이끌려 막사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재수 없는 놈들....]
심사가 뒤틀어질 대로 뒤틀어진 홍후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잠시 후,
몇 명의 마교 무사들이 피투성이가 된 여섯 명을 데리고 왔다.
결박당하지 않은 것을 보아 포로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유원학이 묻자 피투성이가 된 그들이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목 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대협! 큰일났습니다! 단대인께서...."
"너희들은 단대인의 수하들이 아니더냐?"
그들의 복장을 보니 단중이 이끌던 무사들이 분명하였다.
"단대인께 변고가 생겼느냐?"
불안한 음성으로 유원학이 재차 물었다.
"적의 협살(挾殺)에 걸려 모두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그럼 단대인께서는 어찌 되셨느냐?"
"퇴각을 명하신 단대인께서 저희들과 함께 퇴로를 뚫었지만 아쉽게도 단대인의 생사를 모른 채 저희들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돌아왔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들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군중들은 그만 할말을 잃었다.
단중도 단중이지만 그가 이끄는 결사대가 300 여명인데 전멸을 당했다면 전력 상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분명했다.
"유대협! 단대인을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진이 흥분하여 소리치자 신중한 유원학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단대인을 구출하러 움직인다면 더 큰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단대인께서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이미 적들에게 당하셨을 확률이 큽니다."
"유대협! 그게 무슨 말씀이오! 어떻게 그런..."
노진이 언성을 높였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그에게 항의하지는 못했다.
비록 유원학이 그들보다 낮은 연배였지만 현재 무사들의 주축은 유원학이 이끄는 독자적인 세력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사실상 그들에게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마교를 위해 이만큼 도와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 누구도 유원학의 결정에 토를 달지 못했다.
어차피 허혜린은 무사하니 단중의 희생정도는 마교의 미래를 위해 묵인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들 있는 모양이었다.
"반드시 단대인을 구출하러 가셔야 합니다!"
무거운 침묵 속에 갑자기 위현룡이 돌을 던졌다.
유원학의 눈썹이 위로 치켜 떠졌다.
"넌 끼어 들지 말거라!"
"단대인은 교주님과 일평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그분이 마교를 위해 헌신하신 일이 태산 같은데 이렇게 내치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주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뭐라! 네 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지금은 목숨을 건 전투상황이다. 네 놈의 인정 때문에 수많은 무사들을 개죽음시킬 셈이더냐!"
유원학이 무섭게 호통을 쳤으나 위현룡은 물러나지 않았다.
"대협! 제게 50여명의 무사들만 내어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단대인을 구출해서 오겠습니다. 부디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위현룡이 애원조로 유원학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러나 유원학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시끄럽다!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아무리 교주와 친분이 있었더라 하더라도 네놈을 베어버릴 것이다!"
냉랭한 음성으로 위현룡에게 호통을 친 그는 곧바로 주위에다 대고 명을 내렸다.
"협철곡을 벗어난다! 모두 전투대열을 갖추어라!!"
"대협!! 반시진이면 족합니다."
"시끄럽다 하지 않았느냐!! 정녕 죽고 싶은게냐!!"
유원학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위현룡을 힘껏 밀치며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그때 위현룡이 두 팔을 쫙 벌리고 완력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헉! 이 놈아! 너 미쳤냐! 이미 죽었을 텐데 왜 자꾸 단중에게 미련을 두는 거냐! 그냥 놔두고 어서 가자! 이러다가 다 죽는단 말이다!]
단중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홍후인이 위현룡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러나 위현룡은 요지부동이었다.
"단대인을 사지(死地)에 남겨놓고는 절대로 갈 수 없습니다!!"
"이 놈이!!"
유원학은 별 대수롭지도 않은 놈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분기탱천하여 검을 뽑아들었다.
노진과 종덕휘는 위현룡의 무례함이 심하게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유원학의 편을 들지는 않았다. 그들도 단중을 구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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