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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06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6 20:56
조회
351
추천
20
글자
9쪽

<제 12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DUMMY

얼마나 잔 걸까? 지금 몇 시지? 나는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떴다. 아침 7시. 17시간 정도 잔 것 같다.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플로리다로 날아오느라 거의 이틀은 잠도 못 잤다.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고 나니 그래도 피로가 풀렸다. 꿈에서 샤일로를 만나서일까? 무거웠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빛나는 얼굴로 한쪽 팔엔 나의 오드 아이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샤일로의 갈색 머리가 찬란하게 휘날리자 나의 눈물도 바람에 날아갔다.


나는 그들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가 입고 있던 로브가 부드럽게 물결치며 내가 갈 길을 인도해 주었다. 손을 뻗으면 그와 아이를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다. 꿈속의 나는 차마 그들을 만질 수 없어 바라보고만 있었고 샤일로는 내게 근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으로 보는 그의 환한 미소였다.


제니퍼의 일기를 읽다가 잠들어서 그런 꿈을 꾼 거겠지. 우주선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뒤로 수도 없이 꿈을 꾸었지만 샤일로의 웃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일기장에 적힌 내 아이의 소식이 내게 희망을 주었다.


플로리다로 오자마자 많은 일을 겪었다. 제니퍼와의 만남. 가슴 아픈 내 기억의 회상. 제니퍼의 최면. 택배. 정부의 개입까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난 괜찮다.

미친 여자로 불리며 온갖 수모를 겪고 산 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미친년 깡으로 밀어붙이지 뭐. 어찌 되었든 샤일로에게, 신비로운 내 아이에게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아길레라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인을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메모지에 아길레라를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할 때 빈 종이에 낙서하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우선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제니퍼를 만나면 며칠이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려 했었다. 20년 동안 아무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던 나의 기억을 쭉 펼쳐놓고 그녀와 나누고 싶었다. 그녀의 기억과 자세히 비교해 가며 교차점을 찾고 싶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끝나버린 헛된 꿈이 되었지만···.


사실 우주선과 샤일로, 내 아이를 다시 만나긴 힘들지 몰랐다. 그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사랑한 것들이 다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길을 떠나온 것이리라.


제니퍼의 기억을 지운 건 누구였을까? 외계인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픈 정부의 짓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꼬르륵’


17시간 동안 공복 상태로 잠만 잤더니 뱃속이 요란했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밥부터 먹어야겠다. 인터폰을 들고 룸서비스로 아침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정신 차릴 겸 샤워를 했다.


“This is Room service.”


잠시 후 젊은 남자 직원이 피자를 건넸다. 그는 촉촉이 젖은 채 가운을 입고 있는 날 아래위로 훑어봤다. 한술 더 떠 그는 내 방안을 살펴봤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보려는 것일까? 매력적인 백인 젊은이였다. 나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에게 팁을 건넸다. 내가 혼자 여행 온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머뭇거리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 참. 어린 녀석이.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안 그래? 띠동갑은 되어 보이는 청년에게 우스운 꼴 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아직 날 저렇게 애가 닳은 눈으로 쳐다봐주니 고마웠다. 나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문을 천천히 닫았다. 룸서비스 청년은 무슨 말을 하려다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약간은 쾌쾌하게 느껴지는 진한 치즈 향이 입안에 퍼졌다. 이것이 진짜 미국식 피자인가. 배가 고프니까 먹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주 애용하던 피자스쿨이 그리웠다.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었다. 호텔을 소개하는 홍보영상을 생각 없이 보다가 채널을 넘겼다. 넘기는 채널마다 뉴스 속보가 떴다.


“어머! 저걸 어째. 하룻밤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나는 너무 놀라 들고 있는 피자를 떨어뜨렸다. 중국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 속보이다. 쓰촨성 대지진은 아무것도 아닌 진도 8.7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뉴스에서 난리였다. 뉴스 속 피해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장비가 없어서 여기저기 뒹구는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울부짖는 생존자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림잡아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올 것 같다는 이 지진의 원인을 놓고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말 지구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의 식사를 포기한 채 주전자에 물을 데웠다. 뉴스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수증기를 뿜어내며 팔팔 끓는 주전자가 ‘탁, 탁!’ 하는 큰 소리를 내며 뚜껑을 흔들었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인덕션의 스위치를 껐다.


“너무 뜨겁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노란 색 믹스커피를 뜯어 찻잔에 붓고 커피 봉지로 저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침대에 걸터앉아 뉴스를 다시 봤다.


<그러니까 지금 지구의 온도가 상승한 것이 이런 파장을 낳고 있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질활동은 지구의 온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지표면 아래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지질학적 과정의 결과입니다.>


전문가라고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여러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애썼다.


저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일은 벌어졌고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다. 지구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재해를 막을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커다란 환란을 겪은 중국인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머리를 말리고 약간의 화장을 했다.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호텔 회의장에 있는 컴퓨터를 써야겠다. 제니퍼가 건넨 USB를 확인하면 무슨 방도가 생기겠지. 나갈 준비를 마치고 TV를 끄려 리모컨을 찾는데, 뉴스 속 환경연구가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정확히 들리는 한 단어.


“Korea”


한국? 뭐라는 거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TV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해수면의 상승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질활동과 관련이 정말 없을까요? 바닷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그 아래의 지층은 훨씬 더 많은 압력을 받게 되겠죠?


조금씩 뒤틀어지고 열을 받게 되고, 결국 커다란 에너지의 폭발로 이어질 겁니다. 하와이, 필리핀, 중남미 코스타리카, 일본. 요즘 들어 화산의 폭발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북한에 있는 백두산도 곧 활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어제 일어난 중국 북동부의 지진은 백두산으로 에너지가 분출될 것입니다. 여진이 많이 발생하는 가까운 시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영화로도 만들었죠. 영화와 같이 엄청난 재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지진과 화산폭발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화산재로 인해 하늘길은 막히게 되고 국가 간 지원 활동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한 몇 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인류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치달을 수 있는 확률은 분명 있습니다. 바라건대, 그 시나리오가 모두 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를 너무 많아 보신 것 같군요, 어쨌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토론하던 다른 지질학자는 과장된 생각처럼 치부해 버렸지만 어쩐지 나는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전자 뚜껑을 밀어내던 수증기처럼 더워진 지구에서 늘어난 물들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서둘러야겠다. 부지런히 한국으로 가야겠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만약 그런 커다란 재난이 닥친다면 단 한 명, 내 동생을 외롭게 둘 수는 없다. 분명, 집으로 돌아올 동생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핸드폰 앱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검색했다.


그래도 아길레라는 만나야만 할 것 같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호텔 로비로 향했다.


컴퓨터에 USB를 연결하니 A4 한 장 분량의 문서가 떴다. 대략 50개 정도 되는 이름들이다. 이게 다 무슨 말일까? 설마. 이게 다 지구를 방문한 외계 생명체? 처음 보는 단어들로 채워진 문서에 눈에 들어오는 한 단어가 있었다.


-샬마 (지구명 캐플러 438-B)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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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 21화. 아이가 움직여요.> +1 21.05.21 271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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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 19화. 비밀 요원 알렉 > +2 21.05.20 278 19 7쪽
18 <제 18화. 아길레라 > 21.05.20 276 17 7쪽
17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21.05.19 313 21 11쪽
16 <제 16화. 얼굴 천재들 > 21.05.19 299 20 7쪽
15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21.05.18 323 19 7쪽
14 <제 14화. 조건은 단 하나. 구원희 > 21.05.17 331 20 7쪽
13 <제 13화. 외계 외교부 > +1 21.05.17 341 21 7쪽
» <제 12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21.05.16 352 20 9쪽
11 <제 11화. 샤일로 > 21.05.16 361 20 7쪽
10 <제 10화. 제니퍼의 일기장 > 21.05.15 364 23 7쪽
9 <제 9화. 제니퍼 > 21.05.15 372 22 8쪽
8 <제 8화. 그날2> +2 21.05.14 373 22 9쪽
7 <제 7화. 그날1> 21.05.14 424 22 7쪽
6 <제 6화. 진통이 와요> 21.05.13 444 27 7쪽
5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21.05.13 469 23 7쪽
4 <제 4화. 가자! 플로리다로> +4 21.05.12 494 26 7쪽
3 <제 3화. 동네 미친 여자 3> +2 21.05.12 522 30 8쪽
2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1 21.05.12 611 38 8쪽
1 <제 1화. 동네 미친 여자 1> +4 21.05.12 909 5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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