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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20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8 12:30
조회
323
추천
19
글자
7쪽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DUMMY

4월 정오의 태양은 케임브리지를 밝게 감싸고 있었다. 장한별은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자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 켐강을 유유히 떠다니는 Punt(영국 케임브리지의 작은 나무보트) 위에서 장한별과 애나는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애나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장한별에게 애원했다. 장한별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하늘을 향해 팔을 천천히 뻗었다. 싱그러운 여린 나뭇잎들이 살랑이는 움직임보다 더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벌려 자신에게 내리쬐는 한 다발의 빛을 여러 가닥으로 나눴다. 그러다가 다시 긴 손가락을 모양을 바꾸며 빛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꿨다.


“장한별! 내 말 듣고 있어? 이제 내 얼굴을 보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다 어떻게 해.”


“이것 봐. 애나. 아름다운 이 광자를. 빚의 입자들이 내 손에 닿고 있잖아. 네가 나와 헤어질 수 없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 8분 전에는 1억 5천만 Km 떨어진 태양에 있었던 입자들이야. 애나 너도 알고 있지?”


“지금 이 상황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말 돌리고 싶은 거야?”


장한별은 하늘로 향했던 손을 그대로 애나의 얼굴로 가져갔다. 부드럽게 그녀의 볼을 감싸 쥐었다. 햇빛을 가리고 있던 손이어서 그런지 기분 좋게 따듯했다. 장한별의 온도를 느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우주에 있던 태양 빚이 내 몸에 닿으면 나는 그것을 흡수해. 내 손의 태양의 온기가 느껴지지? 이제 나는 너에게 온기를 전하고 있잖아.”


장한별은 부드러운 손길로 곱슬거리는 애나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초콜릿 색 얼굴 위로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내 말은 애나. 우리는 모두 하나야. 저 멀리 있는 태양에서 생겨난 물질이 8분 만에 내가 되고 다시 너에게 전달되듯이.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단 말이야. 우리 함께한 시간도 마찬가지지. 그것들은 너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어.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함께인 거야. 우린 불같이 사랑했잖아. 얼마나 오랫동안 만남을 지속하는지,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이미 우리는 서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야. 이별을 두려워 하지 마.”


그림같이 흐르는 켐강에 놓인 수많은 다리 위로 자전거를 탄 대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좁은 폭의 강가에서 헤엄치던 몇몇 오리들은 지나가는 Punt를 피해 뭍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가와 맞닿은 잔디밭엔 삼삼오오 모인 각국의 젊은이들이 간단한 샌드위치나 음료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배를 피해 잔디밭을 걸어 오르는 오리에게 빵 한 조각을 떼어주자 녀석은 경계심 없이 뒤뚱이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주변에 퍼져나갔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지적이며 균형 있었다. Easter term, 3학기가 시작되는 이곳 케임브리지 대학의 풍경은 실로 미소가 지어지는 싱그러운 지성, 그 자체였다. 휴식을 마친 새 학기 시작으로 모두 활기에 찬 모습이었다.


단 한 사람, 애나에게만은 활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뺨 위에 번진 눈물을 닦으며 애나가 입을 열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 네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까 정말 끝인가 보구나. 누가 물리학자 아니랄까 봐 괴변도 참 멋있게 하네. 그럴듯해.


하.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너에게 빠질 줄은 몰랐어. 너랑 사귄다고 했을 때 모두 말렸어. 장한별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너무나 자유로워서 지구를 벗어난 것 같다고 그러더군. 흐흐.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너와 헤어진 여자애들이 한결같이 그러더라. 어차피 너와 자기들은 하나래. 이렇게 여자들을 설득시키고 떼어 놓는구나.


대단해. 장한별. 여기 모인 천재들 중에서도 탑 클래스인 것도 모자라 얼굴까지 그렇게 K팝 아이돌 가수 뺨치고···. 그러니 그렇게 자유로울 만해. 영혼이 지구를 벗어날 만하다고. 아니. 어쩌면 넌 한국이 아니라 우주에서 온 애인지도 모르지. 남자에게 매달려 본 적 없는 나를 이렇게 눈물짓게 한 너라는 애는 정말.


그래. 이제 각자의 길로 가자. 나도 더 이상은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되겠어. 너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으니까 그 말로 위안 삼을게. 네 말대로 우리 모두는 별에서 시작된 존재니까, 결국 하나일 수 있지. 어쩌면 너와 내 뼈를 이루는 성분은 수 억 년 전 하나의 암석이었을 수도 있잖아. 솔직히 헤어져도 여전히 하나라는 너의 그 궤변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총동원해서 이해하려 애쓸게.”


장한별은 애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널 떼어내려 그런 이야기 한 것이 아니야.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하나하나 소중해. 그들은 나를 이루는 입자들이야.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잖아. 그래서 난 그녀들을 아직도 사랑해. 그중 애나, 너의 그 아름다운 엉덩이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야. 나의 일부가 되어줘서 고마워. 그런데, 애나 나 늦은 것 같아. 그만 가볼게.”


노를 젓던 뱃사공이 punt를 강가에 댔다. 장한별은 배에서 뛰어내려 잔디밭으로 내달렸다. 저 멀리 웅장한 중세 건물들이 보였다. 탐스러운 머릿결을 찰랑대며 대학 연구실을 향해 달리던 장한별이 뒤를 돌아봤다.


“애나! 너의 꿈을 이루길 바래. 넌 참 강인하고 매력적인 여자야!”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장한별을 보니 애나의 가슴이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배에서 내릴 생각도 못 하고 멍하게 앉아 있는 그녀였다. 방금 전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그였지만 햇빛보다 찬란한 그의 미소 때문에 애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장한별 너는 뭐니?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우면서 잔인하니.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는 너를 너무나 갖고 싶지만 여기까지만 해야겠지? 너 진짜 재수 없다는 더 너는 알고 있을까?’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팔을 들었다. 천진난만한 그의 손짓을 무시할 수 없었던 애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네 개의 손가락을 접었다. 가운뎃손가락만 남기고.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 욕을 날리는 애나를 보며 장한별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이내 싱긋 웃으며 손 키스를 날리고는 잔디를 가로질러 학생들 사이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나는 말했다.


“그래. 꿈을 이루고 보자. 내가 가나의 대통령이 되면 그땐 너 각오해. 장한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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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21.05.19 314 21 11쪽
16 <제 16화. 얼굴 천재들 > 21.05.19 299 20 7쪽
»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21.05.18 324 19 7쪽
14 <제 14화. 조건은 단 하나. 구원희 > 21.05.17 331 20 7쪽
13 <제 13화. 외계 외교부 > +1 21.05.17 342 2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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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 11화. 샤일로 > 21.05.16 362 2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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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9화. 제니퍼 > 21.05.15 373 22 8쪽
8 <제 8화. 그날2> +2 21.05.14 374 22 9쪽
7 <제 7화. 그날1> 21.05.14 424 22 7쪽
6 <제 6화. 진통이 와요> 21.05.13 445 27 7쪽
5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21.05.13 469 2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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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1 21.05.12 612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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