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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09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2 10:54
조회
611
추천
38
글자
8쪽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DUMMY

“정산 다 끝났습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칼이구만! 퇴근 시간만 기다렸나 봐?”


“네.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 시간만 기다려요. 점장님은 안 그런가 보네요? ”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는 점장을 뒤로 하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큰길을 피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더 걸리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샛길이 편했다. 골목에 짱박혀 담배 피우는 동네 고딩들만 만나지 않는다면. 아. 젠장. 오늘은 있다.


“야! 저기 좀 봐. 동네 유명한 그 미친년 아니야?”


“맞네. 어이! 정신 나간 아줌마! 외계인 말 좀 해봐. 크크크”


들은 척도 않고 지나치는 내게 한 놈이 피고 있던 담배꽁초를 던졌다.


“씹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불이 붙은 담배꽁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 머리카락이 꽁초에 그을려 타는 냄새가 났다. 난 허리를 숙여 꽁초를 집어 들고 그들을 노려봤다.


“와. 졸라 무섭네.”


나는 어깨에 걸쳐 매고 있던 에코백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곤 들고 있는 꽁초로 불을 옮겨 붙였다. 메케한 연기가 눈을 찔러 따가웠다.


“얘들아.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어. 미친 여자는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야.”


난 꽁초에 남은 불씨를 발바닥으로 문질러 끄며 말했다.


“뭐. 어쩌게.”


난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었다. 조용히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폭죽을 꺼냈다.


“불씨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돼. 그러다 불이 날지도 모르거든.”


나는 물고 있던 담배로 불을 붙인 폭죽을 바닥에 눕혔다. 그들을 향하도록.


“뭐야. 완전 또라이네!”


좁은 골목길 안 펑펑 소리를 내며 터지는 폭죽에 놀라 버릇없는 고딩들은 이리저리 뛰었다. 동네 사람들은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창문을 열어 젖혔다. 나는 태연하게 고딩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경찰 부르기 전에 가.”


"미친 또라이년!"


욕하며 도망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 담배를 껐다. 폭죽도 시들해졌다. 오랜만에 핀 담배 때문인지 모든 것이 씁쓸했다. 나를 지킬 창의적인 소품들은 가방에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게, 왜 나를 건드려.”


*****


새로 지은 높은 빌라들 사이로 우리 집이 보였다. 작은 마당이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 내가 평생을 살아온 집이었다. 구수한 찌개 냄새와 가족들의 분주함으로 꽉 차 행복했던 집. 이제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남았지만.

19년 전,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남자한테 미쳐서 집을 나가? 그렇게 남자들한테 도도하게 굴던 니가 어떻게···.”


부모님도 그 헛소문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부모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 아직도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황당함, 두려움, 노여움, 엄마 아빠의 표정엔 온갖 것이 담겨 있었다.


그래. 아무리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믿을 수가 없었겠지. 처음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그들이 미웠다. 점차 시간이 흐르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치료한다고 여기저기 용하다는 데는 다 데리고 다녔다. 아무리 미워도 미친년 취급 당하는 딸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널 어쩌면 좋니. 결혼도 글렀고. 정신 나간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원. 내가 죽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집이라도 있어야지. 그래야 늙어 죽을 때까지 살 것 아니냐.”


속 병이 난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며 나에게 집을 물려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폭발했다.


“씨발, 니년 때문에 이게 다 뭐야! 너만 조신하게 잘 있었어도 동네 챙피할 일도 없었고, 엄마 아빠도 멀쩡했을 거 아냐!”


“미안하다. 나 때문에 다 엉망이 된 거 잘 알아. 그래도 이제 의지할 데라곤 너하고 나밖에 없잖니.”


“됐어. 이제 다 지긋지긋해. 혼자 잘살아 봐. 이 거지 같은 동네 다신 안 올 거니까!”


동생은 그렇게 집을 나갔다. 그 뒤로 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내 연락도 받지 않는 동생이 올까 싶어 이사도 못 했다.


대문을 열 때마다 가족들 생각이 났다. 시린 가슴을 덮고픈 마음에 괜히 옷깃을 여몄다. 난 걸음을 재촉해 작은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매일 반복되는 참기 힘든 외로움. 나야말로 여길 떠나고 싶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어제 사 둔 삼각 김밥 하나를 깠다. 소파에 지친 몸을 기대고 김밥을 우걱거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은행 앱을 열어 잔액을 확인했다.


“거의 다 모았네. 조금만 더 있으면 갈 수 있어.”


미국에 가야 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주장처럼 UFO 납치에 관한 일들이 미국 정부와 연관된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그들을 다시 만날 길이 있을지도 몰라.


어두컴컴한 쪽방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얼른 저녁을 먹어 치우고 2층으로 난 계단을 올랐다. 2층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많은 스크랩이 살아있는 것처럼 내가 움직일 때마다 팔랑거렸다.


서재로 들어서 컴퓨터를 켰다. 방에 가득 찬 우주에 관한 책들을 천천히 둘러 봤다. 자료를 더 모아야 했다. 요즘은 유튜브에 쓸만한 것들이 더 많았다.


몇 번을 다시 살펴봐도 제니퍼라는 여자뿐이었다. 내가 본 외계 종족의 모습과 일치하는 증언을 한 사람은 말이다. 대머리에 눈은 크고 코와 입이 작은 말라깽이 외계인?


아니다.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그들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외계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


탐스럽게 빛나는 갈색 웨이브 머릿결. 2m는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 스스로 빛나는 건지, 빛을 반사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반짝이는 찬란한 피부. 보고 있기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선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 힘있게 날 끌어안던 그의 크고 뜨거운 팔. 그의 입술. 말을 하지 않아도 언어처럼 전해지는 그의 진심.


아! 스산한 바람이 부는 20년 전 그날 밤이 생생하다. 그놈에게 잡힐까 봐 살려달라 소리치지도 못하고 어두운 산속을 헤매던 그 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바삭거리는 소리만이 내 주위를 감싼 죽음과도 같은 시간. UFO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뒤따라오던 그 새끼에게 잡혀 정신없이 당한 뒤 목숨을 잃고 말았겠지.


정신을 잃기 직전 멀리서 다가오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순식간에 나를 비췄다. 더 이상 달릴 힘이 없어 바위 뒤에 몸을 감추며 숨죽이고 있을 그때. 찢어진 원피스 사이로 스미는 바람에 몸서리가 쳐질 때. 날 죽이려 달려들던 미친 새끼가 바위 뒤에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날 발견하곤 거친 숨소리로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부를 때.


그들이 나에게 왔다. 생체 실험을 목적으로 나를 납치한 그들이지만 나에겐 구원의 빛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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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만의 미친 여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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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 22화. 내 동생 구제일> +2 21.05.22 273 17 7쪽
21 <제 21화. 아이가 움직여요.> +1 21.05.21 272 17 7쪽
20 <제 20화. 이제부터 당신을 경호합니다 > 21.05.21 271 17 7쪽
19 <제 19화. 비밀 요원 알렉 > +2 21.05.20 278 19 7쪽
18 <제 18화. 아길레라 > 21.05.20 276 17 7쪽
17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21.05.19 313 21 11쪽
16 <제 16화. 얼굴 천재들 > 21.05.19 299 20 7쪽
15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21.05.18 323 19 7쪽
14 <제 14화. 조건은 단 하나. 구원희 > 21.05.17 331 20 7쪽
13 <제 13화. 외계 외교부 > +1 21.05.17 341 21 7쪽
12 <제 12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21.05.16 352 20 9쪽
11 <제 11화. 샤일로 > 21.05.16 361 20 7쪽
10 <제 10화. 제니퍼의 일기장 > 21.05.15 364 23 7쪽
9 <제 9화. 제니퍼 > 21.05.15 372 22 8쪽
8 <제 8화. 그날2> +2 21.05.14 373 22 9쪽
7 <제 7화. 그날1> 21.05.14 424 22 7쪽
6 <제 6화. 진통이 와요> 21.05.13 444 27 7쪽
5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21.05.13 469 23 7쪽
4 <제 4화. 가자! 플로리다로> +4 21.05.12 494 26 7쪽
3 <제 3화. 동네 미친 여자 3> +2 21.05.12 522 30 8쪽
»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1 21.05.12 612 38 8쪽
1 <제 1화. 동네 미친 여자 1> +4 21.05.12 910 5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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