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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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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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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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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65화 선점

DUMMY

365화 선점


“정친왕 전하, 후방에 계신 예친왕께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안으로 들여.”


한껏 찌푸린 얼굴로 대꾸한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은 곧 안으로 들어선 팔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본론만.”

“예? 아, 예!”


다소 당황스러운 말에 팔기는 한순간 당황하였으나 곧 진정하고 최대한 간략히 전했다.


“홍승주가 군을 이끌고 물러났습니다! 또한 예친왕께서는 본래 계획대로 진지를 파기, 대군 이동이 어렵게 한 후에 산해관으로 향하신다고 합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에 지르가랑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흐흐흐, 돌아가서 전해라. 남은 일은 이 정친왕 지르가랑이 맡겠다고 말이다.”

“하, 하지만······.”


돌아가라는 말에도 전령으로 온 팔기가 물러나지 않고 당황하니 아직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 들은 것에 비기는 것들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으니 지르가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직도 남은 말이 있나?”

“그, 금주에 대한 것과 일본인들에 대한 것을 전하라고 들었습니다.”

“금주? 그러고 보니 그 괘씸한 놈이 아직 있었지.”


금주하면 청나라 지도부 대부분은 위대한 한이자 관온인성황제인 홍타이지의 너그러운 제안을 차버리고 몸을 돌린 괘씸한 자, 조대수를 으례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지르가랑 역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그는 못마땅함을 한가득 얼굴에 드러내며 물었다.


“그도 아니면 설마 금주에서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나?”

“아닙니다. 금주는 이미 아군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홍승주가 이끄는 군이든 산해관이든 어디서건 간에 도움을 주지 않는 한 금주성 홀로 버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아무리 주력이 빠졌다고 하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이 이끄는 병력이라면 그 위용은 만만하지 않으니,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놀라고 또 놀랐을 터였다.


“다만 그들은 금주를 포기, 물자와 거점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경로가 예상한 것과 달리 이리저리 움직여 돌아서 산해관을 향한 탓에 추격에는 실패했습니다.”

“흥, 쥐새끼와 그 부하들다운 재주로다. 도망가는 재주 하나는 언제고 일품이구나.”


조대수며 금주병을 한마디로 깎아내린 지르가랑은 이마에 주름을 지게 하더니 다시 물었다.


“끝인가? 일본인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예! 이번에 그들이 후방에 남아 공을 세워 그 공을 치하하고자 한께 그들의 수장을 버일러로 임명하도록 한께 청하신다고 합니다!”

“버일러?”


딱히 차별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대청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누구든 좋았으니 설령 그것이 한족이라도 괜찮다는 것이 지르가랑은 물론이고 친왕들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버일러 정도, 주려면 주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걸 굳이 알리며 논하는 이유를 알기 어려워 지르가랑은 이마에 이어 미간에도 주름을 잡았다.


그러다가 방금 들은 말을 떠올린 지르가랑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한께 청한다고 하였지.”

“그렇습니다.”

“괜한 방해하지 말라, 이거군. 쯧, 누가 감히 한께 그러한 일로 불만을 품으며 항거하겠다고.”


투덜거림을 한차례 낸 지르가랑은 별 시덥지 않은 일로 시간을 잡아먹었다는 생각에 손을 저었다.


“더 없다면 물러가라. 이제부터 나는 아주 바쁘다.”


지르가랑이 이르는 말에 팔기는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


그가 떠난 후 지르가랑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서 풀며 웃었다.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이번에는 전처럼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



“흐흐흐흐.”


청나라 진지를 치는 일에 앞장섰던 명나라 장수 마길제가 흘리는 웃음에 곁에 있던 부장은 당황하며 조금 거리를 벌렸다.


기분이 좀 상할 반응이지만 마길제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 인사로 자신이 온전히 신용 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자잘한 일만 맡았던 것에 비해 돌아가는 길에 선봉 및 척후라는 명목으로 만에 이르는 병사를 부릴 권한을 얻은 게 그 증거였다.


‘이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셈이지. 상서 대인 파벌로 새로 시작하는 거다. 암, 그렇고말고.’


이만하면 이정명 파벌이라는 꼬리표는 성공적으로 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한 마길제는 이제 남은 전쟁 동안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되겠다고 여겼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길제야, 길제야.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명나라가 힘든 상황인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명나라가 질 거라고 진짜로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단순히 지금 힘들 뿐이며, 정히 어려워져도 남경을 기점으로 남조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마길제 역시 이러한 생각을 품은 이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는 이번 일을 매우 기뻐했다.


명나라가 남명이 된다면 안타깝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개인은 더욱 영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가 되면 언제고 유능한 무장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또한 대우가 지금에 비해서 훨씬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길제는 자신이 좋은 자리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 따라올 여러 장수보다 좋은 지위를 선점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선점당해 고생할 일을 걱정해야 했음을 알지 못했다.



***



“제기랄! 피해를 보고해라!”


열이 받아서 보고를 요구하니 침울한 얼굴을 한 부장이 마길제에게 곧장 대답해 주었다.


“경상이 백하고 이십여, 중상은 오십여 정도입니다.”

“적들은?”

“모두 이탈했습니다.”

“빌어먹을!”


벌써 다섯 번째.


북경으로 가는 길 내내 공격당한 횟수였다.


물론 그 피해는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빈도와 시기가 문제였다.


멀리 걸어서 조금 쉴까 생각하면 여지없이 나타나서 공격하고 그대로 달아난다.


다음에 그걸 경계하여 사방을 살펴 반격하고자 하니 이번에는 변변한 공격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하기도 했다.


열이 받아서 그대로 추격하자니 그런 건 또 언제 준비하였는지 놈들은 바닥에 함정을 파두고 그곳을 넘어 달아나니 쫓아가던 명나라 병사들은 그대로 걸리거나 간신히 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추격이 멈춘 것은 당연지사, 방금 받은 다섯 번째 공격에서 발생한 피해도 저들이 쏘는 화살이나 휘두르는 날붙이에 당한 게 아니라 함정에 당한 이들이었다.


“상서 대인께 사람을 보내라! 피해 상황, 놈들의 짓거리를 상세히 알려라!”

“예!”


똘똘한 놈을 하나 골라서 보낸 후 마길제는 벌써 기세가 팍 죽은 아군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러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기세를 다 잃어버리겠어.’



***



“선두에서 다섯 번에 걸쳐 공격이라.”


마길제가 보낸 전령의 보고를 들은 홍승주가 중얼거리니 부관 하승덕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 찔러본 것을 합치면 열 번도 넘습니다.”

“총피해는?”

“경상, 중상을 다 합쳐도 오천을 넘지 않습니다.”


지금 홍승주가 이끄는 이들이 물경 십수만에 이른다는 걸 생각하면 오천이라는 숫자는 강에서 물 한 잔을 뜬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홍승주는 이 상황을 조금 달리 보고 있었다.


물 한 잔을 뜨는 일이 아니라 물감을 한 잔 들이붓는 일이라고 말이다.


강물은 고작 한 잔의 물감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며 그 더러워진 부분을 흘려낼 뿐이다.


하지만 한 잔 물감으로 물은 한순간에 그 색으로 물든다.


또한 그 색이 짙다면 한참 내려간 곳에서도 물든 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적들이 붓고자 하는 물감이 뭔지는 너무나도 뻔히 보였다.


“사기는?”

“당장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점차 피로에 지쳐서 반응이 굼떠지고 있습니다.”

“큰일이구나.”


사방에서 찌르니 그 숫자는 분명히 말해서 한 줌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찔러보니 이건 전열을 수습은 해도 제대로 쉴 수도 없고 진군하는 속도에도 영향이 나오고 있었다.


일이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가면 그들은 머지않아 지치고 피곤하여 조금씩 피해가 불어날 터였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긴장을 유지하며 행군하는 일은 도무지 할 일이 아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이라면 그 숫자가 십만이건 백만이건 정예한 병사 일만이면 유린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쓰는 무기가 창칼에서 총포로 변하고 있어도 이 사실은 여전하다는 걸 홍승주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억지로 전진해도 패배가 기다릴 뿐이고, 패배는 다시 말해 북경을 비롯한 모든 것은 잃어버림을 뜻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리는 것에 홍승주는 제 목숨은 몰라도 대명이라는 칭호와 숭정제의 신임도 확실하게 포함되어 있음을 잘 알았다.


확정된 패배를 피하기 위해서는 진군하는 방식을 바꾸어야만 했다.


경계를 단단히 하여 진지를 지으며 나아가던가, 아니면 아예 저들을 끌어들여 소탕할 생각으로 준비하며 나아가던가 말이다.


허나 전자고 후자고 진군 속도가 크게 느려짐은 물론이고 확실한 해결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승주가 생각하기에 그는 껍데기만 남은 이들과 너무 오래 대치했다.


이 이상 늦으면 북경에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길 정도로 말이다.


병귀신속이라, 만전을 기하겠다고 너무 늦어버리면 그것도 한심한 노릇이다.


하여 홍승주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장고한 끝에 그는 다소 어정쩡한 수를 취하게 되었다.


“지도.”


홍승주가 하는 말에 곧장 장수 하나가 지도를 가져와서 펼쳤다.


가만히 북경으로 향하는 길을 살핀 그는 신중하게 손으로 지금 있는 장소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구릉을 짚었다.


“여기까지는 느릿하고 확실하게 경계와 휴식을 취하며 이동한다.”

“그러면 진군 속도가 한없이 느려집니다. 못 해도 절반으로 느려질 겁니다.”


하승덕이 우려를 드러내니 홍승주는 안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구릉에서 북경 근방에 손을 옮겼다.


“느릿하게 움직이면 분명히 놈들을 제대로 쫓아내거나 그도 아니면 끊어낼 기회가 올 것이다. 한번,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딱 한번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고 나면 여기서부터는 속도를 올린다. 그러면 만회할 수 있어.”


홍승주가 이르는 말에 하승덕은 물론이고 말은 들은 장수들이라면 누구나 곰곰이 생각했다.


이윽고 그나마 나은 방식이라고 여겼는지 누구 하나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를 대표하듯 하승덕이 질문을 하나 던졌을 뿐이었다.


“지금부터 준비합니까?”

“지금부터 하게.”



***



“정친왕 전하, 놈들이 진군 속도를 크게 줄였습니다.”

“걸렸군.”


지르가랑은 지도를 펼쳐다가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는 저들이 느리게 이동하기보다는 빨리 달릴 장소를 찾으니, 그 역시 홍승주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이곳, 이 구릉이 아마도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허면 그곳에 준비합니까?”

“그래. 습격조는 계속 운영하되 여기서 한번 몰아친다.”


지르가랑은 그렇게 말한 후에 눈빛으로 지도를 태울 듯이 노려보다가 한쪽 손으로 어루어만졌다.


‘이기면 좋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건 그런 일이다.’


여기서 끝낼 수 있다면 좋으나 그러기 힘들다는 건 이미 사전에 논한 일이니 지르가랑은 애써 미련을 버렸다.


“한께 고할 사람을 여럿 준비해라. 가장 말을 잘 타는 놈들로 말이다.”


진중하게 명령한 지르가랑은 머릿속에서 앞으로 벌어질 전투와 준비한 함정을 생각했다.


이윽고 머릿속에 이후 할 일이며 전개에 따른 대처를 모두 되새긴 지르가랑은 결의를 담아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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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3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9 22 13쪽
390 389화 사대부로서 부끄러운 일 +3 23.10.29 264 20 12쪽
389 388화 필요하면 만든다 +5 23.10.28 292 21 14쪽
388 387화 모으고 나누고 +6 23.10.27 285 19 14쪽
387 386화 하나보다 여럿이 낫다 +7 23.10.26 289 21 12쪽
386 385화 급제 +4 23.10.25 288 23 15쪽
385 384화 면대 +5 23.10.24 285 21 12쪽
384 383화 완벽한 오답 +2 23.10.23 273 24 12쪽
383 382화 천자와 황제 +3 23.10.22 269 20 14쪽
382 381화 과거 +3 23.10.21 256 19 15쪽
381 380화 떨치기 어려운 생각 +2 23.10.20 244 19 15쪽
380 379화 흐른다고 하여 옳은 게 아니다 +2 23.10.19 254 19 12쪽
379 378화 이웃 +1 23.10.18 244 20 12쪽
378 377화 도움이 필요한 사람 +1 23.10.17 237 19 14쪽
377 376화 고하를 가리지 않는 마음 +2 23.10.16 233 20 15쪽
376 375화 다음 한 수 +2 23.10.15 243 17 15쪽
375 374화 북경 함락 +6 23.10.14 263 20 15쪽
374 373화 고칠 수 없는 것 +4 23.10.13 211 17 15쪽
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09 18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30 17 14쪽
371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18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17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12 17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07 16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33 16 14쪽
» 365화 선점 23.10.05 225 17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37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41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32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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