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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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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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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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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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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DUMMY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처음에 들어설 때 꼴 보기 싫은 이와 스쳤을 때부터 영 께름칙하긴 했다.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고 경계하던 이경증이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요토의 첫말, 아니 두 번째 말부터였다.


“언제나 고생이 많군.”

“양국을 위한 일이니 어찌 고생이라 하겠습니까.”


예전과 다르지 않은 치하에 예전과 다르지 않은 겸양.


그러나 이어진 말은 전과 같지 않았다.


“나는 조선에 대해 제법 좋게 생각하고 있다. 과거는 일단 버려두고 논하자면 그대들은 우리 청과 잘 지내고 있으며, 예의를 차리고 있다.”


말은 칭찬이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이경증에게 이 말이 칭찬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이는 그저 전조, 서두에 불과하다 여긴 이경증은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걱정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한 조선의 노력과 태도를 보아 나는 지금까지 여러 무지와 무례를 넘겨주었다. 조선 백성이 들어옴을 그간 봐주었고, 어쩔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나무나 식물 캐어감을 넘어가 주었다. 허나 이번에는 조금 과했다.”


철원 인근에 있는 백성들이 경계를 오가다가 몇 번이고 쫓겨났음은 이경증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먹을 게 부족하고 땔감이 부족한 백성들이 저곳에 가지 말라 하여도 들을 리가 만무하였고, 하여 현실은 권한 것을 백성들이 어겨 청나라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를 막기 위해 조선에서 군을 내어 경계를 지키자니 모양이 이상하며 그렇다고 철원에 있는 청나라 사람들에게 처결권을 주자니 전자보다 한층 더 모양이 이상하다.


타일러서 들을 것인가 하면 또 그것은 절대 아니라 하듯 여전히 백성들이 오가니 사소하나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허어, 결국 터졌구나.’


골치 아프고 처결하기 어려움과 별개로 이 일이 바람직한가 하면 그렇지 않음을 이경증은 물론이고 이 일을 아는 신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마땅하지 않아 방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폐해나 돌아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으나 뚜렸한 해결책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 터짐을 직감한 이경증은 한층 조심스러운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허나 이번에 잡힌 자가 말을 훔치려고 한 일은 실로 무도하다. 감히 우리 대청 만주인에게서 말을 훔치려고 하다나,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왕은 직접 이번 일을 논하여야 할 것이다.”


말을 훔쳤다.


이 말에 이경증은 지금 벌어진 일이 지금까지 나무하고 사냥하고 그런 일에 비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임을 알았다.


이대로라면 조선에서 이들에게 적잖은 양보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재물이라도 한가득 안겨주든가 말이다.


어느 쪽이든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경증은 고민하다가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정녕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안타까운 일이며, 마땅히 상께서 이르심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상세한 것을 알리고 싶기에 죄인들과 대면하여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만나는 것은 상관없으나 이야기를 듣긴 어려울 거다.”

“......혹시 죽었습니까?”


이야기를 듣기 어려울 거라는 말에 이경증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그리되었다면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론이나 민심이 크게 요동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건 제어하기 어려운 불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죽지는 않았다. 다만 귀하다고 표현하기 부족한 말에 손을 댄 자니 손이 좀 과하게 나갔다.”


손이 좀 과하게 나갔다는 말에 이경증은 어느 정도 상태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렇습니까,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기에 이경증은 다시 입을 열어 청했다.


“허면 저희가 데려가서 치료하고 묻겠습니다.”

“그대들이 말인가? 그건 허락할 수 없다. 적당히 처리하고 화를 풀라 하여 넘어갈 일이 아니다. 죄인은 판결이 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경증은 조선이나 자신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말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이내에 신색을 회복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도 힘들다면 모습이라도 보게 하여 주십쇼.”



***



“이자요.”

“이자라니, 홀로 그런 일을 꾸몄단 말이오?”

“그렇소.”


팔기에게 안내되어 말 도둑이 잡힌 곳으로 향한 이경증은 당황하여 물었다.


이에 팔기가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물으니 이경증은 말을 주저했다.


그러다가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여겼는지 그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쯧쯧, 무슨 사연이 있어서 홀로 청나라 사람들의 말을 훔치려고 했다는 말인가?’


훔치려고 함도 그러나 고작 한 사람으로 그런 일을 벌이다니 이경증은 눈앞에 있는 이가 어지간히 다급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훔치는 일도 쉽지 않고 처분하는 일도 쉽지 않은 청나라 말 도둑을, 그것도 혼자서 하려고 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잠시 안타깝게 여기며 살피니 쓰러진 자의 몸에 난 구타 자국이 보였다.


몸 곳곳에 가득한 멍이며 터진 자국이 어지간히 당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심하여 아무리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하나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이거 혹시......’


혹여 죽은 건 아닐까 걱정하여 조심스럽게 다가간 이경증은 사내의 맥과 호흡을 확인하였다.


‘살아는 있구나. 다행이다.’


그래도 아예 뜻을 정할 겨를도 없이 상황이 마구 흘러가는 일은 없겠다 여기며 안도한 순간 이경증은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아무리 죄를 범한 이라고 하나 생명이나 그 몸을 돌봄이 아니라 일이 터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안심하다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보는 것과 아는 것에 더해 맡은 자리가 자리니 먼저 생각이 그리로 미침은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해보았으나 사람이 스스로 그것이 아님을 알고 위안하는 것만큼 의미가 바래는 일도 없는 법.


이경증은 그렇게 잠시 몸에 붙은 민망함을 떼어내려 애썼으나 그 애씀이 무색하게 민망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어.....요.”

“응?”


그러다 보니 이경증은 말 도둑이라고 들은 조선 사람 곁에 얼마고 앉아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사내의 말을 간신히 귀에 넣을 수 있었다.


“정신이 드나?”

“......나, 나는......훔.....않.....어.....요.”

“!”


희미한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힘겨움과 물기를 머금은 갸냘픈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이경증의 귀에 똑똑하게 박혔다.


-나, 나는 훔치지 않았어요.


“!”


이토록 맞고 험히 대해졌다면 보통 사람은 살려달라거나 도와달라는 말 혹은 그만해달라는 말을 그 입에 남기고 기운이 날 때마다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자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무실을 주장하는 말을 남겼으니 이경증은 이것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니 이 일이 단순하고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등골에 차갑게 냉기가 흐르며 소름이 돋는 걸 느낀 이경증은 당장 언행에 주의하지 않으면 조금 전에 걱정하던 일은 그저 작은 걱정에 지나지 않게 될 거라 여겼다.


“무슨 일이오?”

“이 자가 몸이 많이 아픈 모양입니다. 살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렇겠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대답에 이경증의 의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방금 보인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죄인을 그것도 만주족이 귀히 여기는 말을 훔치려고 한 자에게 보일 태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상황은 알았으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상께 전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시오. 친왕 전하께 인사드리는 거 잊지 마시고.”

“물론입니다.”


팔기 사내가 적당히 대답하니 이경증은 당연하다고 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쩍 쓰러진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금세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한 그는 일부러 크게 힘주어 말했다.


“내 꼭 돌아와 사실대로 치죄할 것이니 죽음을 피하시오!”

“하, 우리라고 함부로 사람 죽일 생각은 없소.”


이경증이 하는 말에 팔기 사내는 별걸 다 신경 쓴다는 얼굴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에 이경증은 잠시 고민하다가 더는 말도 확인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부디 그의 말이 들렸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옮기니 그의 바람이 닿았음인가, 쓰러진 사내의 고개가 미미하게 흔들리며 입이 달싹거렸다.


“........다.”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 바짝 접근하여 들어도 알기 어려워 팔기 사내도 이경증도 그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저 신음이 아니라 확실히 뜻을 담아 말하였으니 그 뜻은 이러하였다.


-예, 꼭 살아서 기다리겠습니다.



***



“가자.”

“벌써 돌아가십니까?”


평소에도 그리 오래 머물렀다고 하긴 그러하나 오늘은 더 빠른 귀로라는 생각에 수행으로 따라붙은 서리가 물었다.


이에 이경증은 무엇이라도 귀뜸하여 줄까 하다가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도성에 급히 돌아가야 처결할 일이 있다. 오늘은 일정이 급하니 모두 미안하지만 빨리 움직이거라.”


이경증이 재촉하니 물은 사람도 그러하고 동행한 이들은 하나 같이 군말을 내지 않고 떠날 채비를 했다.


이곳에 오는 일이 익숙해졌다고 하나 익숙함과 좋음은 별개라 그들 역시 이곳에 오래 머무는 일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다른 자들이라면 몰라도 승정원 소속으로 나라 돌아가는 일을 얼추 나마 알고 있는 이들이다.


겉핥기라고 하나 그 앎이 국내외에 두루 미치니 타국에서 온 사행이나 사람과 엮여서 그리 좋은 꼴을 보긴 어렵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예전에 우러러보던 명이라 하여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고, 청은 더 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이곳을 여러 번 오가며 그런 일이 없었음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사람 생각이라는 건 때때로 이성적으로 굴러가지 않는 법이었고, 청나라 사람들을 향한 꺼림칙함이나 거부감은 척화와 주화를 주장하던 이들을 가리지 않고 품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은 이경증의 재촉을 반겼으면 반겼지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 말을 꺼낸 이경증은 조금 전에 본 것을 되새기며 홀로 의구심을 잔뜩 품었다.


‘이것을 꾸민 것이라 치면, 저들이 얻을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을 꾸밈에 있어서 사람은 먼저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들여야 할 수고를 재어보기 마련이었다.


본디 사람이라면 이러는 와중에 전자가 후자보다 적거나 비슷하다면 한 번쯤은 더 궁리하여 고민하는 게 보통이지 이러한 것을 도외시하고 무턱대고 실행하진 않는다.


그러니 저들이 만약 이 일을 꾸몄다면 이로 인해 얻는 것이 있어야 함이 마땅하나 이경증은 그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하구나, 복잡해.’


그러면서 불쾌한 얼굴, 정명수를 떠올리니 이경증은 한층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전에도 한번 저들을 대표한다고 찾아와 정명수가 입을 놀린 일이 있으며 요토가 그것을 자신이 시켰다고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살피면 그 일에서 두 사람이 온전히 같은 뜻을 품었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몇몇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심증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정명수가 사행 감찰 제조라는 감투에 전혀 만족하지 않고 한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점이었다.


혹여 이번 일도 그러하여 그 의도에 섞임이 있다면 일을 파악함에 한층 어려움과 곤란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후, 모쪼록 상께서 영민하게 판단하여주시길 바랄 뿐이다.’


당장은 어떻게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음에 이경증은 일단 생각을 담아만 두고 한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이 어지러워 때때로 표정에 드러나니 그 걱정은 실로 깊고도 깊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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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4화 복이 되기 전 화는 그저 화다 +3 23.03.08 615 28 11쪽
154 153화 어긋남은 두고 보는 것이 아니다 +3 23.03.07 583 36 12쪽
153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1 23.03.06 579 31 12쪽
»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2 23.03.05 581 28 12쪽
151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3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2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5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3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7 34 15쪽
145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5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4 28 13쪽
143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1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2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5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6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7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4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8 35 15쪽
135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40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2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9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4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8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6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7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6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6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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