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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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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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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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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DUMMY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모 대인께서는 재주가 아주 좋으십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저보다야 이쪽에 있는 배 모가 더 재주가 좋았지요.”


환관 장화가 칭찬하는 말을 입에 담으니 모장욱은 기분 좋게 받으며 그 공을 동행한 배태경에게 돌렸다.


그저 자신만 공을 챙길 수도 있었으나 모장욱은 그러지 않았다.


딱히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더 돋보이기도 하는 것에 더해 이득도 더 컸기 때문이었다.


당장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한 대인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대범함이 있음을 꾸며 보임은 물론이오, 장화에게 자신이 이만큼 사람을 다룸과 연줄에 있어서 풍족하다고 보여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배태경에게 신뢰를 주어 제 사람에 가깝게 쓸 수 있으니 이 또한 득이었다.


과연 모장욱이 노린 것이 제대로 들어맞았는지 장화나 배태경 모두에게 그를 향한 호의가 한층 더 눈에 깃들었다.


‘흐흐흐, 아주 좋구나.’


이러한 시선에 민감함을 넘어서 즐기는 모장욱은 내심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내면에서 그럴 뿐,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도 웃기는 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은 오로지 환심을 사기 위한 가면이었다.


“또한 언제고 이런 일을 맡아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명에서 사는 이로써 당연한 일입니다.”

“훌륭합니다. 그대의 마음을 전하께서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장화가 바라는 말을 해주니 모장욱은 그가 쓴 웃은 얼굴이라는 가면에 일체화되어서 웃었다.


반면 배태경은 웃으면서도 살짝 놀라고 있었는데, 방금 들은 말을 통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연줄의 끝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전하라고? 이 환관, 설마 태자 전하의 측근인가? 만약 그렇다면......’


꿀꺽


저도 모르게 크게 목울대를 움직인 배태경은 혹시나 그 소리가 들렸을까 싶어서 눈알을 굴리며 두 사람의 기색을 살폈다.


들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모른척해 준 것인지는 모르나 다행히 두 사람은 그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휴.’


그에 남몰래 안도한 배태경은 이어서 그가 제대로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며 속으로 득의양양했다.


‘태자 전하라. 이거 아주 제대로 거물과 연이 생겼구나.’


높으신 분이라고 하기에 남경 조정 대신 가운데 누구겠거니 싶었다.


혹시라니 근래 명성과 그 위세가 남다른 남경 총독 양사창이면 바랄 것이 없겠다 여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꿈은 적당히 꾸는 게 좋다고 자신을 달래며 오니 웬걸, 이건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한 다리, 아니 두세 다리 건너서긴 하지만 태자 전하와 연이 생기니 기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만하면 그치들하고 척지은 것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거스름이 남지. 암, 그렇고말고.’


중간에 그가 웃돈을 주고 바스쿠가 가져온 인삼이니 도자기니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사들인 덕에 마카오 상인들은 괜히 욕심부리며 수 쓰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 되었다.


당연히 그들은 배태경에게 항의했으나 그는 그 모든 항의, 아니 끝에 가서는 위협으로 변한 그들의 말을 깨끗이 무시했다.


마카오에 오가는 장사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위험함에 더해 모장욱과 저울에 놓고 겨루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었다.


여기에 지금 알게 된 연을 생각하니 이제 마카오는 정말 마카오 따위가 되었다.


이만한 이득이라면 솔직히 배태경이 보기에 한 십 년이나 이십 년은 그들과 연을 끊어도 별문제가 없었다.


“고생들 했습니다. 여기, 대금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내 모 대인과 배 대인의 이름을 말씀하겠습니다. 운이 좋으면 아마 보자고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장화의 말을 들으며 모장욱과 배태경 두 사람은 곧장 고개를 크게 숙이며 말을 꺼냈다.


“감히 그런 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대명의 백성으로서 도움이 되었다면 그저 만족합니다.”

“소인 역시 삿된 욕망을 품고 한 것이 아니거늘 그런 일을 바라겠습니까. 그저 말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개 숙이고 한껏 겸양을 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물들어 있었다.


반면 고개 숙인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화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기색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잠시 잠깐 머물렀다가 그들이 고개를 내리고 다시 들기 전에 사라졌기에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



‘쯧, 설마하니 이 정도로 빠를 줄이야. 이거 내가 저들을 너무 쉽게 봤군그래.’


인삼을 챙겨서 돌아가던 장화는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어긋한 결과에 속으로 혀를 찼다.


모장욱이나 배태경에게 이른 것과 달리 그는 이 일이 전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사실 작금 인삼이 매우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는 건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아는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 모른척하는 것이 때때로 더 큰 이득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걸 궁에서 아주 잘 익힌 그는 일부러 모른척하며 모장욱에게 인삼을 요구했다.


본래는 이렇게 인삼을 구해오라고 시킨 후에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우위를 잡고 남경 상인 일부를 조선에 한번 보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삼을 구해오라 말하며 한편으로는 조선 사정을 살핀다.


그게 장화가 생각한 이번 일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저들이 빠르게 인삼을, 그것도 질 좋은 인삼을 구해오니 일단은 칭찬하며 물러나는 것말고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태의에게 적당히 보양을 위한 약을 부탁할까.”


아직 정략 경험이 얕기 때문인지 장화는 무언가 더 어떻게 할 방도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장화는 일단 들어온 인삼이니 둘러댄 것처럼 쓰는 게 낫겠다 여기며 그 길로 의원을 찾아갔다.



***



“남송이라. 대명도 이렇게 될까?”


최근 역사를 살피는 일에 재미를 들린 태자 주자랑은 오늘 살핀 내용 가운데 남송에 대한 것을 살피며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분명 그 최후나 이어감은 훌륭하나 대세는 보는 눈이나 몇몇 단점이 눈에 밟혔다.


“전하, 소인 장화이옵니다.”

“안으로 들게.”


어린 나이이나 최대한 점잖게 말하니 장화가 손에 탕약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니 바로 탕약에서 쓴 냄새가 확 풍기니 주자랑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엇이오?”

“근래 남경 상인들이 좋은 약재를 얻었다 합니다.”

“약재?”


주자랑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으니 장화의 물 흐르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경 상인들이 말하길, 태자 전하께서 남경을 보살피시니 참으로 홍복이며 감사할 일이라 합니다. 하여 이번에 얻는 약재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태자 전하께 바치고자 하여 올린 것입니다.”

“그런가.”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으나 남이 자신을 칭찬했다는 말에는 어른도 기분 좋음을 감추기 어려운 법.


주자랑은 얼굴에 미처 감추지 못하는 뿌듯함을 드러냈다.


“조선에서 온 귀한 인삼이라 합니다.”

“인삼?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태의가 태자 전하의 몸에 맞춰 직접 달인 것입니다.”


장화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는 궁녀에게 눈짓했다.


그러나 궁녀가 쪼르르 다가와서는 살짝 기미를 한 후 물러나니 장화는 곧장 주자랑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탕약 그릇을 내밀었다.


“몸에 좋은 것은 나도 알지만 이거 내가 먹어도 되는 것인가? 자금성을 떠나기 전에 들으니 먹는 것을 조금 가림이 좋다고 황상께서 말씀하셨거늘.”

“기미는 보신 대로 마쳤으며 탕약은 태의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하신 전하의 몸에 맞추어 조절했으니 오히려 몸에 좋을 것입니다. 다만 전하께서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고 하면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으으.”


백성들이 감사로 올린 것이라 생각하니 입은 한번 대보아야 할 것 같았으나 후각을 자극하는 향에 자꾸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좋은 거라고 듣기는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인삼이 귀한 약재이며 근래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귀하다는 건 주자랑도 잘 알고 있었다.


망설이며 탕약을 노려보던 중 주자랑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응? 조선에서 온 인삼이라고?”

“예, 전하.”

“조선에서 다시 인삼이 오고 있나?”

“소인을 그런 일을 잘 모르나 남경 상인들이 구했으니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화의 대답을 들은 주자랑의 눈에는 흥미가 잔뜩 깃들었다.


“궁금하구나. 이것을 구해온 자에게 조선 사정을 조금 듣고 싶다. 데리고 올 수 있겠느냐?”

“조선 사정을 말입니까?”

“그래. 조선에서 왔든 조선에 다녀왔든 하였으면 뭐든 아는 게 있을 거 아니냐.”


주자랑이 가득 기대를 담아서 말하니 장화는 속으로 곤욕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굳이 지킬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운이 좋으면 보자고 하실 수도 있다고 상인들에게 말하긴 했으나 그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영에 수렴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니 혹시 모를 일을 생각해 인삼을 진상품으로 하여 자신에게 올지도 모르는 화를 피하고자 한 장화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당황과 별개로 그는 지금 태자 앞에 있으니 말을 지체할 수 없었다.


“불러들이는 일이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하, 당금 천하는 불측한 무리가 사방과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혹여 민란을 일으킨 이들처럼 엄한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있지 않을까 우려가 듭니다.”

“민란이라니, 내 공을 칭송해서 이리 귀한 것을 올린 이들이 그러겠느냐.”

“그것은......그렇습니다.”


잠시 말을 주저하긴 했으나 주자랑이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장화 역시 남경 상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태자는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주 운이 좋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후에는 삼족이 아니라 구족의 목이 달아날 게 뻔했다.


적어도 그가 만난 모장욱이나 배태경은 그런 일을 위해 나설 위인들이 아니니 그 점에서는 안심해도 좋았다.


하지만 세상사는 모르는 법이니 장화는 혹시 모를 제 책임을 일말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허나 시국은 불안정하니 어느 정도 말을 통함이 좋다고 여깁니다.”

“누구와 말인가?”

“적어도 양 총독께서는 이 남경을 맡으시니 아심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주자랑이 떨떠름하게 말하니 장화는 속으로 난처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대로 만남을 남몰래 주선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나중에 그가 위험하다 여긴 장화는 살짝 돌려서 말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 하나나 둘을 불러서 일을 묻는 것은 전하라면 언제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옵니다. 허나 그들에게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전하를 모시는 이들에게는 언제고 혹시 모를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황상과 전하를 향한 당연한 태도이나 충심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일은 먼저 준비하되, 양 총독과 다른 남경 조정 신료들에게도 일러는 주거라.”

“너른 마음으로 모두를 챙기시니 실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책임을 여럿이 나누면 가벼워지며 더 많이 나누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은 없어도 괜찮다.


환관들 사이에 도는 말을 떠올린 장화는 슬그머니 웃으며 혹시 모를 상황에서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쐐기를 생각했다.


‘어디 보자, 인삼이 좀 많이 남았었지? 양 총독께서 좋아하시면 좋겠군.’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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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1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0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3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1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6 34 15쪽
145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2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2 28 13쪽
143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0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1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4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4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5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0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7 35 15쪽
»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39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0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6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2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6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5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6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4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5 38 12쪽
125 124화 호가호위 +4 23.02.06 797 42 14쪽
124 123화 엘도라도 +5 23.02.05 783 42 13쪽
123 122화 원수는 동방에서 만난다 +6 23.02.03 784 44 12쪽
122 121화 보는 곳은 모두 같다 23.02.03 696 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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