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양대전의 서막이 오르다
위나라 왕실의 후예였던 영릉군(寧陵君) 위구는 진승의 심복이었던 주불의 옹립으로 즉위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삼일천하에 그치고 말았다.
표기장군(驃騎將軍) 이신이 5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다.
위나라 부흥군은 제남(濟南)과 낙안(樂安)을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압도적인 무력에 연전연패를 이어가던 위구는 결국 독 안에 든 시궁쥐가 되고 말았다.
“진나라를 거역한 역적의 무리들이다! 모두 죽여라!”
7척에 달하는 강철창을 치켜든 남성이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질렀다.
이신.
시황제의 정복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나라들을 멸망시킨 진나라의 명장이다.
이신이 강철창을 휘두르면서 전장을 급습할 때마다 위나라 병사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멸망한 조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열망과 충성심조차 이신의 강철창을 버텨내지 못한 것이었다.
“쇠뇌를 날려라!”
“보병대는 성문을 공격하라! 위나라 놈들은 완전히 포위됐다!”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긴 위나라는 임제(臨濟)로 퇴각했다.
마지막 남은 보루였다.
임제성(臨濟城)에 틀어박힌 위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한 이후에 항전을 이어나갔다. 항전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격렬하게 저항했다.
콰아앙-!!
충차와 투석기가 성문과 성벽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그리고 성벽 위로 화살세례를 가하면서 수비군을 빠르게 줄여나갔다.
중과부적의 상황이다.
이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한들 사흘도 못 버티겠지.
제나라와 초나라의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과연 승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이신은 정복전쟁에 참전했을 당시에 젊은 장수였지만 어느덧 백발이 희끗 보이는 노장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용력을 자랑하듯 선두를 지휘하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천만다행으로 동쪽이 아직 비었습니다! 일단 이신에게 거짓항복을 한 뒤에 장수들에게 옥쇄를 명령하고서 동쪽으로 피신하시지요!”
진나라가 임제성을 완전히 포위하기 전에 초나라 땅으로 달아나야 한다.
주부(主簿) 진평이 기만책을 진언했다.
이신을 안심시킨 이후에 장수들을 출격시킨다.
다시 말해 임제성을 수비하는 모든 장졸들을 희생시키는 계책이었다.
너무도 혹독한 처사가 아닌가. 연전연패를 겪으면서도 자신을 믿고 임제성까지 종군했던 장졸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것은 인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과인은 남겠네. 자네는 과인의 동생과 심복들을 데리고 초나라로 피신하게.”
“대, 대왕···!”
“과인이 병마들을 이끌고 이신에게 맞서겠네. 그 틈에 피신하면 되지 않겠나?”
“······.”
위구는 동생 위표와 심복들을 초나라로 피신시키면서 후일을 도모하도록 명령했다. 비록 자신은 실패했지만 동생이라면 능히 위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동생 위표를 새로운 위왕(魏王)으로 책봉했다.
그리고 위구는 상방(相邦) 주불과 함께 임제의 결사대를 이끌었다.
“상방, 자네에게는 미안하네. 과인을 믿고 따라주었거늘.”
“소신은 그저 대왕을 보필할 뿐이옵니다.”
위나라는 관중과 가까웠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를 증명하듯 위나라는 진나라의 대규모 공세에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패망을 맞이했다.
이대로 흔적도 남김없이 끝나겠지.
하지만 부흥을 갈구했던 위나라의 마지막 의지만큼은 만천하에 보여줄 것이다.
집중공세를 받으면서 너덜너덜하게 변한 임제성의 성문이 내부에서 열렸다. 그와 동시에 위나라의 4천 결사대가 진나라 군세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진나라 놈들! 과인이 바로 위나라의 대왕이다!”
말에 오른 위구가 목책을 뛰어넘었다.
비록 백면서생이었지만 용맹만큼은 어느 용장들보다도 대단했다.
“대왕을 호위하라!”
“우리들이 위나라의 용사들이다!”
사방에서 쇠뇌들이 가해지면서 4천의 결사대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위나라의 대왕과 장졸들은 둔영을 휩쓸면서 최후의 불꽃을 선사했다.
푸욱-!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위구의 가슴에 박혔다.
배후를 호위하던 주불도 날카로운 창끝에 벌집이 되어 말에서 떨어졌다.
위왕이 이끌었던 결사대가 전멸하면서 임제성도 결국 함락되었다. 위나라 부흥군을 진압한 이신은 위구를 비롯하여 위나라 장수들의 수급을 베어 함양으로 보냈다.
“표기장군, 아군의 용도가 파괴되고 보급이 끊어졌습니다!”
“집요하게 보급로만 노리던 놈들인가?”
보급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진지와 목책을 세워두었던 용도(用道)가 파괴되었다. 게다가 군량을 수송하던 호송대도 습격을 받으면서 군량이 끊어졌다.
초나라 놈들이다.
결집과 산개를 반복하면서 배후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추격대를 편성하고 함정을 설치하면서 대응했음에도 배후를 습격해온 초나라 놈들은 들개처럼 집요하게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유방과 팽월이라는 놈들입니다! 유방은 패현에서 반란을 일으킨 건달이고, 팽월은 거야를 중심으로 수적질을 하던 두령이라고 합니다!”
“동네 건달과 수적단의 두령 따위가!”
일생일대의 굴욕이다.
한낱 동네 건달과 수적단의 두령에게 발목이 붙잡히다니.
위나라에 이어 제나라까지 도모하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유방과 팽월에게 보급로가 끊어진 이신은 강철창을 내리찍으며 분노를 억눌렀다.
“표기장군!”
“또 무슨 일이냐!”
급보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함양에 도착한 전령이 급보를 알렸다.
“수십만에 육박하는 대군이 삼천군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대군이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냐!”
수십만 명.
어림짐작조차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군이 나타났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대군이라면 지금까지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
진승의 부하였던 주문이 망국의 유민들을 최대한 긁어모은 오합지졸 대군이다. 대규모 약탈로 남방을 초토화시킨 메뚜기떼들이 삼천군의 풍요로운 영토를 노리기 시작했다.
“무장도 제대로 안 갖춰진 민병들이라고? 천하에 또 없을 오합지졸이 아니냐! 그렇다면 몽염이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폐하께서 친정을 선언하셨습니다.”
“뭐···! 폐하가 친정을 선언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무너트릴 생각이다.
이세황제가 친정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소의 전술을 꿰뚫어보았다.
위나라를 무너트린 이신은 평원(平原)으로 퇴각하여 재정비하려 했다. 용도를 파괴하고 군량을 끊었던 초나라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 * *
수십만 명에 육박하는 군세가 드넓은 황야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새카맣게 밀려드는 군세들의 모습은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끝까지 차오른 만조(滿潮)를 연상시켰다.
메뚜기떼였다.
단순히 새카맣게 몰려든 머릿수 때문이 아니다.
죽창과 농기구 따위로 무장한 반란군은 경유하는 고을들마다 초토화시키면서 무자비하게 식량을 빼앗았다. 오로지 현지약탈로만 군량을 마련하는 오합지졸 군세는 그야말로 인간의 형상을 한 메뚜기나 다름없었다.
“장군, 정말 괜찮겠습니까? 관중은 어느 지역보다 경비가 삼엄할 텐데요.”
“상관없다! 이 머릿수를 봐라! 그대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전장에서 선택할 전술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해전술(人海戰術)
전력의 격차 따위는 아득하게 많은 머릿수로 밀어붙인다.
당연히 적들보다 몇 배는 많은 대군일 텐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적들의 성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함락될 터였다.
“이대로 여남을 통과하여 영천에 닿으면 형양까지는 순식간입니다.”
“좋다! 삼천군을 모조리 털어버리자!”
병장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병력은 1만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너덜너덜한 의복으로 몸을 가리고 있을 뿐인 민병대였다.
고을을 통과할 때마다 무관들을 보내어 건장한 장정들을 모집했다. 그러자 부랑자와 거지들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누리고자 군세의 후미에 따라붙었다.
“재물을 원한다면 빼앗아라! 계집을 원한다면 범해라! 가축을 훔치고 식량을 먹어치워라! 누구를 죽이든지 죄를 묻지 않겠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약탈을 위해 싸우고 약탈로 인해 유지된다.
그들에게 있어 약탈이란 후열에서 뒤따르던 굶주린 메뚜기가 허기에 사로잡혀 바로 앞에서 날던 동족을 먹어치우듯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생존수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천하가 모두 불모지가 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수십만에 달하는 메뚜기떼가 형양에 당도했다.
그러자 승상(丞相) 이사의 장남이면서 삼천군(三川郡)의 태수였던 이유가 형양성에서 잔인무도한 약탈자들을 막아섰다.
* * *
시황제는 말년을 폭정으로 보낸 폭군이자 학살자였다. 독단적인 정책과 가혹한 형벌로 육국의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던 무소불위의 악행은 2천 년이 지난 이후에도 선명히 남게 되겠지.
하지만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던 진나라의 충성스러운 장졸과 백성들의 희생과 노력이 본래의 역사처럼 덧없이 사라지게 둘 순 없었다.
진나라는 영원하리라.
중원은 영원히 진나라, 진족(秦族)의 무대가 될 것이다.
“폐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얼굴을 가린 철가면과 일체화된 투구를 착용한 중장보병이 집결했다. 날카로운 장창과 장검으로 무장한 금군(禁軍)의 갑옷은 온통 검은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금군 1만 명이 합류했다.
그리고 대장군 몽염이 이끄는 2만 5천 명의 병력이 연무장에 모였다.
관중에서 맞붙을 병력은 수십만 명에 육박했지만 진나라의 정예병단은 일당백을 자랑했다. 병사 한 명이 백 명을 대적한다면 능히 오합지졸 대군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황실과 조정의 대소사는 좌승상과 우승상에게 위임하겠소. 그리고 함양의 방위는 위장군께서 맡으시오.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무리들에겐 즉결처분도 허락하겠네.”
좌승상(左丞相) 이사. 우승상(右丞相) 숙손통. 위장군(衛將軍) 몽의.
선황을 보필했던 진나라의 충신들에게 옥좌의 공백을 맡겼다.
그리고 진나라의 용사들과 함께 군마에 올랐다.
“대장군.”
“예···! 하명하십시오.”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연화 소저에게 달려가서 청혼을 해볼 생각이오.”
“저, 정말이십니까!”
전쟁에 참전하기 직전에, 아니면 전장에서 싸우는 도중에 고백하리라고 암시하는 행위는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명한 사망플래그였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말했다.
패배할 리가 없다.
일기당천의 진나라 정예병단은 반드시 승리하리라.
관중을 침범했던 수십만 대군을 쳐부수고 위풍당당하게 귀환할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부소는 몽연화를 진나라의 새로운 황후로 맞이하겠노라고 몽염에게 당당히 선언했다.
음. 곧바로 후궁을 들이고 싶다는 말도 해도 될까.
대장군의 사기를 떨어트릴지도 모르니 하지 말자.
“반드시 승전하여 폐하와 함께 함양으로 돌아올 것이옵니다!”
유일한 근심거리였던 노처녀 딸이 진나라의 황후에 책봉될 것이라는 사실에 몽염은 한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호언했다.
좀 더 일찍 말해줄 것을 그랬나.
대장군에 임명될 때도 담담한 모습만 보이던 양반이 저토록 기뻐하다니.
“일단 돌아오면··· 조정대신들에게 온갖 잔소리를 듣겠구려. 일방적으로 통보한 이후에 조정에 입궐하지 않고 곧바로 나섰으니.”
“소장도 함께하겠습니다.”
부소가 칼끝을 뽑아들어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3만 5천에 달하는 장졸들이 군례를 취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관중을 침범한 역도들을 토벌하고자 한다! 일기당천을 자랑하는 진나라의 장졸들이여, 짐과 그대들은 영토를 지키고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목숨을 바쳐 의무를 다하라! 선황 폐하의 유지를 받들어 진나라의 천손만대를 위해 싸우라!!”
진나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나라는 앞으로도 영원하리라.
위대한 폭군이 천하에 새겼던 야망은 여전히 진나라 장졸들의 심장을 맹렬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출진하라!”
함양에서 출격한 3만 5천의 군세는 불과 사흘 만에 동관(潼關)을 넘어 홍농군(弘農郡)까지 주파하는 놀라운 기염을 보여주었다.
시황제가 함양을 중심으로 설계한 도로 덕분에 기병 위주의 병력은 질풍처럼 기민한 기동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홍농군을 넘어 낙양에 당도했다.
그때 수십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은 형양성을 포위한 채로 집중포화를 퍼붓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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