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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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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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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1,841

작성
23.03.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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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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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2쪽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DUMMY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박귀동이 그때, 이경증이 다가와서 상세를 살필 때 정신을 차린 것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는 한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순간 마음이 정말 약해진 상황이었다.


혹여 누군가, 가령 정명수나 팔기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그에게 도둑임을 인정하라 윽박질렀다면 힘없이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보인 다리, 청나라 사람과는 다른 복식임이 명백한 모습을 보는 순간 박귀동은 깨달았다.


그 다리의 주인이 그나마 그가 한 번이나마 매달려 비벼볼 언덕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매달림은 훌륭하게 통하였으니, 이제 박귀동은 저 앞에 놓인 구명줄 하나만 바라보고 그저 굳게 버틸 따름이었다.


‘난 말 안 할거여, 그리고 살아날 거고!’


거기에 눈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부어서 앞도 잘 보이지 않으나 그 보이지 않는 눈에는 열기가 그득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덕인가, 박귀동은 자신을 윽박지르는 소리가 무섭지 않았고 정명수가 가끔 와서 미련하다, 어리석다 하는 말을 흘렸다.



이러한 박귀동의 굳은 마음은 결국 정명수의 계산을 상당히 어긋나게 했다.



***



“이런 뭐 별 거지 같은 게 걸렸어?”


씩씩거리며 제 거처로 돌아온 정명수는 못마땅함을 팍팍 드러내며 거칠게 자리에 앉았다.


“차라리 죽일까?”


괘씸하여 조금 험히 다루다 보니 죽었다고 하면 누가 무어라 할까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꼴을 자신이 당하게 될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명수가 품었던 냉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빌어먹을 조선왕 같으니라고.”


본디라면 이렇게 쉬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홀로 있으니 무슨 말을 아끼겠는가 싶었던 정명수는 참지 않고 말을 내었다.


“숙였으면 숙였다는 증거로 적당히 사리란 말이다. 뇌물도 주고, 직책도 뿌리고 그래야 좋게좋게 넘어갈 것을. 쯧쯧, 그렇게 눈치가 없고 어리석으니 두 번이나 진 것이 아닌가.”


어리석다고 말하며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드나 한편으로 정명수는 지금 조선왕이 보이는 태도가 오히려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할 수 있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서 그 상황을 읽는 능력이나 처신은 절대 조선왕이 어리석지 않음을 시사했다.


‘친왕 전하라면 몰라도 나는 아마 기회가 되면 칠 수 있다 여길 게 뻔해.’


정명수가 이번 일을 꾸밈은 사실 욕망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욕망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먼저 자리하는 욕망, 삶을 향한 욕망도 있었다.


그러니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일을 통해서 정명수 자신이 청과 조선 사이에 있는 유일한 가교가 되어야 했다.


“......좋아. 잡은 놈이 별로라면 다른 놈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죽이지 못하면 당분간 입을 열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고 말이지.”

정명수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할 일을 머리에서 그렸다.


적당히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 싶은 정명수는 음흉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면식도 없을 다른 사람 따위, 적당한 대가가 있으면 어찌 돼도 좋은 법이지.”



***



“말 도둑? 조선 사람이?”

“그러합니다.”

철원에서 돌아온 이경증의 말에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다.


“흐음.”

“전하, 소신 이경증이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고민하여 이 일을 어찌 처결할지 생각하던 중 이경증이 묻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내었다.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보았다.


“무엇인가?”

“그들은 그자가 말 도둑이라 하였으나 소신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경증이 하는 말에 내 눈썹이 의지를 벗어나서 멋대로 꿈틀거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이경증은 저들이 말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말이었고, 엉뚱한 누명을 쓴 조선 사람이 저들에게 억류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주장하는 것이 거짓이며 그 도둑은 그저 죄 없는 민초다?”

“죄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으니 이경증은 서두로 말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서두였고, 이어진 말은 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허나 그 죄는 소신이 보기에 그저 전에 있었던 이들처럼 철원에 함부로 들어간 것에 그칠 것이며, 감히 욕심을 내어 말을 훔치거나 하진 않았다 여깁니다.”

“어째서인가? 증거가 있는 일인가?”

여기서 있다고 하면 이 일에 대한 내 시선이나 대응은 조금 전까지와는 아주 달라지게 된다.


하여 이경증이 할 대답을 집중하여 기다리니 대답은 내 기대에서 여러모로 빗나가서 돌아왔다.


“송구하오나 없사옵니다.”

“허면 도승지는 어이하여 그렇게 확신하고 말하는가?”

“기식이 엄엄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말하자면 그 말은 아마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한이 되고 중요한 말일 것입니다.”


계속 말하라는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으니 이경증은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자는 작게 자신은 ‘훔치지 않았다’, 이리 고하였습니다. 맞아 죽게 된 도둑이 과연 거짓이 아님을 말하겠습니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죄를 자복하고 살려달라 할 것입니다.”

“......부족하구나.”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부족함을 토로하였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경증의 말은 옳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은 때때로 상상을 뛰어넘는 일을 벌이며, 어리석은 짓을 수도 없이 저지른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이경증의 말은 마음을 기울게 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굳게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무엇보다도, 한 가지가 풀리지 않는한 이 일은 여러모로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갈 공산이 컸다.


“도승지 이경증에게 묻겠다.”

“하명하옵소서.”

“청나라 사람들, 아울러 친왕 요토가 무엇을 노리고 훔치지도 않은 자를 도둑으로 몰아세웠다고 생각하느냐?”


매사 일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는 듯 보이면 그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생리를 생각하며 이경증을 바라보니 그는 조금 전에 말하는 것 이상으로 머뭇거리며 주저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나름대로 그도 생각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상당히 꺼내기 조심스러운 일이고 말이다.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논하라.”

“......소신의 부족한 생각으로 감히 논하자면 친왕 요토는 지난 정묘년과 병자년 때와 같은 일을 다시 한번 꾸미고자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을 주저하고 주저한 끝에 이경증이 입에 담은 말은 과연 그만큼 주저하고 망설일 이유가 있는 말이었다.


“전쟁을 바란다? 이 나라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청나라에게 무슨 득이 된다고?”


조심스러워하던 것은 이해하나 반대로 나는 이 말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청나라에게 있어서 이제 전쟁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조선을 완전히 병합한다고 하면 청나라 사람들이 듣고 보기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득은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군을 일으킨다면 다시 조선을 병합하는 것보다 명나라와 싸우는 게 더 낫다.


이긴다면 대세가 기울어 천명을 얻는 일이 확정됨은 물론이고 설령 명나라에서 저항한다고 하여 그 정복이 절반에 그친다고 한들 그 절반이 조선 전체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그런데 전쟁? 그것도 자작극으로 이쪽을 자극해서 벌이는 전쟁이라?


“말이 조금 과하게 들린다. 혹여 그것이 정녕 친왕의 노림이라면 어리석다고 하겠다.”

“물론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정예하여 싸우는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나 고작 수백, 조선 전체와 비교하자면 바다에 소금을 던짐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하다.”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이경증이 다시 말을 내었다.


“허나 소신은 철원을 몇 번이고 드나들며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친왕 요토를 비롯한 청나라 사람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고?”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에 불을 놓는 것보다 더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게 들리는 말이다.


“다툼이 많다면 저들은 어느 날 조선이 위험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빌미로 갑자기 움직인다면 조선은 저들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 그랬지.


기병이 수백.


강력하지만 나라를 지배하기에는 부족하디 부족한 병력이다.


하지만 기병이란 본디 달리고 돌파하는 것이 그 목적이니, 저들이 이 나라를 가로질러 청으로 달아나고자 하면 막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청으로 돌아간 이들은 홍타이지에게 읍소할 것이다.


조선이 다른 마음을 품어 돌아왔노라,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퇴로를 자르는 것이 먼저로구나.”

“저, 전하!?”


내가 퇴로를 자른다고 하니 전쟁을 결심하였다고 여겼는지 이경증이 크게 놀라며 동요했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전쟁을 벌일 마음이 없다. 만사 불여튼튼이라, 저들이 위험함을 지금 다시 느끼니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저들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하려 하였지 않은가?”

“......송구합니다.”


내 물음에 이경증은 떠난 목적은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음을 상기했는지 사죄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송구할 것은 없다. 세상에서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대는 벌어진 일을 알고 그 뒤로 생각되는 일도 알아 왔으니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였다.”


그를 다독인 나는 조금 전에 내려다가 미처 내지 못한 말을 다시 꺼냈다.


“퇴로를 자른다고 하여 내가 저들을 일거에 몰살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보다 정확히는 저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함이 내 바람이다.”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니, 무슨 뜻인지 소신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저들이 북방이 아니라 반대로 삼남으로 내려가 휘저을 것을 우려한다.”

“!”


내가 생각한 우려를 입에 담으니 이경증은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그, 그것은, 아, 아니, 아무리 그대로......”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일은, 특히나 흉사는 모든 방향으로 생각을 열어두고 생각함이 옳다.”


내 말에 이경증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던 나는 잔잔하게 웃었다.


“대비함에 만전이 있다면 저들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도승지는 걱정하지 말라. 다만 그대에게 내 부탁할 것이 있다.”

“말씀하소서.”

“목숨을 거는 일이 될 수도 있으나 나는 그대가 한번 더 철원으로 가주었으면 한다.”

“.......어찌 왕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이 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위해 신 이경증, 언제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내 말에 이경증은 적잖이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는 미안하나 이런 일은 보통 명분이 더 그럴듯한 쪽이 유리하다.


정말 무기를 맞대고 싸우든, 아니면 서로 겨누기만 하고 말로 싸우든 말이다.


“가서 친왕에게 전해라. 일을 공정히 살피고 싶으니 공동으로 심문과 재판을 하자고 말이다.”

“예, 전하.”


이경증은 마음을 다독였는지 아니면 그저 대답이 짧았기에 그러했는지 떨림이 없이 대답하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그가 눈앞에서 물러난 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당장 정승들을 불러라! 내 긴히 논할 것이 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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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7 야일공
    작성일
    23.03.06 21:57
    No. 1

    박귀동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가 이 격렬한 파도 속에서 버틸 수 있기를 바라며 보게 됩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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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4화 복이 되기 전 화는 그저 화다 +3 23.03.08 615 28 11쪽
154 153화 어긋남은 두고 보는 것이 아니다 +3 23.03.07 583 36 12쪽
»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1 23.03.06 580 31 12쪽
152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2 23.03.05 581 28 12쪽
151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3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2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5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3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7 34 15쪽
145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5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4 28 13쪽
143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1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2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5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6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7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4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8 35 15쪽
135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40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2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9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4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8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6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7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6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6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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