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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80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6.13 12:27
조회
124
추천
11
글자
7쪽

<제 63화. 선발, 그 후 >

DUMMY

“엄마. 나야. 짐은 다 쌌어?”


“아이고. 니 전화 기다리다 모가지 빠지는 줄 알았다잉. 얼른 말해봐라이. 되았지? 너 구호 뱡긴가 뭔가에 탈 수 있는 거지?”


“으. 응. 우리 엄마가 멀리서 그렇게 기도해서 그런가 문자가 왔네. 탑승자로 선발됐대.“


”아이고.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지. 니는 살아야 하는 아여. 하늘도 아는 거여. 니가 좀 똑똑하간디? 여기 촌구석 섬에서 서울로 핵교간 넘이 어디 많간? 우리 아덜 같은 사람이 뽑혀야지. 암.“


”내가 뭘 그리 대단하다고···. 30 넘도록 제대로 된 효도도 한 번 못한 놈인데.“


”대단하구 말구. 너만 봐도 이 애미는 배가 부르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너 같은 아들을 늘그막에 얻었는지 모르겠구먼.“


”엄마. 너무 보고 싶어. 멀리 있어서 속상해. 얼굴 한 번 못 보고···.“


”맘 단단히 먹고. 몸 상하지 않게 잘 지내야 한다잉. 이 애미 걱정은 말고.“


”엄마. 얼른 대피해야 해. 곧 큰 지진이 온다니까.“


”걱정 붙들어 매거라. 내 평생 이 촌구석 섬은 암씨롱토 안 혔어.“


”엄마. 사랑해.“


”엄마도 사랑한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먼. 우리 잘난 아덜 뱡기타서.“



좁은 원룸에서 전화를 끊은 남자는 핸드폰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 내려가겠다고 미루고 미룬 엄마와의 만남이었다. 이렇게 다시 못 볼 줄 알았다면···. 조금 못난 모습으로라도 자주 만나러 갈걸. 남자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핸드폰을 터치해 메시지를 열어봤다. 아무리 기다려도 탑승자로 선발되었다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자신 하나만 바라보며 억척스레 살아온 엄마를 실망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늘 그래왔던 대로 엄마에게 거짓을 말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곧 이룰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진실로 만들 수 없는 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엄마. 미안해. 난 안 되나 봐.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다 사실대로 말할게.“


남자의 굵은 눈물이 대답 없는 핸드폰 위로 떨어졌다.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봤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여보. 핸드폰이 먹통 된 거 아닐까? 우리 둘 중 한 명이라도 선발이 되면 우리 아들 살릴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 아.“


남편은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울지마. 애가 듣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도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남자는 그동안 자신이 지나쳐 온 것들을 돌이켜봤다.


자유로운 솔로 친구들을 보며 잠깐 결혼이란 것이 무겁게 느껴졌던 일.

휴일 아침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모른 체하며 늦잠 잤던 일.

설거지 좀 도와달라는 아내에게 짜증 냈던 일.

첫사랑 페이스북을 보며 그녀를 그리워했던 일까지.


그동안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미안함이 밀려왔다.


”좋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우리 끝까지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잖아. 누구 하나 헤어질 필요 없는 거라고.“


”아. 여보. 이제 어쩌지?“


”탑승자들이 떠나는 대로 벙커가 공개되면 바로 출발하자. 그곳은 괜찮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우리 가족 그곳으로 데려갈 거니까 걱정 마.“


부부는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은 채,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잉. 지잉.“


진동을 느낀 여자는 몰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탑승자로 선발되었다는 알림이 전송되어 있었다. 여자는 무척이나 놀랐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주머니 속으로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야. 술 더 가져와.“


”이제 그만 먹어요. 내일 아침이면 벙커로 떠나야 하잖아요.“


”가긴 어딜 가? 거길 가면 뭐 안 죽을 거 같아? 진도 10 이하는 아무것도 아니라잖아. 이번에 지진이 오면 그냥 다 죽는 거야. 아이씨. 문자는 왜 안 오는 거야? 드러워서 나 참. 내가 이런 게 될 리가 없지. 빨리 술 가져와!“


여자는 소주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남편에게 내밀었다.


”안주할 거 뭐 없어?“


”이 난리 통에 장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기 밑반찬이라도···.“


”아이씨! 다 죽게 생긴 마당에 이런 말라 비틀어진 거나 먹어야겠어? 으이씨. 맘에 안 드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도대체 탑승자는 언제 발표하는 거야? 늦어지는 건가? 야! 뉴스 좀 틀어봐.“


<조금 전, 탑승자의 윤곽이 잡히고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에게 개별 문자가 통보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탑승자의 이송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군이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되는데요, 탑승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모든 위험 요소들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로써 탑승자로 선발된 사람들은 오늘, 친인척과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됩니다. 떠나는 이도 남겨진 사람도 모두 먹먹한, 참으로 믿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도 탑승자가 추려지고 함선을 탈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뭐여? 벌써 다 뽑았다고? 에이. 그럼 김 샌 거구만. 씨발. 이거 뭐 다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어. 정부 새끼들 말을 어떻게 믿어! 야! 너도 문자 안 왔지?“


”예? 그. 그럼요. 문. 문자 같은 건 안 왔어요.“


”어?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너 이상한데? 야. 핸드폰 줘봐! 빨리 이리 내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을 발견한 남자는 문자를 확인했다.


”어? 뭐야. 니가 탑승자로 뽑혔다고? 이게 말이 되냐? 참. 나. 이거 완전 순 엉터리네. 밥만 하는 저 여편네가 어디에 쓸모가 있다고! 잠깐만. 탑승권은 양도할 수 있잖아.“


”이리 줘요!“


핸드폰을 뺏어 드는 여자를 향해 손을 올리던 남자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손을 거두었다.


”내일 같이 나가. 니가 멀쩡해야 나한테 탑승권을 줄 거 아냐. 이따가 군인들이 오면 잘 얘기해라. 니가 남편 살리는 거야. 암. 그게 현명한 조강지처지.“


”....“


잔뜩 주눅이 든 여자를 보고 남자는 기분 좋게 소주를 따랐다.


”야. 술맛 죽이네!“


선발 직후, 사람들은 가장 견디기 힘든 밤을 맞았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이 소용돌이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런 밤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었습니다. 

댓글 많이 남겨주시면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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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 80화. 외전 3(완결)> +3 21.07.04 129 10 8쪽
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6 7 7쪽
78 <제 78화. 외전 1> 21.06.29 106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4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4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8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100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7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70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1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7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99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3 10 7쪽
»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5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4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59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3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1 12 9쪽
57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5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9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5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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