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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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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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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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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2쪽

370화 근거 없는 희망

DUMMY

370화 근거 없는 희망


콰앙!


“저놈의 새끼들은 지치지도 않나.”

“그러게 말이다.”


전령들이 사방을 향해 구원을 청하러 간 이래 북경은 여전히 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청나라가 거는 화포 공세가 더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은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익숙하여지는 법이던가, 북경 수비대 병사들에게 있어서 이제 저 화포 소리가 울리는 걸로 하루가 시작하고 멎는 걸로 하루가 끝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구원이 언제 올까?”

“언제가 아니라 오긴 하는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니냐?”

“흐흐, 그렇긴 하지.”


병사들이 하는 말에는 반 정도 포기했다는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청나라가 북경에 수급과 곡식을 담아서 수레를 보낸 것에 이어서 사방에 보낸 전령들 태반이 같은 몰골로 돌아온 걸 그들을 보거나 들었다.


물론 북경 수비대 대장 오양을 비롯한 장수들은 모두가 당하진 않았으니 곧 구원이 올 거라고 외쳤다.


허나 장수들도 간간이 저들끼리 걱정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병사들이 시선을 준다 싶으면 모르쇠로 대화를 멈추고 자리를 파하는 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런 와중에 정말 지원군이 와서 북경을 구해줄 거라니, 기대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혹여 바깥에 있는 게 청나라가, 그들이 그렇게나 오랑캐라고 경원시하고 무시하던 이들이 아니라면 진즉에 누군가는 문을 열고 나가자고 주장하거나 심중에 품고 몰래 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것은 정말 성문이며 성벽이 무너져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아니면 정말 고개 숙이기 싫은 이(夷)였으니 다들 그런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항복하기 싫어서 버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중이니 바깥을 보던 병사들의 눈에는 투지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거세게 이어지던 화포 공격이 멈추고 청나라 군대가 물러나기 시작하니 병사 하나가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오, 물러간다.”

“식사 시간이다!”


그가 중얼거리는 것에 맞추어서 먹을 시간이라는 걸 알리는 외침이 들리니 병사들은 저마다 말을 늘어놓았다.


“오랑캐 놈들이 참 시간은 정확해요. 딱 밥시간에 맞추잖아?”

“본능은 우리보다 저놈들이 더 낫겠지.”

“흐흐흐, 그것도 맞는 말이네. 암, 우리 중화보다야 문명하지 못하니 대신 본능은 뛰어나겠지. 어디 사람이 맨손으로 호랑이나 늑대를 잡겠어?”



***



“예친왕 전하, 예정대로 물러났습니다.”

“고생했다. 충분히 쉬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라.”

“예!”


기운차게 대답하고 나가는 팔기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북경 공략, 아니 정확히는 북경 기만을 위해 남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수심이 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간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계획대로 공세를 더해서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예상보다 화약 소모가 심해서 수일만 더 있으면 이런 공세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러고 하루나 이틀이면 모를까, 사흘이고 나흘이고 공격이 주춤하면 북경에 있는 이들이 의심스럽게 여길 게 분명했다.


그가 계산하기에 길어도 일주일이면 이런 공세를 이어가기 어려울 게 분명하니 아무리 담이 큰 자라고 하여도 부담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은 그저 북방군을 물리치는 일에 그쳐서는 곤란한 일, 그만한 노력과 물자 그리고 시간을 들인 일이었다.


이러고도 실패하면 그들은 당분간 북경을 손에 넣을 엄두를 내지 못할 터였다.


“예친왕 전하! 한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어서 들여라!”


그러던 중 바깥에서 들린 외침에 도르곤은 그답지 않게 급히 허락을 내렸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온 팔기는 당당하게 도르곤에게 예를 취한 후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소식을 입에 담았다.


“예친왕 전하, 기쁘게도 한께서 직접 친정하시어 전투에 나가 승전하셨습니다!”

“오오!”


이겼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상황이 어떻든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도르곤은 기쁨을 감추기 어려웠다.


“또한 다음 단계를 위해 타타라 잉굴다이 의정대신께서 일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오고 계십니다.”

“잉굴다이가? 다른 이들, 아니 한께서는?”

“군사 가운데 정친왕을 비롯한 여러 버일러 밑에 수천, 그리고 남은 것을 의정대신께서 맡으셨습니다. 또한 한께서는 직접 전선에서 ‘적장’을 치셨는데, 그로 인해 피로를 느끼신 모양인지 천천히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홍타이지가 전장에 직접 나섰다는 말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들으니 쓴웃음이 절로 나는 걸 느끼던 도르곤은 문득 방금 들은 말 가운데 한 부분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적장?”

“예! 명나라 북방군 수장 홍승주를 활로 단번에 쏘아 쓰러트리고 그 수급을 취하셨습니다! 또한 그 위업을 알게 하기 위해 그의 시신은 정중하게 수습하여 이곳으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울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팔기의 말에 도르곤은 놀라는 한편 이후 벌일 일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다.


이윽고 그려진 그림을 가만히 본 도르곤은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실로 훌륭하고 좋은 소식이다.”

“한께서는 다음 단계는 알아서 진행하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허면 잉굴다이는 언제 도착하지?”


도르곤이 묻는 말에 팔기는 제가 달려온 시간과 본대가 돌아올 거리를 재어 본 후에 대답했다.


“늦어도 사흘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좋아. 가서 잉굴다이에게 전해라. 닷새 후에 일을 꾸밀 것이니, 나흘 후 밤에 진지로 불을 끄고 들어오라고 말이다. 전할 말은 이것이 다다. 어서 가서 전해라.”

“예, 그러하겠습니다.”


팔기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물러가니 도르곤은 잠시 홀로 생각하다가 막사를 나서서 멀리 보이는 북경을 바라보았다.


“희망이 없어진 자들이여, 이제 깨달을 시간이다.”



***



“이거 참, 대체 언제가 되어야 나갈 수 있는 겁니까?”


낮부터 찾아와서 칭얼거리는 태감 조화순의 말에 오양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하고 대꾸했다.


“곧 올 것이오. 그때가 오면 내 반드시 그대에게 알려서 나가게 할 것이오.”

“정말입니까? 말을 듣고 여러 날이 지났는데 소식이 감감하니 영 불안하여서 말입니다.”


걱정이 잔뜩 담긴 어조로 말한 조화순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입에 담았다.


“종종 아침에 일어나면 저들이 모두 패퇴하고 차례가 없어진 건 아닐까 걱정하곤 합니다.”

“좀 더 확실히 말씀드리리이까?”


농이든 진이든 신경을 잔뜩 자극하는 말에 오양은 뚱한 얼굴로 그리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쏘아붙였다.


“제발 그만 좀 걱정하시오. 나는 절대 그대가 공훈 세울 자리며 세운 공훈을 뺏지 않을 것이외다.”

“아니, 내가 그런 걸 걱정해서 이렇게 찾아온 건 아닙니다.”

“조 태감, 이 사람은 나가는 일과 지키는 일을 함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황상께 말씀하여 그대를 쓰도록 청하였소이다. 그래도 이 북경에서 가장 두려움 없이 성문을 나설 인사는 그대뿐인 듯하니 말입니다.”


오양이 하는 말에 조화순은 저를 칭찬한다고 여겨서 기쁜 얼굴로 헛기침했다.


“험험, 제독께서는 사람 띄우는 게 능숙하십니다.”


정작 오양은 조화순이 눈치 없고 만용이 가득하다고 비꼰 것에 가까웠다.


허나 굳이 그걸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어 피곤함을 자처할 생각은 없던 오양은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발 이렇게 시시때때로 찾아와서 나 좀 피곤하게 하지 마시오. 이쪽은 밤이고 낮이고 저들이 움직인다 싶으면 성벽 위에 올라가야 해서 제대로 먹고 잘 틈이 없단 말입니다.”


이는 사실이었다.


전에 공세가 거세진 후 오양은 적들이 움직였다는 소리만 들리면 숭정제가 그를 부르지 않는 한 무조건 성벽에 올라가서 매번 직접 적들의 움직이며 그 기세를 살폈다.


이유 없는 움직임은 없으니 무언가 틈을 찾아낼까, 혹은 이쪽에 틈이 있을까 걱정하여 종일 성벽에서 내려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오양이 이리 한 것을 조화순도 아니 그는 민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그러면 잘 부탁하겠습니다.”


일어나서 물러가면서도 제 할 말을 여전히 남기고 가는 꼴이 참 권세며 출세며 명예에 목숨 거는 환관답다고 여긴 오양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는 한편 이제 조금은 쉬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 차를 우렸다.


이윽고 우려낸 차를 한참 즐기던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무엇이 이상한가 싶어 가만히 고민하던 오양은 이상함의 근원을 깨닫고 낯빛을 굳혔다.


“왜 평화롭지?”



***



“아직 공격이 없다고?”

“예.”


찻잔을 단숨에 비우고 성벽으로 빠르게 올라온 오양은 믿기 힘든 말에 얼굴에 의문을 가득 담아서 대답한 장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장수라고 하여 무언가 더 대단한 대답이며 통찰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저 부담에 시선을 피하기 바쁠 따름이었다.


“대체 왜?”


매사에는 이유가 있는 법.


공세를 거세게 하였던 것도, 이제 그렇게 하던 것을 멈춘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전자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오양 안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진 상태였다.


‘놈들은 지금까지 우리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려고 부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들의 피는 한 방울이라도 흘리고 싶지 않다는 게 명백했지.’


싸우는 실력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나날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게 청나라임을 오양은 익히 알았다.


더불어서 저들의 약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니, 대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구와 물산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을 각오하고 북경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고자 하는 수단을 고집하니 저들이 얼마나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치 지금까지 하던 일을 부정하듯 공세가 그치니 이상한 일이었다.


“음?”


그렇게 한참을 바깥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오양의 눈에 문득 밥 짓는 연기가 보였다.


전에 비하면 배는 많지 않은가 싶은 밥 짓는 연기에 오양은 안색을 굳혔다.


‘배부르게 먹고 쉬고 있다. 설마 단기전으로 돌입할 생각인가?’


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오양도 익히 알았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바꿀 이유는 짐작키 어려우니 그는 미간에 가득 주름을 잡으며 하늘을 향해 오르는 연기를 노려보았다.


‘장기전에서 단기전으로 넘어갈 이유라.’


떠오르는 게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양은 그걸 쉬이 확신할 수 없었다.


단순히 저들이 뜻을 바꾸었다면 이 짐작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아니 되었다.


자칫하면 시기가 엇갈려 북경 병력과 사기만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가, 오양은 짐작한 것이 사실이길 바라는 자신이 있음을 깨달았다.


“허허.”

“제독?”

“놈들이 긴장을 풀게 하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 돌아가며 경계하며 대비해라.”


장수가 부르는 소리에 오양은 입을 비집고 나오려는 근거없는 희망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는 장수에게 경계를 명한 그는 다시 한번 청나라 군 진지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며칠만, 딱 며칠만 두고 보자.’


언젠가 이야기하였듯, 그는 절대 도박을 할 수 없었다.


완전한 확신이 있기 전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한 그는 내응하는 시기를 놓치더라도 상관없다고 여기며 마음을 굳게 잡았다.


그러나 그 다짐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격한 장애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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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3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9 22 13쪽
390 389화 사대부로서 부끄러운 일 +3 23.10.29 264 20 12쪽
389 388화 필요하면 만든다 +5 23.10.28 292 21 14쪽
388 387화 모으고 나누고 +6 23.10.27 285 19 14쪽
387 386화 하나보다 여럿이 낫다 +7 23.10.26 289 21 12쪽
386 385화 급제 +4 23.10.25 289 23 15쪽
385 384화 면대 +5 23.10.24 285 21 12쪽
384 383화 완벽한 오답 +2 23.10.23 275 24 12쪽
383 382화 천자와 황제 +3 23.10.22 269 20 14쪽
382 381화 과거 +3 23.10.21 256 19 15쪽
381 380화 떨치기 어려운 생각 +2 23.10.20 244 19 15쪽
380 379화 흐른다고 하여 옳은 게 아니다 +2 23.10.19 254 19 12쪽
379 378화 이웃 +1 23.10.18 245 20 12쪽
378 377화 도움이 필요한 사람 +1 23.10.17 237 19 14쪽
377 376화 고하를 가리지 않는 마음 +2 23.10.16 233 20 15쪽
376 375화 다음 한 수 +2 23.10.15 243 17 15쪽
375 374화 북경 함락 +6 23.10.14 263 20 15쪽
374 373화 고칠 수 없는 것 +4 23.10.13 211 17 15쪽
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10 18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30 17 14쪽
»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19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17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12 17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08 16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33 16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25 17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37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41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32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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