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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나 님의 서재입니다.

넌 나만의 미친 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조사나
그림/삽화
조사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9
최근연재일 :
2021.07.04 16:13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18,075
추천수 :
1,222
글자수 :
265,374

작성
21.06.11 12:10
조회
132
추천
10
글자
7쪽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DUMMY

고대 샬마의 거대 함선은 모든 정비를 마쳤다. 함선에 거주하던 샬마인들은 시스템에 귀속되어 각자의 공간을 배정 받았다. 지하에 갇혀 지내던 샬마인 모두가 그토록 원하던 찬란한 햇빛을 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함선 안에 샤일로는 홀로 남아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함선은 긴 우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함선의 곳곳을 살펴보며 샤일로는 생각에 잠겼다.


빛의 속도를 몇만 배 뛰어넘은 중성미자 터널을 통해 태양계로 이동하게 되면 지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지구의 시간으로 5일 후면 그토록 그리던 그녀를 만나게 된다. 샤일로는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그 순간부터 평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샤일로는 헛웃음을 지었다.


“모든 게 확률하고는 상관이 없잖아. 그녀를 만난 것, 9215가 태어난 것, 제외되고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 모두 말도 안 되는 확률이야. 그런데 그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샤일로는 그동안 자신이 의지해 오던 확률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달음이 밀려왔다.


꿈에 그리던 그녀를 만나러 다시 가는 길. 지구인을 종말에서 구하러 가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그였지만,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구원희.


자신을, 아니, 샬마를 바꿔버린 그녀였다.

그녀를 태울 준비가 완벽한 지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에 들 수 없었던 그는 함선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함선 중앙에 광장을 지나 개별 공간으로 들어서니 자신이 쓰던 방이 눈에 들어왔다. 굵고 푸른 선이 벽면에 그려진 방. 그 위에 자신이 그려 넣은 지구. 샤일로는 벽에 그려진 지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20년 전, 비행선 창밖으로 바라보던 푸른 행성이 눈 앞에 그려졌다.


모든 것이 계획적이고 낭비되는 것 없는 샬마와는 달리 지구는 모든 게 자유분방해 보였다. 들쭉날쭉 세워진 건물은 대륙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행성을 둘러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옷차림이며 생김새, 언어까지. 대륙마다 달라지는 지구인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지구인의 패턴은 파악이 되었는가? 그들의 문화나 성향을 기록해 시스템에 남겨야 하니 잘 정리해 보게.”


“그것이. 정리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사령관님.”


“왜지? 정찰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그게, 둘러보는 곳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샬마랑은 달라요. 어느 곳은 기술을 가졌고, 어느 곳은 그렇지 못합니다. 높은 건물을 짓고 사는 지구인이 있는가 하면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지구인도 있습니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같은 지구인인데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한쪽으로 몰려있어요. 발전한 곳에 사는 지구인은 많은 것을 누리며 낭비합니다. 그렇지 못한 곳에 있는 지구인은 한없이 궁핍합니다. 왜 그런지는 더 파악해 봐야 알겠지만 저도 이해하기 힘든 종족입니다.”


지구를 기록하면 할수록 샤일로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개인 공간들이 죽 늘어선 곳을 지나니 인공 재배가 가능한 함선 안 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함선의 천정까지 층층이 높게 뻗은 트레이에 종자만 이식하면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을 받아 금세 자라날 것이었다.


샤일로는 지구 식물로 채워질 농장을 상상하며 곳곳을 살폈다.


농장을 나와 의료 캡슐을 모아 놓은 곳을 지나자 죽 늘어선 정화 캡슐이 눈에 들어왔다. 샤일로는 가까이 다가가 캡슐에 손을 얹었다. 잊을 수 없는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샤일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이제 잠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일정 시간의 수면을 유지해야 태아에게 이롭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완전 꼰대가 따로 없네. 수다 떨다 보면 잠도 늦게 자고 그런 거예요.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이지. 뭘 그렇게 정해진 대로만 움직여요? 샤일로?”


“최대한 변수가 없도록 당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씻을게요. 어휴. 꽉 막혀가지고는.”


구원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툴툴거리며 정화 캡슐 앞에 섰다. 샤일로도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뒤 돌아 나를 봐주세요.”


“아. 진짜. 짜증 나.”


샤일로는 구원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구원희가 입고 있는 가운이 그의 신호를 확인하고 잠금을 해제했다. 샤일로는 두 손을 뻗어 가운의 앞섶을 열었다. 살구빛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혹시나 그녀가 놀랄까 샤일로는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겼다.


“진짜. 이 시스템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나 혼자 해도 되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구요. 항상 당신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니 민망하잖아요.”


“당신 옷의 잠금을 해제할 수 있는 건, 당신의 감시관인 나 뿐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여기 있는 동안에는 내가 당신의 옷을 벗겨줘야 해요. 당신을 기록하고 있는 옷이 벗겨졌을 때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벗겨진 가운은 바닥에 털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샤일로는 양손으로 중요한 부분을 가린 채 캡슐 안으로 들어서려는 구원희를 훑어 보았다.


“어? 뭐야. 이상해.”


“뭐가요? 이상이 있나요?”


“샤일로 당신 지금 좀 변태 같았던 거 알아요?”


“변태? 그게 뭐죠?”


“왜 그렇게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냐고요. 가뜩이나 챙피한데. 왜요.

배가 불룩 나오니 웃겨요? 가슴이 부풀어서 살쪄 보여요? 임신하면 다 그렇다고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닙니다.”


“요즘 이상해.”


몸을 돌려 눈을 흘기는 구원희에게 샤일로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사실, 내 몸과 마음이 이상해진 걸 나도 느낍니다. 그게, 당신과 키스란 걸 한 뒤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구강을 통해 뭔가 전염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자꾸 더워지고 당신의 몸에 눈이 갑니다. 나도 모르게 힘이 솟기도 하고 빠지기도 합니다. 매일 보던 당신의 몸인데 다르게 보입니다. 만지고 싶어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질 때도 있어 혼란스럽습니다.


뱃속에 생명을 품은 지금의 당신 모습은 완벽해요. 당신이 말한 그런 이유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에요.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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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 80화. 외전 3(완결)> +3 21.07.04 129 10 8쪽
79 <제 79화. 외전 2(결혼식)> +1 21.07.02 105 7 7쪽
78 <제 78화. 외전 1> 21.06.29 106 7 7쪽
77 <제 77화. 다시 만난 그들. > 21.06.25 114 8 8쪽
76 <제 76화. 구호선 안의 풍경 > 21.06.23 94 7 8쪽
75 <제 75화. 마지막 연설 > 21.06.22 108 9 7쪽
74 <제 74화. 무너져가는 땅 > 21.06.21 104 10 7쪽
73 <제 73화. 인간 띠 > 21.06.20 99 8 9쪽
72 <제 72화. 습격 > 21.06.20 96 8 8쪽
71 <제 71화. 함선이다!> +2 21.06.19 126 8 8쪽
70 <제 70화. 소용돌이 치는 세상> +2 21.06.18 111 8 7쪽
69 <제 69화. 아리야 > 21.06.17 103 8 8쪽
68 <제 68화. 탑승자 이송 > 21.06.16 107 8 7쪽
67 <제 67화. 아빠가 미안해 > 21.06.15 99 7 7쪽
66 <제 66화. 형이 가! > 21.06.15 106 9 8쪽
65 <제 65화. 어른 아이 > 21.06.14 112 10 7쪽
64 <제 64화.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지?> +2 21.06.13 123 10 7쪽
63 <제 63화. 선발, 그 후 > 21.06.13 124 11 7쪽
62 <제 62화. 탈영병 > 21.06.12 134 9 8쪽
61 <제 61화. 다시 돌아온 이유 > +2 21.06.12 124 10 8쪽
60 <제 60화. 촉촉이 젖은 은밀한 시간 > +4 21.06.11 166 12 8쪽
» <제 59화. 정화 캡슐 안에서 > 21.06.11 133 10 7쪽
58 <제 58화. 흔들리는 세계 > +2 21.06.10 141 12 9쪽
57 <제 57화. 번개탄과 리어카 > +2 21.06.09 145 12 8쪽
56 <제 56화. 마트 점장 > +1 21.06.09 146 11 8쪽
55 <제 55화. 대피소에서 > 21.06.08 141 12 8쪽
54 <제 54화. 대국민 특별 담화 > +1 21.06.08 139 12 7쪽
53 <제 53화. 대통령이 미쳤나 봐. > 21.06.07 145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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