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화. 함선이다!>
둘째 날 저녁이 되자 한국 항공 우주 연구원의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 보고 싶어.”
“흑. 흑.”
어린아이들이 제일 먼저 지쳐 훌쩍거렸다. 선발자 중 자녀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탑승권을 아이에게 양도했다. 그 때문에 구호선을 탈 사람 중 반 이상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울지 말고 이리 와.”
다른 탑승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챙겼다.
아이들은 특히 김영희 씨를 잘 따랐다. 그녀를 이모가 부르며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그녀를 찾았다. 자식이 없던 그녀는 아이들을 자신의 피붙이처럼 살뜰하게 보살폈다.
가족을 떠나 대전으로 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 탑승자들이었다. 우주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속성으로 교육받고 있었지만, 그들은 더 중요한 것을 해 나가고 있었다.
탑승자로 선발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그들이 도착할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외계 구호선을 타고 우주를 떠다닐 생각을 하니, 어린아이들도 어른들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모. 무서워요.”
“무서워할 것 없어. 구원희씨 이야기 다 들었잖아. 그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아.”
“우리 엄마 아빠는 죽어요? 흑흑.”
“아니야. 괜찮을 거야. 벙커는 안전할 거야···. 자. 이제 모두 자자. 내일을 생각해서 모두 자야 해.”
아이들을 바라보던 김영희 씨는 말끝을 흐렸다. 괜찮을 거라 말은 했지만, 두 눈에 담긴 불안을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
*****
구원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이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 중 어딘가에 그들의 행성이 있을까? 저 먼 우주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그들. 이제 내일이면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구원희는 설렘과 걱정이 뒤섞여 도저히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샤일로, 당신도 나이가 들었을까요?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너무 궁금해요. 나이든 내 모습을 보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구원희는 샤일로와 같이 했던 시간을 하나씩 기억 속에서 되짚어 봤다.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와의 추억들이 필름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나눈 이야기, 그와의 첫 키스, 정화 캡슐 안에서의 짜릿한 스킨십까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힘겹게 지켜온 그와의 기억이었다. 다시 만날 샤일로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구원희였다.
‘오드아이. 나의 아기는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구원희는 아이가 떠오르자 눈가가 촉촉해졌다. 젖 한 번 실컷 못 물려보고 품 안에서 떠나보낸 불쌍한 아이. 온전한 샬마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 지, 건강하게 잘 살아있긴 한 건지, 밀려드는 아이의 걱정에 세상 구원희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졌다.
그녀는 며칠 간의 일들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아니 온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다.
아길레라, 법무부 장관, 탈영병···.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샤일로. 샬마인들이 우리 인간을 살리고 후회하면 어쩌죠?’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괴롭히는 악랄함.
이득을 취하기 위해 지구가 어찌 되건 말 건 물불 가지리 않는 탐욕스러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착각하는 교만함.
나, 내 식구부터 챙기고 보는 이기심.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근본적인 악을 생각하며 구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들을 들자면 인간은 우주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존재들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분명, 인간 본연의 선함도 존재했다. 그것의 힘은 강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평범한 사람들이 탑승자로 뽑혀 이곳 KARI에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선함의 에너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한 힘을 이길 것은 없었다.
이제 인간은 샬마인들이 그랬듯 자신들을 진화시켜야 했다. 위기가 인간에게 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야 미래가 있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바보처럼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휴. 머리야. 이러다 철학자 되겠어.“
구원희는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 세수를 했다.
’푸우! 푸우!‘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젖은 얼굴이 거울 속에 비쳤다. 정화 캡슐 안, 물에 젖은 자신을 바라보던 샤일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당신처럼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샤일로의 말이 문득 생각난 그녀는 거울을 보고 웃어 보았다. 샤일로가 부러워하던 미소였다. 그녀는 그를 만나면 제일 먼저 웃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거울을 보며 미소를 연습했다.
"이게 아닌데."
자신이 원하던 환한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웃음에선 왠지 모를 슬픔이 엿보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떠날 사람도 남겨질 사람도 무거운 마음으로 구호선을 기다렸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비서 실장의 한 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여러분, 이제 드디어 그들이 도착하는 날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의 마음이 어떠실지 짐작이 갑니다.
먼저 외계 외교부를 통해 들어 온 소식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20만 명을 수용할 커다란 함선은 대기권 밖에서 약 12시간 정도 머물게 될 겁니다. 우리는 상암 경기장보다 대략 3~4배 정도 큰 함선이 하늘 위에 떠 있는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전 세계를 돌며 탑승자를 실어 나를 정찰선이 우리나라에 오게 됩니다. 저희는 이곳 KARI의 위도와 경도를 전송해 놓은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은 샬마의 정찰선을 타고 구호선으로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우리나라를 재건할 소중한 분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이 땅에 남아 하늘을 올려다볼 사람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이 당신들에게 보낸 사랑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당신들이라면 미래의 이 세상을 재건해 나가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직감적으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교육을 받는 동안 탑승권을 양도하신 분들을 먼저 안전한 벙커로 이송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사랑을 실현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떠난 후에도 최선을 다해 그들을 보살필 것을 약속드립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다시 이 땅을 밟았을 때,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 여러분을 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였다.
”함선이다!“
창밖으로 하늘을 보던 아이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함선이 저 멀리 보였다. 사람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샤일로.“
구원희의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다들 거대 함선에 시선을 빼앗긴 그때 누군가 급하게 뛰어와 대통령에게 조용히 말을 전했다.
”뭐라고? 결국···. 뭐하나! 얼른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하고 지원 병력 요청해!“
구원희는 소리치는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녀와 마주친 대통령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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