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29>
적들의 수가 압도적인지라 금세 그녀의 모습은 적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싸움의 시작일 뿐이다.
아무리 초반에 기선을 잡았다고 해도 필승을 장담할 상황은 아니라고 위현룡은 생각했다.
내력을 끌어 올려보니 겨우 귀혼내력 1할만 남겨져있었다.
(이걸로 귀혼검법을 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력은 약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청성파 검법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겠구나. 어차피 적들이 일개 무사인지라 청성파 검법으로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위현룡은 앞으로 한발자국 내디뎠다.
그때 잔악무도한 사검귀천을 피해 튕겨 나오던 십여 명의 등천대 무사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허운과 위현룡을 발견했다.
어차피 싸울 것이라면 좀 더 안전한 위현룡과 허운이 낫겠다 싶었던지 ‘얼씨구나’ 하고 개떼처럼 달려왔다.
이미 만반의 태세를 갖춘 위현룡이었다.
“참모께서는 제 뒤로 오장이상 물러나 계십시오!”
“알겠소! 위대협! 조심하십시오!”
허운은 곁에 있으면 방해될까 두려워 황급히 뒤쪽으로 달렸다.
“이 놈! 죽어라!!”
등천대 무사중 먼저 도착한 한 명이 겁도 없이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일검을 피하면서 위현룡은 앞으로 돌진하듯 검을 휘둘렀다.
쾌속 무비한 검광이 번뜩이자 달려들던 무사는 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혈색이 하얗게 되며 얼른 도망 나갔다.
그 기회를 잡고 위현룡은 청성파 검법 특유의 몰아치기로 미친 듯이 달려드는 등천대 무사들을 공격하여 기세를 꺾었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몸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위현룡은 훌륭하게 공방을 전개하고 있었다.
흑사린에게 적중된 다리의 상처는 그의 불가사의한 회복능력으로 인해 거의 다 아물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약간 다리가 절뚝거린다는 불편함 빼고는 그 어떠한 통증도 수반되지 않고 있었다.
사방으로 들어오는 무기들을 검으로 힘겹게 퉁겨내면서 위현룡은 뒤로 보법을 전개했다.
밀집된 적들의 공세를 피해 좀 더 효과적인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하려는 심산이었다.
쩔뚝거리는 그의 자세를 본 등천대 무사들은 주춤하다가 다시 살기를 내뿜고 달려들었다.
어느새 몰려든 적의 수는 오십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적으로 크게 불리했지만 위현룡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가 휘두르는 검법이 비록 이대제자들이나 익히는 중급검법중 하나였으나, 귀혼검법을 익히고, 몇 차례 강적들과 가진 전투경험은 그런 약점을 충분히 보완해주고도 남았다.
등천대 무사들은 심한 부상을 입은 자가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공세를 높여오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손쉬운 상대를 찾아 왔더니만 위현룡의 실력 또한 사검귀천에 버금갔던 것이었다.
“으악! 나 죽는다!!!”
한 놈이 위현룡의 검공(劍攻)에 다리를 베어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평생 태어나서 검을 처음 맞아본 녀석이었던지, 곧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보기에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그의 과장된 모습에 공격하던 놈들은 순간적인 두려움을 느끼면서 주춤거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위현룡은 앞으로 전진하면서 파상적으로 공격을 퍼부어 댔다.
“으엌”
순식간에 몇 놈이 검상을 입고 나가자빠지자 놀란 적들은 더욱 움츠러들였다.
한편 멀찍이 거리를 두고 등천대를 독려하던 이철은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열심히 공격하고는 있지만 허혜린이나 사검귀천, 거기다가 부상당한 놈에게까지 어디 한군데 승세가 보이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쓸데없이 머릿수만 많을 뿐이었다.
“빌어먹을...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초반부터 기가 꺾인 상태였으니 제대로 된 싸움이 이뤄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철은 월등한 숫자만 믿고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제야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보았음을 안 이철은 대검을 굳게 쥐고 등천대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있는 사검귀천에게 접근해갔다.
(내력이 얼마 없을 텐 데도 잘도 싸우네. 역시 사검귀천이로군...)
겨우 7명에게 등천대가 박살났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대천마교 내에서 망신살이 뻗칠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실력도 없는 위인이 교주의 눈에 들어 한자리 꿰찼다고 수군거리고 있는 터에 이런 식으로 속절없이 져버리면 뒷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소름이 쫙 끼칠 지경이지 않은가.
“사검귀천!! 어디 한번 실력 좀 봅시다!!”
사검귀천에 대한 두려움보다 대천마교에서 당할 망신이 훨씬 부담스러웠다.
그렇기에 용기를 낸 이철은 대범하게도 사검귀천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어디 네 놈 따위가!!”
열 받은 사검귀천중 한 명이 대뜸 검을 휘두르면서 섬광처럼 돌진해왔다.
“쨍!”
이철의 대검과 사검귀천의 검이 무서운 금속성을 내면서 충돌했다.
“으랏차!”
두 개의 무기가 맞붙는 순간 이철은 온 힘을 다하여 앞으로 밀어붙였다.
힘이라면 적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신력(神力)의 소유자인 이철이다.
그렇기에 그의 대검의 기세는 사검귀천의 검을 밀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치고 내력까지 고갈되어가던 사검귀천은 단번에 뒤로 튕겨 나갔다.
“어라?”
이철은 두렵던 사검귀천이 한방에 뒤로 밀리자 쾌재를 부르면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대기를 무섭게 가르면서 움직이는 그의 대검 앞에 사검귀천은 검으로 막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뒤로 피하기만 했다.
힘차게 가르는 그의 대검을 내력도 없이 막았다가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이 뻔했다.
“하하하! 이거 막상 붙어보니 사검귀천도 별거 아니었구료!”
더욱 기가 산 이철은 이러하다 사검귀천과 소교주를 모두 잡아 큰 공을 세우는 것은 아닐까하는 흐뭇한 일몽(一夢)까지 꾸게 되었다.
“왜 그리 도망만 가시오! 어서 덤벼보라니까!”
이십여 초를 연달아 휘두를 동안 사검귀천은 패색이 짙어졌다.
그러자 다른 사검귀천 한 명이 득달같이 달려와 측면에서 기습공격을 해왔다.
“이런 한 명씩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오!!“
“‘정정당당’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내가 기력을 되찾으면 그때 네 놈이 원하는 정정당당하게 싸워주마!“
두 명의 사검귀천이 협공을 개시하면서 이철의 공세를 무너트리려 했다.
그러나 팔팔한 이철이 이 정도로 패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이철의 무위가 사검귀천아래라 할지라도 그는 대천마교에서 인정한 고수 중 하나였고 등천대를 맡고 있는 자(者)였다.
“정말 화나게 하는거요!”
사검귀천의 명성 때문에 잔뜩 쫄아있던 그가 투지(鬪志)에 슬슬 불이 붙이고 있었다.
큰 대검을 풍차처럼 돌리던 그는 방금 전보다 더욱 거칠고 웅장한 검법으로 응수해왔다.
제 실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 명은 그런 상태로 오십여초를 피 튀기듯 싸웠다.
백중지세(伯仲之勢).
하지만 사검귀천의 기력은 점점 빠져나가는데 비해 이철은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보다못한 한 명의 사검귀천이 더 가세했다.
“으하하! 사검귀천의 명성도 오늘로써 끝이오!!”
이철은 모두가 두려워하던 사검귀천 중 세 명과 붙어 대등하게 싸웠다는 것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만일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주기만 한다면 무림에서 자신의 명성은 드높게 솟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행복한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 명의 사검귀천이 벌이는 일제공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막강했던 것이다.
아까 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찔러오는 검들을 허둥거리며 막고 피하던 이철의 전신에서는 진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사검귀천은 속전속결하지 않을 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이철이 사검귀천과 대등하게 접전하는 것을 본 등천대 무사들의 사기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고, 이렇게 되면 승리하기는커녕 고스란히 몰살당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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