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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85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5.12 10:38
조회
908
추천
56
글자
7쪽

<제 1화. 동네 미친 여자 1>

DUMMY

“저는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저 새끼는 이 대목에서 항상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나의 망상일 뿐인 것 같다고 말을 해야 저 의사 새끼는 만족할 테지. 어쩌면 이 동네 사람 모두가 나에게 그것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알고 있습니다. 원희 씨에게 일어난 일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돕고 싶···.”


개뿔. 웃기고 앉았네. 공감하는 척하기는! 뻔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기 싫어 나는 의사의 말을 잘라버렸다.


“거짓말이잖아요. 선생님도 저를 미친 여자로 생각하고 계시죠? 다들 그렇게 수군댄다는 것 제가 모를 줄 아셨나요?”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정신과 의사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상담을 이어갔다.


“알고 계셨다 하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 그때의 느낌은 어땠죠? 화가 나고 불안했나요?”


정신과 의사는 모든 것을 불안과 연결한다. 내과 의사가 모든 병의 원인을 스트레스로 연결하듯이. 불안 때문에 내가 만든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자로 끌고 가시게? 당신이 던진 질문에 대답은 하나지.


너희들이 믿기 싫으니까. 믿을 수 없으니까. 나를 미친년 만든 거잖아.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는 의사에게 나는 헛웃음을 날렸다. 수년간 반복되는 상담의 패턴이다. 내가 말없이 웃어 보이면 상담은 끝나곤 했다. 20년 전만 해도 이 웃음 한 번 보고자 수 많은 남자가 줄을 섰었지.


“맞아요. 불안이 많은가 봐요. 안정제나 처방해주세요.”


약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자동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새치가 희끗희끗 보이는 머리칼과 초췌한 얼굴.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나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예전에 눈부셨던 얼굴과 미소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자동문의 문 열림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고 나는 반짝이는 유리문을 보며 활짝 웃었다. 아무리 밝게 웃어도 내가 삼켜버린 억울함 때문인지 슬프게만 보였다. 원래 난 이렇지 않았는데.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자동문이 열렸다. 정신과로 들어서는 중년 여자는 문 앞에서 웃고 있는 나와 맞닥뜨리자 화들짝 놀랐다.


“어머! 깜짝이야. 뭐야? 소름 끼치게. 이 미친 여자가.”


나는 얼굴의 웃음을 재빨리 거두었다. 여자는 시끄럽게 투덜대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가는 여자에게 달려가 욕이라도 한 판 시원하게 하고 싶지만 참았다. 문 앞에서 웃고 있었던 것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을 테니.

‘내가 미쳐 보이니? 내 눈엔 감정하나 컨트롤 못하는 니가 더 정상 아니게 보이는데? 썅년’

속으로만 한 방 날리고 병원을 나섰다.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그렇다. 난 동네 미친 여자로 불린다. 살짝 맛이 간 여자.


그들이 어떻게 날 부르든 상관없다. 무시하고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타고난 성격도 남들에게 잘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성격이다. 그 성격 탓에 도도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점심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얼른 마트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는 날엔 지랄하는 점장 목소리를 퇴근할 때까지 들어야 했다. 재수 없지만 버티자. 동네 미친 여자로 소문난 판에 나를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어렵게 구한 직장인데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나는 누가 뭐라든 언제나 씩씩했다. 마트로 출근을 하고, 돈을 벌고, 먹고, 잠들고···.

내 가슴 속 깊이 박힌 그리움과 상처는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지만, 그것들을 곱씹을 만큼 여유 있는 삶은 아니다. 그래서 그동안 버틸 수 있는지 몰랐다.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다른 생각들은 지워버릴 수 있었다.



“엄마. 저 아줌마는 왜 미친 거야?”


“어머!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마트 계산대에 포도 맛 젤리를 올려놓으며 대여섯 되어 보이는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내 눈치를 살피느라 어쩔 줄 몰랐다. 이런 상황은 익숙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산대 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계산하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줌마는 아주 특별한 일을 겪었거든. 미친 게 아니고 아무도 못 믿을 뿐이야. 모두 다 해서 35,700원입니다.”


그 여자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쳐다보냐고 한마디 하려는 찰나 이름 모를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마트 전등이 비춰 반짝였다. 순간 20년 전 그곳이 떠올랐다. 벌거벗겨진 채 침대에 묶여 바라보던 천장의 둥근 조명.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몸서리가 쳐져 어깨를 움츠렸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궜다.


‘그래. 사람들 말대로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차라리 기억을 지웠다면 살만했을까.’


현금을 가지런히 정리해 넣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풀이 죽은 나를 자꾸 돌아보며 아이는 마트를 나섰다.


“엄마. 저 아줌마 말이 맞아? 무슨 일인데 사람들이 못 믿어?”


여자는 아이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댔다. 들리진 않지만, 그녀가 떠들어댈 이야기는 뻔했다.


<옛날에 저 아줌마가 25살쯤 되었을 때 갑자기 1년 정도 사라졌었대. 그때 같이 사라진 남자가 있어서 둘이 도망갔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지. 일 년 뒤 혼자 나타난 저 아줌마는 반쯤 정신이 나가서는 자기가 외계인한테 납치되었었다고 말했다는 거야. 그냥 납치된 것이 아니고 외계인 아이를 낳고 돌아왔다지 뭐니.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니? 사람들은 생각했대. 모든 걸 버리고 같이 도망친 남자친구가 자기를 버리자 너무 슬픈 나머지 정신이 오락가락하게 되었다고. 살짝 이상하긴 해도 불쌍한 아줌마야.>


사람들이 나에 관해 떠들어대는 이야기. 내가 말한 것들은 믿지 않고, 자신들이 이해될 만한 그럴듯한 스토리를 붙여 부풀려 놓은 온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갑자기 아이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내게 달려왔다. 계산대 앞에 있는 나에게 포도 맛 젤리를 하나 나눠주며 밝게 웃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다시 만날 수도 있잖아요.”


나는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젤리를 받아들었다. 아이는 이야기 속 그 남자를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난 다른 이를 떠올렸다.


나를 살린 샤일로. 그리고 그와 나의 아기.


고맙다고 말할 틈도 없이 쪼르륵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차올랐다.


‘내 아기도 너처럼 예뻤는데. 샤일로. 다시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긴 머릿결을 휘날리며 나에게 손을 내미는 반짝이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 차오르다가 눈물과 함께 떨어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근 후 잠을 아껴가며 써 내려간 구원희의 이야기.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께 내놓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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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 80화. 외전 3(완결)> +3 21.07.04 129 10 8쪽
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6 7 7쪽
78 <제 78화. 외전 1> 21.06.29 106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4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4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8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100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7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70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1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7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99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3 10 7쪽
63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5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5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59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3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1 12 9쪽
57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5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9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6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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