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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21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3 12:00
조회
469
추천
23
글자
7쪽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DUMMY

“어휴. 여기도 푹푹 찌네. 진짜 지구가 끓고 있나 봐.”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플로리다 땅을 밟았다. 한국보다 더 뜨거운 태양이 나를 맞이했다. 에어컨 빵빵한 공항에선 날씨를 가늠할 수 없었다. 공항을 벗어나니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습기가 얼굴을 짓눌렀다.


정말 뉴스에서 본 대로 세계 곳곳이 찜통이 된 것만 같았다. 예전엔 미국 플로리다주 하면 월트 디즈니 월드나 마이애미 아름다운 바닷가만 떠올렸다. 이젠 24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과 그에 따른 요통, 지금 맞이하는 살인적인 습도가 떠오를 것 같았다.


얼마 만에 살아온 동네를 떠난 것인지 모르겠다. 대학교 시절 잠깐 친구들과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멀리 오다니. 물론 지구 안에서 말이다.


가장 멀리 떠났던 건 태양계 밖 어디쯤이었다. 저 멀리 우주에서 본 지구는 그저 하나의 점일 뿐이었다. 광속을 넘는 속도로 우주를 다녀온 나다. UFO 밖으로 보이던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생각났다. 제니퍼도 그 절경을 기억할까? 오로라처럼 신비로운 빛으로 퍼져나가는 태양풍이 허락했던 찰나의 시간. 모든 시스템이 꺼진 그 시간에 그와 나눈 잊지 못할 키스. 나는 눈을 감고 되살아오는 기억 속 그의 입술을 느꼈다. 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사랑을 이제 그녀에게 말할 수 있다니. 그때의 이야기는 제니퍼를 만나 실컷 해야겠다.


어쨌든 나오니까 좋다. 사람들이 수군거리지 않았다.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날 보고 눈인사도 해줬다.


여기에서 난 미친년이 아니었다. 그저 마른 동양 중년 여인이었다. 눈을 감고 큰 숨을 들이쉬었다. 자유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왜 난 이렇게 속 시원한 숨을 쉬지 못했을까.


공항 앞에 줄지어 있는 주황색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탔다.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기사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령 하쉐요. 한쿡인 잉가요?”


대학 다닐 때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땐 현지인이 동양인을 보면 ‘곤니찌와’하고 인사했었다. 세계적으로 바람이 분 한류 덕분에 이젠 그들 입에서 한국어가 나오다니. 생각보다 발음도 괜찮네. 세월 참 많이 변했다. 한껏 올라간 우리나라 위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제니퍼의 주소를 보여주자 택시가 출발했다. 기사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택시기사는 잔잔한 팝송을 틀었다. 음악 때문인지 기분이 센티멘탈 해졌다.


참.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이란 것이. 아무리 처절하고 억울해도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쓰디쓴 시간이 흘러버리니 이렇게 먼 미국 땅에서 창밖을 보며 감상에 젖는 순간도 맞이할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것도 아니지. 시간은 외롭게 버려진 내게서 젊음을 빼앗아갔으니 말이다.


젊음. 뭐 하나 가진 게 없어도 설렜던 그 시절. 배낭 하나 메고 깔깔거리던 꿈 많던 어린 여대생이 상상도 못 했던 지금 이 순간이다. 이렇게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 일을 겪을 줄이야.


이렇게 힘든 세월을 살게 될 줄 알았다면 20년 전, 날 납치했던 그에게 마지막 부탁은 하지 말 걸 그랬다.


“샤일로. 제발 내 기억을 지우지 말아줘요. 당신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며 살래요.”


*****


“Oh my. welcome. Miss koo. thank you for coming.”


통통한 체구에 금발이 인상적인 제니퍼가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라고 들었지만 깊은 주름 때문에 언니처럼 보였다. 처음엔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밝게 웃는 제니퍼의 얼굴에 금세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온 구원희예요. 정말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네요.”


작은 트렁크 하나 들고 제니퍼의 메일에 한 달음 달려왔다. 그녀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 이것저것 살뜰히 살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나를 만나려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감동이에요. 예상보다 빨리 와서 놀랐어요.”


“당신 인터뷰를 보고 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 잠도 설칠 정도였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구원희씨. 생각보다 영어를 잘 하시네요. 번역기로 대화해야 하나 고민했었거든요.”


“아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문학이 제 전공이였어요. 졸업 후, 한 번도 써보지 못했지만요.”


우수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낙제한 적 없이 4년제 대학 영어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누가 알겠는가. 아니 관심이나 있을까?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진실을 알리고 조그만 단서라도 찾으려 애를 쓰며 사는 동안 나의 이미지는 미친 여자로 굳어져 버렸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선뜻 내 손을 잡아주려 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할수록 난 증세가 심해지는 정신병자일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지나가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야 나는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저 사는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선 뭐 좀 드시겠어요? 먼 길 오느라 힘들었죠? 잠시만 앉아 있어요.”


“감사합니다. 배고팠던 참인데.”


나는 식탁에 앉아 집안을 둘러 보았다. 아담하고 정갈했다. 풍족해 보이지 않는 집이지만 그녀의 성실함이 곳곳에 엿보였다. 내 집과는 다르게 외계인에 관한 책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제니퍼는 냉장고를 열고 이것저것 꺼내 음식을 준비했다. 냉장고 문에 붙여 놓은 여자아이 사진이 내 눈에 띄었다. 10살은 되어 보였다.


“당신 딸인가 봐요. 너무 예뻐요.”


나는 눈짓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맞아요. 제 딸이죠. 지금은 좀 더 컸을 거예요. 딸은 전남편과 살고 있거든요.”


딸아이의 눈이 엄마를 닮아 크고 예뻤다. 제니퍼와 같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우주의 성운 한가운데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였다. 나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우주가 거대한 생명체의 세포일지 모른다는 프랙탈 우주론은 진짜일지도 모르지. 밝게 웃는 사진 속 아이의 눈동자에 점점 빠져 들었다. 나는 그만 눈동자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그날의 기억으로 되돌아갔다. 내 아이를 만났던 그날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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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 22화. 내 동생 구제일> +2 21.05.22 273 17 7쪽
21 <제 21화. 아이가 움직여요.> +1 21.05.21 272 17 7쪽
20 <제 20화. 이제부터 당신을 경호합니다 > 21.05.21 272 17 7쪽
19 <제 19화. 비밀 요원 알렉 > +2 21.05.20 278 19 7쪽
18 <제 18화. 아길레라 > 21.05.20 276 17 7쪽
17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21.05.19 314 21 11쪽
16 <제 16화. 얼굴 천재들 > 21.05.19 299 20 7쪽
15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21.05.18 324 19 7쪽
14 <제 14화. 조건은 단 하나. 구원희 > 21.05.17 331 20 7쪽
13 <제 13화. 외계 외교부 > +1 21.05.17 342 21 7쪽
12 <제 12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21.05.16 352 20 9쪽
11 <제 11화. 샤일로 > 21.05.16 362 20 7쪽
10 <제 10화. 제니퍼의 일기장 > 21.05.15 365 23 7쪽
9 <제 9화. 제니퍼 > 21.05.15 373 22 8쪽
8 <제 8화. 그날2> +2 21.05.14 374 22 9쪽
7 <제 7화. 그날1> 21.05.14 424 22 7쪽
6 <제 6화. 진통이 와요> 21.05.13 445 27 7쪽
»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21.05.13 470 23 7쪽
4 <제 4화. 가자! 플로리다로> +4 21.05.12 495 26 7쪽
3 <제 3화. 동네 미친 여자 3> +2 21.05.12 523 30 8쪽
2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1 21.05.12 612 38 8쪽
1 <제 1화. 동네 미친 여자 1> +4 21.05.12 910 5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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