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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116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5 22:04
조회
364
추천
23
글자
7쪽

<제 10화. 제니퍼의 일기장 >

DUMMY

제니퍼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쉼 없이 되감기 버튼을 돌리는 듯했다.


“이건. 분명 내 글씨체인데···.”


“제니퍼. 별일 없는 거지? 구원희씨. 이거 받으세요.”


제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제니퍼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곤 나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제니퍼. 네 부탁대로 오늘 배달은 아무도 몰라.”


“그. 그래. 정말 고마워.”


제프가 현관을 나서자 나는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테이프를 뜯는 손길이 떨렸다. 제니퍼도 궁금한 표정으로 내 옆에 바짝 다가섰다.


상자 안엔 녹음기와 이어폰, 일기장, USB가 들어 있었다.

작은 쪽지엔 <둘이 같이 들어요.>라고 쓰여 있다. 나는 녹음기를 집어 들고 이어폰을 한쪽 낀 채 긴장된 손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제니퍼도 숨죽이며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걸으면서 녹음한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 숨소리,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 주변 잡음과 다급한 숨소리만 한동안 들리더니 곧이어 제니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원희 씨. 내 목소리 듣고 있나요? 이 택배가 도착했을 때, 내가 놀라고 있다면 내 기억은 이미 사라졌겠지요.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메시지를 남기려 해요. 남편과 이혼할 때 증거를 확보하려 마련해 둔 녹음기를 이렇게 쓰게 되네요. 긴말할 순 없어요. 핸드폰, 컴퓨터가 있는 실내 어디든 안심할 수 없죠. 이미 그들은 내 모든 걸 해킹하고 알고 있을 거예요.


내가 떠올린 모든 기억은 다 사실이에요. 컴퓨터를 믿을 수 없어서 직접 손글씨로 쓴 노트가 있어요. 내 기억의 전부를 밤낮없이 적어뒀죠. 읽어 보길 바래요. 그 모든 생체 실험은 정부도 알고 있어요. 아니 정부가 승인했죠. 외계의 첨단 기술을 전수 받는 조건을 걸었어요. 협약내용엔 피실험자의 기억을 없애야만 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했어요.


세계 어떤 나라들이 합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납치되었던 걸 보니 한국도 가담했었군요. 아길레라를 만나요. USB 자료를 내게 준 사람이에요. 내가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죠. 이곳으로 이사 온 것도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플로리다의 하원의원 아길레라.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이 녹음기는 없애주세요.


자. 이제 나에게 말할게요.

제니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지내야 해. 그들이 다시 올지도 몰라. 이어폰을 빼고 구 원희 씨에게 말해.

-멀리 와줘서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라고.

그들이 보고 있으니까.“


녹음된 내용이 끝나자 이름 모를 음악이 흘러나왔다. 난 아무 말 없이 이어폰을 뺐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가방을 챙기는 척하며 집안을 살펴봤다.


떡하니 거실에 자리 잡은 컴퓨터. 테이블 위에 있는 제니퍼의 핸드폰. 집안에 놓인 여러 장식품 모두 의심스럽게 보였다. 어디에 우릴 감시하는 눈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기지를 발휘해 얼어있는 제니퍼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감동적인 음악이네요. 제니퍼. 날 위해 이런 걸 준비하다니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그만 가 볼게요.“


제니퍼는 아직도 얼얼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 머···. 멀리 와줘서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잘 가요. 구원희씨.“



*****


숙소까지 타고 온 택시에서 내리면서 녹음기를 슬쩍 바닥에 흘렸다. 택시가 출발하며 밟고 지나간 녹음기는 시원하게 부서졌다.

간단히 짐을 풀고 주위를 살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린 것 같다. 하긴 내 삶 자체가 심상치 않은 일이었지. 뭐가 이렇게 평범한 것이 없는 건지.


제니퍼의 말대로 정부가 승인한 실험이었다면. 생체 실험의 대가로 첨단 기술을 받은 것이라면. 이런 염병할 것들!

나는 2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한국을 하나하나 곱씹어 봤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대강 풀었다. 급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이틀 동안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쪼그려 목 베개에 의지해 쪽잠을 잔 것이 전부였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였다. 지금 여기는 해가 중천인 한낮이지만 한국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새벽이었다.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눈이 감기지만 너무나도 궁금한 제니퍼의 일기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일기장에 써 내려간 외계인의 모습은 내가 만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제니퍼는 그들을 공포스러운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기장 속 그녀는 배 속에 자라고 있는 다른 종족의 아이를 증오하고 있었다.


날짜를 보아하니 제니퍼는 나보다 몇 년 늦게 납치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묘사한 내용을 읽으니 비행체의 내부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것 같다. 새하얀 복도. 수많은 방. 그들의 공간은 단순함과 고요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어디에도 불필요하거나 과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제니퍼의 일기장을 읽어가다가 한 대목에서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이럴 수가!“


난 침대에 누운 채로 꼼짝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가슴이 저렸다. 그녀의 일기장에 쓰인 내용이 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제니퍼는 일기장에 이렇게 써 놓았다.


<그들이 심어 놓은 뱃속에 괴물이 꿈틀거렸다. 끔찍했다. 그들은 나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난 그곳에 있는 내내 미칠 것만 같았다. 내 뱃속의 실험체를 보호하려 그들은 모든 의학 기술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몸에서 사라져. 없어지란 말이야.’ 난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감정을 못 느끼는 종족이다. 공감이나 따듯한 마음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원인과 결과, 합리적 설명, 종족의 보존, 그들 시스템의 존재만이 그들을 움직이는 것 같다. 소름 끼치게 기계 같은 그들. 언제까지 나를 잡아둘까.


두 번째로 내 몸에 이식한 그들의 아이가 유산되던 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 실험으로 성공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느냐고.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믿을 수 없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자 벽에 한 아이의 모습이 비쳤다.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지구인이 출산한 아이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화면 속 그 아이는 특이한 눈을 가졌는데, 양쪽 눈동자 색이 다른 오드아이였다.>


제니퍼가 본 것은 내 아이였다. 다시 한 번 안아보고 싶은 나와 샤일로의 아이.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고자 입을 틀어 막으며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또 읽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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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 22화. 내 동생 구제일> +2 21.05.22 273 17 7쪽
21 <제 21화. 아이가 움직여요.> +1 21.05.21 272 17 7쪽
20 <제 20화. 이제부터 당신을 경호합니다 > 21.05.21 271 17 7쪽
19 <제 19화. 비밀 요원 알렉 > +2 21.05.20 278 19 7쪽
18 <제 18화. 아길레라 > 21.05.20 276 17 7쪽
17 <제 17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21.05.19 314 21 11쪽
16 <제 16화. 얼굴 천재들 > 21.05.19 299 20 7쪽
15 <제 15화. 꽃 천재 장한별 > 21.05.18 323 19 7쪽
14 <제 14화. 조건은 단 하나. 구원희 > 21.05.17 331 20 7쪽
13 <제 13화. 외계 외교부 > +1 21.05.17 342 21 7쪽
12 <제 12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21.05.16 352 20 9쪽
11 <제 11화. 샤일로 > 21.05.16 361 20 7쪽
» <제 10화. 제니퍼의 일기장 > 21.05.15 365 23 7쪽
9 <제 9화. 제니퍼 > 21.05.15 373 22 8쪽
8 <제 8화. 그날2> +2 21.05.14 373 22 9쪽
7 <제 7화. 그날1> 21.05.14 424 22 7쪽
6 <제 6화. 진통이 와요> 21.05.13 445 27 7쪽
5 <제 5화. 제니퍼를 만나다> 21.05.13 469 23 7쪽
4 <제 4화. 가자! 플로리다로> +4 21.05.12 495 26 7쪽
3 <제 3화. 동네 미친 여자 3> +2 21.05.12 523 30 8쪽
2 <제 2화. 동네 미친 여자 2> +1 21.05.12 612 38 8쪽
1 <제 1화. 동네 미친 여자 1> +4 21.05.12 910 5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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