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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님의 서재입니다.

소꿉친구와 아카데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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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작품등록일 :
2021.02.2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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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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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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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세인】

DUMMY

크고 고풍스럽게 생긴 방안.

샤이 후작가의 막내아들 세인이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검은 머리가 부스스 떠올라 있었지만, 세인의 차가운 얼굴에는 잘 생김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세인- 아니, 난 주변을 둘러보고서 두 손으로 메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고풍스럽게 생긴 가구들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그것을 확인한 나는 이마에 손을 짚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 났군.”


말투도 이상해졌다. 분명 ‘좆됐군’이라 말하려 했지만, 강제로 순화 처리가 되었다.


3일 전··· 분명 소꿉친구 한보름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근데 깨어나 보니 보인 풍경은 그녀의 방안이 아니었다.


마치 귀족의 방안같이 생긴 고급스러운 모습. 현재 입고 있는 이 실크소재의 잠옷도, 억대의 그림이 걸려있어야 할 것 같은 멋진 벽지도, 더 나아가 사실 이 방안 전체가···


전부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게 내가 어릴 적 즐겨했던 게임, 제국 아카데미 전의 망나니 캐릭터.

세인 샤이의 방안과 똑같았으니까.


‘미쳤어···’


분명히 이 방안 모습을 알게 된 것도 본인 방에서 술을 처먹던 세인을 죽이러 갔을 때 알게 된 것이다. 사유가 황녀님을 건드려서 였지···


“왜 하필 이런 캐릭터에.......”


왜 이런 쓰레기 놈한테?

빙의 시켜줄 거면 적어도 주인공한테 해주던가─ 같은 생각은 지난날 수도 없이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오거라.”


또 이 말투다. 말을 하는 순간 자꾸 이상한 말투로 변하게 된다. 이것 역시 이 망나니 녀석의 몸에 빙의한 까닭인데···


「귀족적인 말투」

「세인은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끌리는지 연구한 결과, 멋진 말투와 얼굴이란 답이 나왔습니다. 덕분에 세인의 말투는 고풍스러운 귀족처럼 변하게 됩니다. 물론 세간에선 꼰대 말투라고 천대받지만요.」


‘미친놈.’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거대한 방문이 열리는 중이었다. 그러고서 한 사내가 드러났다. 멋진 콧수염과 정장을 차려입은 집사, 베르.


베르는 정중하게 90도로 허리를 꺾고서 내 앞에 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그래.”


도련님 소리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 몸은 또 어째서인지 제멋대로 반응했다. 흥분이 가득했던 얼굴도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

베르는 그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도련님을 바라봤다.


“지난 3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아 가주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 그 악녀에게 강제로 아들을 팔아넘겨 놓고,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분명 아버지는 날 걱정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곧 팔아넘길 막내아들이 다른 마음을 먹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을까─ 를 걱정한 것이겠지.


‘그래··· 세인이 그랬었지.’


세인은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한 여자와 약혼하게 된다. 그 상대도 세인 못지않게 미친 망나니라고 소문 난 작자.


남자와 술에 빠져 산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그런 부류는 그쪽에서 먼저 멀리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뜻대로 되게 하는 여자.

거기에 질투와 오만이 가득한 그녀.


세간에서는 그녀를 ‘악녀’라 불렀고, 이것은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 또한 원작을 플레이했던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표정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눈썹이 습관적으로 꿈틀댔다.

베르는 혹여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주변을 둘러보고서 작게 소곤거렸다.


“도련님 언행을 낮춰주시지요··· 누가 듣기라도 해서 바실레이아 공작가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그래. 알겠다.”


이번엔 자의로 나온 대답이었다. 그것에 베르가 눈을 크게 떴다.


‘본래 같았으면 네가 감히 내게 명령 질이냐! 라고 화냈을 도련님인데···’


물건도 몇 개 던져 깨부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도련님.

다행히 바실레이아 공작가가 효과는 있나 보다.


하긴 바실레이아 가문은 그 정도로 크고, 제국을 주름잡는 가문 중 하나이니, 아무리 망나니 도련님이라도 함부로 험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큼큼. 그럼 이어서 오늘 일정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가주님과의 면담이 있을 겁니다.”

“···아버지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약혼식 때문에 가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나는 잠시 생각했다.

샤이 후작가의 가주, 그게 누군가? 제국 변방의 영지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 제국민을 지키는, 게다가 지금은 기사의 최종 단계.


‘소드마스터’ 경지까지 올라온 작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나더러 그런 사내와 면담을 하라고? 지금 장난치는 건가?


속으로 그런 말들을 되뇌어 봤지만,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베르는 앞으로의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며 잠시 기다려주었다.


“······다음은 무엇이냐.”

“약혼식의 일정이 잡혔다고 합니다. 예정대로라면 도련님께서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입니다. 아마 이번 주 안에는 시작될 것 같습니다.”


너무 빠르다.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니.

베르는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때문에 곧 약혼녀이신 ‘렐리아 바실레이아’ 영애님께서 샤이 후작가행 마차에 탑승하셨다는······.”

“······.”


더 이상 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을 채운 건 오직 하나의 의문점이었다.


‘한보름은 어디 있을까.’


지난 3일간 방에만 틀어박혔기에 그 누구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할 때.

분명 그때 한보름도 함께 빛을 쬐었으니 그녀도 게임에 빙의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빙의될 캐릭터.

예컨대 현재 가장 의심되는 캐릭터는, 세인의 약혼녀인 렐리아 바실레이아였다.


‘···아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장 가능성 있어.’


그러나 아직 망상일 뿐이니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군. 도착 예정일은?”

“내일에서 그 다음 날이 될 듯합니다. 바실레이아 공작가의 영지와 세인 후작가의 영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만······.”

“중간에 텔레포트 마법으로 더 빨리 이동하겠군.”

“······예. 아무래도 렐리아 영애님께서 빨리 세인님이 보고 싶다 하셔서.”


보고 싶어?

개소리하지 마라 그래라.

원작에 묘사된 렐리아는 절대 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약혼 이야기는 바실레이아 공작가에서 먼저 꺼낸 것이 맞다.

정확히는 ‘렐리아’의 자의에 의해서.


바실레이아 공작가에서도 그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 것 같은 골칫덩어리 막내 영애를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다니.

최고의 기회가 아니었겠는가?


‘그런다고 렐리아가 세인을 좋아하냐? 그건 또 아니지.’


말했지만, 렐리아는 악녀였다. 그것도 참으로도 지독한.

약혼 상대로 세인을 지목한 것은 그저 얼굴과 그의 몸(?) 때문이었다. 결국엔 얼마 이어지지도 않아 약혼은 무산 처리 되었고, 둘은 깨지게 된다.


“···일단은 알겠다. 우선 아버지와 만날 준비부터 해야겠구나.”

“목욕을 준비하겠습니다.”

“알겠다.”


베르는 도련님의 눈치를 살피고선 곧장 방안을 나섰다.

방에 혼자 남겨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가까이 다가갔다.


“···잘생겼군.”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묘하지만, 충분히 잘생겼다. 게임 캐릭터 얼굴이 다 그렇긴 하지만 서도, 세인은 그중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봐도 무방할 미남이었다.


“성격이 그렇지만 않았어도.”


달라붙는 영애들이 줄을 섰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먼저 옷장을 열어 안의 옷들을 살펴봤다.


하나하나 모두 고풍스럽고, 고급스럽게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무난한 단색 복장을 꺼내 들어 침대에 던져두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이니 최대한 깔끔한 것이 좋겠다. 그러나 세인의 옷장에는 온갖 귀중품과 사치로 가득한 엑세사리용품들이 가득했다.


“···시간 날 때 팔기라도 해야 하나.”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차피 이런 것들은 모두 쓸모없으니 나중에 파는 것도 좋겠다.

아, 후작가 아들이면 돈이 궁할 일이 없으려나?


무튼, 나는 실크 소제의 잠옷 단추를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드러난 새하얀 피부에 조각 같은 근육을 보며 단단한 팔을 더듬었다.


‘···몸 좋네.’


본래 검도를 했던 나였다. 스포츠 종목이다 보니 운동은 필수였고, 덕분에 세인의 근육이 노력 없이 탄생한 것은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원작을 생각해도 그렇다. 세인은 분명 성격과 하는 짓은 개망나니였지만, 무력과 아카데미 성적은 아니었으니.


작중 세인을 잡으러 그의 방에 들어갈 때도, 원작 게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즉, 세인의 무력은 최소 중간 보스까지는 성장한다는 이야기.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샤이가는 검술 명가로 유명하기 때문에 본래 검도를 배웠던 나에게는 썩 좋은 조건이기도 했다.


“후우···”


옷을 모두 벗고서 샤워 가운 하나만 걸친 나는 방문을 열어 욕실로 향했다.

사실 욕실이라고 해도 크기는 수영장만큼 크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던 베르와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분들이 보였다.


‘진짜 메이드복이네···’


지구에선 저런 건 코스프레용으로나 쓰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기에 실제로 처음 본다.

아니, 딱 한 번.

한보름이 ‘그냥 사봤어’라고 말하며 입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별 반응 없자 그 이후로는 다신 보지 못했지만.

솔직히 고양이 같고 귀여웠어도, 그런 소름 돋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받들겠습니다.”

“······?”


하녀들이 갑작스럽게 내게 오더니 샤워 가운을 잡았다. 나는 당황하며 가운을 잡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저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주, 죽을죄를 지었어요···!”


샤워 가운을 잡고 있던 두 하녀가 동시에 넙죽 엎드렸다.

그러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울분을 토해냈다.


“허, 허락도 구하, 지 않고서 도련님의 몸에 손대어··· 정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아니, 갑자기 벗기길래 당황한 것뿐인데.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저 멀리 있는 유리창에 비친 얼굴은 거칠게 구겨져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두 하녀를 벌할 것처럼.


“···이 하ㅊ-”


입이 달싹거리는 걸 간신히 막았다. 하녀 둘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붉은 피가 하얀 석제 타일을 흘러내려 갔다.


“···고개를 들어라.”

“흐윽.......”


두 하녀의 이마에는 붉게 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입술 안쪽을 꽉 깨물어 입지를 다지고서, 무릎을 꿇어앉았다.

눈높이가 순식간에 하녀들과 같아졌다.


“상처는 괜찮으냐?”


본인이 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염치없이 보이지만···

현재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아, 에··· 네?”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 하녀들.

나는 그런 그녀들의 붉은 피를 엄지로 닦아냈다. 허나 흐르는 피는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저 먼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베르.

그에게 명령했다.


“베르, 치료사를 불러와라. 지금 당장.”

“···무, 무어라 하셨습니까, 도련님?”

“내 말이 안 들리나? 치료사를 불러오라 하였다.”


베르와 하녀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그러나 현실에 조금이나마 더 빨리 깨어난 베르가 곧장 욕실을 나서 치료사를 불러왔다.


치료사도 하녀와 내 상황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장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고서 떠났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하녀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설마 이것을 위해 치료사를 부른 것이었나?

괜히 달라진 척 연기한 뒤에 더 심한 짓을 하려고···?


“크흡- 무, 무엇···입니까?”


하녀들의 눈에 투명한 물이 아른거렸다.

저 멀리 서 있던 베르의 침 꼴깍이는 소리.

그것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어물쩍 대다가 볼을 한 번 긁고서 대답했다.


“···몸을 씻는 동안 나가 있어 주겠나?”



오늘.

세인 도련님이 달라지셨다.


작가의말

호에에...

더 봐주세요오오옷..!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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