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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님의 서재입니다.

소꿉친구와 아카데미 속으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추진력.
작품등록일 :
2021.02.24 05:57
최근연재일 :
2023.11.03 21:34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39,145
추천수 :
6,538
글자수 :
294,544

작성
21.03.12 22:30
조회
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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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글자
18쪽

【리치의 탑(2)】

DUMMY

리치 탑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매 층에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고, 탑에 들어온 이는 층마다 강해지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여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 탑의 특성상 최종 층을 제외하고는 다른 잡몹은 없기에 그 부분은 편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는 무척이나 강하다. 리치 탑에 봉인된 순간부터 무력이 매우 낮아졌겠지만, 대부분이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는 괴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린 편하게 탑을 오를 수 있다. 잡몹없이 보스 몬스터 하나뿐이니까.




─크아아악!


괴성을 내뱉는 괴수, 리자드 드래곤. 단단한 가죽으로 이루어진 녀석의 목에는 거대한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포효만 할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서 더 편하네.”

“빨리 끝내고 올라가자.”

“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고정시켜줘.”


렐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자드 드래곤 바로 위에 아공간을 만들어 냈다. 생겨난 아공간 안에선 거대하고 묵직한 돌덩어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쾅! 쿠당쾅!


─키에에엑!


묵직한 돌덩어리들이 리자드 드래곤을 뒤덮었다. 이윽고 바닥에 단단히 몸을 붙인 녀석이 이쪽을 보며 켁켁 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돌덩이들을 털어내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전에 곧바로 다음 행동을 취해야 한다.


“잘자.”


손에 들고 있던 침을 날렸다. 그 침에는 오기 전에 섭취했던 비헬롬의 독이 발라져 있었다. 침은 빠르게 날아가 정확히 조준했던 부분에 꽂혔다.

툭-

리자드 드래곤의 머리다.


─키에에엑···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종국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성이 낮아졌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탑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최종 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립니다.」


끼이이익─


쓰러진 리자드 드래곤의 뒤에 있던 검은 문이 좌우로 열렸다. 저것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문.


─키에윽···


녀석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저러다 곧 일어날지도 모르니 우린 녀석의 옆으로 돌아 곧장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나와 렐리아가 입구에 들어오자, 뒤에 있던 문이 다시금 닫히기 시작했다.


─키이···


그 문틈 사이로는 가쁜 숨을 내쉬는 리자드 드래곤이 보였다.


쿵-


문이 완벽이 닫히고, 어두웠던 안쪽에 횃불이 들어오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위를 향해 뻗어있는 원형 계단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어.”


렐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몸에 묻은 흙을 탈탈 털었다. 아까 돌덩이가 떨어지며 튀었던 먼지다.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먼지를 때주고서 계단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계단의 수는 꽤 많았다. 나와 렐리아는 계단 벽을 짚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계단을 오르기만 했다.


“···야. 이거 언제쯤 끝인지 알아?”

“음.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힘들면 업힐래?”

“아니 괜찮긴 한데···”


괜찮긴 무슨. 현재 렐리아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볼에는 땀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고, 아까 전부터 헥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나 또한 계단을 걷느라 그녀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겉옷을 벗어 팔에 걸어둔 뒤, 렐리아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업혀.”

“···미안.”


렐리아는 내 등에 올라탔다. 다행히 그녀가 가벼웠기에 계단을 오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보인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너 클리어 방법 다 기억하지?”

“어. 너랑도 같이 했을걸.”

“그럼 다행이네.”


이 앞은 꽤 복잡한 구조로 된 미로가 존재한다. 게다가 더 위험한 것은 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각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까처럼 함께 이동하는 꼼수는 이번엔 통하지 않는다.


“이제 내려줘.”

“걸을 순 있어?”

“덕분에 괜찮아.”


다행히 현재 렐리아의 상태는 많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아공간에서 미리 준비해둔 식수를 꺼내 마셨다. 나 또한 그녀 옆에서 식수를 마셨고, 무장을 점검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렐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살짝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쫄았어?”

“···아닌데?”

“그럼 누가 먼저 보스방에 도착하나 내기할래?”


내 제안에 렐리아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다행히 마음속에 남아있던 긴장이 사라졌나 보다.


“뭐 걸건대?”

“음··· 뽀뽀해줄게.”

“조까.”

“어허, 욕은 안돼. 그런 거 요즘 검열 심하다고.”

“···검열?”

“그런 게 있어.”


렐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더 뭐라 하기 전에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넌 뭐 걸 거야?”

“음··· 일주일 요리해주기?”

“아, 그건 괜찮아.”

“왜.”

“네, 네가 힘드니까.”


진짜 이유는 절대 말 못한다. 그저 언젠가 자신이 한 음식을 한 번쯤 맛봤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럼··· 하루 노예로 살기 어때?”

“노예?”

“어. 먼저 도착한 사람 노예가 돼서 하루 동안 해달라는 거 다 들어주기.”


렐리아의 말은 솔깃했다. 하루 노예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어차피 그녀에게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대신 명령은 무조건 듣는 거다?”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지?”

“내가 너도 아니고 왜··· 농담이야.”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빠르게 클리어해야겠다. 나는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서 렐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모두 묶었을 때, 내가 말했다.


“그럼 가보자.”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감각이 느껴진다. 그대로 문을 쭉 밀었다.


우웅─


잠깐의 소음과 함께, 문 틈새에서 환한 빛이 튀어나왔다. 이윽고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리치의 탑 최종 층에 도착하셨습니다.」

「숨겨진 흑마법이 발동됩니다.」


빛이 우리를 감쌌다. 탑에 들어왔을 때처럼, 우린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흐르고, 귓가를 간지럽히던 소음이 잦아들었다.


「리치의 탑 최종 층: 암흑 미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로를 탈출하여 리치가 있는 곳으로 향하세요.」



“잘 왔나 보네.”


3면이 벽으로 막혀있는 곳. 나는 그 한자리에 서 있었다. 발밑에는 영문모를 마법진이 홈 형식으로 파인 채였다.


‘보니까··· 3번째 경우인가.’


암흑 미궁은 총 20가지의 리스폰 지역이 존재한다. 그중 이곳은 3번째인 곳으로 보인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한쪽 벽면에 있는 각인 덕분이었다.


‘확실하네. 가보자.’


길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갈래 길을 마주했다. 망설일 것도 없다. 곧바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서 왼쪽, 오른쪽, 직진, 한 바퀴 돌아서···’


나는 암흑 미궁의 리스폰 번호마다 길을 외우고 다녔다. 그렇게 되면 이곳을 공략할 때 그 누구보다 빠른 시간에 탈출이 가능하다.


‘그걸로 랭킹 점수를 올릴 수도 있지.’


그래서 외운 거다. 누구보다 빠르게 통과해서 랭킹 점수를 올리려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어릴 적 유진은 게임에 미친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보름도 마찬가지였으니 둘 다 똑같다.


쿵-


앞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자, 검은 형체가 보였다.


─케르륵


기다란 꼬리와 도마뱀 같은 외관. 그러나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괴수, 리자드맨. 녀석이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주변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스릉─


뭐 할 것도 없다. 리자드맨 정도는 이쪽에서 충분히 잡을만한 괴수다. 나는 곧장 검을 꺼내 달려들었다.


푸욱!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리자드맨은 외마디 비명조차 뱉어내지 못하며 목숨을 잃었다. 고작 단역 놈에게 대사를 허비할 시간 따윈 줄 수 없지.


「리자드맨을 처리하였습니다.」


나는 검의 피를 탈탈 털어내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



“늦네?”

“···씨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렐리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그녀의 새하얀 볼엔 붉은 선혈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닦아내며 말했다.


“노예 하이?”

“······.”

“노예 안녕?”

“시발아.”


그만 놀려야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주인님 해봐.”

“······.”

“아냐, 하지 마. 하루 노예권은 나가서 써야지. 너 메이드복도 입어라?”

“지랄하지 마, 진짜.”


입힐 건데. 지금 말했다간 탑의 최종 보스와 마주하기도 전에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뒷말을 삼키며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여기 안에 리치가 있다는 거지?”


리치의 탑 최종 보스, 리치. 영생永生을 살기 위해 육체를 버린 인간의 진화 형. 그것이 리치이고, 이 탑의 최종 보스로 있다.


물론 이 문 너머에 존재하는 리치는 몸이 봉인 당한 상태다. 그렇다 해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 최소 8서클이 넘은 강자이기에 몸이 포박당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마나는 충분해?”

“될 것 같아.”


그럼 됐다. 나는 렐리아의 손을 잡으며 나머지 손으로 거대한 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름 돋는 소리가 몸을 전율한다. 그와 함께 문 틈새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전신이 소름으로 뒤덮였다. 마치 들어오지 말라는 듯한 기운. 그러나 여기에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다.


끼익-

문을 밀어 열었다. 그러자 어두운 방 안의 내부가 보인다. 우린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화륵─


푸른 불꽃 두 덩어리가 허공에 생겨났다. 이윽고 방 전체가 밝아지며 안쪽의 내부가 드러났다.

방의 중앙 끝에 있는 왕좌, 그 뒤로 보이는 황금빛이 새어 나오는 방 입구.

왕좌에는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해골바가지가 보였다. 그리고 허공의 푸른 불덩이가 해골 안으로 들어가 눈가에서 타올랐다.


『누구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딱딱거리는 소리와 함께였다.


딸그락-


해골이 움직인다. 녀석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간다.

리치.

녀석이 우리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턱을 열었다.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저기에 살가죽이 있었다면 분명 웃는 얼굴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렐리아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렐리아. 알고 있지?”

“그, 그럼.”

“좋아. 해보자.”


녀석의 외관에 살짝 압도당하였지만, 계획대로만 진행한다면 괜찮다.


『아가들아. 이쪽으로 와보겠니? 저 뒤 보물고에 원하는 모든 게 존재할 거란다.』


섬뜩했던 리치의 말소리가 산뜻하게 바뀌었다. 녀석의 달콤한 제안. 우린 무시하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 조금만 더 가까이 오렴.』


나와 렐리아의 발걸음은 리치를 향해 3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여기까지가 딱 적정선. 이 이상 나갔다간 리치의 공격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더 가까이 오지 않겠니?』


그럴 리가.

나는 렐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마나를 다듬는 중이었다. 나는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보물고 입구와 가장 떨어진 곳에 섰다.


그 뒤, 렐리아의 아공간에서 꺼낸 검들에 비헬롬의 독을 가득 발라 땅에 박아 넣었다. 칼날이 허공을 향한 모양새로 말이다.


『뭐하는 거니···?』


리치가 뭐라 말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엔 아공간에서 꺼낸 쇠꼬챙이에 비헬롬의 독을 잔뜩 발라 이것 역시 땅에 박아 넣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마무리로 검과 쇠꼬챙이 주위에 큰 원을 그렸다.


‘마법진.’


그 원 안쪽 중앙에 속박술이 걸린 마법진과 신성술이 담긴 마법진 두 가지를 잔뜩 뿌려 두었다.


『너, 너희 도대체 무슨 짓을···』


리치가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포박당한 왕좌에 앉아 이해되지 않는 현재 상황을 지켜봤다.


‘준비는 끝났어.’


나는 렐리아의 옆으로 가 섰다. 이윽고 마나를 가다듬은 렐리아가 리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도대체 무슨 짓ㅇ...』


리치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리치가 앉아 있던 왕좌 밑에 나타난 아공간이 그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리치는 앉은 상태 그대로 아공간에 들어가 어떠한 허공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아까 내가 준비해뒀던 장소 위다.


푸욱! 푸욱! 푸욱!


『커흑!』


독이 발린 검날과 쇠꼬챙이가 왕좌와 함께 리치를 강타했다. 뼈는 검과 쇠꼬챙이에 의해 부서져 버렸다.

물론 저 정도로 죽을 리는 없다. 곧 있으면 뼈가 다시 재생되겠지. 뭐, 그건 상관없다. 우리는 녀석을 토벌하러 온 게 아니니까.


우우웅···!


왕좌 밑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안에서 순백의 쇠사슬이 튀어나와 리치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효과다.


저것으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 마법명가 빽이 좋아. 저런 귀한 마법진도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를 탈 때 구할 수 있었다.


치이이익─


리치의 몸과 쇠사슬이 맞닿자 고기 익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으며 검은 연기를 뱉어냈다.


『끄아아악! 너, 너희 도대체 뭐 하는 것이냐?!』


리치가 울부짖는다. 나와 렐리아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보물 고마워.”

“잘 쓸게.”

『뭐, 뭐? 그건 안돼! 내가 그걸 모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다고! 들어가지 마!! 야!!!』


리치가 뭐라 뭐라 소리쳤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상태에선 움직이지도 못한다.


“보물만 빨랑 챙기고 튀자.”

“그래그래.”

『아, 안된다고!!!』


어디서 바람이 부나.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를 후비적 거리고서 보물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치의 보물고에 입장하셨습니다.」


떠오른 메시지창 뒤로, 수많은 보물이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을 뽐내는 금화부터 시작해 갑옷이나, 명검, 창, 마법진, 지팡이 등등.

모두 고급져 보이는 것들이다.


실제로 대단한 물건들이겠지. 리치의 보물고에 있는 것들은 그가 살아생전 모은 진귀한 보물이나 제국에서 보내온 기사의 것들이니까.


「리치의 저주가 걸려있습니다.」

「단 하나의 물건만 들고 나갈 수 있습니다.」


보물고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들고 나가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리치의 저주가 걸려 있다. 그러나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다.


“뭐 들고 갈지 정했지?”

“어.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렐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어느 한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고서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쳐 지나가는 여러 보물들.

모두 자신을 가져가 달라고 무언의 외침을 내뱉었지만,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저벅-

이윽고 내 발걸음이 멈춘 것은, 작은 유리병 앞이었다.


찐하고 검은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들어 올렸다.


「메두사의 독」

「보물고에선 상세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눈앞에 뜬 메시지창.

나는 그것을 치워버리며 유리병을 주머니 안쪽에 넣어뒀다. 그리고 곧장 렐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찾았어?”

“···키가 안 닿아.”


렐리아가 어느 선반 앞에서 점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작은 키 때문에 선반 위의 물건은 닿지 않았다.


“멈춰봐.”


나는 그녀의 머리에 손바닥을 올린 뒤 다른 한 손을 뻗어 그녀가 원하던 것을 잡았다.


「메두사의 심장」

「보물고에선 상세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낡은 나무상자.

안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는 듯했다. 이름으로 봤듯, 메두사의 심장이다.


“고마워.”

“그럼 나가자.”


나와 렐리아는 각각 하나의 물건을 얻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한 편에서 눈물을 흘리는 듯한 표정의 리치가 보였다.


『그만 건들란 말이다아···』

“음··· 리치?”

『크윽···! 네 녀석 감히 내 보물고··· 잠깐. 그, 그거 메두사의 심장이잖아?!』

“이거?”


렐리아가 품 안에 안고 있던 나무상자를 흔들었다. 리치의 눈가에 있던 푸른 불덩이가 크게 발광한다.


『그, 그거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일부러 가장 낡은 나무 상자에 넣어두고, 선반 위에 쑤셔 뒀단 말이다!!』

“이게 왜 네 거야, 내꺼지.”

『미친년이구나···!』


리치가 혀를 찼다. 아, 물론 혀가 없었기에 그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는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턱을 움직였다.


『그건 건들지 마라! 내가 얼마나-』

“해골. 시끄러워.”

『···』


렐리아의 험담에 말문이 막힌 리치.

그는 팔걸이 위에 올린 주먹을 부들대며 화를 삭였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아무것도 못 하는 해골바가지. 아, 그리고 대머리.”

『···』

“그, 대머리는 너무 한 것 같은데.”

“뭐 어때.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인데.”


무섭다.

렐리아가 너무 무섭다. 사실 그녀의 입은 지구에서도 전설적이었다. 내게 꼬리 친다고 뒷담 까던 여선배를 30분 동안 탈탈 털었던 적도 있으니···


‘나니까 붙어 다니지.’


다른 사람이라면 진즉 나가떨어졌으리라.

나는 리치를 향해 폭언을 퍼붓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이제 갈까? 리치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을 거야. 웅.”

『나, 난 잘못한 게 없ㄴ』

“하아··· 반성 중이라면 뭐. 이제 가자.”

“그래그래. 리치도 화 풀고?”

『···』


나는 렐리아의 어깨를 주물이며 걸음을 옮겼다. 렐리아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내게 리치에 대해 뭐라 말하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기분을 풀어주었다.


끼익··· 쿵-


방문이 닫히고, 혼자 남게 된 리치.

그의 눈가엔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투명한 물기가 또르륵 떨어졌다.


『나는··· 잘못, 한 게 없단 말이다···』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방안에 천천히 퍼져나갔다.

어째서인지 오늘 따라 그의 머리가 더욱 반짝이는 듯했다···



「리치의 정신이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전투 불능 상태.」

「탑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문이 열립니다.」




리치의 탑.

성공적으로 클리어했다.


작가의말

오늘 분량이 좀 많습니다. [8287자]

왜 이렇게 많냐구요? 최근 분량이 좀 적은 것 같아서, 이번화에 좀 넣어 봤어여. 거기에 어제 댓글과 추천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썼습니닷...
전 정말 기분이 좋답니다? 어제 추천수 보셨어요? 
...이게 독자의 화력?
헤에에에엑!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닷... 더 열심히 써서 꼭 결혼까지 달려볼게요오옷...
[댓글과 추천은 나태한 망생이를 움직이는 큰 원동력입니다.]
...라고 하네요.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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