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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11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9 14:27
조회
313
추천
21
글자
11쪽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DUMMY

<2008년 제4회 월드 에너지 포럼.>


각국의 전세기를 타고 대구 공항에 손님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은 속내를 감춘 채 위엄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주의 H 호텔에 각 나라의 대표들이 모였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중동의 정상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모습이었다.


<전 세계 발전을 위한 에너지 분야의 공동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이 포럼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위상이 높아져 갔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는 단연 중동 대표단에 있다. 에너지 하면 중동이다. 아무리 신기술이 발전해도 석유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인 현실이다. 세계 에너지를 땅속에 두고 빨대를 꽂아 비싼 값에 팔며 살아가는 중동의 부호들은 칼자루를 쥔 채로 포럼장에 들어섰다.


한국 정치인의 격려사로 포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에너지에 관한 감각적 영상들이 포럼의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버려진 에너지를 수확해서 다시 쓰는 이른바 ‘에너지 하베스팅’의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내용이 영상의 주를 이뤘다.


“대단한 기술인데?”


하지만 아직은 그림의 떡이었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거나 무지하게 비싸거나.


그 말은 자동차를 굴리거나 비행기가 뜨고 내리 때, 사람들이 따뜻한 물을 틀어 사용할 때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앞으로도 한참 동안을 땅속에 검게 변해 있는 오래된 동물과 식물의 사체, 즉 석탄이나 석유에 매달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영상의 결론이 먼 미래의 상용화를 얘기할 때마다 산유국의 대표들 표정이 누그러졌다.


포럼 첫날의 기조연설이 끝나자 이날의 마지막 일정, 환영 만찬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아직은 우리 손에 전 세계 에너지가 들려 있구만.”


“비축분을 처리할 시간은 넉넉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지. 매장된 원유의 고갈이 다가오고 있다 해도 괜찮아. 문제는 시장이니까 말이야. 구하기 힘들수록 몸값이 오른다 이 말이지.”


석유 수출국 기구(OPEC)에 속한 나라의 대표들은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맛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얘기 중간중간 입맛에 맞는지 한국식 떡갈비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국식 라이스 와인, 막걸리도 곁들였다.


“내일 일정을 보니 오후에 특별 세션이 있던데요. 미국에서 무슨 연구결과를 들고나온 것 같던데···. 그게 무엇일지 신경이 좀 쓰입니다만.”


“그래? 아무리 자기 나라에서 석유가 생산되긴 하지만 미국 국민이 얼마나 에너지를 써 재끼는데! 아직 석유 수입국인 것을 보면 모르겠나. 걱정 말게.”


“미국 정치인들의 염원인 에너지 자립을 백날 외쳐보라 해보게. 없던 석유가 땅속에 생겨날 리 없지 않은가?”


“콧대 높은 미국이 우리 OPEC의 눈치를 보려니 배알이 꼬이긴 할 거예요. 허허”


“모든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나 오일만은 이야기가 다르지. 국제유가를 조금만 올려도 무너질 것들이 많아.”


“맞습니다. 오일이 힘이죠.”


OPEC의 회원들이 웃고 떠들며 만찬을 즐겼다.

그들과 반대편에 자리 잡은 미국 에너지장관 릭은 떡갈비를 젓가락으로 한 점 떼어 흰 쌀밥 위에 얹고는 한입에 쏙 넣었다. 고기의 단맛을 음미하며 몇 번 씹고는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김치와 어우러지는 입안의 떡갈비의 맛을 느꼈다. 뽀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자 목으로 전해지는 구수하고 알싸한 풍미에 깜짝 놀랐다.


“It’s fantastic! 정말 잘 어울리는군.”


저번 포럼에서는 어떻게든 중동 대표들과 가까운 자리로 배정해 그들과 얼굴 도장을 잘 찍을 궁리를 하던 미국 에너지장관이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선 그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상황을 즐기고 있다. 경주 H 호텔의 주방장의 저녁 만찬을 칭찬하는 릭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점심을 먹고 회의장에 모인 대표들은 미국의 특별 세션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다음날 잡혀있는 한국 문화 체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자리에 고쳐 앉았다. 화면을 채우는 영상은 언뜻 보면 어린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같아 보였다.


지하 깊은 곳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작은 알갱이들이 새로운 길을 만나 세상 구경을 하는 내용이었다. 혼자인 줄 알았던 수많은 작은 알갱이들이 더해져 세상의 큰 빛이 되며 영상을 마무리 지어졌다.


미국 에너지장관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저 작은 녀석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안녕하십니까. 오후 특별 세션을 맡은 릭 워렌입니다.”


박수 소리가 회의장을 채웠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의아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저 작은 알갱이 캐릭터의 이름을 압니다. 바로 셰일가스, 셰일 오일이죠.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군데군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더욱더 의기양양해진 릭 워렌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계시는 에너지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생각하는 그 셰일이 맞습니다. 지하 2300m 경에 있는 아주 치밀한 진흙 입자로 되어있는 퇴적암층이죠.


근데요, 이 셰일층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오일과 가스들이 많아요. 미세한 진흙의 입자 때문에 주변과 완전히 차단된 채 고스란히 갇혀 있었죠. 이 녀석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추출기술이 없어서 의미가 없었던 에너지들이죠.


입자가 굵은 지층에서 흘러나와 한데 뭉쳐있는 ‘유전’은 추출 방법이 간단했습니다. 수직으로 시추관을 내리기만 하면 원유가 흘러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전의 기름은 고갈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양을 퍼 올렸는지 여러분들도 다 아시잖아요? 대부분 학자가 30~40년 정도 인류가 쓸 수 있는 양이 남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그래서 어제 우리가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새로운 에너지원의 연구성과들을 살펴본 거고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죠.


물론 새로운 에너지원을 저지하고 싶은 분도 있으시다는 것 압니다만···. 흠. 흠.


말이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본론을 말하고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표를 이어가겠습니다.


미국이 셰일 오일을 추출할 수 있는 시추관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곧 우리는 셰일 오일 생산량을 늘릴 것입니다. 더불어 미합중국의 규제를 풀고 세계 에너지 균형에 이바지하고자 생산한 오일을 수출할 계획입니다.”


릭 워렌의 말에 포럼장은 시끄러워졌다. 여기저기 카메라의 신선한 이 터지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예상하시기에 지구의 셰일 오일 매장량은 어떻게 됩니까?”


한 기자가 먼저 질문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써왔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200년? 아니지.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500년까지도 쓸 수 있는 양이 될 겁니다.”


여기저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미국 내에서는 벌써 셰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시작 단계이지만 그렇습니다. 곧 생산량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머지않아 미국 시민들이 쓰고도 남는 양이 될 겁니다.”


OPEC 회원국의 수장들은 얼굴빛이 바뀌었다. 릭 워렌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산유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세계 유가가 오르든 말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아니 기름값이 오른다면 더 좋아할 것이다. 이번 포럼이 세계의 판세를 뒤바꾸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발목까지 오는 흰옷에 빨간 두건을 두른 무함마드가 질문했다.


“대체 그것을 어떤 기술로 추출할 수 있단 말이오!”


릭은 웃으며 대답했다.


“자세한 것은 기술적 부분이라서 모두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시추관을 꺾어 수평으로 뻗어 나가면 됩니다. 기존 빨대처럼 유전에 꽂는 방식이 아닙니다. 셰일층에 다 다른 시추관을 90도로 꺾으면 셰일층을 어디든 갈 수 있죠. 꺾인 시추관에서 물을 강하게 분사하게 되고 그로 인해 틈이 생긴 셰일층에서 오일과 가스를 얻는 거죠.”


릭의 말에 관내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친환경 에너지를 연구하는 한 동양인 박사가 소리쳤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위험한 발상을 할 수 있죠? 지층의 한 부분을 그렇게 헤집고 다니면 분명 재해가 일어날 거예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 지층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요. 앞으로 그 부분은 지속해서 연구하고 철저하게 다룰 생각입니다.”


릭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할 이 완벽한 기회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약점. 그것을 이름 모를 한 동양인 교수가 떠들어 대고 있다.


“분명 셰일층을 고압으로 균열을 낸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발 딛고 건물 짓고 살고 있는 땅! 지구 표면을 받치고 있는 중요한 지층이란 말입니다.


당장 가시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요? 말씀 하신 대로 세계 곳곳에 수출할 만큼 세일층을 쪼개고 난 그 후 말입니다!”


릭은 강하게 쏘아붙이는 작은 남자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어제 먹은 막걸리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 자. 진정하세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전에서 석유를 끌어 올릴 때도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합니다. 지금 어떤가요? 문제가 생겼어요? 땅이 갑자기 꺼지기라도 하던가요?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작도 못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테니까요.”


“이익을 위해 지구를 포기할 수 있다. 이 말씀으로 들립니다. 인류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이 지구를 말이에요. 이사를 가고 싶어도 주변에 우리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은 없습니다. 릭 워렌 장관님. 제 말을 흘려듣지 마십시오. 지금 시작되는 이 셰일 혁명이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릭 워렌 장관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동양인 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상상력이 참 풍부하시군요. 걱정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1 미친삐에로
    작성일
    21.05.19 23:51
    No. 1

    추천!! 잘 읽고 갑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저도 처음 써보는 글에 많이 어렵고 힘들다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힘내고 화이팅!!해봐요.
    건필하세요~~^^

    찬성: 4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16 조사나
    작성일
    21.05.20 12:12
    No. 2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같이 완결까지 가 보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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