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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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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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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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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8화 이웃

DUMMY

378화 이웃


“빌어먹을. 술, 술 좀 가져와라!”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건만 명나라 병부시랑 진신갑은 술을 찾았다.


누군가 만류할 법도 하건만 이미 여러 날 계속된 일상에 사람들은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진신갑이 저러는 이유는 물론이고 자신들 처지가 어떠한지를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화친을 위해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 그들은 배척되기 시작했다.


만남을 거부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물을 보내도 거절당한다.


어쩌다가 운 좋게 만나도 간단한 인사 외에는 따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기 일쑤니 자연스레 진신갑이며 그를 따라 이곳에 온 명나라 사람들은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조선에 부탁하여 전쟁 징후를 알리는 사람을 보낸 이후에는 아주 교제 끊어져 숫제 감금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 이어졌다.


물론 직접적으로 진신갑이며 명나라 사람들을 나가지 말라고 막은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바깥에 나서면 반드시 감시가 붙고 그 수준도 엄하다는 말이 부족할 지경이니 점차 나가는 것이 저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이제는 다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에 와서는 진신갑이 술을 찾는 걸 계기로 그날 하루가 끝났다고 여기고 다른 이들 역시 적당히 하루를 뭉개기 일쑤였다.


허나 오늘은 조금 다를 모양인지, 바깥에서 존재감을 알린 인기척은 술 대신 말을 건넸다.


“시랑 어르신,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응?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이러한 때에 갑자기 누가 찾아왔다고 하니 진신갑은 덜컥 겁이 들었다.


‘겨, 결국 감시로 그치지 않게 된 건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사신이 온 자들의 끝은 빈말로도 좋지 아니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나중에 세가 기울어 끝을 내고자 할 때에 보내고자 하는 건 오히려 낫다.


사신의 목이라고 함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임이 많으니 보통 그 끝은 죽음이며, 그 죽는 꼴이 멀쩡하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혹여 드디어 자신을 이렇게 내버려 둘 마지막 쓸모가 다하여 끝을 내고자 함인가, 그렇게 생각하여 진신갑은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디서 왔느냐?”


물으면서 진신갑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청나라 황궁이나 내각에서 온 게 아니길 비는 그 마음을 하늘이 들었음인가, 돌아오는 말에는 두 장소 가운에 어느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조선에서 봉림대군이 찾아왔습니다.”

“조선에서?”


어리둥절함도 잠시, 진신갑은 혹여 명에서 연락이 그들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었다.


아니, 그건 생각이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까웠다.


정말 그렇다면 진신갑이 아직은 할 일이 있다는 소리고, 이는 다시 말해 그가 허망하게 죽을 일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니까.


“바로 안으로, 흠흠.”


곧장 객을 안으로 들이라고 하려던 진신갑은 제 몰골에 생각이 미쳤다.


잠시 복색을 살핀 그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리 그래도 곤란하겠다 싶어서 말을 바꾸었다.


“죄송하지만 다망하니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해라!”



***



“기다리게 하여서 죄송합니다.”


진신갑은 생애를 통틀어 그렇게 빨리 단장을 마친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관을 정제한 후에 봉림대군과 만났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 모습에는 조금 전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가득 담겨 있던 구겨진 옷이며 너저분하고 흐트러진 모습은 전혀 없었다.


“이쪽에서 갑자기 찾았으니 오히려 사과는 제가 드려야지요. 이런 애매한 시각에 찾아뵈어 실례를 끼쳤습니다.”

“하하, 대명과 조선은 언제고 각별한 사이가 아닙니까. 반가운 객이 오는데 시간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이 말은 진신갑의 진심이었다.


그러한 진심이 언행을 통해 가리지 않고 드러나니 봉림대군은 불현듯 송시열의 충고를 떠올렸다.


‘우월감이라? 이거 참, 마치 가수저라를 처음 먹어 즐겁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구나.’


마음에 깃드는 감정을 자각한 봉림대군은 조심스럽게 마음과 말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제가 반가운 객인지는 확신하게 어렵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저는 시랑께 안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고자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진신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동시에 진신갑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는 걸 느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까? 아니, 아니지.’


그러나 그도 잠시, 그는 지금처럼 그저 눈과 귀를 막혀서 썩어감보다는 무엇이든 아는 게 좋다고 여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한 소식입니까?”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물은 것이나 돌아오는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어서, 진신갑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북경이 함락되었으며, 명나라 황상께서는 그 와중에 붕하셨다고 합니다.”


북경 함락에 이어서 숭정제 붕어 소식을 단번에 들은 진신갑은 충격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북경 조정에서 다져진 처신술이 곧 그에게 할 일을 일렀다.


“아이고, 아이고! 황제 폐하, 소신 진신갑이 못 나서 누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부디, 이 불측한 놈을 용서하지 마소서!”


곡을 하며 바닥에 엎드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길 반복하는 모습은 만고의 충신이 따로 없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 통곡하기를 반복한 진신갑은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대군, 제가 경황이 없어서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대만한 충신이 이제야 그 일을 들었으니 여러 의미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한가를 물으면 입을 다물고 대답을 회피할 말을 입에 담은 봉림대군은 슬며시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덧붙였다.


“저는 시랑께서 큰일을 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이곳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처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설령 청나라에서 그럴 의향이 없다고 한들 마찬가지입니다.”


화친은 어느 한쪽만 바란다고 되지 않는다.


당사자 모두가 이유가 필요한 법이니, 지금 진신갑이 보기에 그는 이제 할 일이 없는 이요 어떻게 되어도 신경 쓸 이가 없는 처지였다.


여기에 더해 사실상 숭정제가 맡긴 일을 실패한 셈이니 돌아가도 좋은 소리 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파악이며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진신갑의 내심은 달랐는데, 자신이 이러한 처지임을 모르고 그저 소식이나 알려주러 조선에서 움직였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것이 봉림대군, 공식 직위는 없으나 그 위치가 조선의 세자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자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하여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고 품으니 그걸 잘 안다고 하듯 봉림대군이 입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오래전부터 교류한 명나라를, 그리고 명나라 사람들을 걱정하여 제안하고픈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와주겠다는 다소 두루뭉술하고 범위가 넓은 말에 진신갑은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진신갑에게 봉림대군은 질질 끌지 않겠다고 하듯 조금 더 자세하게 말을 꺼냈다.


“남경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면 그것이 힘들어 그저 심양에서 벗어나 편히 지내고자 하셔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도와주겠다는 말에 진신갑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경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다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저 목숨을 확실하게 건진다는 것만 제하면 지금하고 크게 다를 게 없는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전쟁이며 난리와 가장 거리가 먼 땅은 이곳 심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남경에 가자니 이미 실패한 것도 그렇고 그곳에서 그를 과연 크게 쓸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진신갑은 태자와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


눈알을 한참 굴리며 고민하던 진신갑은 먼저 확인할 것이 있음을 기억하며 입을 열었다.


“대군께서, 아니 조선에서 이리 제게 따뜻하게 제안하여 주심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무릇 도움이라고 하는 것은 오가는 것이니, 감히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에서는 무엇을 바라고 이 비루한 놈에게 손을 내미시는 겁니까?”

“사람을 돕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예?”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진신갑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봉림대군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선은 인연을 소중히 하고 이웃과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양란을 거치며 전쟁에 지쳤습니다. 이제는 좀 쉬고 싶고, 태평성대를 구가하길 바랍니다.”

“그야 어느 나라며 어떤 사람이라고 싫어하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우리가 돕고자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새로운 이웃이며 옛 이웃이며 가리지 않고 잘 지내고자 할 뿐입니다.”


봉림대군이 이르는 말을 들으며 진신갑은 조선이 어떠한 자리며 정세가 이어지기를 바라는지 얼추 깨달았다.


또한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한 그는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참으로 훌륭한 뜻입니다. 허면 부탁드리건대, 남경에 연락을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연락이라니, 직접 가시지 않으실 겁니까?”


봉림대군이 묻는 말에 진신갑은 짙은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에서는 해가 지기도 전에 술을 찾으며 제 처지를 두려워하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돌아가면 자리 하나 축내는 신하 하나가 늘지만, 여기에 남으면 살필 눈이 하나 더 늘고 말을 전할 입이 하나 더 늡니다. 조선에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그것을 머리가 인식하여 쓰는 일에 더욱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저 알려드리고 교제하는 일을 이어갈 뿐이니, 부디 과한 기대는 마셨으면 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진신갑에게 있어서 그거면 정말 충분했다.


그가 있는 곳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나아졌으니 말이다.



***



“조선의 대군이 명나라 놈을 만났다고?”

“예, 대학사.”


저녁나절이 되어서 진신갑이며 명나라 사람들을 감시하라 명한 팔기가 정기보고로서 알려온 소식에 대학사 범문정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무슨 수작이지?’


이미 세가 기울어 정해져 가고 있건만, 명나라에 손을 내미는 조선의 행동은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봉림대군이 움직였다는 점에서 그는 한층 더 껄끄러움을 느꼈다.


그저 봉림대군 개인이 나선 것인지, 아니면 조선에서 뜻을 품고 나선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범문정은 가장 편하고 확실하게 살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한번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었으니 딱 좋은 시기일 수도 있겠군. 누구 있는가?”

“대학사, 부르셨습니까?”


바깥에 있던 내각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물으니 범문정은 곧장 입을 열어 본론을 꺼냈다.


“조선의 세자에게 연락을 보내라. 차후 양국 관계에 있어서 긴히 논할 것이 있으니, 빠른 시일 안에 뵙고자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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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3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9 22 13쪽
390 389화 사대부로서 부끄러운 일 +3 23.10.29 264 20 12쪽
389 388화 필요하면 만든다 +5 23.10.28 292 21 14쪽
388 387화 모으고 나누고 +6 23.10.27 285 19 14쪽
387 386화 하나보다 여럿이 낫다 +7 23.10.26 289 21 12쪽
386 385화 급제 +4 23.10.25 289 23 15쪽
385 384화 면대 +5 23.10.24 285 21 12쪽
384 383화 완벽한 오답 +2 23.10.23 275 24 12쪽
383 382화 천자와 황제 +3 23.10.22 269 20 14쪽
382 381화 과거 +3 23.10.21 256 19 15쪽
381 380화 떨치기 어려운 생각 +2 23.10.20 244 19 15쪽
380 379화 흐른다고 하여 옳은 게 아니다 +2 23.10.19 254 19 12쪽
» 378화 이웃 +1 23.10.18 245 20 12쪽
378 377화 도움이 필요한 사람 +1 23.10.17 237 19 14쪽
377 376화 고하를 가리지 않는 마음 +2 23.10.16 233 20 15쪽
376 375화 다음 한 수 +2 23.10.15 243 17 15쪽
375 374화 북경 함락 +6 23.10.14 263 20 15쪽
374 373화 고칠 수 없는 것 +4 23.10.13 211 17 15쪽
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10 18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30 17 14쪽
371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18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17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12 17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07 16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33 16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25 17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37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41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32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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