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89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6.29 10:48
조회
106
추천
7
글자
7쪽

<제 78화. 외전 1>

DUMMY

<1980년대 서울의 한 골목>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야! 거기 움직였어. 이리 나와.”


“아이 씨. 안 움직였는데···.”


터벅터벅 전봇대에 기댄 술래에게 다가가 새끼손가락을 거는 어린 구제일. 그 뒤에 자세를 멈추고 서 있는 구원희는 곁눈질로 동생을 바라봤다.


“무궁화 꽃이···.”


'타다닥 탁!'


“우와!”


구원희는 술래가 뒤를 돌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나가 새끼손가락의 고리를 끊어냈다. 뒤따라오는 술래를 피해 달아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해는 지고 깜깜해졌지만 가로등 불 하나에 의지해 노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올 때까지 골목이 그 시절 아이들의 돌봄 교실이나 다름없었다.


“딱!”


“앗싸. 내 꺼. 구슬 내놔.”


흙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유리 구슬을 쳐대는 아이들에겐 구원희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동네 구슬이란 구슬은 다 따버리는 원희였다. 어린 원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골덴 바짓 속 가득한 구슬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유리가 부딪치는 영롱한 소리를 냈다.


“큭큭. 다 덤벼봐.”


주머니 속 또르르 울리는 구슬 소리가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만들어 냈다.


초겨울이라 날이 일찍 저물었다. 깜깜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구원희는 입김을 불었다.


“후! 야. 담배 피우는 것 같지 않아? 큭큭.”


골목에 있는 평상에 기대 누운 아이들은 두 손가락을 입에 대고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며 깔깔거렸다.


“누나. 배고파.”


“조금만 참아. 엄마 올 때 다 됐어.”


“저기 저 별 좀 봐. 진짜 반짝인다. 저기 저거 북두칠성 아니야? 누나?”


“글쎄. 모르겠어. 누가 그러는데, 저기 저 반짝이는 별 중에 벌써 사라진 별들도 있대. 지구까지 빛이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래?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데?”


“그러니까. 참 신기해. 그렇지 제일아? 저기 저 별은 정말 멀리 있나 봐. 굉장히 작게 반짝인다. 저 별에도 누가 살까?”


“에이 설마. 외계인이 세상에 어디 있어?”


“혹시 모르지. 안 그래? 언젠가는 저 붉은 별에 사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몰라. 안녕!”


구원희는 작은 별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린 구원희가 지나가는 말로 무심히 가리킨 항성. 훗날 우주로 발사된 망원경이 그 별을 돌고 있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을 발견했다.


그 행성의 이름은 캐플러 438-b였다.




*****


샬마 북부의 한 빙하 지대. 샤일로는 지구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험체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풀어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맞서며 외곽 지역 AI를 점검한 샤일로는 개인 공간으로 들어섰다.


다른 구성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로운 곳에서 샤일로는 묵묵히 불이익을 감당해 냈다.


개인 공간에 들어서자 그의 체온을 다운로드한 조리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이 제조되어 나왔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를 한 잔 들고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 앉자 그를 감지한 벽에 모니터가 생성되었다. 샬마 안팎의 모든 소식이 화면 안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시며 화면을 바라봤다.


어느덧 그는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 하루빨리 중앙 시스템으로 복귀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는 텔레파시로 오늘 있었던 일과를 컴퓨터에 모두 기록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외곽 지역 임무였다, 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맡게 된 것에 불만이나 복수심 따위는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이 시스템의 규율을 어겼으니 다른 구성원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솔직히 그는 그것이 불이익이라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시스템의 눈이 가득한 샬마의 거대한 단일 수도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이곳에서는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샤일로는 정화 캡슐로 향하며 방한 슈트 사이에 슬쩍 뭔가를 숨겨 놓았다. 정화 캡슐 안에 눕자 온기 가득한 물이 그의 몸을 감쌌다. 하루의 피곤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19년간 그녀를 생각하며 캡슐 안에서 연습한 미소는 이제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구인의 미소만큼이나 꽤 자연스러웠다.


그의 기억 속에 그녀는 웃고 있었다. 정화 캡슐 안에서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서로를 끌어안은 자신과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헝클어진 자신을 보고 깔깔거리는 그녀의 얼굴. 눈만 감으면 태양과도 같았던 환한 미소와 그녀의 촉감이 떠올랐다.


자신이 뭐라 표현할 수 없던 감정들을 그녀는 웃음 하나로 표현해 버렸다. 환한 미소는 우주의 어떤 언어보다도 쉽고 진실했다. 그 미소 한 번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샤일로는 오랜 시간을 웃음을 짓는 연습을 해왔다.


세척을 마친 그는 잠자리에 들며 그녀와 나누었던 그들만의 텔레파시 주파수로 그녀에게 인사를 전했다.


<잘 자요. 구원희 씨>


다음 날 아침 샤일로는 눈바람이 몰아치는 외곽으로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그들의 로브는 날씨에 맞게 체온을 조절할 수 있도록 온도를 맞출 수 있었지만, 극심한 기온 차로 오류가 생길지 몰라 로브 위로 방한복을 덧입었다.


방한복 주머니에 샤일로는 숨겨두었던 것을 쓱 챙기고는 밖으로 나섰다.


“휭. 휭!”


매섭게 불어오는 눈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 몸을 기댄 샤일로는 품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을 가진 그들에겐 종이는 원시 샬마의 유물로 기록되어지고 있을 뿐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샬마 건축물의 모든 벽은 시스템과 연동이 가능했기에 그들에게 비밀이란 존재 할 수 없었지만, 이곳, 북부 외곽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강한 자성과 극심한 온도 차이 때문에 자주 오류를 일으키는 기기들 때문이었다.


기지 바깥엔 그를 감시할 수 있는 기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큐브에서 봤던 대로 나무를 얇게 벗겨 종이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것에 손으로 써 내려간 언어들은 그 누구에게도 공유되지 않았으며, 어떤 자료로도 남지 않을 수 있었다. 오직 그만의 비밀 이야기였다.


장갑을 낀 무딘 손으로 그는 생각이 날 때마다 종이에 단어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냉정하다. 솔직하다. 바보 같다. 짜증 난다. 쳇. 젠장. 좆같다.


무슨 뜻인지 몰랐던 그녀의 말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그는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아 스르르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금 감사합니다. 21.07.12 26 0 -
공지 후원금 감사합니다! 감동. +2 21.06.07 174 0 -
80 <제 80화. 외전 3(완결)> +3 21.07.04 130 10 8쪽
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6 7 7쪽
» <제 78화. 외전 1> 21.06.29 107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5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4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9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100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7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70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1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7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99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3 10 7쪽
63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5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5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59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3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1 12 9쪽
57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5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9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6 1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