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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95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6.09 22:55
조회
145
추천
12
글자
8쪽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DUMMY

“딱 한 잔만 더 마셔야겠어. 뭐라고 할 사람 하나 없잖아? 안 그래?”


술에 취한 구원희는 원망 어린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좀 조용히 해! 작작해라!>


<기지배가 저렇게 술에 취해 가지고는. 아빠 보시기 전에 얼른 방으로 들어가지 못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식구들의 목소리에 구원희는 한참 헛웃음을 흘렸다.


“다들 왜 아무 말도 없어. 나 오늘 망가져 버린다! 좀 말려 봐! 다 어디로 간 거냐고... 흑흑.”


결국 구원희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적막한 집에서 홀로 맞이하는 저녁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구원희는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그녀를 위로해 주는 것은 캔맥주 몇 개였다.


‘까가강.’


구원희는 다 먹어버린 맥주캔을 구기며 일어섰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건데? 왜 다들 가만두지 않는 건데! 진짜 주옥같은 세상이네.”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구원희는 외로움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아무리 냉철한 성격의 그녀였지만,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내며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오늘 다 끝내자. 다들 나를 떠났잖아. 엄마 아빠도, 제일이도, 유아리도...”


비틀거리며 슈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울분을 토해내고 싶은 그녀였다.


“계산해 주세요.”


맥주캔 몇 개와 번개탄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자 구멍가게 사장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의 생각이 무엇인지 눈치챌 법도 한데, 사장은 별말이 없었다.


“4800원.”


“잔돈은 됐어요.”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돌아서는 구원희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는 구멍가게 사장이었다.


“그래.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지. 그냥 나 하나 없어지면 되는 거야. 눈에 가시 하나 사라지면 그만이지. 안 그래?”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구원희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거리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하나 없다니.'


멀리서 비틀거리며 중얼대는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못 볼 것을 본 듯 그녀를 피해 길을 걸었다.


“샤일로. 이게 나예요. 흐흐흐. 웃기죠? 거짓말이라는 개념이 없는 그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나는 지구에 사는 걸.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아요.”


하늘을 보며 소리치는 그녀에게 웬 남자가 다가왔다.


“거기. 조용히 좀 합시다. 아줌마 여기 전세 냈어?”


“어? 너 뭔데? 훠이! 저리 도망 안 가? 나 몰라?”


“알지. 그런데 오늘 따라 꽤 취한 것 같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동네 건달이 구원희를 불러 세웠다. 구원희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가 반가웠다.


“씨발. 너 오늘 잘 걸렸다. 야! 이 새끼야. 뭔데! 왜 길가는 사람한테 시비야?”


동네 건달은 구원희에게 달려 들었다.


“아 놔. 이 미친 여자가! 야! 야!”


그녀의 어깨를 툭툭 밀치며 구석으로 몰아넣는 그의 손길이 매서웠다.


“아줌마. 정신 차리라고! 조용히 지나가면 될 거 아니야. 왜 하늘에 대고 말을 하고 지랄이냐고.”


“그건 내 맘이지 왜 이래? 이러다 한 대 치겠다?”


“못 할 것도 없지. 기분 드러워 죽겠는데.”


‘찰싹!’


순간 불이 번쩍였다. 자신의 뺨에 날아든 묵직한 그의 손에 구원희는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이게!”


구원희는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봤다.


‘찰싹!’


또 한 번 번개가 번쩍였다. 구원희 앞에 쭈그려 앉은 그는 그녀의 얼굴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아줌마. 정신 차리고 다녀. 알겠어?”


구원희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웅하니 들려오는 소리가 술 때문인지, 그 새끼한테 얹어 맞은 따귀 때문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퉤! 니들 다 똑같아! 죽여! 죽여보라고. 나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이야. 잘 됐네. 오늘 딱 죽고 싶었는데. 오늘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얼굴에 튄 침을 닦아내는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근데, 이 년이!”


손을 들어 구원희를 때리려는 찰나, 밝은 불빛이 구석의 그들을 비추었다. 눈이 부신 그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아. 놔. 이건 또 뭐야?”


구원희는 말없이 불빛을 바라봤다. 그가 떠올랐다. 오래전 산속에서 봤던 빛이 생각나며 가슴이 아팠다.


“이눔! 썩 꺼지지 못 해! 이 후레자식아.”


‘드르르륵!’


“뭐야?”


손전등을 든 할머니가 리어커를 힘껏 밀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예라이! 몹쓸 놈아. 약한 여자 하나 두고 지금 뭐 하는 겨?”


할머니는 고함과 함께 리어카를 밀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리어카가 기울어지며 그 안에 담긴 파지들이 우르르 쏟아 졌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동네 건달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파지를 줍던 할머니는 구원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러게 뭐 그렇게 쳐 먹고 다니냐. 꼴사납게 시리.”


구원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바닥에 떨어진 맥주 캔과 번개탄을 집어 들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뭘 참견하고 그래요? 그냥 지나가시지.”


할머니는 번개탄을 집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구원희는 깜짝 놀라 할머니를 바라봤다. 손아귀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쉽게 죽으라구 니 애미가 힘들게 너 낳았는 줄 아냐? 바보같은 생각은 하는 게 아니여!”


구원희는 깜짝 놀라 번개탄을 검은 봉지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까 보니께 니년 하는 짓도 만만치 않더만. 그렇게 세상에 맞대고 살아가면 너만 손해여. 그냥. 니는 씨부려라. 나는 갈 길 갈란다하고 씹고 지나가야지. 안 그려? 그래도 너는 너여. 그들이 뭐라 씨부려 싸도 니 속은 그대로 잖어.


똥이 더러워서 피하간? 빙 돌아가야 할 때도 있는 거여.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 살다 보믄 좋은 날도 오니께 그려러니 하구 그냥 살어. 하늘이 데려갈 때까지 버티는 것두 아무나 하는 게 아녀. 알겄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아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었다.


구원희는 갑자기 복받쳤던 설움이 밀려와 쪼그려 앉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그런 그녀를 할머니는 꼭 안아주었다.


“내 자석 같아서 하는 말이여.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사는 게 쉬운 사람 어디 있간? 다덜 자기 짐을 이고 가는 거여. 죽어서야 짐을 내려놓고 쉬는 거지. 누가 알어? 그 짐 지느랴 수고했다고 죽은 뒤에 누가 상 줄지도 모르는 일 아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혀. 알겄어?”


할머니는 구원희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리어카에서 떨어진 파지를 다시 주워 담았다.


“아. 뭐하냐. 와서 안 도울껴?”


할머니의 호통에 건물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뚱뚱한 남자가 리어카로 다가왔다.


“위험하면 숨어. 숨어. 이거 담으면 사탕 줘? 엄마?”


“그려. 집에 가서 줄 꺼여. 어여 주워 담어.”


구원희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할머니는 파지를 잔뜩 쌓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었다.


“내 말 잊지 말어. 알겄지? 처자? 야야. 뭐하냐. 힘껏 밀어라.”


“밀어. 힘차게 밀어.”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할머니와 몸이 불편한 남자를 보며 구원희는 눈물을 훔쳤다. 오늘, 저 둘을 만난 건 우연이 아닌 것만 같았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구원희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술과 번개탄이 담긴 검은 봉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5 달구나
    작성일
    21.06.10 17:52
    No. 1

    아아니 왜케 얼키고 설키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조사나
    작성일
    21.06.10 21:45
    No. 2

    좀 그랬나요? 구원희를 돕던 민초 이야기를 넣고 싶은데, 새 인물을 등장 시키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서요~^^ 관심으로 읽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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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6 7 7쪽
78 <제 78화. 외전 1> 21.06.29 107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5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5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9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100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7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70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2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8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100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4 10 7쪽
63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5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5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59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3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1 12 9쪽
»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6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9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6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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