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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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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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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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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DUMMY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바다를 알려달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런데 세상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냐?”

“사람이 보는 세상이라는 건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조선 사람이 보는 세상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알고 있고, 명나라나 청나라도 이와 같지요.”


윤휴가 하는 말에 윤선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윤휴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명나라에는 그들의 세상과 시점이, 청나라에는 그들의 세상과 시점이 있습니다. 과연 바다 건너 불란국 사람들, 언제고 보게 될 호란드 인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같으면서 다르겠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을 하다 보니 흥분하였는지 윤휴가 하는 말은 점점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자 윤선거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얼 위해서?”


무얼 위해서라는 질문에 윤휴는 흥분하던 것을 그치고 잠시 생각을 골랐다.


이윽고 중요한 말들을 접목한 윤휴는 그답지 않게 대단히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조선이 천하 물산이 오가는 중심이 되어야 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야 잘 알고 있다.”


윤휴가 하는 말에 전에 올린 상소를 떠올린 윤선거는 고개를 주억였다.


동시에 그는 그 상소가 아마 이 고생의 시작은 아닌가 슬쩍 의심이 들었으나 이내에 그걸 내려놓았다.


‘이제 와서다. 그리고 신풍 부원군의 상소와 같은 일이 있다면 결국 나는 올라왔을 것이야.’


괜한 생각을 털어내니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윤휴의 음성이 들려왔다.


“천하 모든 것이 모이는 곳에서 천하에 대해 모르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다,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니 윤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생각할 일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저는 그걸 가장 먼저 주장하고 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제물포에서 여러 번 그 끝을 그렸습니다.”

“그 끝을 그렸다. 재밌는 말이구나.”

“재밌을까요? 그 끝이 천하가 겨루는 각축장이 되어서 조선이 사라지는 되는 일이라고 해도 말입니까?”

“그 무슨 해괴한 말이냐?”


정녕 해괴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의 중심이 되니 천하가 겨루는 장소가 되어 사라지다니, 윤선거가 보기에 이는 정녕 해괴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말이 옳다면 명나라는 진즉에 사라졌어야 한다.”

“그것은 명나라가 굳건하고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강하니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을 우습게 여길 힘이 있기 때문에 그리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십 년이고 이십 년이 지나서, 아니 그것은 너무 짧군요.”


짧다고 말한 윤휴는 소리 나지 않게 중얼거리며 셈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넉넉히 잡고 한 삼백 년? 더 가면 일이백 년이 더 붙을 수도 있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길보 형, 천하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천하가 넓어지고 있다.


이 말에 윤선거는 윤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종래의 나라들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그 천하 교류에 끼어드니 저 명나라로서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고.”

“그렇습니다. 물론 그때에 있는 나라가 과연 명나라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이 나라 사대부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불안이며 동시에 함부로 말하지 않는 금기다. 조금은 삼가는 게 좋겠다.”


우려가 적지 않은 듯 윤선거가 목소리를 낮추니 윤휴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넓고 사람 많은 중국도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나라 조선이 그렇게 되고자 하면 조선이 남아나겠습니까.”

“.......”

“물론 사람이나 형태는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지금과 같을까 하면 저는 아리송합니다. 어느 날에 돌아보면 불란국 사람이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이하고 선망이 들면서 동시에 무서운 말이구나.”

알 수 없는 곳을 직면한 심정에 윤선거가 고개를 흔드니 윤휴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선이 조선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무엇을 남겨 조선으로 삼을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저들과 조선이 저들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이고 같은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지.”

“바로 그렇습니다.”

“후우.”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자 주제라는 생각에 윤선거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그러고 있던 윤선거는 걱정이 담긴 얼굴로 윤휴에게 물었다.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기간이다. 과연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대비할 일이더냐? 옛 삼한에는 삼한의 법도가 있었고 전조 고려에는 고려의 법도가 있었으며 이제 조선에는 조선의 법도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멀다 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금세 닥칩니다.”

“그래, 그렇지.”


윤선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니 힘을 얻었는지 윤휴는 품은 말을 마저 내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그 세상에 사는 각양각색 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한 번씩 확인하고 돌아보는 것이 제 바람의 종착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정 이 나라가 천하 물산 중심이자 천하 중심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중심이 된 대가가 정체성이 소멸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집으로 들리기도 하는구나. 젊은 관리가 아니라 산림 깊숙한 곳에 있는 노 선비의 말로 들려.”


기이하다는 얼굴로 말하니 윤휴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는 것이 발전하기를 바라나 동시에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견 모순되나 누구나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렇죠.”


말을 내던 윤휴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덧붙였다.


“대부분은 말입니다.”

“그 대부분이 아닌 자들은 어떻게 행동할 거라 생각하느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저 재물과 영화를 쫓아서 무엇이든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쫓아서 나라도 이웃도 버리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적당히 말하며 고민하던 윤휴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얼굴로 윤선거에게 물었다.


“자, 이만큼 말씀드렸으니 이 원대한 일의 시작으로 저들에게 바다와 세상을 물어보니는 일에 나서주시겠지요?”

“이만큼 들어놓고 너보고 알아서 하라고 물러날 정도로 편한 성격이었다면 진즉에 적당한 자리에서 벼슬하며 편히 살았겠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대답한 윤선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이 일은 내가 맡으마. 너는 어명에 집중해라.”

“역시 길보 형이 최고이십니다.”

“말이나 못 하면.”



***



“그럼 가볼까.”


윤선거에게 짐을 덜어달라 부탁한 윤휴는 날이 밝자마자 각오를 다지며 거처를 나섰다.


걸음하여 움직이니 그를 보조하듯 사람 몇이 따라붙었으나 윤휴는 잠시 시선만 주고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윤휴는 생각지 않은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마침 말씀드리러 가던 참인데 잘 되었군요.”


조선 사람과 같은 옷에 같은 말, 그러나 생김새는 조선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 벨테브레이였다.


그의 인사에 윤휴는 반색하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세월이 흘러 조금 걸리긴 했지만 파악은 거의 마쳤습니다.”


벨테브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아직 사람은 그 그림자도 보이지 않음을 확인한 벨테브레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언가 하자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항해에 나설 수 있는 것들에 다루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들은 정말 우리에게 멀쩡한 배를 맡기고자 하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저 배들이라면 숙련된 선원과 항해사 그리고 적당한 해로가 있다는 전제하에 아마 제 고향까지도 갈 수 있을 겁니다.”


윤휴는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가고 싶으십니까?”

“글쎄요. 저는 돌아간다고 한들 이곳보다 낫게 살지 모르겠습니다.”


벨테브레이가 회의적인 얼굴로 고개를 흔드니 윤휴는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배나 저기 바다 너머를 볼 때에 상당히 그리움에 잠기신 거 같았습니다만.”


윤휴가 바다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본 것은 그저 바다가 아니었다.


그는 그 너머를 보았고 그 너머에 있을 것을 상상했다.


또한 윤휴는 그를 찾으러 오곤 했던 벨테브레이의 얼굴에서 정겨움이나 그리움과 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그렇기에 그가 언제가 되었듯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여겼고, 나중에라도 가능하다면 그 일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이리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니 어리둥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홀로 밤에 자다가 산성에서 싸우던 날,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함께였던 날들을 떠올리면 충동적으로 고향으로 향하고 싶습니다.”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가서 무얼 하는 게 좋을까요?”

“예?”


가서 무얼 하는 게 좋냐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윤휴는 그답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벨테브레이는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좌랑 나으리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시다니, 저도 제법 말을 잘하나 봅니다.”

“아니, 방금 그건......”


말을 잘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이렇게 말하려던 윤휴는 예가 아니라 느끼며 뒷말을 삼켰다.


“하하, 이게 그런 것과 다름은 저도 압니다. 이야기를 돌리자면, 저는 고향에 무엇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있고, 살던 곳도 있으나 그게 다입니다. 일도 없고 가산도 없고 친인척도 적습니다.”

“......그건 참.”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에 윤휴가 곤란함을 보이니 벨테브레이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 나라에서는 수구초심이라고 하던가요? 아마 죽을 무렵이면 고향에 가고 싶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향에 쓰이는 마음은 오로지 친구들이 그곳에서 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뿐입니다.”


윤휴는 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어제 윤선거와 주고받은 말들이 떠올라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시선에 벨테브레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박 종사관께서는 스스로 본인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느 나라 사람이라.”


그 말에 가만히 생각하던 벨테브레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조선에서 발을 붙이고 사니 조선 사람입니다. 홀란드에서 사람이 오면 반갑고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나 그들을 따라가진 않을 겁니다. 조선보다 그들을 위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하지만 나이 들어 육신이 누일 곳을 찾는다면 홀란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렵고 곤란한 일이군요.”


어제 입으로 내었던 화두가 더 복잡하게 변했음을 느낀 윤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러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은 일이 없으니 편히 쉬십쇼. 그리고......”


말끝을 흐린 윤휴는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를 간신히 끄집어내 입에 담았다.


“박 종사관님과는 언제고 함께 호란드로 가고 싶습니다.”

“하하, 생각만 해도 재밌을 거 같군요.”


그저 빈말이라 여긴 건지 벨테브레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마주 웃은 후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윤휴는 어렵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조선 사람이나 나중에는 호란드 사람. 정녕 어렵다, 어려워.”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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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1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0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3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1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6 34 15쪽
»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2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2 28 13쪽
143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0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1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4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4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6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0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7 35 15쪽
135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39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0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6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2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6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5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6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4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5 38 12쪽
125 124화 호가호위 +4 23.02.06 797 42 14쪽
124 123화 엘도라도 +5 23.02.05 783 42 13쪽
123 122화 원수는 동방에서 만난다 +6 23.02.03 784 44 12쪽
122 121화 보는 곳은 모두 같다 23.02.03 696 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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