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차 님의 서재입니다.

진시황의 아들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설차
작품등록일 :
2024.07.16 15:48
최근연재일 :
2024.09.16 18:0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708,854
추천수 :
20,086
글자수 :
286,232
유료 전환 : 1일 남음

작성
24.08.17 15:00
조회
14,027
추천
430
글자
12쪽

사람을 쓰는 것도, 버리는 것도.

DUMMY

자결(自決)이 아닌 빈형(臏刑)으로 형벌이 번복되었다.


이해할 수 없다.

법가를 숭상하는 진나라가 판결을 뒤집는단 말인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명정대하게 집행되는 것이 바로 법이다. 판결을 번복해버린 황제의 행동은 본인이 반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법가의 엄중함을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폐하께옵선 어느 누구도 출입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사옵니다.”

“···알았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할 수 없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황제는 법가의 사상을 고수하고자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잔인무도한 폭군이다. 황실을 기만하고 조정을 어지럽힌 늙은 환관의 목숨을 살리겠답시고 내놓은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궁인들의 저지로 인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

승상(丞相) 이사를 비롯하여 조정대신들의 알현까지 거절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돌변해버린 황제의 행동에 여러 풍문들이 나돌았다. 전국순행을 끝내고 돌아온 황제가 갑자기 미쳐버렸다는 해괴한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진짜 미쳐버렸나? 시황제는 말년에 광증을 극심하게 앓았다고 했지. 수은을 장기간 복용하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증상까지 앓았다던데···.’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진 상태에서 전국순행을 강행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순행 도중에 한나라 출신의 자객들에게 급습을 받았으며, 맏아들을 시해하려 했던 조고의 대역무도한 만행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독한 병마가 온몸을 갉아먹은 상태였다.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은리.”

“공자님!”


전국순행에 동행했던 궁녀들 중 한 명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은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름을 부르자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달려왔다.


“소, 소식 들었어요! 중거부령 조고의 다리를 완전히 분질러버리셨다고···!”

“아주 깔끔하게 뭉개버렸지.”


무릎의 연골을 잘라내는 정도로 끝내버리기엔 너무 자비롭지 않은가. 그래서 모래포대들을 가득 쌓아올린 수레를 이용하여 두 다리를 으깨버렸다.


수레바퀴에 짓뭉개진 늙은 환관의 두 다리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어육으로 전락했다.


두 번 다시 자력으로 일어날 수 없겠지.


죽을 때까지 노복들의 부축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설마··· 죽은 건 아니죠?”

“안타깝게도 목숨은 제대로 붙어있어. 무릎이 완전히 박살났을 텐데 말이지.”


황족들의 의료를 담당하는 태의령(太醫令)이 치료에 투입되었다. 부인 호씨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하자 새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조고를 치료하던 태의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소의 모친인 황후 미씨가 사망한 이후부터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면서 궁궐의 안주인 노릇을 했다고 들었다. 세숫물이나 나르던 궁녀 출신이 대단하기도 하지.


“이제 호해 공자와 호부인이 후계구도를 침범할 일은 없겠네요.”

“조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테니까.”

“정말 축하드려요! 모두 공자님께서 활약한 덕분이에요!”

“새삼스럽게.”


태자에 책봉될 날이 머지않았다.


모든 조정대신들이 부소가 어서 태자에 책봉되길 바라고 있었다.


황제가 위독하다는 소문이 확산되자 조정에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르다. 황제를 방관한 채로 후계구도를 함부로 논의하는 것은 대역죄였으므로 조정대신들은 되도록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궁녀들한테 연서도 받았다면서? 지난번에는 무관들에게 연서를 받지 않았나?”

“다, 다들 장난치는 거라고요!”


절세의 미녀처럼 아름다운 곱상한 환관은 여심과 남심을 동시에 사로집는 마성을 자랑했다.


사랑에 빠진 궁녀에게 연서를 받았다.

심지어 의미심장한 표정의 무관에게 연서를 받기도 했다.


어째서 황제의 적장자인 나에게는 한 통도 오지 않는 걸까.


부소는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는 은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쓰읍, 아무리 봐도 여자잖아. 하필이면 환관이라서 헷갈린단 말이야. 관모를 내리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면 연화 누님만큼 아름다운 미녀일 텐데.’


늘씬한 허리를 끌어안았을 때 느꼈던 감촉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

촉촉한 입술과 후각을 자극하는 달콤한 체취.


궁녀와 무관들이 은리의 아름다운 용모에 현혹되는 것은 당연했다.


남장여자 환관이더라도 큰일이지만 진짜 환관이라도 큰일이다. 그야말로 생사불문의 고양이가 담긴 상자를 바라보는 꼴이었다.


“너 설마··· 진짜 여자는 아니지?”

“글쎄요? 공자님께서 태자에 책봉되시면 알려드릴게요.”

“치사하기는. 너 지금 협박하냐?”

“그럴 리가요.”


심연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은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짓궂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무거운 수레바퀴에 두 다리가 으스러졌음에도 조고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강한 원념이 작용한 것일까.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가쁜 숨소리를 내뱉으면서 두 눈을 번뜩였다.


‘반드시, 복수해주마···! 방연에게 복수했던 손빈처럼 반드시 기사회생에 성공할 것이다···!’


두 다리를 잃었다.


무릎이 완전히 으스러지면서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만약 호씨가 태의령을 부르지 않았다면 현장에서 비명횡사했겠지. 가까스로 살아남은 조고는 자신에게 일생일대의 굴욕을 안긴 부소를 떠올리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어서 하명하십시오! 소장이 결사대를 이끌고 황제와 부소를 모두 죽이겠사옵니다!”


근위대 병력을 동원한다면 단숨에 황제와 부소를 죽이고 안읍(安邑)을 장악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의 병력을 불러들여 함양을 점거해버리면 거사에 성공할 수 있을 터였다.


비장(飛將) 염락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조고는 가쁜 호흡을 내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아직 때가 아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기다려라. 언젠가 기회가, 올 터이니.”


염락은 진나라의 장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용력을 자랑하는 맹장이다. 일전에 포섭해둔 근위대 병력을 동원하여 황제의 처소를 급습한다면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 모반은 실패로 끝나게 될 터였다.


중랑장(中郞將) 몽의가 밤낮으로 황제의 처소를 호위하고 있다. 수백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급습을 가하더라도 바로 몽의에게 진압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스, 스승님! 이게 대체··· 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비대한 몸집의 청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호해였다.


지금까지 온갖 곤욕을 치르는 동안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비겁하면서 비열하다.

본인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겠지.


염락은 뻔뻔한 철면피를 자랑하는 호해의 모습에 조용히 칼자루를 거머쥐었다. 그러자 조고가 힘겹게 손아귀를 뻗으면서 염락을 만류했다.


“호부인께서 간청하신 덕분에 불초의 목숨을 구했사옵니다. 몸을 추스르거든 부인에게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비록 두 다리를 잃었지만 부소를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공자께선 호부인과 함께 후일을 기약하십시오. 며칠 내로 연통을 보내겠사옵니다.”

“스, 스승님만··· 미, 믿을 뿐입니다···.”


저런 우둔한 머저리를 이세황제로 옹립하기 위해 두 다리를 잃었단 말인가?


깊은 모멸과 회의감이 맴돌았다.


새로운 탕약을 마신 조고는 염락의 부축을 받으면서 잠시 상체를 일으켰다.


“설마 황제가 호부인의 간청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습니다. 자결을 명령했던 판결을 결국 번복하지 않았사옵니까? 아니면 반평생을 보필한 어르신에게 일말의 자비라도 베풀려는···.”

“황제에게 인간의 마음이 남아있을 성 싶으냐.”


늙은 환관이 입가를 비틀면서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손톱을 잘근 깨물면서 심사숙고에 빠졌다.


“계집의 우는 소리에 황명을 뒤엎을 황제가 아니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이사를 불러들여 자결을 선고했으면서···!”

“······.”


자비? 인정?


그따위 나약한 것들은 황제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법가의 극단적인 사상을 맹신하여 수십만 명에 달하는 생명들을 짓밟은 도살자였다. 토목공사와 군역을 남발하면서 천하를 도탄에 빠트렸던 폭군이 갑자기 선량한 도덕군자가 되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속셈이냐.


선의의 자비가 이토록 두려울 수 있다니.


조고는 폐부를 움켜쥐는 의문을 곱씹으면서 손아귀를 벌벌 떨었다.



* * *



황제가 광증을 일으켰다.


아니다.

황제는 지금 불치병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불안감을 느낀 조정대신들이 온갖 불손한 유언비어를 떠들어댔다. 황제의 호위를 전담하는 몽의는 밤낮으로 처소를 호위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중랑장, 폐하께서 찾으시옵니다.”

“알겠네.”


인시(寅時)가 되었을까.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 기별이 전해졌다.


황제의 부름을 받은 몽의는 궁인을 뒤따르면서 처소에 들어섰다. 혹시라도 세간의 유언비어처럼 황제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을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함양으로 환궁하자마자 병력을 소집하라. 조고의 일파를 모조리 쓸어버려야겠다.”

“예···?”


목숨만큼은 부지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준 조고를 죽이겠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대로 자결을 종용하는 편이 수월했을 텐데.


몽의는 황명을 받들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도처에서 암약하던 중거부령의 심복들이 모두 함양으로 집결할 걸세.”

“하지만 부소 공자의 암살시도에 연루된 범인들은 모두 붙잡히지 않았나? 게다가 국문장에 압송된 조고가 독무대의 불순분자들을 체포했다는 말을 했을 텐데.”


처소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문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더니 폐하의 처소에 있었나. 몽의는 이사의 말에 대답하면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설마 중랑장은 중거부령이 본인의 혐의를 이실직고했다고 생각하는가? 국문에 회부된 죄인들은 한낱 하수인에 불과하네. 중거부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번견들은 여전히 건재하지.”

“더러운 역적 같으니라고···! 모두 위장이었단 말인가!”


혐오스러운 생김새의 벌레들이 한꺼번에 우글대는 광경을 본 듯한 모멸감이 솟구쳤다.


이를 빠득 갈면서 손아귀를 거머쥐었다.


“중랑장은 죽간에 적힌 이름들을 모두 살펴보라.”

“알겠사옵니다.”


조고와 긴밀하게 연관된 인물들의 이름이 죽간에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살생부(殺生簿).

시황제가 몽의에게 건넨 죽간은 숙청대상의 명단이었다.


살생부에 기록된 인물들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사에게 명령하여 만반의 준비를 이어왔음을 보여주듯 관직과 함께 출신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중랑장은 그대로 시행하라.”

“폐, 폐하! 하지만 이 명단에···!”


중거부령 조고.

비장 염락.


그리고 부인 호씨와 호해의 이름이 살생부의 명단에 존재했다.


총애하는 후궁과 아들까지도 숙청하실 생각이란 말인가. 극단적인 숙청을 계획하고 있는 황제의 모습에 몽의는 살생부를 거머쥔 채로 두려움을 내비쳤다.


“어젯밤에 비로소 확신했네···. 호희와 호해를 내버려두면 황실의 후환으로 남을 게야. 부소가 태자에 책봉되고 이세황제에 즉위하더라도 끝까지 야심을 버리지 못하겠지.”

“폐, 폐하! 그럼 호부인의 간청을 들어주신 것은···!”


조고의 일파를 숙청하면서 호부인과 호해까지 교살(矯殺)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조고의 심복들을 기만하기 위한 속임수이기도 했다.


황제의 진의를 마침내 깨달은 몽의는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두렵다.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셨단 말인가.


적장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기 전에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려 한다. 이세황제에게 악명을 이어지지 않도록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원죄마저 본인이 짊어지려는 것이었다.


“쿨럭, 쿨럭-!!”


황제가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자 울컥,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쏟아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진시황의 아들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석 연재계획 + 유료화 공지 +6 24.09.15 750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20 24.09.09 908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안내(8월 31일) +2 24.08.31 1,237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안내. +1 24.08.03 17,135 0 -
53 몽필은지(蒙筆殷紙) +19 24.09.16 5,407 278 12쪽
52 한신, 배수진을 펼치다. +30 24.09.15 7,071 292 14쪽
51 항가군 +26 24.09.13 8,356 316 11쪽
50 민중봉기의 쇠락 +26 24.09.12 8,733 320 12쪽
49 삼천(三川)이 피로 물들다. +34 24.09.11 9,155 348 11쪽
48 황제 무쌍 +49 24.09.10 9,441 352 12쪽
47 형양대전의 서막이 오르다 +25 24.09.09 9,751 331 13쪽
46 황제가 친정하다 +24 24.09.07 10,550 361 12쪽
45 양손의 꽃 +26 24.09.06 10,689 360 12쪽
44 6국의 부활 +35 24.09.05 10,883 384 11쪽
43 사면령 선포 +35 24.09.04 11,179 373 12쪽
42 이세황제 즉위 +29 24.09.02 11,731 399 12쪽
41 6국 최대의 적 +20 24.09.01 11,973 375 13쪽
40 멸진흥초(滅秦興楚) +36 24.08.31 12,269 394 12쪽
39 대리청정 +26 24.08.29 13,036 429 11쪽
38 폭풍은 또 다른 폭풍으로 +40 24.08.28 13,297 397 12쪽
37 평온한 죽음 +29 24.08.27 13,545 415 12쪽
36 교차점 +29 24.08.26 13,879 439 11쪽
35 인과응보 +23 24.08.25 13,659 427 12쪽
34 재회 +21 24.08.23 13,821 411 12쪽
33 역풍 +24 24.08.22 13,428 398 11쪽
32 폭풍이 함양을 휩쓸다 +22 24.08.21 13,658 398 12쪽
31 폭풍전야 +20 24.08.20 13,676 389 12쪽
30 떠나기 전에 +26 24.08.18 13,951 415 12쪽
» 사람을 쓰는 것도, 버리는 것도. +38 24.08.17 14,028 430 12쪽
28 집행 +47 24.08.16 13,814 38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