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가군
2만의 진군(秦軍)이 칠흑 같은 야음을 타서 통천산으로 향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사마앙은 병력을 이끌고 진군의 배후를 뒤쫓았다.
놈들의 목적은 호관(壺關)이다.
태행산맥(太行山脈)의 험준한 산세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관문인 호관이 진군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면 한단(邯鄲)이 위험해질 터였다.
진나라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전술이 바로 저돌적인 기동전이다. 그렇기에 사마앙은 전군에 강행군을 명령하면서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공격하라! 진나라 놈들의 후미가 보인다!”
밤늦게 쥐새끼처럼 이동했던 진나라 군세의 후미가 보였다.
그를 포착한 사마앙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진나라의 쥐새끼들을 급습했다.
“조, 조나라의 군대다!”
“퇴각하라! 어서 퇴각하라!”
수개월 만에 급조된 병단답게 공세가 시작되자마자 등을 보이면서 달아났다. 구차한 절박함을 보여주듯 군기와 병장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진나라 병사들도 보였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진나라에서 무명의 장수가 나섰다지만 이토록 무력할 줄이야.
순식간에 전열이 와해된 진나라 병력은 통천산의 험준한 산기슭으로 향했다. 산토끼들을 뒤쫓는 사냥꾼의 심정을 느낀 사마앙이 온몸을 들썩이면서 소리쳤다.
“쫓아라! 조나라의 강산을 침범한 진나라 도적들을 모두 죽여라!!”
천하를 약탈했던 진나라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천벌을 내려줄 때였다. 골방에서 경전이나 읊던 조나라 귀족은 엉성한 모습으로 칼자루를 뽑으면서 공세를 부르짖었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적들의 후미를 뒤쫓으면서 으슥한 산기슭으로 향했다.
그렇게 후군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진입했을 때,
“놈들이 매복에 걸려들었다!”
“화살을 쏴라! 통나무를 굴리고 바위를 던져라!”
촤아아악-.
높은 산기슭 위에 일제히 진나라의 검은색 깃발들이 출현했다.
사마앙은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본인이 비열한 유인책에 그대로 걸려들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함정이다.
거짓퇴각으로 유인한 것이다.
“조나라의 적장은 목을 내밀어라!”
“흐하핫! 과연 조나라 놈들은 어리석군!”
포자현(蒲子縣) 방면과 영안현(永安縣) 방면에서 진군의 별동대가 급습했다. 또한 배후에서 진나라의 새로운 군세가 출현하면서 퇴로를 틀어막았다.
삼면이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또한 산기슭 위에선 바위와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커헉!”
“지, 진나라 놈들···! 크아악!”
한신 휘하의 병력은 오로지 전술이동에 특화된 병단이다. 적들을 책략으로 무너트리기 위해선 전광석화처럼 재빠른 진형의 변화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내 책략이라면 반드시 적들을 궤멸시킬 수 있다.
그런 광적인 확신이 있었기에 수개월 동안 전술이동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확신은 실전을 통해 증명되었다.
덫에 걸려든 조나라의 2만 병력은 어린아이처럼 너무도 무력하게 쓰러졌다.
“나, 나를 죽여라! 네놈들에게 치욕을 당할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
한신의 전술은 사나운 맹수를 단숨에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리는 올가미와 같았다. 전술에 걸려든 시점에서부터 조나라는 일말의 승산조차 빼앗긴 셈이다.
1만의 병력을 죽이고 나머지 반절의 장졸들은 생포했다.
사마앙을 비롯하여 조나라의 부장들은 포로로 붙잡히는 굴욕을 겪게 되었다. 한신에게 끌려나온 사마앙은 이를 빠득 갈면서 격노를 토해냈다.
“장군, 빈집이던 태원을 점령했습니다.”
“수고했네.”
한신의 명령으로 하서(河西)에서 매복하던 2천의 기동대는 사마앙이 통천산으로 이동하자마자 최소한의 병력만이 주둔하던 태원(太原)을 점령했다.
병력을 모두 상실하고 주둔지마저 빼앗겼다.
사마앙은 온몸에 힘이 풀렸는지 툴썩 주저앉았다.
“태원에서 입수한 그대의 인수를 이용해서 호관에 주둔하는 병력에게 지원군을 요청할 생각일세. 그러면 조나라의 병력은 바로 호관을 비우겠지. 지원군으로 차출된 호관의 병력을 제압하고 관문을 점령할 것이네.”
“끝까지 교활한 놈이로군! 정정당당하게 싸울 배포는 없는 게냐!!”
“전쟁에서 정당함을 찾다니, 조나라의 별장께선 참으로 정의로운 충의지사구려.”
“크아악!!”
전술의 기본은 적들을 교란하는 속임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신의 전술은 더없이 훌륭했다.
전장에서 사로잡은 조나라의 포로들을 하서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한신은 군세를 이끌고서 사마앙의 2만 병력이 주둔했던 태원의 둔영에 입성했다.
다급하게 출진했음을 보여주듯 군량과 물자들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었다. 승전을 거둔 진나라 장졸들은 태원을 차지하면서 승자의 권리를 누렸다.
“조나라 놈들이 올가미에 걸려들었습니다. 별동대가 호관의 병력을 단번에 제압하고 빈집이나 다름없던 관문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설마 그토록 자신하던 사마앙이 반나절도 안 되어 패장으로 전락했을 줄은 몰랐겠지. 거짓서한이 아주 훌륭하게 통했구려.”
한신 휘하의 병단은 노역장에서 징발한 6국 출신의 역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조나라 출신의 무관들을 파견하여 사마앙이 보낸 전령으로 위장시켰다.
별장(別將)의 인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나라 출신임을 증명하듯 북방의 방언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관문을 수비하던 조나라 장졸들이 포로로 붙잡히고 호관이 점령되었다. 태행산맥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진나라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다.
사마앙의 2만 병력이 궤멸되었다.
또한 태원이 함락되고 호관마저 빼앗기는 절멸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지금쯤 조나라 왕실과 조정은 연이은 패전에 기절초풍하고 있으리라. 조나라의 서부를 관할하는 태원군(太原郡)이 2만에 불과한 병력에게 무너지는 치욕적인 참패가 벌어졌으니.
“호관을 통과해서 한단을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호관은 적들의 주력부대를 묶어두고자 잠시 점령했을 뿐이다. 우리들은 이대로 말머리를 돌려서 북쪽으로 간다.”
조나라의 주력부대는 수도 한단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다. 호관을 통과하여 한단을 공격한다는 것은 사나운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부터 집어넣는 격이었다.
호관은 대장군(大將軍) 무신의 주력부대를 묶어두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아군이 태행산맥을 통과하는 관문을 점령하였으니 한단을 수비하는 주력부대는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을 터.
북쪽으로 우회하여 요충지인 거록(鉅鹿)을 공격한다.
한신의 명령에 무관들은 군례를 취하면서 받들었다.
“절대 적들이 원하는 싸움을 해선 안 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속임수로 적들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이 바로 내가 중요시하는 전술이다.”
아군이 거록을 공략하고자 북쪽으로 이동하면 적들도 움직이겠지. 거록에 도달하기 이전에 증간지점에서 조우하여 회전을 치르게 되리라.
정형(井陘).
면만수(綿曼水)를 중심으로 양분되는 지역에서 진나라와 조나라가 맞붙게 될 터였다.
* * *
거병의 동지였던 오광을 잃고 주력부대마저 한순간에 증발했다.
진승은 심복들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생존하여 본거지였던 진성(陳城)으로 돌아왔다.
“전장에서 안타깝게 패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소. 장군께서 빠르게 재기할 수 있도록 우리 항가군이 무엇이든 돕겠소이다.”
“······.”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왔지만 현실은 더욱 비참했다.
초(楚) 회왕(懷王)의 신병을 빼앗겼다.
또한 진성에 주둔하던 장졸들도 이미 항가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였다.
그동안 비축해둔 물자들까지 항가군에게 넘어가면서 진승은 한순간에 주인에서 손님으로 신분이 전도되는 비참한 치욕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장에서 죽었어야 했다.
오광과 함께 죽었더라면 반진(反秦)의 두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을 터인데.
진승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백발을 늘어트린 교활한 늙은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항가군의 참모였던 범증이 허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진승 장군께서 형제들과 함께 진나라를 대적했던 궐기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소이다. 지금부터는 항가군이 진승 장군과 형제들의 대의를 계승하여 진나라의 폭정에 맞설 것이오.”
“···이제 나는 필요가 없다는 말이구려.”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그동안 용맹하게 싸운 진승 장군을 삼공에 임명하겠다는 대왕의 교서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 초나라의 조정에서 직분을 다해주십시오.”
“하하···! 대왕께서 이 무지렁이를 삼공으로 임명하셨단 말인가.”
삼공(三公)의 벼슬은 거지에게 적선해주듯 던져준 감투에 불과했다.
병력과 물자를 모두 빼앗겼다.
심지어 패공(沛公) 유방을 비롯하여 산하를 자처했던 두령들도 항가군에 붙어버렸다.
폭정에 저항했던 민중봉기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금부터는 진나라에 맞서 초나라를 부활시키기 위한 부흥전쟁이 시작되리라.
이세황제 부소에게 대패하여 지지기반을 상실한 진승은 시대에 낙오된 퇴물에 불과했다. 이세황제가 즉위하면서 시작된 민중봉기의 몰락은 항가군의 등장으로 완전히 가라앉게 되었다.
“분통하겠지만 어쩌겠소. 지위를 지키고 싶었다면 진나라 놈들에게 이겼어야지.”
“큭!”
초나라의 용장이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다가왔다.
숨이 막힌다.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포악한 맹수처럼 보였다.
그동안 진나라를 대적하면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던 민중봉기의 두령이지만 항우를 마주하자마자 침음을 삼키면서 물러섰다. 7척에 달하는 체격에서 발산되는 사나운 전의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온몸을 파고드는 듯했기 때문이다.
“항우 장군, 진승 장군께선 반진의 상징이십니다. 또한 6국의 은인이시지요. 마땅한 예우를 갖추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여전히 민중봉기의 선두주자이자 반진의 상징으로서 관동의 백성들에게 추앙받고 있었다. 만약 어떠한 이용가치도 없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겠지.
나는 한낱 허수아비일 뿐이다.
그동안 사력을 다해 싸웠던 형제들의 희생이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진승은 들끓는 울분을 억누르면서 바깥으로 나섰다.
처절하게 몰락해버린 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항우는 코웃음을 쳤다.
“도적떼들을 잡으면서 기세등등해진 진나라 놈들의 콧대를 부러트려야지요. 포악과 폭정을 일삼았던 진나라는 지금부터 초나라의 복수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팽성으로 천도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무신군께서 새로운 초나라의 기틀을 쌓으실 겁니다.”
초나라 회왕은 항가군의 우두머리이자 반진의 새로운 실세로 등극한 항량을 무신군(武信君)으로 책봉하고 진승의 관직이었던 대장군(大將軍)에 제수했다.
또한 항씨 가문의 고향인 팽성(彭城)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진승과 오광의 민중봉기가 몰락하고 항씨 가문의 반진 전쟁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세황제 부소는 함양으로 귀환하자마자 형양대전의 대승을 선언함과 동시에 관동을 포위하던 장수들에게 전령을 보냈다. 불세출의 용력을 자랑하는 초나라의 사나운 괴물을 경계하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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