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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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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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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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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DUMMY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채찍이고 나발이고 하는 이야기는 솔직히 말해 지금 요토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정명수를 좋지 않게 보던 그라고 한들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그것을 드러내듯 요토는 바로 화살로 향하던 손을 멈추고 활을 내렸다.


고개 숙이고도 재주 좋게 그걸 안 정명수는 더 말을 내지 않고 기다렸는데, 이 노림은 제대로 통하여 요토가 입을 열게 했다.


“하, 같잖은 소리구나. 바라지 않는다고 하진 않겠다. 허나 네가 무얼 할 수 있다고?”

“소인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계책? 흐흐흐, 하하하!”


계책이라는 말에 마음껏 웃으며 한껏 깔본 요토는 정명수를 강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어떠한 이득을 바라고 그리 말하는 거냐? 전에 못 얻은 직책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공을 세워 직급이 올라가는 건 바라는 바이나 한편으로는 저 역시 대청을 위하는 청나라 사람입니다.”

“흥.”


청나라 사람이라고 하며 뻔뻔하게 둘러대는 말에 요토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에 정명수는 눈알을 굴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친왕 전하께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감히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해봐라.”

“혹여 친왕 전하께서는 청으로 돌아가서 한의 곁에 서는 것보다 조선을 다스리고 있음을 중하게 여기십니까?”

“......”


쿡 하고 마음을 찌르는 질문에 요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저울에 올리고자 하면 당연히 저울은 전자로 기운다.


사람이 과격할 뿐 품은 지모는 부족하지 않은 요토다.


그러니 요토는 한이 어떤 생각으로 조선과 전쟁을 벌였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서 함부로 그가 이곳을 떠날 수 없음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구도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을 거다.”

“한의 뜻은 모든 걸 우선합니다.”

“그 한께서도 내게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고 계시지.”


정명수가 하는 말에 딱 잘라 말한 요토는 거처 한쪽 장식장 안에 고이 모아놓은 서신들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무도한 조선인들이 그득하여 성미를 자극하니 어찌 계속 머무시겠습니까. 다른 자들도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뜬금없는 말에 요토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에 정명수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조선 조정에서 대우함은 있으나 조선 백성들이 무지몽매하여 자꾸 경내를 침범합니다. 상국의 아량으로 그간 보아주었으나 이번에는 욕심이 과하여 말을 탐내니 넘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을 탐내었다.


전혀 들은 바가 없는 일이나 요토는 이것이 일종의 구실삼기 임을 알고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계속해봐라.”

“그리하여 이제 조선에 경고하나 그들이 늦게 들어 주변에 벌을 내리고 한께 소식을 올려 답을 기다립니다. 정당한 분노로 벌을 내리었으니 알아달라고 말입니다.”

“소란을 일부러 일으켜라?”

“정당한 행사입니다.”


소란이라는 말을 돌려서 부정한 정명수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서 적당히 일이 마무리되면 친왕 전하께서는 한께 요청하여 말씀하십쇼. 조선 조정이 그럴 뜻이 없었고 그저 일부 모자란 조선 백성들이 벌인 일이다, 그러나 한번 충돌이 생기니 다음에는 더 쉽게 생길 수 있음을 걱정한다. 하여-.”

“다른 사람으로, 다른 팔기로 대체하여 달라?”


요토가 정명수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고 가로채어 말했다.


이에 정명수는 고개를 더욱 조아리며 그저 결정을 기다리듯 자세를 취하니 요토는 얼마간 그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렇게 침묵이 자연스레 내려앉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요토가 그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럴듯하군. 네 말대로 한다고 치자. 허면 넌 뭘 얻지?”

“조선에서 조금 더 높은 품계를 얻을 것입니다.”

“그걸로 만족한다고?”


의심스럽게 보며 물으니 정명수는 숨길 것이 없다고 하듯 말을 고했다.


“당장은 그것이면 됩니다.”


그것으로 끝은 아니나 이번은 충분하다는 대답에 요토는 묘한 얼굴로 정명수를 보았다.


그러다가 이내에 요토는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여기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원하는 건 알아서 얻어라. 단, 이것만은 기억해라.”


목소리에 힘을 실은 요토는 곁에 둔 화살을 손으로 잡고 그를 가리켰다.


“네놈이 부리는 수작, 아니 계책이라고 했던가? 그걸로 나나 대청에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면 그 목은 확실히 가져가겠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씀드렸듯, 소인 역시 대청을 진심으로 위하는 청나라 사람입니다.”



***



“설득하기 참 귀찮은 자란 말이지.”


요토는 단순한 듯하나 어리석지는 않으니 정명수가 보기에 여러모로 상대하기 귀찮은 자였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음을 생각하니 가슴에서 고양감이 솟아오르는 게 썩 나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거기에 거처로 돌아와 홀로 있기 때문인가, 정명수는 저도 모르게 입이 가벼워졌다.


“의심도 많고 걱정도 많다니까. 당신이나 여기에 있는 자들이 돌아가길 바라는 건 진심인데 말이지.”


물론 이유가 요토에게 말한 것처럼 무슨 청나라를 위한 충정이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대청이 아니라 그곳에 몽골이 있다고 한들 그들이 강했다면 정명수는 그들을 따랐을 것이다.


명나라가 여전히 융성하여 넘어가서 자리할 기회가 있었다면 바로 그리했을 것이다.


이런 정명수에게 있어서 대청을 위한다는 건 말 그대로 입발림에 지나지 않았다.


재주도 있고 머리도 있으나 그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만 쓴다.


이것이 정명수라는 사내이며 어디건 언제가 되었건 변하지 않을 진실이었다.


“위가 빠져야 승차할 것이 아니겠어.”


노리고 있는 바를 생각하면 승차라는 말은 옳으면서도 그른 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정명수가 노리는 것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영향력을 홀로 발휘하는 것이니 말이다.


조선에서 청에 하는 말도, 청에서 조선에 전하는 말도 정명수가 말하는 대로 되는 상황이 그가 바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면 요토 대신 누군가 다른 어설픈 아이신기오로가 친왕이랍시고 와도 별로 상관없었다.


또한 이를 위해서 정명수는 지금 조선에 있는 팔기들 역시 돌아가길 희망했다.


조선통은 그 하나면 족하며, 다른 이들은 그저 그에게 자문하고 말하는 것에 의문 없이 따르면 그것으로 좋았다.


그런 면에서 조선에 있는 팔기들은 가능성이 그렇게 크진 않지만 경쟁자라고 할 수 있으니 하나도 빠짐없이 심양으로 돌아가 주는 편이 좋았다.


‘다 돌아가면 팔기는 안 와도 되니 숫자나 좀 많이 왔으면 좋겠군. 한 천 명 정도 말이지.’


일반적인 장수라면 정명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명수는 장수가 아니며 전장에 나갈 생각도 없었다.


그저 위세를 부리고 제멋대로 하고 싶을 뿐이니 질과 별개로 숫자가 많은 것이 좋았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도 마찬가지다.


“거들 손과 막아줄 방패는 많은 게 좋은 법이지.”


즐겁게 웃으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정명수는 느긋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즐겼으니 이제 가서 준비할 시간이었다.


“어디, 말 도둑놈부터 시작해볼까?”



***



다음에 누구든 걸리면 한 놈 위협해서 되는대로 말하게 한다.


그가 바라는 대로, 청나라에 유리하게 말이다.


정명수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처음부터 예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 놔는 안 훔쳤습니다요!”

“이놈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기선제압과 위협을 겸해 날린 것까지 포함해 벌써 열 대는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박귀동은 정명수가 바라는 말을 전혀 입에 담지 않았다.


얼굴이 붓고 입안은 터졌는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박귀동은 여전히 바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미련한 놈이 걸려들었어? 피곤하게시리.’


생각과 달리 순순히 움직이지 않는 박귀동을 보며 정명수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러나 이내에 상관없다는 얼굴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말하는 놈이 더 좋긴 한데, 적당히 그럴듯하면 상관없으니.”


무심하게 말하는 그 목소리에 담긴 차가움을 느끼고 박귀동은 부르르 떨었다.


배움이 짧고 부족한 그라고 하나 생이 순탄치 않았던 탓에 한 가지는 뛰어난 점이 있었다.


바로 위험을 느끼는 직감이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지금 당장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겪었던 것이 얌전하다 여길 정도로 험한 꼴을 볼 거라 외치고 있었다.


만약 다른 일이었다면 그는 냉큼 그 직감에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못된 놈이 어떤 못된 놈인지 잘 알고 있던 박귀동은 그럴 수 없었다.


‘나 박귀동, 아무리 못 배워먹고 비루해도 사람이 할 짓 안 할 짓은 안다!’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속으로 다짐하니 다시 얼굴을 향해 정명수의 손이 날아들었다.


퍼억!


“나, 나는 정망로 안 훔쳤으요!”


아예 주먹으로 세게 치는 소리에 아예 조금 전보다 더 말이 뭉개졌으면서도 박귀동은 여전히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그에 정명수는 비웃듯 입을 열었다.


“알아.”

“......에?”


멍하니 그를 보니 정명수는 몸을 돌려서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팔기들에게 만주어로 말했다.


“적당히 말이랑 행동 좀 못 하게 하시오. 다들 집에 가셔야지.”


정명수가 하는 말에 팔기들은 살짝 불쾌한 얼굴이 되었으나 그들 자신과 조선 떨거지 하나와 비교하면 중함에 비할 바가 없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죽이진 말고. 죽이면 잘 안 믿거든.”

“그러지.”


아니꼬운 당부에 팔기가 고개를 끄덕이니 정명수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남겨진 팔기들은 여직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박귀동에게 다가갔다.


“근성은 굴마훈 자식보다 훨씬 쓸만하니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우리도 사정이 있거든.”

“걱정하지 마라. 최대한 덜 아프게 때려줄 테니.”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에 박귀동은 벌벌 떨었다.


만주어로 말하여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하는 것도 공포감을 한층 조성했으나 사실 알아들었다고 한들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나, 나는 절대로 말 안 할거여!’

“아이고!”



***



“이런.”


적당히 팔기들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나온 정명수는 멀리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가 있음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복색이며 구성이며 이미 몇 번이고 봐서 눈에 익은 것은 물론이오, 누구보다 열심히 청나라 사람이라 주장하나 조선에서 태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정명수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이 조선 조정에서 주기적으로 상황을 살피고 심양에서 오는 서신을 전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라는 걸 쉬이 알고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났다.


‘안 들리지?’


혹시나 바깥에서 안에 있는 이들의 소리가 들리는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 정명수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서 요토가 있는 장소를 향해 달음질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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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1 23.03.06 579 31 12쪽
152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2 23.03.05 580 28 12쪽
»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3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0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4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3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7 34 15쪽
145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4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3 28 13쪽
143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0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1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5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5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7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2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7 35 15쪽
135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40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1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7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3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8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5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7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5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5 38 12쪽
125 124화 호가호위 +4 23.02.06 798 42 14쪽
124 123화 엘도라도 +5 23.02.05 784 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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