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후세에 전공이나 실력이 과장된 장수들과는 달라서 항우의 경우는 오히려
평가절하와 깎아내리기를 많이 당했습니다.
항우에 대한 기록은 초한쟁패기가 끝나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계승한 통일제국으로
기반이 굳어진 후에 한나라의 사관들이 기록한 것들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고려시대의 만인적 척준경의 경우 그 어처구니없는 무력과 전공이 간신 이자겸을 도와
고려왕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서 사정없이 욕을 쳐먹고
평가절하당해서 기록 자체가 부실합니다. 물론 그 마지못해 기록한 내용만 봐도 이새끼가
인간 맞냐는 소리가 나오긴 합니다.
항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을 몇번이나 죽일 뻔하고 유방을
따르던 신하들과 병사들, 그리고 백성들까지 수없이 죽이고 학살해댄 철천지원수인 항우가
과연 한나라 사관들에게 어떻게 취급당했을지 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었던 한나라 사관들조차도 도저히 평가절하를
하지 못하고 싫어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게 항우의 무력입니다.
중국역사 2500년을 통틀어서 "역발산 기개세"라는 호칭이 붙은 인간이 오직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무력과 통솔력만 최종보스급일 뿐 정치력과 외교력과 행정력은 바닥을 뚫고 지하실에
쳐박힌 놈이 항우입니다. 중국의 수많은 역사학자들 중 십중팔구가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을 항우라고 인정해 주긴 하지만, "군주"로서의 역량은 나쁜 의미로 역대급으로 보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 그리고 소설 삼국지연의 초중반 메인빌런으로서의 존재감 때문에 여포를 매우 높게
평가하며 항우와 비교하는 경우가 꽤 있던데..... 소설 초한지와 소설 삼국지는 제외하고
실제 역사기록과 역사학자들의 평가만 보면 저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항우에 대한
심각한 모욕입니다.
애초에 여포가 항우와 비교되려면 조조의 서주대학살 당시에 뒤통수를 쳤을 때, 조조를
확실하게 끝장내고 연주를 장악한 후, 서주도 잡아먹고 남쪽의 원술과 유표도 집어삼킨 후에
하북의 패자인 원소와 건곤일척의 천하쟁패를 치렀어야만 비로소 기본자격이 충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주력을 끌고나간 조조를 뒤통수치면서 빈집털이를 했는데도
끝장내긴 커녕 연주쟁탈전을 질질 끌다가 결국 패하고 유비의 서주로 도망갔다가 유비를
뒤통수쳐서 서주를 뺏은 후에 또 제대로 된 전공도 없이 질질 끌다가 결국 조조에게 털려서
인생을 마감한 게 전부입니다.
나관중이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초중반의 메인빌런으로 낙점하고 유관장 브라더스를 위협하는 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수백년간 동북아시아의 메가히트작이자 스테디셀러로 군림한 삼국지연의의 이미지가 실제 여포를 잡아먹은 것 같습니다....;;;;
Commen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