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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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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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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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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2화 가장 큰 욕심

DUMMY

142화 가장 큰 욕심


“명나라에서 보낸 것은 명나라에서 준 것이 아니라 맡긴 것이고, 그 맡긴 것은 언제고 기한이 되면 돌려준다. 그 물목이 손상되어 부족하다면 그에 준하는 것으로.”


의정부가 아닌 비변사에 앉아서 들은 것을 중얼거린 홍서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잘 모르겠네. 물론 이렇게 하면 분명 하사품이 아니게 되는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나라에는 손해만 가득하니 달갑지 않아.”

“영상 대감,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저 맡은 것에 그치지 빌린 것은 아닙니다. 전자만이라면 모르나, 후자가 겸해졌으니 실로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말인가?”


다시 말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데 이성구가 나서서 좋다고 하니 홍서봉의 얼굴에 조금 전과는 다른 의아함이 피어났다.


이런 시선과 반응에 이성구는 그를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상, 우리는 명나라 물건을 맡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디 물건이라는 게 오늘과 내일이 같고 오늘과 십 년 후가 같겠습니까.”

“그러니 손해가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금이니 은이니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상하고 썩으니 말이야.”

“그것을 왜 그냥 둬야 합니까?”

“......뭐?”


홍서봉은 한순간 이해하지 못해 두 눈을 껌벅거렸는데, 그러다가 이성구가 한 말을 뒤늦게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마음껏 쓰다가 같은 걸로 돌려주면 된다고 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상께서 두 가지 표현을 아울러 쓰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하며 일리 있게 들리나 마음에 차지 않았으니, 홍서봉이 생각하기에 이건 그다지 유학자답지 않은 말이었다.


자연스레 눈살을 한층 강하게 찌푸린 홍서봉은 말을 꺼내며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 그걸 마련하기 위해서 등골이 휘고 힘들게 될 뿐이네. 빌린 것은 언제고 돌려주어야 하는 법, 그것으로 한때의 즐거움을 누리고 모른 체 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디 감히 쓴다는 말인가. 그것은 도리가 아니야.”

“그저 쓰기만 한다면 그렇겠지요.”


대답이 이성구가 아니라 최명길에게서 나오니 홍서봉은 절로 탄식이 새어 나오는 걸 느끼며 그를 보였다.


“우상까지도 그리 말할 생각이시오? 이거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던 모양이오.”

“영상 대감께서는 전에 유생들, 그러니까 지금은 외조에 부임한 이들이 올린 상소를 기억하십니까?”

“상소?”


뜬금없는 말에 홍서봉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에 그 일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외다. 조선이 주변 모든 나라와 교유하여 그 중간에서 풍족함이 얻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지.”

“아십니까? 천하 정세는 이미 조선이 모든 나라와 교유함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던 홍서봉은 말을 하다 말고 곰곰이 생각했다.


조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지 생각하고 주변 사정이 어떤지 생각하니 과연 그 말이 옳았다.


“......틀린 말은 아니구려. 하지만 그저 잠시 잠깐에 머물 형세에 불과하지 않겠소이까.”

“그대로 두고 보면 언제고 추가 기울어서 그리되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새로이 자리를 잡으면 어떻겠습니까. 가령 조선이 이렇게 소문이 난다면 어떨까요?”

“소문?”

“그 나라에 가면 주변에 있는 나라에서 나오는 것을 모두 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 산물 전부를 구할 수 있는 나라.


이 말을 듣고 홍서봉은 최명길이 어떤 걸 구상하고 있는지 얼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겠소이까?”

“가능이고 자시고,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대화에서 물러나 있던 이성구가 이상하다는 듯 말하니 홍서봉은 시선을 그에게 주었다.


시선을 받은 이성구는 그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청나라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지금 조선에 있고 명나라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도 지금 조선에 있습니다.”

“아!”


물론 세상이라고 함은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조선이 있다고 전부라 할 정도로 좁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대 사람들에게, 특히나 조선 사람에게 있어서 그 두 나라에 조선이 있으면 그건 곧 천하 전체였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학문은 영상 대감이나 우상 대감께 미치지 못하나 이런 살핌은 더 나음이 있는 모양입니다.”


싱글거리며 젠체하는 이성구의 말에 홍서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허참, 이거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헤아림으로 그대에게 뒤쳐지는 날이 올 줄이야.”

“하하, 이것이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일이지요.”

“자만하기는. 아직 멀었소이다.”


홍서봉은 가벼이 웃으며 핀잔을 던지니 이성구는 그 정도로는 꿈쩍하지 않을 거라는 얼굴로 웃었다.


“이미 끝난 일에 먼 게 뭐가 있습니까?”

“끝났다? 글쎄,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예?”


이성구가 보기에 이미 할 일이 정해졌으니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홍서봉의 말에 그는 부족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좌상, 정녕 끝났다고 말하고 싶다면 이후에 우리가 할 일을 말해보시오.”

“어......”


할 일을 말해보라고 하니 이성구는 멍하니 입을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 할 일이 아닌 것이라 여긴 그 모습을 보며 홍서봉은 빙긋 웃더니 최명길에게 말을 건넸다.


“쯧쯧, 사람이 일을 파악하면 행할 것도 알아야지 않소이까. 우상, 당장 자리를 만들어야겠소.”

“무슨 자리 말입니까?”

“청나라 사람들, 그들을 불러서 적당한 값에 물건을 넘기는 자리 말이오.”


예상치 못한 말에 최명길은 물론이고 이성구 역시 당황하며 그를 보았다.


그에 홍서봉은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공짜로 주자고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들 놀라시오? 아, 그러고 보니 제물포에도 알려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홍서봉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제물포에서 쓰라고 상께서 보내신 것, 저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이라고 말해야겠소이다.”


이렇게 말하니 그제야 최명길과 이성구는 홍서봉이 어떠한 생각으로 이리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과연, 묘안입니다.”

“나참, 정말 말씀대로입니다. 살피는 건 제가 앞섰는데 다른 일이 뒤처졌습니다. 이거 영상 대감은 과연 영상 대감이십니다.”

“사람이 실무를 많이 겪으면 머리가 잘 도는 법이오.”


적당히 응대한 그는 곧 종이와 붓을 가져다가 서신을 쓰며 중얼거렸다.


“천하 물건이 조선에 가득함을 알게 하려면 서로 구하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고 적당한 값에 얻게 하는 일 만한 것이 없으니 서두르는 게 좋겠소이다. 청나라 사람들이야 당분간은 있겠지만 명나라 사람들은 숨기고 왔으니 언제고 제 사정에 떠날 테니 말이오.”



***



“이것은 청나라에서 들여온 것들이오?”

“그렇습니다.”

“호오.”


여러 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청나라 식대로 만든 장신구들을 보며 장화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경에서 지금 가장 돈이 되고 인기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그건 청나라산 물건들이었다.


북경에서는 저들이 들어와서 약탈할 것과 그를 넘어서 북경을 함락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헌데 우습게도 남경과 그 주변 지역은 청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민란을 걱정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당장 그들 손에 쥐어질 재물이었고,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생기는 이득과 손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곳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청나라 물산들은 실로 좋았다.


전쟁으로 인해 교류가 끊기고 그 값어치가 상승하여 이익을 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남들에게 없는 걸 갈구하는 허영심을 채워주는 용도로 매우 요긴했으니 말이다.


특히나 후자 같은 허영심은 때때로 상식을 초월한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장화는 슬그머니 욕심이 동하는 걸 느꼈다.


‘이것들을 조금 챙겨서 남경에 뿌리면.....’


대신이라 할 사람들이야 움직이지 않을 것이나 그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일이니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나중에 그들이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마음을 써주는 것에 그칠 게 뻔하나 그 적당한 마음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기도 한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아래, 혹은 더 아래라면 허영심이 아닌 물욕으로 이것들을 탐하여 움직일 것이다.


여러모로 적당한 물건이라 생각하니 장화는 눈을 번들거리며 가죽옷이니 장신구니 하는 것들을 매만지며 바라보았다.


옆에서 그 욕심을 눈치챈 윤휴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걸렸군.’


윤휴가 그저 물건을 보여주고 팔기 위해 직접 장화와 함께 제물포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윤선거를 통해 그에게 전한 말, 장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라는 말을 듣고 한 일이었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 여러 방식이 있으나 유학자가 아닌 이라면 재물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 윤휴는 일부러 심양에서 온 귀물들을 그에게 보였다.


노림수가 제대로 먹혀서 장화가 탐심을 드러내지 적당한 기회라 여긴 윤휴는 짐짓 모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두 귀한 것들이지만 당금 조선에서는 구하기 쉬운 물건이기도 합니다. 아시는지 모르나,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있는 것처럼 저희도 몇몇 사람을 청나라에 보내어두었습니다. 덕분에 적은 값에 귀한 것들이 마구 들어오지요.”

“그건 부러운 일이군요.”


부럽다고 말했으나 진정으로 부러워하는 기색은 아니니 재물이 가치가 있음은 인정하나 단지 그뿐에 그치는 거 같았다.


‘재물에 욕심은 있으나 과하진 않다? 예전에 조선을 찾아온 환관들과는 뭔가 좀 다른 거 같은데,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애매하다 생각한 윤휴는 조금 더 캐어볼 생각으로 장화에게 은근히 권했다.


“하지만 어찌 재물로 사이를 가르겠습니까? 하물며 대명과 조선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원하시면 말씀하십쇼. 개인이 쓰시겠다고 하면 무상으로 드리며, 교역으로 하시겠다면 들여오는데 쓴 적은 값보다 적게 셈하겠습니다.”


한몫 챙겨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으니 대번 장화의 얼굴이 욕심으로 물들었다.


허나 그도 잠시, 장화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음 씀씀이는 고맙습니다. 허나 이번에는 사양해야겠습니다. 대신 맡기는 것들을 잘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챙기는 것보다 맡기는 걸 우선하고 있다? 역시 뭔가 이상하고 다른데.’


뜻밖의 대답에 윤휴는 전에 받게 될 거라며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윤휴가 보기에 그것들 가운데 그만한 가치가 있거나 지킬 의미가 있는 건 없었다.


‘정치적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아니, 아니지. 그러면 그냥 주고 바로 갔어야지.’


당장 이번 일에서 명나라에서 챙기기 좋은 가장 좋은 정치적 자산은 다시 조선에게 하사품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이게 목적이라면 그냥 줘버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장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이었는데, 그것이 하사품이라 생각하면 영 맞지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남은 건......배?’


그나마 남은 걸 떠올리니 장화가 걱정하는 건 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윤휴는 묘한 얼굴로 장화를 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장 대인,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아, 미리 말하지만 내가 맡은 일에 관한 내밀한 것은 대답하기 어렵소이다.”

“내밀하지만 개인적인 일입니다.”


윤휴는 이렇게 말하고는 슬쩍 주변을 살펴서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속삭였다.


“장 대인께서는......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배가 무엇이냐고?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질문이로군요.”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한들 그것을 전부 입에 담을 생각은 아닌지 장화는 간단히 대답했다.


“내게 배는 가슴 속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욕심이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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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1 23.03.06 579 31 12쪽
152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2 23.03.05 580 28 12쪽
151 150화 사이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23.03.04 613 29 11쪽
150 149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2 23.03.03 601 25 12쪽
149 148화 사람은 말보다 느리다 +1 23.03.02 634 29 14쪽
148 147화 남의 집 불씨 +1 23.03.01 641 33 13쪽
147 146화 미루고 돌리고 속이고 +1 23.02.28 653 31 15쪽
146 145화 같은 자리 다른 꿈 +4 23.02.27 657 34 15쪽
145 144화 지금은 조선 사람 +5 23.02.26 684 34 12쪽
144 143화 저들에게 물어주십쇼 +1 23.02.25 683 28 13쪽
» 142화 가장 큰 욕심 +2 23.02.24 661 30 12쪽
142 141화 나라를 옥죄는 족쇄 +1 23.02.23 711 42 14쪽
141 140화 받았다면 응당 보응해야 한다 +1 23.02.22 705 31 12쪽
140 139화 위와 아래가 아닌 이웃 +3 23.02.21 715 33 13쪽
139 138화 한쪽에만 좋은 이야기는 없다 +1 23.02.20 707 35 13쪽
138 137화 전과 다른 것은 +1 23.02.19 707 32 12쪽
137 136화 그 사내는 악운을 타고났다 +1 23.02.18 692 36 12쪽
136 135화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4 23.02.17 737 35 15쪽
135 134화 책임을 나누는 이유 23.02.16 740 36 12쪽
134 133화 욕심이 부른 인연 +1 23.02.15 751 40 13쪽
133 132화 화를 피한 곳에 있는 것 +3 23.02.14 768 34 12쪽
132 131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3 23.02.13 743 34 13쪽
131 130화 위는 아래를 모른다 +2 23.02.12 788 39 12쪽
130 129화 때로는 작은 것이 믿음직하다 +2 23.02.11 785 39 12쪽
129 128화 천자의 어머니 +5 23.02.10 818 34 13쪽
128 127화 만민이 따라야 한다 +6 23.02.09 807 38 13쪽
127 126화 이 땅은 조선이다 +3 23.02.08 835 42 13쪽
126 125화 사람은 시작하며 그 뒤를 본다 +1 23.02.07 765 38 12쪽
125 124화 호가호위 +4 23.02.06 798 42 14쪽
124 123화 엘도라도 +5 23.02.05 784 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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