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친정하다
마지막까지 항가군(項家軍)의 북진을 가로막았던 양성(襄城)이 화염에 휩싸였다.
성문이 뚫리고 성벽이 무너졌다.
거친 말발굽소리와 함께 초나라 기병들이 들이닥치면서 비명이 난무하게 되었다.
“초나라 놈들을 막아라!”
“활을 쏴라! 적장이 달려오고 있다!”
검은 갈기를 늘어트린 흑마가 맹수처럼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흑마에 올라탄 괴물이 한손에 고삐를 움켜쥔 채로 대검을 들어올렸다.
쩌어엉!!
힘껏 치켜들었던 방패와 함께 양성의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어선을 단기필마로 돌파하고는 수십 명의 병력을 도륙하기까지 했다.
“내가 바로 항우다!”
불과 1만의 병력으로 최후의 요새를 자랑했던 양성을 함락시켰다. 거센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세례를 소수의 기병대로 돌파하여 적진을 무너트린 항우의 존재는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괴물이다.
저것이 어떻게 인간이란 말인가.
수십 명의 병력을 도륙했음을 증명하듯 비릿한 핏물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원숭이 같으니!”
“초나라 원숭이는 내 창검을 받으라!”
양성을 수비하던 진나라 장수들이 연이어 출격하여 항우를 대적했다.
하지만 장수들의 용맹은 시체더미만 늘릴 뿐이었다.
“커헉!”
무겁고 날카로운 칼날이 투구와 함께 적장의 머리를 박살냈다. 머리가 으깨진 채로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장수의 모습에 군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상회하는 괴력이다.
대검을 내리칠 때마다 갑옷이 으스러지고 병장기가 박살나는 광경이 펼쳐졌다.
항우가 여세를 몰아 시가지를 돌파하면서 진나라의 대장기를 부러트렸다. 양성의 성벽을 점령했던 계포와 종리말이 합세했을 때는 이미 성내의 방어선이 궤멸된 이후였다.
“괴, 괴물···!”
“저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개인의 무력 따위로는 전쟁의 승패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에게는 그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았다.
만인지적(萬人之敵)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대검을 늘어트린 항우가 발걸음을 내딛자 병장기를 치켜든 채로 애처롭게 떨던 진나라 병사들이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주, 죽어라!”
앳된 소년처럼 보이는 병사가 배후에서 항우에게 검을 휘둘렀다.
항우는 이미 배후의 기척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몸을 돌리면서 칼끝을 피했다.
“으··· 으아아악!!”
꽈드드득─!!
육중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던 양손으로 병사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괴력이 담긴 손아귀로 산 채로 척추를 으스러트렸다.
참혹한 비명과 함께 병사는 척추가 꺾인 채로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를 지켜본 병사들은 대경실색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병장기를 떨어트렸다. 육중한 무기를 수족처럼 다루면서 맨손으로 사람의 척추까지 부러트리는 괴물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항복하겠소!”
“지금이라도 항복할 테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치열한 공방전 끝에 양성이 함락되었다.
항우는 계포와 종리말에게 투항하거나 사로잡은 포로들을 출신에 따라 구분하도록 지시했다.
“진나라 출신은 좌측으로, 나머지 6국 출신은 우측으로 서라! 진나라 조정에 너희들의 몸값을 받아내고자 함이니 사실대로 서라! 관아의 호적부를 보고 사실여부를 확인할 것이다! 만약 아군을 기만한다면 극형을 내리겠다!”
진나라 출신은 좌측으로,
나머지 6국 출신은 우측에 서라.
전장에서 투항하거나 생포된 양성의 장졸과 백성들이 머뭇대는 모습을 보였다.
몸값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그 말에 진나라 출신의 장졸과 백성들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좌측에 섰다.
초나라와 진나라가 오랜 숙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설마 포로들까지 끔찍하게 학대할까? 그저 몸값이 목적이라는 항가군 장수들의 외침에 고분고분 따르기로 했다.
“모두 얼마나 되는가?”
“아마도 5천이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양성은 초나라의 영토였지만 관중에서 이주해온 진나라 백성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진나라 출신의 장졸과 백성들이 항가군의 침공에 그동안 결사항전을 벌였던 것이었다.
초나라 땅에 뻔뻔하게 눌러앉아 지주 행세를 했던 도적떼들.
만약 아군이 양성을 정복하지 못했다면 초나라 땅에서 망국의 백성들을 계속 갈취하면서 살았겠지.
빼곡하게 밀집된 5천 명의 군중을 바라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전군에 명한다! 더러운 진나라 놈들을 모조리 파묻어라!”
“예, 장군!”
양성 주변에 천 길 낭떠러지처럼 깎아지는 절벽이 존재했다.
항우는 5천 명에 이르는 군중을 절벽으로 유인하여 모두 떨어트려 죽였다.
그토록 높던 절벽이 사람들의 시체로 메워졌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학살에서 살아남은 6국의 백성들은 항우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충성을 맹세했다.
“6국을 멸망시킨 진나라는 저주받은 족속이다! 중원을 침략했던 진나라의 졸개들을 모두 찾아내어 죽이겠다! 그동안 우리들이 받은 압제와 억압을 그대로 돌려줄 것이다!!”
선봉장 항우가 양성을 점령했다.
뒤이어 항량과 영포가 이끄는 본대가 수춘(壽春)을 함락시켰다.
양성과 수춘을 함락시킨 항가군의 병력은 북상하여 팽성(彭城)에서 합류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주력부대는 관중과 관동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항가군은 계속해서 진격을 이어나갔다.
대장군 항연의 후예들이 북상하고 있다.
항가군이 거둔 승전보와 학살이 관중까지 알려지면서 진나라는 공세를 전환해야 했다.
* * *
항가군이 수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북상하고 있다.
소식을 접한 진승과 오광은 본인들의 입지가 점점 위태롭게 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초나라의 명문가 출신인 송의가 귀족들과 단결하여 새로운 조정의 요직을 차지했다. 문외한에 까막눈이었던 진승과 오광은 송의와 귀족들의 속셈에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조정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마당에 북진을 위풍당당하게 거듭하는 항가군까지 개입한다면 결국 버림패로 버려지겠지.
그렇기에 초나라의 대왕과 귀족들이 경탄을 느낄 만한 반진(反秦)의 전공이 필요했다.
“이제 주문을 출격시키는 것은 어떤가? 수십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이라면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성과를 내지 않겠나.”
“···분명 어마어마한 피해가 뒤따를 걸세.”
주장(主將) 주문은 2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과 1천 승에 달하는 전차들을 보유한 진승의 산하군벌이었다.
20만 명의 병력. 전차 1천 승.
병력의 규모를 두고 본다면 천하의 일각을 차지하여 나라를 건국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문이 거느린 수십만 명의 병력은 부랑자와 탈영병을 비롯하여 장강의 도적떼와 강제로 징병한 망국의 유민들까지 포함한 규모였다. 남방의 군현에서 최대한으로 머릿수를 긁어모은 병력이었기에 잡졸들을 거느린 진승과 오광조차도 주문을 오합지졸 따위로 취급했다.
오로지 약탈을 위해 결성된 병력이다.
그를 보여주듯 주문의 병력은 죽창과 농기구 따위로 무장했을 뿐이었다.
민심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여 약탈만큼은 자제하는 진승과는 달리 주문은 망설임이 없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약탈을 자행했다.
쌀 한 톨도 남김없이 군현을 초토화시키는 주문의 병력은 메뚜기떼와 다름없었다.
한낱 오합지졸이라도 20만 명이 넘는 병력이다.
그렇기에 진승과 오광은 진나라의 전력을 약화시키고자 주문을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진승, 멀리서 후군으로 주문을 돕도록 하세.”
“운이 좋다면 관중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 진나라 원정군의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삼천군이라도 불태울 수만 있다면 우리들에겐 어마어마한 공적이 될 것이네.”
양양(襄陽)에 주둔하고 있던 주문에게 삼천군(三川郡)을 공격하도록 전령을 보냈다.
그러자 주문은 수십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북상하겠노라고 화답했다.
삼천군은 농토가 비옥하고 교통이 발달한 중심부였기에 물자가 넘쳐났다. 게다가 관동을 포위하고 있는 진나라 병력의 병참기지가 모두 삼천군에 있었으므로 군량도 가득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먹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규모 약탈을 자행하면서 양양을 초토화시킨 주문의 병력은 굶주림을 토로하고 있었다. 들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메뚜기떼가 바람에 편승하여 새로운 땅으로 향하듯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진군을 개시했다.
* * *
영포와 환초를 거느린 항가군이 팽성에 이르렀다.
반란군의 산하군벌인 주문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삼천군을 노리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반란군과 항가군의 움직임을 염탐하고자 심어둔 세작들이 보내온 급보가 뇌리를 뒤흔들었다.
‘주문이라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까지 진격했던 진승의 심복이었지. 황릉의 죄수들을 징발한 장한에게 박살나긴 했지만···. 대체 20만에 달하는 병력은 어디서 툭 떨어진 거지?’
진성(陳城)을 함락시킨 진승과 오광의 병력이 수만 명에 불과했다.
또한 조나라의 부흥을 주도했던 무신의 병력은 3천이었을 뿐이다.
중원 전역에 전선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병력을 차출하여 전선에 배치한 진나라와 마찬가지로 진승과 오광의 반란군도 많은 전력을 드넓은 영토에 투자하고 있는 상태였다.
20만 명.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주문은 삼천군으로 북상하면서도 병력을 끊임없이 모집하고 있었다. 수적 우위를 내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가진 광인처럼 머릿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했다.
“5만의 중앙군이 폐하의 명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거기서 절반을 줄이시오. 최대한 정예로만 선발해야 하네.”
지도를 바라보던 부소가 말했다.
그에 몽염은 난색을 내비쳤다.
“병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상대는 하찮은 오합지졸이지만 수십만 명이 넘사옵니다.”
“함양을 수비하는 금군을 더하려고 하오.”
금군(禁軍)은 전선에서 복무한 경력이 풍부한 정예들로만 편성된 함양의 친위대였다. 시황제를 보필함과 동시에 수많은 전투에 동원되었던 병단은 굴지의 용맹과 충성심을 자랑했다.
절대적인 수적 우위를 갖춘 대군을 상대로 소모전이 되어선 안 된다.
일격에 박살내야 한다.
중앙군 2만 5천.
금군 1만.
부소는 자신이 친정하겠노라고 몽염에게 말했다.
“아, 안 될 말씀입니다! 폐하께선 이제 즉위하시지 않았사옵니까? 그런 폐하께서 옥좌를 비운다면 공경과 백성들이 동요할 겁니다!”
“수십만의 대군을 박살내는 일이오. 제아무리 백전무패의 용사들이라도 어마어마한 수적 우위를 자랑하는 대군을 마주한다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거요. 그래서 짐이 직접 친정하여 장졸들을 독려하려는 것이네.”
이신은 위나라와 제나라의 부흥군을 동시에 진압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왕리와 장한은 팽성의 항가군을 견제해야 했다.
“짐은 사면령을 내렸소. 하지만 저들은 걷어찼지.”
사면령은 반란군에게 전하는 자비로운 기회임과 동시에 토벌을 위한 최후통첩이었다.
다시 일상을 되찾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약탈에 길들여진 수십만 명의 도적떼들은 진나라 황실이 내민 제안을 내동댕이쳤다.
성군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교만한 적들에게 폭군의 면모를 드러낼 차례였다.
“짐이 시황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려 하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부소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대전(大戰)으로 기록될 싸움에 나서게 되었기 때문일까.
두 눈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과연 선황의 아들이시군.
그런 부소의 모습에 몽염은 쓴웃음을 흘렸다.
- 작가의말
오늘이 휴재일이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깨달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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